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용하와 인공. 그리고 유월이. 이 셋은 또다시 척박한 광야를 걸었다.
“이놈의 팔자는 매번 이렇게 뜨거운 대지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야 하는 것이냐?”
“이 길 어딘가에 장설 형님이 계신다는데, 어디인들 못 가겠습니까?”
딱히 항변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형님도 보셨잖습니까? 아무 희망도 없이 막연히 걸었을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잖아요.”
“낫다니, 대체 무엇이 그러하다는 것이냐?”
“장설 형님이 계시잖습니까. 장설 형님이 이 길 어딘가에 계신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까?”
“어허, 미안하구나. 내가 깜박했어. 지금 우리의 목적이 장설 형님을 만나는 거지?”
“네에!”
용하는 집어삼킬 듯 두 눈을 부라렸다.
“아! 미안, 미안.”
“형님! 제발요.”
“제발 뭐?”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형님이 이러시면 제가 불안하다고요.”
“그게 무슨 불안할 일이야! 나이 들면 다 깜박깜박하고 그러는 거지.”
“형님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는데, 태블릿 PC가 걱정되니 하는 말이죠.”
지금 상황으로는 태블릿 PC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런 사실을 인공이 모를 리 없었지만, 그래도 왜인지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하, 네 녀석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꼭 그렇게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냐?”
“그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습니다. 형님이 정신을 차릴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알았어.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고. 네 녀석 생각이 그렇다면, 이 한 몸 찢어지고 부서져서 가루가 되고 먼지가 되는 한이 있어도, 태블릿 PC만큼은 반드시 사수하마.”
인공이 이쯤 했으면 그냥 넘어갈 만도 했다. 하지만 용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야멸차고 단호하게 상기시켰다.
“정신 차리십시오!!”
더할 나위 없이 냉담한 용하를 보는 인공은 눈을 핼끔거리며 그저 주억거릴 뿐이었다.
‘인정머리 없는 것!’
유월이 컹컹 짖으며 저만치 달려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용하를 주인이라 여기고 그의 승리를 축하라도 하는 듯했다. 유월이 잔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인공을 향해 꼬리를 흔들 때면, 쭈글쭈글해진 그의 모양새가 고소해서 저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저거, 저거! 비싼 돈 주고 샀더니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아니, 되레 짐만 될 뿐이야.”
질투와 시기가 극에 달한 인공은 분이 풀릴 때까지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고는.
“용하야!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 말이다. 저렇게 그냥 허허벌판에다 두고 가도 괜찮은 것이냐? 어디 동굴에라도 숨겨 둬야 안전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마음이 놓이겠는데, 조 박사가 했던 말 기억 안 나세요?”
“조 박사가 했던 말?”
“시공간 이동체 자체가 태양광 집열판이라고 했잖아요. 자칫 시공간 이동체를 방전이라도 시키는 날엔…….”
용하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지, 진저리를 쳤다.
“설령 무림의 누군가 시공간 이동체를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마트키는 제가 가지고 있고, 아직 무림에는 트럭을 부술 만큼 튼튼한 장비도 없는데.”
“하긴, 트럭을 발견한들 무엇에 쓰겠느냐.”
“게다가 무림의 사람들이 이런 척박한 광야를 걸을 리는 더더욱 없고요. 우리처럼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나, 장설 형님처럼 고행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수가 다양해졌구나. 무림이어서 그런 것이냐?”
“수가 다양해지다니,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게다가 무림이어서!”
“자네 말이야. 무림에만 오면 세상 보는 눈이 놀랍도록 깊어지니 하는 소리야.”
“제가요?”
“네 녀석이 아님, 유월이겠느냐?”
* * *
두 시진을 넘게 걸었지만, 척박한 광야 어디에서도 장설을 볼 수 없었다.
“제대로 착륙시킨 거 맞는 것이냐?”
인공이 짜증스럽게 내뱉은 말에, 용하는 그를 휙! 돌아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냐? 여차하면 한 대 칠 기세구나.”
“형님! 지금 조광연 박사를 의심하는 겁니까?”
“의심이 아니고, 벌써 반나절을 걸었어. 그런데 형님은커녕 걸어 다니는 짐승조차 볼 수 없지 않으냐.”
“아직 비관적인 생각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입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 형님을 찾아서, 흑룡의 여의주를 찾아서, 그리고 에베레스트에 이르기까지.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척박한 광야를 수도 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설 형님을 만난 거고요.”
인공은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런 척박한 광야를 정신을 잃을 만큼 걸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장설 형님은 그런 신비감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미안하구나. 앞으로는 불평불만 하는 일 없을 것이니, 그만 화를 풀도록 하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인공의 말투에서 비굴함이 엿보인다거나 하지 않아서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장설 형님은 우리가 벼랑 끝에 서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벼랑 끝? 그럼 이렇게 척박한 광야를 걷고 있을 게 아니라, 산을 찾아 떠나자꾸나. 산에 가야 벼랑을 만나든 말든 할 것 아니겠느냐?”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고 저러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능청을 떠는 건지. 순식간에 짜증이 확 일었다.
“형님! 제발 좀.”
“알았다, 알았어. 때 되면 만나겠지.”
“때 되면, 이라뇨. 반드시 사흘 안에 만나야만 합니다. 그 이후에 만난다는 건, 장설 형님이 아니라, 장설 형님의 주검을 만나게 될 뿐입니다.”
용하의 말을 듣고 보니, 마냥 여유를 부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하이고, 무슨 놈에 팔자가 맨날 까이고, 쫓기고, 짓눌리고, 얻어터지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아주 징글징글해 죽겠어.”
“총각도 아니면서 히스테리는!”
“농담하지 말고, 무슨 방법이 없겠어?”
용하는 잠시 골머리를 싸매는 시늉으로 인공의 환심을 산 후 곧 대답했다.
“되든 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겠죠?”
“그걸 말이라고!”
“유월!”
“갑자기 유월이 녀석은 왜?”
“이 일을 해낼 적임자는 유월이 뿐입니다.”
“엥! 유월이 녀석이 적임자라고? 적임자는 무슨, 아직 한 살도 안 된 강아지가 뭘 한다고?”
“아직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조금만 가르치면 이번에도 반드시 해낼 겁니다.”
우쭐대는 것조차 예뻐 보일 만큼 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어느새 유월이 용하 옆에서 따라 걸으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용하가 흘깃 내려다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자, 유월이 용하를 올려다보며 교감을 표현했다.
―멍멍!
“형님! 웃옷 좀 벗어주세요.”
“웃옷을?”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국밥 먹고 나면 덥다고 웃옷 훌렁훌렁 잘도 벗으면서.”
“그야 더워 죽겠으니까, 일단 살고 봐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지만, 지금은…….”
“알았어요. 그럼 저부터 할게요.”
용하는 자기 웃옷을 훌렁 벗더니, 유월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게 했다.
―킁킁! 킁킁!
유월이 용하와 눈을 마주 보며 한동안 그의 체취를 코에 익혔다. 탐지견에 버금가는 유월이 행태를 본 인공은 조금은 겸연쩍어하며 슬금슬금 웃옷을 벗어 삐죽 들이밀었다.
“주세요.”
용하는 인공의 웃옷을 야멸차게 낚아채, 조금 전 했던 것처럼 유월이 코에다 대고 인공의 체취를 맡게 했다.
―끄응, 낑!
그런데 유월은 웬일인지 냄새를 맡기보다 싫은 기색으로 고개를 돌리는가 하면, 재채기까지 해댔다.
“아이참! 거, 형님! 웬만하면 옷 좀 빨아 입으세요. 무림에 남아도는 게 물이잖아요. 유월이 어지간해선 이러지 않는 앤데, 오죽했으면 저렇게 진저리를 치겠어요.”
“알았어, 그만해! 넌 사람 면박 주는 게 취미냐?”
“그럴 리가요. 그러니까 형님도 제발 유월이한테 좀 잘해주세요.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그렇게 막 대하지 좀 말고요.”
“알았어.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려고?”
“형님하고 제 체취 말고 또 사람 냄새가 나는지 알아보려고요.”
“에이,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닌 것 같다니, 왜요?”
“짐승이 알아듣기엔 너무 복잡해. 자고로 개란 짐승은 냄새 맡게 해주고, ‘이거 찾아와!’ 딱 여기까지가 한계라니까. 하나의 명령에 하나의 수행!”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용하는 유월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다른 개와 달리 왠지 유월이는 해낼 것 같은 조금은 막연한 바람이었을까.
“유월아~ 꼭 하라는 거 아니니까, 그냥 최선을 다해줬으면 해.”
그냥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유월이 꼬리를 흔들며 용하와 교감했다. 펄쩍 뛰어올라 용하의 얼굴을 핥아대며 말이다.
“조금 전 냄새 맡은 두 사람 말고, 다른 냄새가 나는지 좀 확인해 줘.”
바로 그 순간 유월이 동작을 멈추고 용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너무 어려워? 그냥 지금까지 맡아 본 적 없는 냄새가 나면 그걸 찾으면 돼.”
그제야 유월이는 용하를 바라보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유월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거야?”
무심코 던진 말에 유월이 펄쩍 뛰어올라 용하의 얼굴을 급히 핥았다.
“우리 유월이~ 오빠 말 알아들었구나~”
그 순간 유월은 마치 프로펠러가 돌 듯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 광경을 의구심으로 지켜보던 인공이 마침내 입을 뗐다.
“그렇게 안 보였는데, 유월이 보통 개가 아니로구나.”
―멍멍!
인공의 말에 유월이 두어 차례 짖으며 꼬리를 반갑게 흔들었다.
“어, 이 녀석 좀 보게. 컹컹 짖지 않고, 멍멍 짖었어.”
그제야 인공은 더없이 기뻐하며 유월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그럼 유월아! 한번 해볼까?”
―멍멍!
“레츠 고~ 유월!”
거의 동시에 용하는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유월이 멍멍 짖으며 그 뒤를 따라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유월이 귀가 조금씩 커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자기 몸만큼 커진 귀로 펄럭펄럭 날갯짓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뭐야?”
인공은 휘둥그레진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아무리 별별 일이 다 발생하는 무림이어도 그렇지. 이게 말이 돼?”
동화 속 그림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유월. 그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인공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님! 사람만 날아오르란 법 있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인 게냐?”
“저는 지난번에 왔을 때, 말로만 듣던 경공술을 처음 봤거든요. 그때도 딱 지금 같은 심정이었죠. 사람이 허공을 디디며 날아가는 광경 말입니다.”
“아, 그게 말이다. 사람은 수련을 쌓으면 가능한 일이지만, 저것은 개가 아니냐. 짐승!”
“짐승이나 사람이나, 뭐가 다르죠?”
“짐승은 수련을 쌓을 수 없지 않으냐.”
“왜요? 왜, 수련을 쌓을 수 없다는 겁니까?”
“본능으로 사는 것들이 제 살 깎는 고통을 참고 견뎌내며 무엇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냐?”
“수련이 별거 있습니까? 물론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부단히 노력하면, 조금씩 쌓이는 거 아닌가요?”
“그러하긴 하다만…….”
인공은 옅은 한숨을 토하는 것으로 남은 말을 대신했다.
“게다가 형님! 아직도 인정을 안 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 유월이 말입니다. 다른 개하고는 뭔가 다르다니까요.”
“그 말에 더는 반기를 들지 않을 것이다. 하나, 개는 개일 뿐이야. 그러니 유월이에게 거는 기대감은 딱 여기까지! 알겠느냐?”
이쯤 했으면 잠자코 고개 숙일 것으로 생각하고 뒷짐을 지고 가던 길을 가려고 할 때였다.
“아뇨! 저는 그 반대인데요.”
항변의 목소리가 인공의 귀청을 때렸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용하는 떡 버티고 서서 인공을 바라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용하와 눈길이 맞닿은 인공은 섬찟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왜 저리도 집착하는 것인가. 유월이 대체 뭐라고.’
그때였다.
―멍멍! 멍멍!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유월이 두 사람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졌다. 조금 전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유월이 용하에게 되돌아오는 것으로 귀도 점차 원래대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형님! 유월이 짖는 소리 들으셨죠?”
“그러게, 평범하게 들리지는 않구나. 귀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어.”
“지금 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뭔가 찾아낸 게 분명합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강렬하게 부딪쳤다.
―찌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