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14
313화 이상한 행성
배성민이 황폐화된 서울에서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메가시티 퍼시픽 주위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연합국의 함대와 인류연합의 함대가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단타격함대를 감축하기로 협정은 맺었지만 우주선이 모두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함대에 속해 있지 않은 물량까지 긁어모아 시위에 나서다 보니 제법 위용이 훌륭했다.
물론 양측의 대치는 어디까지나 대치로 끝날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반응탄 재고가 남아 있다 보니 섣부른 행동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대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게 메가시티 시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한반도나 일본 열도 등이 있으니 퍼시픽 하나는 비워 주고 석유를 제대로 받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자원 수급이 연일 악화되면서 다들 인내심을 잃은 것이다.
2044년, 핵융합 플랜트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석유는 필수적이었고 인류연합은 이 부분에서 취약했다.
원래는 괜찮았지만 유지하가 떠난 후 혼란 속에서 수급처가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다.
인류연합이 유지하라는 이름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것도 자원 공급에 악영향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메가시티에선 정치적으로 그를 배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북태평양의 메가시티 퍼시픽 근해엔 현 지구의 우주선 전력 대부분이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번만 실수해도 전쟁이 터질 위기여서 다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공기가 흔들렸다.
우주선 자체는 멀쩡했지만 안의 사람들은 상당한 충격을 느꼈다.
“…방금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중력자 레이더가 오류를 일으켰습니다! 연합국 함대 위치 특정 불가!”
“몇 년 동안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시스템 리부팅하고 위상배열 레이더로 전력 돌려!”
구시대적인 시스템이지만 중력자 레이더가 오류를 뿜어낸 시점에선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인류연합 함대에선 부지런히 피해 추산에 들어갔다.
유사시를 대비해 격납고 대기실에 있던 소냐 소령은 창밖을 통해 하늘에 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달?”
처음에는 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왜냐하면 진짜 달은 따로 있으니까.
언뜻 보기엔 작은 지구 같기도 했는데 푸른 바다와 흰 구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뭘 잘못 봤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게 사라지진 않았다.
그때쯤 다른 파일럿이 나왔고 급기야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거 대체 뭐야!”
“왜 지구가 저기에 있어?”
아무래도 그녀가 잘못 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인류연합 함대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함대사령관은 즉각 참모들을 불러 모았고 저게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요약하면 지구는 아니라는 거지?”
“예, 망원경으로 확인했는데 언뜻 보이는 육지가 지구와 완전히 다릅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입니다.”
“그게 왜 여기 있지? 태양계에 10번째 행성이 나타났나?”
9번째 행성 녹스가 발견된 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곳을 잘 몰랐다.
그런데 10번째 행성이 생겼다니 황당할 수밖에.
다들 눈만 끔뻑끔뻑하는데 통신실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화성기지에서 확인한 결과, 지구 근처에 또 다른 행성이 출현했다고 합니다!”
“행성 외에 달 크기의 위성 그림자가 두 개 보인다는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구 근처에 다른 행성이 출현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가?
그런 일이 벌어졌음에도 지구에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않는다고?
천문학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 인류연합의 과학자들이 뒤집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저만한 행성과 위성 두 개가 나타났다면 어떤 식으로든 지구에 영향을 줘야 할 텐데 그게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놀란 것은 다른 메가시티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하늘만 쳐다보며 웅성댔고 일부에선 가보자는 주장이 나왔다.
―달 크기와 비교하면 약 200만 km 거리에 있는 것 같은데 가볼 만하지 않나?
―우주선이 남아 있으니 돈을 좀 쓰면 얼마든지 저 행성의 대기권을 살펴볼 수 있다.
―아쉬운 건 중력자 레이더가 모조리 먹통이 되었다는 건데… 눈과 기존의 레이더를 믿을 수밖에 없겠다.
이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지만 일단 가보자는 주장이 대세였다.
또 다른 푸른 행성에 대한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여론은 어김없이 배성민 대통령에게도 흘러들어갔다.
그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메가시티 퍼시픽으로 돌아와 상황을 점검했다.
“대기 분석 결과 지구와 환경이 거의 흡사합니다.”
“문명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연합국은 남은 전력으로 원정함대를 꾸려서 곧 출발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뒤처져선 안 됩니다.”
다양한 보고가 쏟아졌고 배성민은 장고에 들어갔다.
저 행성이 유지하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선지자의 고향에서 무언가를 찾았다면? 그게 저 행성을 여기로 옮긴 거라면?’
하지만 그 경우 유지하에게서 소식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인공지능인 아르마가 옆에 붙어 있을 테니 이쪽에 데이터가 들어와야 하는데.
무엇보다 시간이 맞지 않았다.
편도 50년이 걸리는 곳이라는데 고작 5년이 약간 더 지났을 뿐이었다.
“…….”
고민이 길어지자 답답해진 의원들이 재촉하고 나섰다.
“대통령님, 고민만 하고 있을 시기가 아닙니다.”
“만약 저기가 오염되지 않은 땅이라면 우리가 선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구는 이미 끝났습니다. 더 희망이 없어요.”
“과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저 행성에 문명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시간만 죽이다간 후회할 겁니다.”
행성이 나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호들갑이란 말인가?
사실 의원들의 이런 태도는 최근 인류연합이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의 반증이었다.
사방이 적이라 탈출구가 없었는데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눈이 뒤집어질 수밖에.
배성민 대통령은 의원들의 탐욕 어린 시선을 외면하고 말했다.
“…조사대를 파견합시다. 군함은 빼고 어설트 아머도 2대로 제한하겠습니다.”
“대통령님!”
“저기에서 마찰이라도 발생하면 우리가 밀리지 않겠습니까?”
“초기 신대륙을 발견했던 각국의 대처를 생각해 보십시오. 병력은 충분해야 합니다.”
저기가 주인 없는 땅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배성민은 그런 의견을 무시하고 각부 장관에 지시를 내렸다.
“조사대는 최소한으로 꾸리십시오. 경거망동하지 말고 차분히 전모가 밝혀지기를 기다립시다.”
의원들은 그의 태도에 불만이 많은 듯했지만 이 자리에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회의가 끝났고 배성민은 하늘을 바라봤다.
앞으로 많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 * *
소냐는 인류연합의 조사대를 이끌고 이상한 행성으로 향했다.
연합국이나 다른 세력에 비해 규모는 조촐했고 과학자가 대거 포함되었다.
행성에 눈독을 들이기보다는 환경과 식생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무기만 장착한 구축함 한 척이 대기권에 진입했고 곧 구름이 사라지며 푸른 바다와 육지가 나타났다.
소냐를 포함한 조사대원들은 이질적인 풍경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이 있군요.”
“일단 대기 조성은 지구와 거의 비슷한데… 어떻게 이런 행성이 있을 수 있죠? 마치 쌍둥이 같은…….”
그때 속도를 줄인 구축함 주위로 뭔가가 휙 날아갔다.
사람들은 구름인가 했지만 카메라에 잡힌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괴물.
하늘을 나는 새 같은 괴물이 모니터에 선명히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저게 대체 뭐죠?”
“모르겠는데요… 새는 새인데 다리엔 왜 털이 수북할까요?”
“외부 카메라 모듈과 비교해 보면 덩치가 장난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집만큼 커요!”
“저거 혹시 그리폰 아닐까요?”
누군가 그 말을 꺼냈고 사람들은 뜨악했다.
“그리폰? 그 판타지에 나오는 몬스터 말입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기계로 된 수백 미터짜리 우주괴물이 천 단위로 튀어나오는데 그리폰 하나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잖아요.”
“그런가?”
하긴 플레이그를 겪어보면 어지간한 것은 덤덤하게 넘어가게 된다.
구축함의 고도가 내려가자 푸른 바다가 드러났다.
사람들은 열심히 바다를 구경하다가 거대한 거북이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거북이는 아닙… 저놈이 입에서 뭘 쏩니다!”
“깜짝이야… 그냥 물이었네요.”
“입에서 물을 쏘는 자동차만 한 거북이가 있는 행성이라…….”
여러모로 놀랄 일이었다.
이윽고 구축함이 해변에 완전히 착륙했다.
사람들은 안에서 대기했고 소냐와 파일럿 한 명이 어설트 아머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상공을 잠깐 날아다녔지만 별다른 위험이 없다는 걸 안 다음엔 수트 차림으로 대지에 발을 디뎠다.
“…….”
소냐는 그렇게 발을 디딘 순간부터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 고요한 숲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오래되었지만 워낙 경험이 독특해서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했다.
옆의 파일럿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숲,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맞아. 훈련생이 되기 전에 신라그룹에서 출시한 게임 있었지? 판타지 행성의 이상한 숲에 떨어져서 생존하는 게임.”
“아… 기억나네요. 그거 완전 골때리는 게임이었는데.”
무슨 생존 게임이 유저의 죽음을 목표로 한단 말인가?
진정한 메타버스의 문을 열었다는 극찬에 걸맞게 느낌도 아주 생생했다.
그 게임은 파일럿 훈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았지만 이후의 시술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즉, 유지하는 어설트 아머의 파일럿이 될 만한 인재를 선별하기 위해 그 게임을 출시한 것이다.
그때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느닷없이 뭔가가 날아왔다.
소냐는 그게 화살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외쳤다.
“공격이에요! 돌아가요!”
“이런 젠장! 뭐 하는 놈들이야?”
후다닥 어설트 아머로 도망간 후 고도를 높이는데 밑에서 몇 명이 화살을 쏴대기 시작했다.
이상한 불덩어리 같은 것도 날아왔고 아무튼 엉망이었다.
소냐는 이 행성의 원주민으로 생각했고 그건 반만 맞았다.
모함으로 복귀한 후 조사대원들이 영상을 분석한 결과를 내밀었다.
“엘프… 인 것 같습니다. 몬스터도 그렇고 우린 판타지 행성에 온 게 확실합니다.”
“…….”
귀가 뾰족한, 전형적인 엘프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상식이 붕괴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헛웃음을 흘렸고 소냐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일단 이 행성에 문명이 있다는 건 확인된 셈이군요.”
“음성을 분석해 봤는데, 어째 영어로 들리는 건 제 착각일까요?”
“어디, 같이 들어봐요.”
스피커를 통해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들어도 영어였다.
“희한하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행성의 원주민들이 영어를 쓴다라…….”
“숲에 사는 원주민치고는 피부색도 밝은 거 같고 여러모로 특이하네요.”
“환영은 안 해 줄 것 같으니 다른 곳을 둘러보기로 하죠.”
조사대장은 소냐였기에 모든 권한은 그녀에게 있었다.
구축함은 주위를 떠돌아다니다가 조촐한 도시를 하나 발견했다.
이번에는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쪽도 별반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덤덤히 이쪽을 지켜볼 뿐이었다.
소냐는 조사대원 몇 명을 이끌고 도시에 진입했다.
호기심이나 경계심 대신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건 왜일까?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나와서 그들을 맞았다.
“제롬에서 오셨습니까?”
“제롬이요? 제롬이 뭐죠?”
“그렇게 모른 척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런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그리 흔한 건 아니니. 여기, 폐하께 드릴 보고서가 있습니다.”
조사대가 발견한 곳은 다름 아닌 인류제국의 엘브랑데 주 개척도시였다.
플레이그와의 최종전이 펼쳐지고 있을 때에도 개척은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황실에서 가끔 감사를 나오기도 했다.
시민들이 귀찮아하는 것은 감사관이 의심을 가지고 인구나 자재 등 실제 현황을 확인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한두 번이라야지.
소냐가 보고서를 받아들고 뒤적이는데 레오볼드 반다스란 이름이 보였다.
“레오볼드 반다스가 누구죠?”
순간 조사대를 둘러싼 시민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감사관이 왜 황제의 이름을 모른단 말인가?
“농담하는 겁니까? 페하의 영광된 이름이잖습니까.”
분위기를 눈치챈 소냐가 재빨리 변명에 나섰다.
“아, 아! 그렇죠. 그랬죠…….”
“흠…….”
시민들은 조사대를 의심했지만 감히 감사관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냐는 보고서를 뒤적이다가 아르마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그녀가 아는 아르마라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아빠의 비서…….’
아르마가 안드로이드이자 인공지능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고 소냐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원래는 몰랐는데 그가 떠난 후 삼촌 배성민에게서 들은 것이다.
그 이름을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우연일까?
그녀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막 부임한 터라…….”
“아… 이해는 갑니다. 워낙 많은 것들이 변화하는 시대니까요.”
엘브랑데와 자이움이 무너지고 인류제국이 대두되는 등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우주에선 그것보다 더 큰 일이 발생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거기까진 알지 못했다.
소냐는 새로 부임한 척하며 이것저것 물은 끝에 아르마 재상의 인상착의를 대강 알아낼 수 있었다.
크림색의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
거리를 걸으면 시선이 집중될 정도의 뛰어난 미모.
그녀는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아르마가 있다면, 그녀의 아빠도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인류제국의 황제로서.
자세한 경위를 알아봐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머리 위에 불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녀는 조사대에 지시를 내렸다.
“우리는 이 행성을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당장.”
“예? 갑자기 왜요?”
“이 사람들 말도 잘 통하는데 정보를 좀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책임은 제가 집니다. 지금 바로 떠나겠습니다.”
조사대가 불만을 터트렸지만 전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그들을 받아들인 구축함은 고도를 높여 대기권을 벗어났다.
다들 멀어져 가는 육지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연합국에선 이미 제국이라는 곳과 접촉했다는데…….”
“이러면 우리가 너무 뒤처지는 거 아닙니까?”
그럼에도 소냐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저 행성에 진입하는 연합국 함대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 * *
「연합국의 함대가 제국이라는 곳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현재 수도 상공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며, 이렇다 할 교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국의 반응이 조금 미심쩍은데, 전혀 공격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배성민은 정보부서에서 올린 보고를 훑어봤다.
뜻밖에도 저 행성에는 문명이 있었다.
지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철로로 기차가 다니고 하늘을 나는 배가 존재한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판타지 세계인 것이다.
지적 생명체도 인간과 별다를 바 없어서 놀랍게도 대화가 통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행성의 원주민들이 영어를 쓴다라…….”
이게 과연 우연일까?
그는 아무리 해도 유지하의 이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토록 찾던 선지자의 고향이 바로 저곳이라면?
모종의 이유로 유지하가 전 대륙을 통일하고 황제로 불리게 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떤 힘을 얻어서 행성을 태양계로 가져왔다면?
허무맹랑한 얘기였지만 그의 정체를 생각하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소냐가 올린 보고가 그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황제를 보좌하는 재상의 이름이 아르마……? 내가 아는 그녀가 확실한가?’
외모가 일치한다니 의심은 걷어도 되겠지만 100% 확신할 순 없었다.
만약 황제라는 자의 정체가 유지하라면, 왜 접촉해 오지 않는 것일까?
‘설마 깜짝쇼?’
워낙 그런 걸 좋아하던 사람이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수법을 써서 적대 세력을 곤경에 몰아넣는 걸 즐겼다.
이렇듯 다양한 정황이 그라는 걸 가르쳐주고 있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확히 말한다면 유지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서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는 것이겠지만.
“…정말이지 환장하겠군.”
배성민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라이터를 켜다가 집무실 구석에 놓인 드론을 바라봤다.
아르마가 저 행성에 있다면 지금쯤은 저 드론의 LED가 켜졌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공지능이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그녀가 드론이나 폐기된 안드로이드를 놔둘 것 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저 시건방진 연합국 함대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
그들은 19세기 서양이 그랬던 것처럼 함포를 들이밀고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만약 유지하와 아르마가 저 행성에 있다면, 절대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후우…….”
그는 긴 연기를 뿜어내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곁눈질을 했다.
6년 가깝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드론에 녹색 LED가 들어와 있었다.
베성민의 입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