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168
59. 귀환 (5)
“안주희 씨가 흑룡문주가 된 건 잘된 일이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명예고문이 되지 않겠습니다.”
“왜죠?”
“명예고문의 일이 무엇입니까?”
“음…….”
안주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랑 가끔 상담도 해 주고, 우리 문도들한테 종종 무공도 가르쳐 주고…….”
“전부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잊었습니까? 나는 무사부입니다. 명예고문이 아니어도, 가르침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지요.”
“그렇긴 한데…….”
“안주희 씨. 앞으로 흑룡문을 바른 집단으로 바꾸는 데 앞장서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명예고문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당신과 흑룡문의 친구가 되어 줄 겁니다.”
유진의 말을 곱씹던 안주희가 피식 웃었다.
“홍유진 씨가 용역 일자리를 구하러 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너무 대단한 분이 되어 버렸네. 알았어요. 고마워요.”
안주희는 유진과 악수했다.
“흑룡문을 잘 이끌게요. 양지의 문파는 못 되겠지만, 음지를 관리하는 문파가 될 거예요.”
“훌륭합니다. 혈단을 한국에서 몰아내는 것부터 시작하죠.”
“이미 시작했어요.”
안주희는 흑룡문주가 되어 바빠졌는지, 할 일이 있다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가 떠나기 전 유진은 물었다.
“안희진 씨는 괜찮습니까?”
“언니는…….”
안주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괜찮아지겠죠.”
“예.”
안주희가 무관을 떠나자, 줄지어 서 있던 덩치들이 다시 유진에게 인사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러고는 차례로 안주희를 따라 나갔다.
유진은 김비서를 쳐다보았다.
“김 코치.”
“예.”
“축하합니다. 흑룡문주의 남편이 되시겠군요.”
“그야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전대 흑룡문주도 안주희 씨가 아닌 김 코치를 보고 결정한 일일 겁니다. 앞으로 흑룡문을 이끌어갈 사명은, 안주희 씨가 아닌 김 코치에게 달려 있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셔도 결정된 게 없습니다만…….”
“김 코치.”
유진이 빙그레 웃었다.
“나의 정보력을 얕보시는군요.”
“예?”
유진은 김비서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종로3가.”
김비서가 눈을 크게 떴다. 유진은 콧노래를 하듯이 계속 속삭였다.
“귀금속상가.”
“그, 그, 그…….”
“다이아.”
“큭!”
“프러포즈는 어디서 어떻게 할 겁니까?”
“대체 그걸 어떻게…….”
김비서가 보기 드물게 당황한 기색이 되자 유진이 크게 웃었다.
“김 코치, 나는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습니다.”
“저기, 그건 비밀로…….”
“물론입니다.”
유진은 김비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포옹했다.
“축하합니다, 김 코치. 아니, 축하한다 비서야.”
유진은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나, 누군가와 혼인하지는 않았다.
무(武)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래서 그는 김비서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한 것인지 도리어 더 절감할 수 있었다.
유진은 홍유진이라는 청년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단소천이자 홍유진인 온전한 그 자신으로서 김비서에게 축하를 건넸다.
김비서가 눈을 깜빡였다.
“무사부…….”
그는 가만히 있다가, 유진을 마주 포옹했다.
김비서는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안주희를 제외하면 누군가가 이렇게 진심으로 따뜻한 응원을 전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니, 고맙다. 유진아.”
김비서는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깐, 내가 더 나이 많지 않나?”
“축하한다, 축하해. 아주 경사야.”
유진은 그의 등을 강하게 두드리며 대강 얼버무리고 몸을 뗐다.
유진과 김비서가 갑자기 포옹을 하자 박유원도 뛰어왔다.
“형님, 저도 축하드립니다!”
“뭐, 뭘?”
“흑룡문을 집어삼킵시다!”
박유원이 껴안고 늘어지자 김비서가 뒤로 물러나다가 넘어졌다.
나상철과 제임스가 차례로 그 위로 뛰어들어 무게를 더했다.
“햄버거!”
“오우! 보스 오브 블랙드래곤클랜!”
유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무영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홍유진: 일은 잘 처리하셨군요. 잘했습니다.」
사실, 유진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무영건과 거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정원은 여태까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만 도움이 되지 않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하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유진은 다음과 같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번에 성과를 내지 않으면 동반자 관계는 끝이다. 대신 일을 잘 처리하면 판타리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정보를 주겠다.
그 조건으로 내건 것이 황수인, 황수헌 형제의 처분이었다.
혈공만 익히지 않았을 뿐, 명백한 혈교의 하수인인데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유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황수인, 황수헌이 사라지면 흑룡문은 안주희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그렇다고 바로 문주까지 시켜버릴 줄은 몰랐지만.
전 흑룡문주도 황수인, 황수헌의 일로 지친 모양이었다.
참고로 김비서가 다이아 반지를 사는 모습은, 무영건이 귀금속 밀수꾼들을 잡으려 암행하다가 우연히 목격했다고 한다.
유진은 세 사람에게 깔려 있는 김비서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안주희를 흑룡문의 문주로 만드는 일에 성공했으니…….”
이것은 혈교가 일으키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다들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번 볼까.”
유진은 먼저 창천개벽문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귀환했으니, 한번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답변이 왔다.
「창천개벽문주: 기다리던 바. 준비해 두게.」
***
유진은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을 친절하게 지도했다.
“그, 그만!”
“지금 놀러 왔습니까!”
“토, 토할 것 같…….”
“화장실에서 토하고 오세요!”
“미친…….”
긴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무사부를 반기던 회원들은, 그의 지도가 시작되자 모두 이를 갈면서 쓰러졌다.
“나 없는 사이 전부 해이해졌어! 안 그렇습니까!”
“아니, 전혀 아닌데…….”
회원들은 딱히 느슨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없는 동안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김비서와 제임스가 더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유진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모은 토벌대와 함께했다.
그러나 그들로도 판타리아의 마경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더 강해져야 한다.
“자, 지금부터 전부 나한테 덤빕니다!”
유진이 소리쳤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내게 덤빕니다. 10초 주겠습니다. 9초, 11초, 그딴 거 없습니다. 당장 나에게 왓!”
유진이 소리치자 바닥을 기고 있던 구마진과 그의 경호2팀 직원들, 그리고 강재훈과 함께 헐떡이던 레드슈의 2번대 대원들, 다른 일반 회원들까지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회원들이야 그렇다 쳐도 구마진이나 강재훈 같은 이들은 고수다.
하지만 전부 유진을 당해내지 못했다.
수많은 공격이 날아들어도 유진은 제자리에 꼿꼿이 서서 상체만을 움직이며 그들의 빈틈을 쳤고, 유진의 공격을 맞은 이들은 모두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에, 에잇!”
현역으로 뛰는 회원들은 가혹하게 대했지만, 간혹 있는 일반 회원 및 청소년부 회원들은 부드럽게 달랬다.
“어허,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유진이 한 직장인 회원의 주먹질을 피한 다음 그의 배를 지그시 눌렀다. 그는 저 멀리 날아가 연단 위에 있던 허밀 먼로 사의 의자에 안착했다.
10초가 지났다.
유진에게 덤볐던 모든 회원들이 패배했다.
“오늘의 스파링은 시시했군요.”
유진은 회원들의 투쟁심을 자극했다.
“다음에는 내 털끝이라도 건드리기를 바랍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쓰러져 있던 회원들이 신음했다.
그때였다.
“고작 회원들을 제압한 것으로 너무 으스대는 것 아닌가?”
도발적인 언사였다.
유진이 돌아보자, 거기에는 팔짱을 낀 중년의 사나이가 있었다.
유진은 씩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그간 수련은 열심히 하셨습니까?”
“오늘만을 기다렸지.”
바로 창천개벽문주 이세광이었다.
그는 유진에게서 을 받은 이래 매일 같이 수련했다.
유진이 가르친 다른 빅텐의 무인들 중에서도 노력이 특출난 편이었다.
“자네의 얼굴에 주먹 한 방 정도는 날려야 내 집무실 문짝에 면이 서지 않겠는가. 하하하하…….”
“우리 대범한 창천개벽문주 님이 아직도 그걸 신경 쓰고 계실 줄이야.”
“크게 신경 쓰는 건 아니야. 그냥 그렇다는 거지. 으하하하…….”
유진은 안정되어 있는 이세광의 기도를 보고, 그가 한층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유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여기서 바로?”
“여기서 바로.”
이세광은 무관의 회원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어떤 무인들은 자신이 패배하거나, 고전하는 모습을 노출하지 않으려 한다.
높은 자리에 갈수록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세광은 아니었다.
대범한 척을 하던 그는, 이제 정말로 대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武)를 추구하는 무인이, 부끄러운 모습을 조금 보인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허세로 나 자신을 꾸미려 한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것이겠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는 이상,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아.”
“역시. 내가 준 무공의 정석을 제대로 읽으셨군요.”
“이 사람아, 이건 그냥 내 생각이야.”
“거기 비슷한 구절 있을 겁니다.”
“내 오리지널 생각이래도.”
유진과 이세광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관의 가운데 섰다.
회원들은 무관을 떠나지 않고 가장자리로 물러나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무사부와 창천개벽문주의 비무였다.
이런 것은 돈을 내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자, 무사부. 이 이세광이의 주먹을 받아 볼 준비가 되었나?”
“준비라…….”
유진이 빙그레 웃으며 두 손을 펼쳤다.
“그런 게 필요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씩 웃은 이세광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하늘이 펼쳐졌다.
유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진하게 미소 지었다.
이세광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푸른 하늘이 되어 있었다.
유진이 그려 낸 창공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세광다웠다.
유진이 펼친 창궁무애검법이 끝없이 펼쳐진 새파란 하늘을 그렸다면.
이세광이 펼친 창천개벽권은, 포근한 구름이 흘러가는 따뜻한 하늘을 그리고 있었다.
유진은 문득, 그 위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선을 보았다.
그 선을, 이세광이 쥐었다.
“자, 받아 보게.”
하늘의 원리가 이세광의 주먹에 어렸다.
그가 주먹을 뻗었다.
창천개벽권(蒼天開闢拳).
붕추(崩墜).
이세광이 만들어 낸 심상이 유진을 덮쳤다.
유진은 어느새 하늘에 떠 있었고.
그가 날린 주먹과 마주하게 되었다.
저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현경 이하의 무인들은 저것을 맞을 수밖에 없다.
유진은 현경을 넘어섰기에 그의 주먹을 어떻게든 어그러뜨릴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진은 이세광의 주먹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것을 느꼈다.
그의 마음, 그의 심상, 그의 성취, 모든 것이 휘몰아쳤다.
유진은 빙그레 웃었다.
이세광은 유진을 향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던진 것이다.
“훌륭합니다.”
유진 또한, 주먹을 마주 뻗었다.
천라(天羅).
일원(一元).
두 개의 주먹이 부딪쳤다.
이 땅의 하늘과 먼 땅의 하늘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로 이어지듯이.
무(武)를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마음은 닮아 있었다.
두 주먹이 서로를 밀어내다가, 이내 하나가 되어 스러졌다.
이세광이 그러쥐고 있던 선이 하늘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어느새 다시 무관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유진은 이세광을 향해 박수를 쳤다.
“현경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유진의 선언에 무관의 회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현경을 이룬 무인은 극소수다.
그런데, 창천개벽문주가 거기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현경에 이르니 어떻습니까? 눈에 비치는 풍경이 달라지던가요?”
“그랬지.”
이세광은 주먹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내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더 명확히 보이더군.”
“그렇겠지요.”
“자네는 항상 이런 것을 보고 있었나? 아니, 나보다 더 높은 것을 보고 있겠지?”
유진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이세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 집무실 문짝의 복수는 아직도 멀었군. 그날까지 잘 부탁하겠네.”
“그냥 하나 사드리겠습니다.”
“그게 얼만지 아나?”
“비싸 봐야 뭐, 몇백은 안 하겠죠.”
“자네…….”
이세광이 미간을 모았다.
“이번에 판타리아 가서 돈 좀 땡겼나? 아주 여유가 넘치는데?”
“아, 아니 그냥 남들만큼 벌었습니다.”
유진은 박유원의 눈치를 살폈다. 임금 차별에 분노하는 박유원이 이번 토벌로 유진이 번 금액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추적 중이었다.
“어쨌거나 다른 분들은 잘 수련하고 계십니까? 같이 오시지 않고.”
“그게 말이지.”
이세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빅텐의 마지막 한 명을 잡으러 갔어.”
“예?”
“심마 때문에 병원에 갇혀 있었는데, 갑자기 탈출했다더구만. 그래서 그 넷이 요청을 받고 출동했어.”
유진은 호기심이 일었다.
빅텐의 마지막 한 명에 대해서는 딱히 들은 게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은거를 해서 보이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심마로 병원에 있었다고 한다.
이세광이 말했다.
“병원을 아주 다 부수고 갔다던데.”
“어느 병원입니까?”
“뭐라더라, 민들레 요양병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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