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169
60. 광인 (1)
“나도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들었어.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던데, 이번 사고 때문에 밝혀졌다는군.”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글쎄, 빅텐까지 합류해서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이세광이 씩 웃었다.
“아, 그리고, 인원이 부족해서 빅텐 희망자들도 제법 보냈다더군.”
“빅텐 희망자?”
“빅텐의 빈자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 말이지.”
빅텐은 현재 네 자리가 공석이다.
빅텐은 본래 열 명의 강자들을 부르기 위해 만든 칭호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직위에 가까워졌다.
때문에 정부와 한무련은 어서 빈자리를 채우려 했다.
“이번에 활약하면 가점을 준다더군.”
“빅텐이 나라에 공인받는 자리였습니까?”
“뭐, 요새는 그래…….”
이세광이 유진을 보았다.
“자네에게도 제안이 가지 않았나?”
“그랬지요.”
유진에게도 빅텐의 일원이 되라는 제안이 왔었지만 그는 거절했다.
삼대장을 사대장으로 해 준다고 해도 거절했을 테다.
무림에 군림했던 그에게 어울리는 칭호는, 그 누구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절대자의 자리조차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무사부일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요새 이런 소문이 돈다더군. 빅텐 위에 삼대장이 있고, 삼대장 위에 무사부가 있다고.”
“정말입니까?”
“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있어. 아닌 사람들도 많고.”
이세광이 웃었다.
“어쨌건, 나도 내일 합류하기로 했어. 자네도 갈 텐가?”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그 괴객이라는 무인과 연이 있거든요.”
“연?”
“과거에 제가 주화입마에 들었을 때, 민들레 무인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종종 괴객 씨의 비명 소리를 듣기도 했지요.”
“자네도 거기 있었다니, 그런 인연이…….”
“그리고, 빅텐 희망자들이 온다고 하니 무인업계를 선도하는 업계지도층 인사로서 신입들의 얼굴을 한 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건 그래. 재미있겠구만.”
***
유진은 다음날이 되자 곧바로 민들레 무인요양병원으로 갔다.
민들레 무인요양병원에 들어서자 김시은이 유진을 반겼다.
“홍유진 씨!”
“김 간호사, 오랜만입니다. 무사하셨군요.”
“예. 다행스럽게도요. 그때 저는 마침 오프였거든요.”
김시은이 미소를 지었다.
“그 환자분 때문에 오신 거죠?”
“맞습니다. 병원은 괜찮습니까?”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었어요. 다친 사람도 많아요. 건물도 몇 개 부서지고…….”
민들레 무인요양병원은 이미 경찰들이 진을 친 상태였다.
유진은 그녀의 안내를 받아 그 무인이 갇혀 있었다는 방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박유원을 치료할 때 만났던 의사 이휘선이 있었다.
“이 선생, 잘 지냈습니까?”
“글쎄, 잘 지냈는데 어제부터는 못 지내고 있지.”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쓴웃음을 지었다.
“괴객(怪客) 때문에 왔나?”
“맞습니다.”
빅텐의 한 명이자 심마 때문에 병원에 갇혀 있던 그 환자는, 본래 괴객이라는 별호로 불렸다.
괴이한 손님이라는 호칭처럼 그는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기행을 일삼았는데, 늘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평판은 좋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심마에 들었고, 그 이후로 모습을 감추었다.
김시은이 말했다.
“여기 있는 분이 빅텐이었다니, 저는 꿈에도 몰랐어요.”
“비밀을 유지해야 했거든. 빅텐의 하나가 심마에 들었다니, 그냥 실종으로 처리하는 게 낫지. 기행을 일삼던 사람이기도 했고.”
이휘선이 부서진 벽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괴객이 심마를 앓으면서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거야. 본래는 저 벽을 부술 수 없었어.”
유진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는 괴객을 속박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온갖 구속 도구들이 찢긴 채 널브러져 있었다.
사방이 쇠창살이고 벽이었다.
괴객은 이런 곳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흐음…….”
유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항상 심마에 빠져 있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의 개인적인 기록이나 그런 건 없습니까?”
“기록이라.”
이휘선이 턱짓하자, 간호사로 일하는 무인들이 유진에게 노트를 하나 건넸다.
유진은 그것을 열었다.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이 제멋대로 쓰여 있었다.
기이한 외국의 언어 같기도 하고, 그냥 낙서 같기도 했다.
“이런 게 있지만 해독은 못 했어. 광인의 마음을 어찌 들여다볼 수 있겠나.”
유진은 그것을 보다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혹시 무슨 뜻인지 아나?”
“아뇨. 혹시 몰라서 그냥 찍어 두는 겁니다.”
유진은 노트를 돌려주었다.
“추적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직은 근처에 있다고 판단하고 주변을 수색 중이야. 그가 멀리 갔다면 이미 어딘가에서 사고를 치고 알려졌겠지.”
이휘선이 유진에게 경고했다.
“조심하게. 심마에 든 무인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이 안 돼. 무공 또한 파괴적으로 변모했어. 자네가 아무리 고수라 하더라도 만났을 때는 몸을 사리게.”
“명심하겠습니다.”
이휘선의 말이 맞았다. 심마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무인이 미치면서 무공 또한 악랄하게 변하는 것이다.
심마에 든 무인은 마음의 제약이 풀어지면서 잔혹한 살수를 마음껏 사용한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유원은 박유원이나 김비서 등 무관의 코치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잘 보았습니다.”
유진이 병원을 나오자, 이세광이 나타났다.
“오, 자네 일찍 왔군.”
“조금 전에 왔습니다. 병실 보시겠습니까?”
“자네는 봤나?”
“예.”
“그럼 됐어. 그것 봐서 뭐 해. 괴객이나 찾으러 가자고. 저기, 저기에 다른 녀석들이 있다는데…….”
이세광은 이미 주변의 빅텐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민들레 무인요양병원 일대는 경찰차가 연신 순찰을 돌고 있었다.
유진은 이세광과 함께 근처에 있는 산을 향해 달려갔다.
“여기에는 검호가 있지.”
검선회관이라는 이름이 박힌 옷을 입은 무인들이 산의 초입에 서 있었다.
그들은 유진과 이세광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이세광이 손을 들었다.
“다들 고생이 많아. 어떤가, 탐색은 잘 되고 있나?”
“아,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대답하는 관원들의 표정이 묘했다.
“왜들 그래?”
“그게…….”
그들은 무언가 곤란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세광이 무언가 낌새를 느끼고 더 캐물었다.
“무슨 문제 있나?”
“여기에 저희뿐 아니라, 참월문도 왔는데…….”
“참월문?”
이세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 빅텐 희망자가 소속되어 있다는 거기?”
“예.”
“그런데?”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아서…….”
이세광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는 유진을 돌아보았다.
“우리 검호 녀석이 또 신입과 시비가 붙은 모양인데.”
“이상하지는 않군요.”
“가 보자고.”
씩 웃은 이세광이 검선회관 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들 말아. 문제 생기기 전에 나와 이 무사부가 끼어들 테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유진과 이세광은 산길에서 만난 관원들에게 길을 물어가면서 올라가, 마침내 선경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미간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선경원 씨는 표정이 항상 저렇군요.”
“나중에 주름 때문에 고생할 거야. 쯧쯧…….”
선경원은 다른 무리와 대치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무인들의 도복에 참월(斬月)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저기네.”
선경원은 그 무리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들어 보니 내용이 이랬다.
“우리가 여기를 맡는다고 했는데, 왜 너희가 여기 있지?”
“저희가 여기를 맡는다고 했는데요.”
“우리가 먼저 왔다.”
“글쎄요, 그거, 확인할 수 있습니까? 제가 알기론 저희가 먼저였습니다.”
두 자루 검을 십자로 등에 멘,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선경원을 앞에 두고서도 여유를 보였다.
“나 참, 검호께서 이런 억지를 부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참월문의 문도들이 웃었다.
검선회관의 관원들은 서늘한 표정으로 상대 무리를 노려보았다.
각 리더의 성향을 닮은 것인지, 검선회관의 관원들이 날이 서 있다면 참월문의 문도들은 한껏 건들거리는 분위기였다.
유진과 이세광이 모습을 드러내자 선경원이 미간을 더 모았다.
“아니 선경원 자네, 거기서 미간이 더 모아지나?”
“시끄럽습니다.”
“표정 좀 펴.”
그리고 이세광은 맞은편에 선 참월문의 무인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창천개벽문주 님이시군요. 저는 참월문의 이재균입니다.”
이재균은 짐짓 이세광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왜들 이러고 있어?”
“이번에 그 정신병자를 찾느라 서로 흩어지기로 했는데, 검호 님이 저희를 따라오시지 뭡니까. 그래서 이에 대해 의논 중이었습니다.”
“그냥 한쪽이 양보하면 되지.”
“그래도 늦게 온 쪽이 양보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는 빅텐을 상대로도 전혀 위축되는 기색이 없었다.
선경원과 이재균의 대화는 여전히 평행선을 그렸다.
“우리가 먼저 왔다고 했다.”
“분명 저희가 먼저였습니다.”
선경원이 물러서지 않자 이재균이 한숨을 쉬고 팔짱을 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유진을 향했다.
“혹시 거기 계신 분은 무사부입니까?”
유진이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자 이재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사부는 빅텐이 아닌 걸로 아는데, 혹시 빅텐 희망자입니까?”
이세광이 대신 손사래를 쳤다.
“저 친구는 빅텐에 관심 없어. 신경 쓰지 말게.”
이재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무튜브나 계속 하지, 난 또 빅텐 까지 들어오려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무사부한테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가 두 손을 펼쳤다.
“무사부라고는 하는데, 정작 제자 중에 딱히 고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름을 댈 만한 제자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자 이세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선경원은 미간을 더 일그러뜨렸다.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빅텐은 전부 유진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는 처지다.
게다가 이세광은 유진 덕분에 현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우리 참월문에서는 저뿐 아니라 화경의 고수가 벌써 셋입니다. 개중 제가 제일 강해서 여기 온 거지, 나머지 둘도 엄연한 화경의 고수죠.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다른 빅텐 희망자들이나 빅텐 선배님들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다른 사제들도 빅텐에 추천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그는 선경원과 이세광, 유진을 차례로 쳐다보며 씩 웃었다.
엄청나게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이윽고 선경원이 입을 뗐다.
“건방진…….”
“예?”
이재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건방지다뇨. 이래서 저는 빅텐이 한 번 물갈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피가 수혈되어야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서로 수평적인 관계가 되죠. 할 말은 하는 게 요즘 트렌드입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유진이 나섰다.
“이재균 씨가 딱히 젊은 피는 아니지 않습니까? 진짜 젊은 피는 나 아닐까요?”
이재균이 눈썹을 기울였다.
“빅텐끼리 이야기하는 거니까 제3자인 무사부 씨는 끼지 말고.”
“할 말은 하는 게 요즘 트렌드라면서요?”
“그것도 깜냥이 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지. 무사부 씨는 빠져.”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명성이 오르면서 이렇게 시비가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마 이재균은 유진의 실력을 믿지 않는 듯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선경원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너는 안 되겠다. 비무다.”
선경원이 검을 뽑았다.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한 것 같군. 네가 빅텐에 들어올 일은 없으니, 나한테 가르침을 받고 여기서 떠나라.”
“이래서 젊은 피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재균이 기다렸다는 듯 두 개의 검을 뽑아 들었다.
“선배님, 저도 한 수 배우겠습니다. 잘 부탁드리죠.”
두 사람이 싸울 분위기가 되자, 모두 뒤로 물러나면서 공간이 생겨났다.
산 중턱의 공터에서 별안간 화경의 고수들이 비무를 벌이려 하고 있었다.
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추적은 안 하고 싸움질을…….”
“젊다는 게 좋은 거지. 하하하하…….”
“세광 형님은 이제 현경 됐다고 여유가 넘치십니다.”
“이쯤 되니 아주 귀여워 보여. 자네에게는 나도 귀여워 보이겠지만.”
“별로 안 귀엽습니다.”
“그래서, 누가 이길 것 같나?”
유진은 두 사람을 보았다.
“글쎄요.”
선경원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검에 떠오른 호랑이가 벼락처럼 나아가 이재균을 물어뜯었다.
이재균이 두 검을 교차해 공격을 막아냈으나, 몸이 길게 밀려났다.
선경원은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격은 호랑이가 앞발을 내리치는 것처럼 강맹했다.
연신 뒤로 물러나던 이재균은 왼손의 검으로 선경원의 검을 막고, 오른손의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선경원의 몸뚱이 위로 흐릿한 달의 형상이 떠올랐다.
이재균이 오른손의 검을 휘둘렀다.
달이 갈라졌다.
선경원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