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10
309화 그날이 다가온다
배성민은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에테르 연구소를 바라봤다.
이 연구소는 전성기엔 수백 명의 연구 인력과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 쓰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통폐합될 지경에 처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자금 부족 때문이었다.
메가시티의 시민들은 에테르란 정체불명의 에너지에 돈을 쏟아붓는 것보다는 재개발에 투자하는 편을 선호했다.
배성민이 아무리 애를 써도 최고평의회의 의결에는 맞설 수가 없었다.
“하기야 돈도 안 되고 사이커들은 죄다 연예인이 되어서 나가 버리고… 누가 연구를 하겠느냐마는…….”
유지하 대통령이 떠난 후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절대 권력자의 통제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유가 아닌 방종으로 치달았고 숙련된 사이커, 즉 파일럿들은 군을 나가버렸다.
―플레이그도 없는데 굳이 통합우주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나? 어차피 반응탄이 메가시티를 지켜줄 건데.
―거 쓸데없는 에테르 연구에 돈을 쏟아부으니 우릴 놓치는 거 아닙니까?
―우릴 붙잡고 싶으면 연봉을 팍팍 주셔야지. 한 천만 크레딧이면 만족하겠는데.
천만 크레딧은 배성민의 연봉 30배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고 통합우주군은 도저히 맞춰줄 수 없었다.
그렇게 군을 나간 사이커들은 연예계의 노리개가 되어 자신의 장기를 카메라 앞에서 뽐내기에 이르렀다.
몇 명은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해 범죄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그걸 잡는 히어로라는 집단도 대두되었고 세간에는 둘이 한통속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빌런이 사고를 치면 히어로가 수습하는 형식으로 돈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배성민은 이런 동향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지만 폭로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질서 자체를 무너뜨릴 순 없어…….’
그들이 자유를 찾는 건 나무랄 게 아니었다.
최고평의회에서 히어로 활동에 자금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사태는 그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드디어 사이버펑크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직접 사는 입장이 되다 보니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그 누가 치솟는 범죄율에 악화되는 식량 사정, 수뇌부의 부패를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께서 있었을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배성민은 최대한 버텨보려 애썼지만 통제시스템이 무너진 이상 허사에 불과했다.
그는 최고평의회와 일부 시민들의 비웃음 속에서 유지하가 만들어 놓았던 시스템을 하나씩 해체해야 했다.
이 에테르 연구소도 그중 하나였다.
안에 들어가자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집기와 오래된 먼지, 그리고 책더미가 그를 반겼다.
연구소장인 황선영과 파티마가 집기 사이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둘은 배성민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 대통령님 오셨군요.”
“삼촌 안녕하세요.”
유지하가 거둔 아이들은 배성민을 삼촌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공식석상에서야 직함이 나오겠지만 사석에서는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다.
그것은 아마 유지하에 대한 공통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배성민에게서 온기를 찾으려 했고 그는 자신이 대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옆자리를 내주었다.
대단한 친분은 아니었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 의지할 정도는 되었다.
배성민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연구소 내부를 둘러봤다.
“한때는 정말 대단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뭐, 돈이 안 되니까요.”
황선영은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말했다.
“이놈의 에테르란 에너지는 도대체 규명할 수가 없어요. 우린 이게 입자인지 파동인지도 모르고 그저 쓸 수 있을 뿐이죠.”
“대통령님께선 미래를 위해선 에테르를 연구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셨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람들이 지친 거죠. 엄청난 돈을 쓰고도 결과가 안 나오니까.”
만약 플레이그가 있었다면 계속해서 자금을 투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를 위협하던 적은 유지하와 함께 사라졌고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에테르를 연구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돈을 벌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다.
금융과 가상화폐가 거기에 속한다.
실제 최고평의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르면 에테르 연구소 5개를 폐쇄한 자금은 그대로 금융시스템 구축에 쓰일 예정이었다.
웃긴 일이었다.
크레딧 결제망은 잘 돌아가고 있는데 무슨 금융시스템이 따로 필요하단 말인가?
배성민은 자세한 보고서를 보고서야 그들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20년 전 활황이었던 돈놀이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거군.’
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과 가상화폐는 유지하가 제일 싫어하던 것이었다.
그는 버튼 클릭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금융상품은 인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하곤 했다.
중요한 건 실물경제이며 그런 온라인의 데이터 따윈 거대한 위기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문명을 발전시킨 것은 그런 금융이라며 그를 비웃었으나 플레이그의 위협이 현실화되자 유지하의 말이 실현되었다.
수백 개에 달하던 가상화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온갖 금융상품도 0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의 생을 연명하게 해준 건 온라인의 데이터가 아니라 빵 쪼가리와 마실 물이었다.
‘그런 위기가 사라졌으니 다시 시작하겠다는 거지…….’
현재 젊은 층에선 자신이 가진 연산력과 전력을 가지고 가상화폐를 채굴하느라 열심이었다.
통제를 받지 않는 메가시티의 시민들은 중앙컴퓨터의 연산력과 핵융합로의 전력을 빌릴 권리가 있었다.
그들은 그 자원으로 생산성 있는 일에 쏟기보다는 온라인의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복사가 되는데 지켜만 보라고? 말이 됩니까?
―비트코인이 지금 1크레딧이잖아요? 5년만 지나도 2만이 넘어간다니까.
―이 좋은 걸 다들 왜 안 하나 몰라.
다른 사람들을 꾀는 건 물량을 받쳐주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배성민은 그런 세태를 혐오했지만 현 세대는 그의 태도를 구시대 정치인의 퇴보로 판단하고 무시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외모를 가졌지만 안티에이징 시술의 결과물일 뿐이며 실제로는 노인이었다.
은퇴해서 쉬어도 될 나이이고 재산도 상당히 모았지만 권력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인류연합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가시티의 인구 구조를 봤을 때 내가 정치를 그만두면 다음 대통령은 중국계가 된다…….’
중국인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여론이 무서웠다.
그들은 인류연합과 유지하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는 대신 메가시티에 들어와 장악하는 편을 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인들이 메가시티에 입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만 명 정도였지만 최고평의회와의 합의 때문에 가면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다른 정치인들은 무시하고 오로지 중국계만 뽑았다.
능력이나 인품, 공약보다는 중국계라는 정체성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게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좁은 메가시티에서 새로운 파벌이 형성되어 기존의 파벌과 충돌한다는 점은 충분히 우려스러웠다.
또한 메가시티 아메리카에서 총기가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유지하는 모든 총기의 반입을 금지했지만 미국인들이 총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당장 사건이 발생한 건 아니지만 몰려드는 중국인을 모두 검문할 수가 없다 보니 당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메가시티 내에서 유혈사태라도 터진다면…….’
그건 아마 시민과 아웃사이더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다.
메가시티의 시민들은 선택받았다는 그릇된 자부심과 오만함을 품고 있었고 아웃사이더들은 그것을 아니꼽게 여겼다.
둘은 문화도 크게 달랐다.
안전한 메가시티에서 살던 시민들은 기존의 인류와 별다를 바 없었지만 아웃사이더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지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치솟는 범죄율 대부분이 그들에게서 나온 거니 말 다했지.
시민들은 수뇌부에게 이런 것들을 해결하라고 요구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지부진했다.
배성민이 생각하기에 현 지구의 누가 와도 이걸 해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구조적인 문제라서 전부를 뒤집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해.’
유지하의 통치를 맛봤던 시민들 입장에선 배성민 체제는 재난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사퇴 얘기도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그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려갈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가 내려가면 인류연합은 안 좋은 방향으로 폭주를 시작할 테니까.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명…….’
유지하 대통령뿐이었다.
직함 앞에 전 자가 붙어 있음에도 배성민은 아직도 그를 대통령으로 생각했다.
자신은 그가 떠난 자리를 임시로 메우고 있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일이 대충 끝났는지 파티마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4월인데 덥네요… 삼촌, 커피나 한잔하실래요?”
“요즘 커피 비싸잖아.”
“제가 쏠게요. 직장도 옮기는 겸해서.”
“오오, 나도 사줘, 커피.”
황선영이 끼어들었고 셋은 경호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3, 4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들어오더니 파티마에게 안겼다.
“엄마!”
“미안, 엄마가 할 일이 있어서. 유진이에요. 전에 말씀드린 아들.”
배성민은 그녀의 아이에게 충격을 받았다.
그 갓난아기가 벌써 이렇게 크다니.
그런데 이름이 좀 이상했다.
“유진이라면 혹시…….”
“네. 아빠가 잠깐 썼던 이름이에요. 원래는 아빠의 이름을 물려주려 했는데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아무래도 유지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하자 파티마는 달래기 바빴고 황선영이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도 결혼이나 할 걸 그랬나…….”
“선영 씨 능력이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잖습니까?”
“눈에 차지가 않더라고요. 엄청난 사람을 보고 나니까.”
그게 설마 유지하는 아니겠지?
그녀는 빨대를 뱉고 이야기했다.
“제가 뭐 대단한 감정을 품은 건 아니고요.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보다 보니까 저까지 눈이 올라갔나 봐요. 미친 거죠.”
“그러고 보니 선영 씨는 오래전부터 같이 근무하셨죠.”
“신라에너지 건물에 출근했을 때부터 봤으니까요. 생각해 보니까 그때 달라붙었어야 하는 건데. 에고, 내 팔자야.”
“그때도 아르마가 옆에 있지 않았을까요? 단지 안 보였을 뿐이지.”
“아, 그러네.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군요.”
황선영은 담담하게 인정했고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문장을 입에 담았다.
“그분이 돌아올까요?”
“사실 저는 들은 게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님은 최측근이니까 잘 아시지 않나요?”
“제가 들은 건 다른 사람이 아는 것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돌아온다. 가는 데만 50년이다… 뭐 그런 것뿐이죠.”
“이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건데 약속을 한 사람이 그분이다 보니까 진짜 되나? 싶은 게 있죠.”
“그런데 전 안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어? 왜요?”
“돌아와 봐야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진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약 힘이 없다면 인류에게 치일 테고, 그렇지 않다면 피를 흘려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분의 목적은 인류의 보존이었잖아요? 굳이 피를 흘릴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 거라는 얘기입니다. 누가 그분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하긴…….”
황선영은 어느새 엄마의 품에서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전 왠지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분은 지금까지 약속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그날이 오면 인류는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적어도 평화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둘은 파티마를 쳐다봤고 그녀는 아기에게 손부채를 부쳐주다가 말했다.
“저는 그냥 유진이를 아빠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이렇게 잘 키웠다고요…….”
그녀의 목소리에선 유지하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묻어났다.
아프가니스탄 산골의 소녀였던 그녀가 그의 품에서 자라 이제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마 유지하가 돌아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언제 이렇게 컸지 하면서 말이다.
황선영이 턱을 괴었다.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와도 평화롭진 않겠지만 하여튼 왔으면 좋겠네요.”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셋은 창밖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봤다.
4월인데도 여름처럼 더운 날이었다.
* * *
플레이그의 공습은 치열하고 또 끈질겼다.
새롭게 등장한 에테르 입자포가 제롬의 상공에 나타난 공주와 플레이그를 격퇴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병력을 투입했다.
횟수가 10번을 넘어가다 보니 에테르 입자포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대기권 밖에선 군단타격함대가 모습을 드러내 요격했지만 그들은 병력 일부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아스테라로 진입했다.
그 결과 소수의 플레이그가 엘브랑데 주에 강하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래도 그쪽은 방어가 소홀했던 것이다.
―수도가 안 된다면, 외곽부터 친다!
―여기에도 인간은 있다! 모조리 죽여라!
군단의 목표는 아스테라의 파멸이었다.
이는 오메가 퀸의 주목적과 행동대장을 맡은 공주의 열등감이 합쳐지면서 낳은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자는 열쇠만 손에 넣으면 아스테라 따위야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후자는 열쇠는 신경 쓰지 않는 대신 레오볼드를 파멸시키고 싶어 했다.
다만 인류제국은 그쪽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엘브랑데 주에 무사히 강하한 병력은 의외로 적었고 이는 신형 골리앗으로 얼마든지 대응하는 게 가능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열리며 지갈레온을 비롯한 골리앗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국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티렌델과 발가드를 비롯한 기사들이 마구 날뛰었고 강화된 플레이그들은 맥을 못 추었다.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
―대체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예전의 아스테라가 아니다! 레오볼드 그놈의 짓이다!
나이트급 한 마리에도 쩔쩔매던 기사들이 크라켄급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는 골리앗이 강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에테르를 거의 무한에 가깝게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아공간에 숨어 있는 세틀러호의 융합로는 처음으로 최대출력으로 에테르를 뽑아내고 있었다.
에테르 블레이드를 뽑으면 그 크기가 건물만 했고 절단력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플레이그가 버티기가 힘들 수밖에.
하지만 인류제국이 늘 승승장구하는 건 아니었다.
아스테라는 넓었고 지킬 곳은 너무 많았다.
플레이그 군단은 방어력이 취약한 지점을 정확히 노려 강하를 시도했다.
이 시점에서 하늘을 보면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트랜스폼으로 대기권에 진입한 플레이그들은 마치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연상케 했고 곳곳에서 지진과 화재가 빈발했다.
제국의 중심부는 그나마 나으나 외곽지역, 특히 아직 편입되지 않은 소왕국들은 그야말로 지옥을 맛보아야 했다.
“살려 줘!”
“지금 당장 구원을 요청한다!”
“황제는 대체 뭘 하고 있는가!”
레오볼드는 넘쳐나는 원성에도 불구하고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딱 한 방에 끝난다…….’
일격을 가하는 시점은 오메가 퀸이 루시아의 육체를 빌려 링 월드와 본체를 소환한 시점이다.
에테르 오리진도 그쯤에 완성될 예정이었고 전황은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아르마는 링 월드의 동력원이 될 에테르 오리진을 월드 엔진으로 명명했다.
말 그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
과장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이것도 보수적인 계산이었다.
“에테르 오리진이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에너지 방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완성 직전에는 스스로 아공간을 깨고 나올 확률이 높아요.”
아공간이 그 존재를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아르마는 차원방어막을 수천 개나 겹쳐서 에테르 아공간의 붕괴를 틀어막고 있는데 그게 끝나는 순간 세상이 바뀔 것이다.
한편 마레의 둥지에 있던 오메가 퀸은 루시아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둥지를 방문하자 오메가 퀸은 크게 환영했다.
“드디어, 우리가 하나가 될 때가 왔구나.”
“예전에 말한 대로 일부 통제권은 내가 가질 거야.”
“상관없다. 마음대로 하려무나.”
루시아의 육체는 링 월드와 오메가 퀸의 본체를 소환하는 시점에서 수명이 끝난다.
그 뒤는 어찌되든 알 바 아니었다.
오메가 퀸은 알테마의 육체를 버리고 루시아의 육체로 갈아탔다.
그 과정에서 알테마의 영혼은 육체에 남는 게 아니라 끌려가게 되었다.
―대체 왜 이러느냐? 충분히 이용했으면 이젠 놔주어야 하지 않느냐?
―미안하지만 마법 관련해서 좀 더 이용할 부분이 있단 말이지.
그게 아니더라도 놔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알테마의 영혼이 루시아의 육체로 들어갔고 마침내 셋은 하나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베로니카 성녀의 영혼까지 포함되어 있었지만 다른 영혼들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루시아의 육체를 얻은 오메가 퀸은 그 힘에 전율했다.
“이 힘… 내가 온당히 가졌어야 하는 힘…….”
원래의 육체에 비하면 많이 약한 편이었지만 변두리의 플레이그 퀸이라는 걸 감안하면 매우 강한 축에 들었다.
이때 오메가 퀸은 거미에 여성의 육체가 결합된 모습이었다.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코어에서 엄청난 에테르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 세상을 찢어버릴 듯했다.
부하들이 일제히 자세를 낮추었다.
―영원한 여왕에게 충성과 영광을!
여왕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때가 되었다. 모든 힘을 동원해서 아스테라를 공격하고 녀석의 눈을 가려라. 내가 소환을 끝낼 때까진 그 어떤 방해도 용납할 수 없다.”
―아스테라를 불태워라!
100만에 달하는 플레이그 군단이 일제히 마레를 떠났다.
그들을 맞은 것은 군단타격함대의 반응탄과 입자포 세례였다.
우주공간에 수많은 빛이 명멸했고 플레이그의 사체가 중력의 흐름에 따라 쓸려갔다.
그럼에도 플레이그들은 끝없이 군단타격함대에 덤벼들었다.
이는 지상에까지 영향을 끼쳐 무수한 플레이그가 방어망을 뚫고 강하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황도 제롬까지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제국의 수호룡 지갈레온이 베헤모스급 플레이그들에게 둘러싸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는 놀랍게도 버티고 있었는데, 아르마의 세뇌에 가까운 교육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서였다.
―아스테라는 내 고향이야! 절대 네놈들에게 넘기진 않겠다!
그의 분전에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기사들이 힘을 내어 플레이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레오볼드와 아르마는 관저의 집무실에서 시시각각 차오르는 그래프를 쳐다보고 있었다.
“곧 에테르 오리진이 완성됩니다. 그때부터는 월드 엔진으로 이름을 바꾸겠습니다.”
“오메가 퀸의 소환도 시작되겠군.”
마침내 운명의 그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