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125
44. 파이트 클럽 (2)
유진이 내려가고 나자 스태프들이 연무장을 곧바로 쓸었다. 하지만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붉은 얼룩을 밟고 선 김우혁과 백지훈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김우혁은 징 박힌 장갑을 끼고, 백지훈은 검을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김우혁을 설득하려고 하던 백지훈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관중 중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했다.
그들은 강미연이 흉물이 되는 꼴을 보았다.
강미연과 백지훈, 김우혁을 찾아왔던 두 사람이 혈마인이고 유진은 혈마인들을 잡으려고 하며, 김우혁은 파이트 클럽의 룰로써 유진에게 협조 아닌 협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파이트 클럽에 오길 잘했군.”
“운이 좋았어.”
“폰으로 찍고 싶은데…….”
“파이트 클럽의 룰. 촬영하지 않는다 몰라?”
강미연이 패배했으니, 백지훈에게 주어진 길은 하나.
실력으로 두 사람을 이겨야 한다.
얼굴을 굳히고 있던 백지훈이 이내 웃기 시작했다.
그는 마주 선 김우혁에게서 눈을 떼고 연무장과 관중석 사이에서 강미연을 밟고 있는 유진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어이. 내가 졌어. 항복할게.”
“무슨 뜻이죠?”
“무슨 말인지 알잖아. 내가 그냥 순순히 간다고.”
백지훈이 두 손을 펼쳐 보였다.
“경찰이든 국정원이든 데려와. 사정을 다 설명하고 제대로 처벌을 받을 테니까 싸움은 그만하자.”
“글쎄요.”
“거기 강미연이랑 나랑 같이했어. 혈공 익혔다고. 됐지?”
“지금은 백지훈 씨 소관입니다.”
“자꾸 이렇게 굴 거야? 굳이 피를 볼 필요 없잖…….”
유진에게 말을 걸던 백지훈은 갑자기 얼굴이 옆으로 구겨지더니 연무장 바닥에 처박혔다.
어느새 다가온 김우혁이 백지훈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백지훈. 너는 오늘 여기 처음 왔지.”
김우혁이 웃었다.
“파이트 클럽의 룰. 파이트 클럽에 처음 온 무인은 무조건 싸운다.”
“미친…….”
김우혁이 백지훈의 머리채를 땅에 찍고 그 위로 주먹질했다. 그의 징 박힌 가죽 장갑이 백지훈의 얼굴을 후려칠 때마다 안면이 함몰되고 피와 치아가 튀었다.
하지만 김우혁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내 백지훈의 얼굴이 곤죽이 되어 바닥에 흘러내렸다.
누가 봐도 이미 죽은 사람의 몰골이다.
그런데 안와에서 튀어나와 비뚤어진 채 놓여 있던 안구가 빙글 돌아 김우혁을 보았다.
목에서 제대로 발음되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개새끼…….”
그리고 백지훈의 손이 칼을 휘둘러 김우혁을 베었다.
김우혁은 곧바로 몸을 뺐지만 가슴팍에 피가 흘렀다.
“크흐흐흐…….”
백지훈이 몸을 일으켰다. 엉망으로 뭉개져 있던 얼굴이 조금씩 수복되었다.
그 광경을 본 유진이 입매를 비틀었다.
리퍼를 시작으로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을 가진 혈마인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혈교주가 새로운 비법을 찾아 혈마인들을 한층 강화시키고 있는 듯했다.
저 정도가 되면 당해내기 쉽지 않다.
유진이 김우혁에게 물었다.
“도와줄까요?”
“파이트 클럽의 룰. 오로지 일대일로 싸운다.”
“위험할 텐데요.”
김우혁은 씩 웃은 다음 주먹을 쥐고 백지훈에게 다가갔다.
“위험이 싫었으면 파이트 클럽을 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는 포탄처럼 백지훈에게 주먹을 날렸다.
혈공을 완전히 일으킨 백지훈이 마구 검을 휘둘렀다. 김우혁은 피하고 또 피하며 백지훈의 검격 사이로 교묘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모두 피하지는 못했다.
김우혁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동시에 그의 주먹이 백지훈의 가슴을 때렸다.
백지훈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별다른 대미지가 없는 듯했다. 아까 그랬듯 함몰된 가슴이 재생하면서 그의 주위로 붉은 연기 같은 것이 일어났다.
백지훈의 검이 김우혁의 허벅지를 베었다.
“김우혁, 나는 너보다 훨씬 먼저 빅텐이 됐다, 이 미친놈아!”
김우혁이 뒤로 물러나자 백지훈이 공세를 더 격렬하게 했다.
“매일 싸움이나 하는 또라이 새끼, 무공은 싸움이 아니야!”
“그럼 마약 같은 거나 처먹는 게 무공인가?”
“강해지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
백지훈이 소리치면서 연신 김우혁을 밀어붙였다.
재미있는 것은, 김우혁의 몸에 칼자국이 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아니라 환호가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김우혁이 다치는 것마저도 파이트 클럽의 일부로 느끼는 듯했다.
“파이트! 파이트! 파이트!”
“파이트! 파이트!”
모두가 더 싸우라고 소리쳤다.
유진은 귀가 먹먹한 고함 속에서 김우혁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관중들이 그러하듯 김우혁 또한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날 때마다 웃었다.
칼날 앞에서 그의 주먹이 진동했다.
“그놈들이 나한테도 찾아왔지.”
김우혁은 그리 말하면서 백지훈의 칼날을 한 번 쳐냈다.
“화경에 멈춘 게 억울하지 않냐고. 자기네들과 함께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했어. 재능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없다면, 한계를 부여한 이 빌어먹을 세상에 복수하자고도 하던데.”
백지훈의 혈기는 거대한 채찍이 되어 김우혁을 후려갈겼다.
같은 빅텐이라지만 둘 사이의 격차는 확연해 보였다.
백지훈이 거대한 진기를 휘두르는 골리앗이라면 김우혁은 그 앞에서 간신히 버티는 다윗이었다. 다른 부분이 있다면 김우혁에게는 돌팔매질할 돌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김우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그게 정말 강해진 건가?”
“닥쳐라!”
“약을 처먹고 괴물처럼 변한 몸으로 피를 빠는 게 정말 강해진 건가?”
유진은 김우혁의 몸에서 소용돌이치며 일어나는 내기를 보았다.
김우혁은 백지훈보다 약하다.
혈공을 익혀 힘을 키운 백지훈은 김우혁을 압도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힘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꼴이었다.
백지훈의 검이 김우혁을 연무장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러고는 김우혁의 얼굴을 긋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갈라진 것처럼 보일 만큼 상처가 컸다.
하지만 김우혁은 더 크게 웃었다.
“파이트 클럽에 진작에 와 봤다면 네가 얼마나 한심한 선택을 한 건지 알 텐데.”
김우혁의 소용돌이치는 내기가 앞으로 터져 나왔다.
백지훈이 뒤로 물러났다. 김우혁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검과 주먹이 맞부딪쳤다.
서로의 공격이 교환될 때마다 김우혁이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유진의 눈에는 보였다. 육체적으로는 밀리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가 도리어 백지훈을 압도하고 있다.
“여기 있는 파이트 클럽은 싸우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많은 것을 알게 돼.”
어느 순간, 김우혁의 주먹이 백지훈을 때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너처럼 이상한 약이나 처먹는 게 아니라 주먹을 들고 싸우는 거야.”
김우혁의 주먹이 다시 백지훈을 때렸다. 백지훈이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김우혁이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얼굴을 찼다. 백지훈의 몸이 연무장 위를 굴렀다.
하지만 그는 혈기를 일으켜 곧바로 몸을 세웠다.
그가 다시 검을 드는데.
“지는 게 무섭나?”
김우혁이 소리치면서 달려들었다. 백지훈이 검을 휘둘렀다. 김우혁의 가슴이 갈라지면서 피가 쏟아졌다.
백지훈과 달리 그는 회복할 수 없다.
하지만 김우혁은 마치 목숨이 여러 개인 것처럼 싸웠다.
“아니면 약해지는 게 무섭나?”
김우혁이 웃으면서 백지훈을 찼다. 백지훈이 비틀거리다가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김우혁은 도리어 칼날을 손으로 잡았다.
“미친…….”
“싸우는데 상처 없이 이길 수는 없지.”
김우혁의 손가락이 반쯤 잘려 나갔다.
그는 다른 손을 휘둘러 백지훈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컥…….”
백지훈의 눈이 흐려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그의 검에서 터져 나온 혈기가 김우혁의 손아귀에서 폭발했다.
김우혁의 손가락 하나가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주먹을 날려 쓰러진 백지훈을 한 번 더 때렸다.
백지훈은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김우혁이 두 손을 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파이트 클럽의 주인이 이기자, 환호가 쏟아졌다. 김우혁은 손가락이 하나 잘린 손을 들어 모두에게 흔들고는, 잘려 나간 손가락을 챙겨 들었다.
“다시 붙을라나…….”
그리 중얼거린 김우혁이 씩 웃고는 쓰러졌다.
격렬한 전투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래도 환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엎어져 있던 백지훈의 몸에서 붉은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오더니 그의 몸이 기괴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백지훈의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죽어라!”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모두 당황했다. 백지훈이 칼을 들고 쓰러진 김우혁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하지만 백지훈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파이트 클럽의 룰.”
어느새 그를 가로막은 유진이 검으로 백지훈의 목을 겨누었다.
“항복하거나, 정신을 잃거나, 탭을 치면 끝이다. 그리고 결과는 인정한다.”
소리를 치던 백지훈은 유진 앞에서는 더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혈기마저 겁에 질린 듯 오그라들었다.
반쯤 이성을 잃었음에도 김우혁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내려가시지요.”
“나, 나는…….”
“저렇게 되고 싶다면 만들어드리죠.”
유진은 연무장과 관중석 사이 공간에 대강 처박혀 있는 강미연을 턱짓했다. 그녀는 죽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백지훈은 충동과 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했다.
“끄으으으…….”
김우혁에게 맞고 기절했다가 혈기에 의해 일어났으니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사정 따위 고려하지 않았다.
그냥 검을 찔렀다.
“컥!”
“지금 고민할 시간 준 거 아닙니다.”
유진의 검이 백지훈의 배를 찔렀다. 그의 단전이 파괴되면서 혈기가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시뻘게진 눈을 크게 뜬 백지훈이 허우적거리며 검을 휘두르자, 유진은 그대로 그의 가슴을 걷어차 날렸다.
백지훈이 멀리 날아가 관중석 아래 벽에 부딪쳤다.
환호가 쏟아졌다.
“이게 파이트 클럽인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거칠기는 하지만 김우혁이 추구하는 바도 대강 알 것 같았다.
유진은 쓰러져 있는 김우혁에게 다가가 그의 몸에 혼원기를 흘려 내부를 진정시켜 주었다. 김우혁이 눈을 떴다.
“수고했습니다.”
“홍유진.”
“백지훈 씨가 쓰러진 김우혁 씨를 공격하려 해서 제가 혼냈습니다.”
“너, 창천개벽문주를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예. 김우혁 씨도 배우고 싶으십니까?”
“아니.”
김우혁이 희미하게 웃었다.
“너와 싸우고 싶은데.”
유진 또한 피식 웃었다.
“그야 쉬운 일이지요. 회복하고 나면 싸워드리겠습니다.”
유진이 김우혁을 부축해서 그를 일으켰다.
이렇게 강미연과 백지훈까지 제압해, 빅텐에 있던 네 명의 혈마인을 잡았다.
빅텐에 남은 인물은 하나다.
그만 확인하고 나면, 최소한 빅텐에 있는 혈마인은 모두 거르는 셈이다.
***
“홍유진이라…….”
혈교의 네 장로 중 하나였던 혈령마군 궁패, 그리고 지금은 혈라수 하진운이라 불리는 자.
그가 중얼거렸다.
“너무 거슬린단 말이지.”
하진운은 그에게 전해진 소식을 보면서 미간을 모았다.
그들이 힘들여 포섭한 빅텐의 고수들이 모두 국정원에 끌려갔다.
그리고 그건 전부 홍유진이라는 젊은 고수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뭘 그리 신경 써? 간만에 여기까지 놀러 와 놓고.”
그의 맞은편에 있는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지금 뉴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레스토랑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다리를 꼰 채 휴대폰을 보다가 눈을 들었다.
“어차피 걔들은 우리 대업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애들인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니 그러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너 J야?”
“지구에 와서 병신 같은 것만 배웠네.”
“말투 봐. T구나?”
하진운은 피식 웃었다.
“야.”
“왜?”
“이거 봐.”
하진운이 휴대폰을 조작해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그녀가 미간을 모았다.
“왜 그걸 보여줘.”
“누구 생각 안 나?”
“누가 생각나는데?”
그가 보여 준 것은 자꾸 혈교를 방해하는 홍유진이란 놈의 사진이었다.
“그냥 귀엽게 생겼네.”
“그래? 정말 아무도 안 떠오른다는 거지?”
“처음 보는데? 나 한국에 관심 없어. 내 일로도 바빠.”
“그럼 됐어.”
“누구 말하는 건데?”
“네가 쫓아다니던 인간.”
“내가 누굴 쫓아다녔다고?”
그러는 사이 직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여자가 눈을 빛내며 입술을 핥았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하진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여자는 지금 지구에 너무 빠져 있다.
경고해 봐야 안 통한다.
“교주님은 지금 거기 계신가?”
“응. 판타리아.”
“알았다.”
하진운은 결정했다.
홍유진을 직접 보러 간다.
126.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