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101
35. 검선 (1)
“뭐 이리 많아?”
연무장 가장자리에는 검선회관에서 수학하는 무인들이 마치 관람객처럼 둘러서 있었고, 커다란 카메라를 든 직원들이 곳곳을 촬영하고 있었다.
검선회관 측도 이번 비무를 녹화해 올리고 싶다고 하더니 아주 본격적이었다.
유진은 연무장 가운데 서 있는 무인을 향해 다가갔다.
건장한 체구에 눈빛이 날카로운 중년의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홍유진입니다. 오늘 비무 잘 부탁드립니다.”
“검호 선경원. 잘 싸웁시다.”
그리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건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유진은 선경원의 옆에 서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저 소년이 바로 김용재와 싸우게 될 선경원의 아들, 선지훈이다.
유진이 김용재의 등을 두드리자, 김용재가 앞으로 나가 선지훈에게 인사했다.
“서울제일무공고 재학 중인 김용재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선지훈은 고개만 까딱할 뿐, 입도 열지 않았다.
명백한 무시다.
선경원이나 선지훈이나, 부자가 쌍으로 태도가 오만했다.
“무사부님. 제가 쟤 조지겠습니다.”
“꼭 그러길 바랍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진은 선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었다.
좋은 재능을 타고나 잘 배운 전형적인 엘리트 무인이었다.
여태까지 김용재가 상대해 온 또래들과 달리 특별한 약점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정도(正道)를 밟아 강해진 전형적인 명문 정파의 무인이었다.
지구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는데, 확실히 삼대장의 손자다웠다.
하지만 김용재보다 아주 강한 것은 아니다.
“김용재 군.”
“예.”
“오늘은 아무 조언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씀은?”
“저런 상대는 큰 약점이 없습니다. 그냥 누가 더 강하고 단단한가, 누가 더 중심을 잃지 않는가의 싸움입니다. 오늘은 그저 본인의 실력으로 맞부딪쳐 보세요.”
김용재의 눈빛이 다시 번뜩였다.
“알겠습니다.”
유진은 김용재에게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승산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지도 않다.
모두 김용재에게 달려 있었다.
이내 운명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김용재는 일곱 번의 싸움을 거치며 이리저리 변색되고 더러워진 목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반면 선지훈은 결이 깨끗한 새 목검을 들고 있었다. 재질부터 좋아 보였다.
김용재는 한층 차가운 눈빛으로 선지훈을 마주했다.
본래 인사를 나누고 비무를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생략했다.
선지훈 또한 김용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작게 중얼거렸다.
“고작 이딴 걸로 뭔 촬영까지…….”
김용재의 눈썹이 꿈틀했다.
선지훈은 애초에 그를 대등한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이미 일곱 명의 기재들을 격파하고 왔는데, 이를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래도 자신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의 패배는 곧 그가 꺾고 온 일곱 명의 패배와 같다.
자신이 패배한다면, 이제까지 대결한 일곱 명 또한 선지훈에게 ‘고작 이딴 것’으로 취급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김용재의 목검이 곧게 섰다.
***
“형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유원이 팔짱을 낀 채 유진에게 물었다. 그는 전에 없이 진지했다.
“용재가 이길 수 있을까요?”
“김용재 군은…….”
유진은 가만히 김용재를 바라보았다.
이번 경우에는 유진 또한 쉬이 승패를 점칠 수가 없었다.
실력보다는 다른 것에 의해 좌우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선지훈이 김용재에게 오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그의 경지가 미세하게 높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격차 자체는 크지 않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열 번 싸우면 다섯 번은 김용재가, 다섯 번은 선지훈이 이길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숫자놀음일 뿐이다.
열 번의 싸움을 치르는 경우 따위는 없다.
오로지 한 번.
그렇기 때문에 김용재가 무조건 이긴다.
“이길 거다.”
“정말입니까?”
“이런 단판 승부에서, 특히나 이렇게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지.”
“뭔지 알겠습니다.”
박유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지훈과 어우러지고 있는 김용재를 보았다.
“바로 헝그리 정신이지요.”
“비슷하다.”
두 사람의 말대로 김용재는 헝그리 정신으로 싸우고 있었다.
김용재가 시작부터 거칠게 치고 나가자 선지훈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선지훈이 비무를 하고 있다면, 김용재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조용하기만 하던 검선회관의 무인들은, 예상외로 싸움이 비등하게 흘러가자 작은 충돌에도 환호하고 탄식하면서 몰입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화이팅!”
“죽여 버려요!”
“검선회관! 검선회관!”
모두가 선지훈을 응원했다.
그 광경을 유진이 말없이 지켜보자, 나상철의 카메라가 그를 집요하게 촬영하며 무언의 압박을 했다.
유진이 입을 뗐다.
“선지훈 군이 여태 강한 상대와 비무를 한 건 사실이지만, 승패가 그닥 중요하지 않은 형식적인 비무였습니다. 반면 김용재 군은 자신과 동급인 상대들과 모든 것을 부딪치며 싸워 왔지요.”
유진의 말대로, 비등해 보이던 경기가 점차 김용재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멘탈에서 김용재가 우위였다.
그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훨씬 뛰어난 상대들을 격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전략을 체화했다.
그러면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배웠다.
하지만 선지훈은 달랐다. 그는 자신과 또래인 데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김용재가 예상을 벗어난 실력을 보여 주며 연신 압박하자 눈에 보일 정도로 멘탈이 흔들렸다.
“이, 이…….”
선지훈은 공격이 실패할 때마다 얼굴을 구겼고, 더 조급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선지훈이 열세였다.
그의 아버지인 검호 선경원이 소리쳤다.
“정신 차려라!”
그의 일갈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선지훈의 얼굴은 오히려 더 일그러졌다. 애써 평정을 찾으려 했지만 그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화가 나는 듯, 선지훈은 보다 무리한 공격을 시도했다.
반면에 김용재는 평온하게 대처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구도가 뒤바뀌었다.
선지훈이 하는 공격은 김용재에게 막혔고, 김용재는 계속해서 선지훈의 빈틈을 때렸다.
진검이었다면 이미 선지훈은 전신에 상처가 나 피를 흘렸을 테다.
박유원이 말했다.
“곧 끝나겠는데요?”
“그렇구나.”
“생각보다 싱겁네.”
문득, 유진은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눈을 들었다.
선경원이 분노에 찬 눈으로 유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 시비라도 걸고 싶은 눈치였다.
유진은 그의 시선을 부드럽게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선지훈 군의 성질은 제 아버지를 닮았나 보다.”
“예?”
“김용재 군이 이기면 그냥 보내 주지 않을 것 같은데.”
이제 비무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누구나 곧 선지훈이 패배할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지훈이 약한 게 아니라, 김용재가 예상외로 더 많이 성장한 것이다. 단순히 무공의 경지뿐만 아니라, 전투에 필요한 모든 면에서 완성도가 높아졌다.
그때, 선지훈이 눈을 치켜뜨고 비장의 수를 사용했다.
그의 목검에서 빛이 일어나더니 김용재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너무 빨라서 김용재가 바로 얻어맞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김용재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비틀어 간발의 차로 피하고는 아무런 내공도 가하지 않은 목검으로 선지훈의 옆구리를 찔렀다.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선지훈이 목검을 놓쳤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윽, 으으…….”
선지훈은 다시 일어나려고 애를 썼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그대로 주저앉은 채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반면 김용재는 차분하게 서 있었다.
누가 보아도 승패는 명확했다.
그때였다.
유진이 예상한 대로 선경원이 걸어 나왔다.
김용재의 승리를 선언하고 비무가 정리되어야 하는데, 선경원이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쓰러져 있던 선지훈은 제 아버지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선경원은 아무 말 없이 선지훈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켰다. 김용재에게 얻어맞은 터라 옆구리의 통증이 클 텐데, 선지훈은 이를 악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선경원이 말했다.
“들어가라.”
선지훈은 비칠거리며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선경원은 가만히 서 있는 김용재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도 가라.”
“예?”
“비무가 끝났으니 자리로 돌아가.”
선경원이 기운을 뿜어냈다.
여느 고등학생이었다면 그의 기운에 짓눌려 말도 못 꺼냈을 테지만,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김용재는 쉬이 굴복하지 않았다.
김용재가 선경원에게 물었다.
“제 승리 맞죠?”
선경원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김용재를 노려보았다.
연무장 전체가 고요해져 있었다.
김용재가 다시 물었다.
“제가 이긴 거 맞습니까?”
선경원은 대답 대신 턱짓했다.
“돌아가라. 나는 네 사부와 이야기를 좀 해야겠으니.”
그쯤 되자 유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유진은 선경원을 향해 걸어가며 빙그레 웃었다.
“내 제자가 이겼군요. 이로써 우리 무튜브 콘텐츠 고교 최강자전의 최종 승자는 김용재 군이 되었습니다. 선지훈 군도 제법 선전했지만 김용재 군이 조금 더 강했군요. 아드님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진의 말에, 선경원의 눈썹이 꿈틀했다.
유진은 김용재의 등을 두드려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물었다.
“그런데, 검호께서 이리 직접 나오신 이유가?”
“무튜브 콘텐츠로 유명해지고 싶은 것 같은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어떻게?”
“나와 비무 하지.”
고요해졌던 검선회관의 무인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선경원이 말을 이었다.
“애들 장난보다야 어른끼리 제대로 싸우는 게 더 재밌지 않겠나?”
“이건 계획한 콘텐츠의 범위를 벗어나는데…….”
“자신 없나?”
유진은 선경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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