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13
312화 선지자와의 만남, 그리고…
워프게이트를 통과한 레오볼드의 의식은 곧장 어떤 공간으로 향했다.
그곳은 수많은 행성으로 들어찬 우주였다.
레오볼드가 생각한 것보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걸 봐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압축한 것 같았다.
각각의 행성엔 놀랍게도 생명이 가득 차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생겼고 어떤 문명을 이룩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선지자의 창조물인가.’
오메가 퀸이 말한 바 있다.
지구의 인류와 아스테라의 여러 종족을 포함해 수많은 문명이 우주에 있으며 그들 모두가 선지자의 창조물이라고.
하지만 그녀가 몰랐던 게 하나 있는데 인류는 선지자의 창조물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르마가 추론한 가능성일 뿐이었지만 레오볼드는 확신하고 있었다.
에테르 문명이 아니란 것은 창조물이 아니란 근거가 된다.
선지자의 창조물이 분명한 아스테라의 여러 종족과 플레이그는 에테르를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
다만 100% 확실한 건 아니었고 정확한 것은 지금부터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레오볼드의 의식이 또렷해지면서 우주공간에 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거기엔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마…….
‘선지자 라사.’
그녀의 존재가 비로소 의자에 나타났다.
신전에서 봤던, 붉은 머리카락을 한 흰 피부의 여성이었다.
자세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오볼드는 그녀가 손짓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당신이 선지자 라사입니까?
―그 말에 대답하기 전에, 당신들이라고 정정해 주고 싶네요.
전에도 선지자는 나 대신 우리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설마 선지자는 단일 생명체가 아니라 수많은 의식이 모인…….
―맞아요. 사망행성 출신의 종족이 우주로 뻗어나갔다가 쇠락한 모습이죠.
그렇게 말하는 라사의 표정에선 아쉬움과 착잡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만한 기술을 지녔음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레오볼드는 비로소 그녀를 만났다는 생각에 감격했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서서 그녀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들려주겠지요?
―그냥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레오볼드가 여기까지 온 목적은 선지자를 만나서 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라사는 한참 동안 그를 지켜보다가 일으켜 세워선 의자에 앉혀 주었다.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여기까지 온 건 당신의 능력이니까요.
―당신의 선물이 없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진 못했을 겁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윤곽 외에는 희미한 얼굴임에도 미소가 보이니 말이다.
그녀는 살짝 웃더니 손짓으로 배경을 바꾸었다.
우주가 사라지고 거친 모래폭풍과 흙먼지가 있는 행성이 보였다.
―우리 종족은 이 행성에서 태어났죠. 전형적인 사막행성인데 척박했지만 살기에는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어요.
―당신의 종족은 외모 면에서 어땠습니까?
―지구의 인류와 닮지 않았냐고 묻는 거죠? 거의 비슷했어요. 귀가 뾰족했다는 거 빼고는.
어쩌면 아스테라의 엘프와 닮은 외모였을지도 모른다.
그 지랄 맞은 성격은 전혀 안 닮은 것 같지만.
레오볼드가 입을 다물자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 척박한 곳에서 문명을 일구었고 외우주로 진출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에테르 덕분이었어요. 에테르를 쓸 수 있게 되면서 우리의 모든 것이 바뀌었죠. 수백 년 후에는 본격적으로 워프게이트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우리는 우주 곳곳으로 뻗어나갔고 우리와 같은 문명이 있나 찾았어요.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죠.
말로는 쉽게 하지만 수백 년에 걸친 역사였다.
그 긴 시간 동안 지적생명체를 찾아 헤맨 것을 보니 선지자들도 인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과 닮은 종족을 찾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어떤 바다 행성에는 생태계가 있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우주 곳곳에서 수천 개의 생명체가 사는 행성을 발견했죠. 하지만 우리처럼 사고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외우주로 진출하려는 문명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당신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우리를 언제 발견했습니까?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로마가 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당신들을 발견하고 접촉할 생각에 흥분했지만, 절대 건드려선 안 된다는 주장이 대세였어요. 왜냐하면 훌륭한 문명을 꾸리고 있는 당신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진 않았거든요.
잘 관리된 정원을 바라보는 정원사의 심정이라고 할까?
비록 그 정원이 자신이 가꾼 것이 아니라 해도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라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당신들을 본 후에, 우리는 생각했죠. 문명이 없다고 아쉬워할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 결과 중의 하나가…….
―당신이 지금 지배하고 있는 테라. 사실 그 같은 행성은 우주 곳곳에 많아요. 생명체가 자라날 수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시드를 뿌려뒀거든요.
―시드… 씨앗이란 의미입니까?
―맞아요. 생명의 씨앗이죠. 우리와 당신들의 유전자를 섞어서 만든 거라 대부분은 외모가 비슷해요.
레오볼드는 이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우리의 유전자도 들어갔습니까?
―약간이지만요. 그래서 유전자 배열을 조금만 바꾸면 혼혈도 가능하죠.
아르마가 그렇게 연구를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게 그래서였구나.
레오볼드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지만 카밀라는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황비로서 임신을 못 하면 이야기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바람은 둘째 치고 혼혈이 비교적 쉽다는 건 애초에 유전자가 비슷해서였다.
―어떻게 보면 아스테라의 인류는 우리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틀린 말은 아니죠.
―플레이그는 어떻습니까? 원래 우리와 비슷한 종족이었다고 들었는데.
―수호자들은 맡은 임무가 달랐지만, 어쨌든 큰 차이는 없었어요. 유기물을 섭취해서 에너지를 얻고, 번식을 해서 후대를 이어나가고…….
―그럼 그들이 타락하게 된 경위는 무엇입니까?
―수호자들의 임무는 우리가 창조한 문명을 관리하는 것이었어요. 여기서의 관리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길잡이 같은 것이죠. 애초에 그들은 외우주로 가지도 못했으니 먼발치에서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게 원래의 역할이었고요.
―그런데 그들이 욕심을 내기 시작했군요.
―맞아요. 그건 아마 우리가 만든 링 월드에서 금속화물질… 그러니까 육체를 기계로 치환하는 물질을 접하고 난 이후였겠죠. 본격적으로 외우주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그들은 점차 관리가 아니라 지배에 중점을 두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없다고요? 당신들이?
―애초에 수많은 생명체를 창조한 목적은 우리가 쇠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쇠퇴하기 시작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워프게이트를 이용해 수많은 문명을 창조하면서, 우리 종족은 점차 파편화되어갔죠. 우주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그만큼 외로워졌어요. 어떤 항성계에는 단 한 명이 있었을 정도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군요…….
달리 말하면 우주는 선지자조차 감당하지 못할 만큼 넓다는 얘기도 된다.
그녀는 씁쓸한 웃음을 띠었다.
―우습죠? 본격적으로 에테르와 워프게이트를 이용한 첫 문명이 몰락하기 시작한 게 외로움 때문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우리는 육체를 벗어던진 지 오래지만, 그 영혼은 육체에 종속되어 있었으니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다.
어쩌면 엘드그라실에 영혼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의 실험인 것 같았다.
레오볼드가 그 건을 물어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준비한 게 금속화물질이죠. 육체를 기계로 승화시키는… 실험으로 준비한 거였는데 수호자들이 거기에 접촉하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수호자들이 우려하던 외우주의 존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창조한 종족이 많으니 지레짐작한 것뿐이죠.
―일이 그렇게 된 거로군요…….
선지자의 종족은 쇠퇴를 거듭한 덕분에 직접 나설 수가 없어서 간접적으로 레오볼드를 골랐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의 행동에 만족하고 있을까?
―당신들이 보기에 저는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한 행동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글쎄요, 그건 우리가 평가할 부분이 아닌 것 같군요. 꼭 물어봐야 한다면… 당신의 행동에 후회하나요?
레오볼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이 할 겁니다.
그게 정의는 아니겠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라사는 웃음을 띤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됐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전부 이루어졌어요.
―이제 우리가 당신들의 뒤를 이어서 외우주로 진출해 다른 생명체들을 돌보면 됩니까?
―아뇨.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의 후계자가 되는 걸 원치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들은 스스로 일어선 문명이니까.
―하지만 당신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멸망했을 겁니다.
―우리가 없었다면 플레이그도 없었을 테니 멸망은 오지 않았겠죠.
하긴 그렇다.
레오볼드는 선지자가 진짜 원하는 걸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말하지는 않았다.
플레이그는 이제 없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루시아의 부하들뿐이고 레오볼드를 신으로 여기고 있으므로 그럭저럭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지구와 아스테라였다.
선지자의 말에 의하면 반드시 레오볼드가 그들의 후계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녀는 그의 고민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중요한 건 당신의 선택이죠. 지구와 아스테라를 구해 낸 당신은 뭘 하고 싶나요?
―저는…….
레오볼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인류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과거로 돌아와 플레이그와 싸웠고 선지자를 만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그는 목표를 잃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되지 않겠는가?
여기에서 생을 마감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원래 그는 선지자를 만난 후엔 잊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스테라 어딘가에 집을 짓고 아르마와 함께 여생을 마감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니 그 정도 여유는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선지자를 만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저 별의 바다 너머에는 선지자가 만든 생명체들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안 보는 게 나을 거예요. 멀쩡하다고는 말 할 수 없는 상태라서.
―그래도 보고 싶습니다.
둘을 둘러싼 배경이 여러 행성으로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크게 확대되었고 레오볼드는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
행성 표면 전체를 살가죽 같은 유기물이 덮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꿈틀꿈틀 움직이기까지 했다.
―저건 대체 뭡니까?
―문명 퇴화의 한 단면이라고 할까요? 저들은 에테르란 에너지를 가졌음에도 결국 저 행성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아스테라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저기에도 플레이그가 있는 거군요…….
―겁에 질린 저들은 행성 전체를 봉인하기로 결정했어요. 플레이그와의 싸움에 멸망하느니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 거죠. 의식을 통합하고, 유기화학을 동원해 육체를 저렇게 바꿔 버렸어요.
에테르를 잘못 쓰면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반면교사에 가까웠다.
웃긴 것은 저런 흉물스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은 행복을 느끼고 있단다.
―행복만 느끼면 다행인데 어딘가에서는 불행도 느끼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운석 등으로 인해 육체가 손상되고 있거든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나 봅니다…….
다른 행성도 둘러봤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이쯤 되면 선지자의 창조 실험은 실패가 아닌가 싶었고 그녀도 그것을 인정했다.
―우리는 실패했어요. 다시 말하죠. 우리는 완전히 실패했어요. 시드를 뿌리는 데에만 신경을 썼지 그 뒤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거든요. 애초에 수많은 우주로 흩어진 사람들이 각자 추진하던 것이다 보니.
종족 전체의 의식이 통합되면서 창조물들이 버려졌다.
문명의 숫자가 1억 개가 넘는다고 하니 레오볼드의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중에서 정상적으로 행성권을 벗어나 우주에 진출한 종족은 몇이나 됩니까?
―아무도 없어요. 있다면 오직 하나, 당신들 지구의 인류뿐이죠.
레오볼드는 그제야 지금은 쉴 때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에테르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된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머나먼 우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럴진대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물론 지구엔 여전히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지만 그들을 돌아봐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스테라도 있고, 링 월드도 있으니까.
그의 얼굴이 결심으로 굳어가자 선지자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만든 링 월드는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죠. 테라 행성은 물론이고 에테르 우주까지 수납하고 단독으로 워프게이트를 열 수 있어요.
그 말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제가 지구로 돌아가는 걸 바라십니까?
―방금 말했듯이,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하지만 우리로선 가급적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거죠.
―잠깐 지구를 볼 수 있을까요?
말이 끝나자마자 배경에 지구가 나타났다.
그가 있던 시간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향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곳으로 돌아가서 이 질기고 거친 삶에 마침표를 찍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비록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레오볼드, 아니, 유지하는 비로소 결정을 내렸다.
―지구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그럼, 우리 만남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겠군요.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후계자를 만들었고, 우리는 쇠퇴했으니 이대로 잊히는 편이 좋겠죠. 사실 지금도 살아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이 사막행성에 의식이 묻혀 있으니까.
―저희가 찾아가도 괜찮겠습니까?
―환영은 하겠지만 대접은 못 해주겠네요. 이 행성엔 아무것도 없거든요.
라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오볼드에게 다가와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우리가 더 빨리 당신들을 발견했다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결과적으로 당신들은 살아남았어요. 이제 우리의 유산을 가지고 외우주로 떠나세요. 그게 당신들의 선택이라면.
―그 전에 제 소원 한 가지만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가 아니라 두 개죠?
아르마와 루시아의 소원은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알테마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혼을 회수했으므로 적당한 육체를 만들어주면 될 것이다.
레오볼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라사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선물을 하나 줄게요. 아무래도 종족이 너무 많아서 소통이 힘들 테니…….
―감사합니다. 정말 여러 혜택을 보게 되는군요.
―우리가 감사할 일이죠. 덕분에 한숨을 돌리게 되었으니. 링 월드에 약간의 조정이 필요하니 며칠은 편히 쉬세요. 그럼, 안녕히.
―안녕히…….
그 말을 끝으로 선지자 라사와 배경이 천천히 사라졌다.
레오볼드의 의식도 흐려졌다.
그의 영혼을 수납한 링 월드는 본격적으로 에테르 우주를 수축시키기 시작했다.
수많은 소행성과 테라 행성이 링 월드의 가운데에 정렬되었다.
외우주로의 대장정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링 월드의 통제컴퓨터에 하나의 좌표가 입력되었다.
월드 엔진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며 워프게이트를 만들어 냈다.
구조물 전체가 들어갈 만한 엄청난 크기였다.
테라 행성을 포함한 링 월드는 워프게이트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에테르 우주가 닫혔다.
* * *
“후우…….”
배성민은 물에 잠긴 김포 지역을 보며 씁쓸해했다.
지난 5년간 온난화가 꾸준히 진행되어 해안선이 급격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그나마 좀 나은 편으로, 중국은 영토의 1/5이 침수될 위기에 처했다.
내륙은 황폐화된 지 오래고 남은 구역이 플레이그의 공습에 박살이 났으므로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더 줄어든다.
“그걸 아니까 저렇게 꾸역꾸역 들어오려 하는 거겠지…….”
당초 배성민은 장자양 의원의 파벌과 2천만의 인구를 메가시티에 들이기로 합의했다.
그들이 똘똘 뭉칠 것을 몰라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메가시티 노스는 기존 시민과 새로이 들어온 중국계의 마찰로 엄청난 혼란을 빚고 있었다.
기존 시민의 구성원이 성격 괄괄한 북한계라는 걸 생각해 보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내전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메가시티 퍼시픽을 내놓으라는 외국의 압박은 심해지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주장도 이해할 만했다.
현 시점에서 메가시티가 아니면 제대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당장 나가라니 그 비용을 어떻게 대란 말인지…….”
한반도도 해안선이 계속 물러나고 있어서 1억 가까운 인구를 수용할 만한 상황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일본의 형편은 좀 나은데, 인류연합의 가운데에 있어서 비교적 영토와 인구를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연합의 덕을 봤으면서도 연합국에 달라붙었다.
아마 인류연합의 주축이 되는 한국에게 붙기는 자존심이 상해서일 것이다.
배성민을 괴롭게 하는 것은 이런 외국의 압박이 곧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한반도의 재개발에도 막대한 재원이 소모될 예정이어서 인류연합에 많은 부담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겠군…….”
반응탄이 있는 이상 전쟁은 무리라는 평이 많지만 국지전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당장 메가시티 노스 북쪽의 만주는 거의 아포칼립스가 펼쳐져 있다는 평이었다.
사실 메가시티 주위는 대부분 그렇다.
고민이 깊어지는 와중에 갑자기 공기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배성민은 담배를 물다가 창밖에서 뜻밖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오늘따라 달이 밝은… 잠깐, 저게 달이라고?”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볐다.
그럼에도 그 물체는 여전히 밤하늘에 남아 있었다.
“설마 저건… 행성?”
입가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