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60
21. 하늘의 뜻 (5)
“그렇다면 직접 느끼게 해 드리겠습니다.”
유진은 박창영에게 손을 뻗었다.
“내기진동을 일으키지 말고, 하단전을 고요하게 두세요.”
“중단전 진동법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버릇이 되어 쉽지 않겠지만, 가만히 있어 보세요.”
박창영은 자신의 중단전 위에 올라오는 유진의 손길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하라는 대로 내공을 일으켰다.
항상 주기적으로 진동시키던 하단전을 내버려 두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버릇처럼 힘이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억지로 힘을 뺐다.
그러자, 중단전 위에 올라온 상대의 손바닥에서부터 묘한 기운이 스며들어왔다. 박창영이 흠칫했다. 이러한 내공은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진기인데도 자신이 가진 내공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어우러졌다.
“기류를 만들어 보세요.”
진동을 통한 압력이 사라지자, 좀처럼 기류를 잇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부에 침입한 낯선 기운이 자신의 중단전을 붙잡고 진동을 유도했다.
박창영은 그 진동의 주기를 따라, 어설프게나마 중단전을 이용한 진동을 일으켰다.
“억지로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중단전을 출납하는 내공의 흐름을 이용하는 겁니다.”
박창영은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을 따랐다.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이, 하단전과 중단전을 이은 기류가 뛰어올랐다.
두근.
두근.
어느 순간, 박창영은 눈을 크게 떴다.
기류가 너무나 가볍게 중단전을 지나치고 있었다.
“아니, 아니 정말로…….”
아주 컨디션이 좋을 때, 유달리 내기가 잘 제어되는 그런 날에나 잠시 허락되던 하단전과 중단전의 일체감.
물론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닫히면서 그를 밀어냈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저항 없이 중단전을 넘어, 이제는 상단전의 초입까지 그의 기류를 허락하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잠시나마 하단전과 중단전, 그리고 상단전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 황홀한 감각에 취한 박창영이 입을 여는 순간.
“큭!”
그가 가슴을 접으면서 주저앉았다. 순간적으로 평정을 잃은 박창영의 기류가 흔들렸고, 그리하여 내공이 역류한 것이다.
박창영은 주저앉은 채 한동안 내기를 다스렸다.
그의 숨이 돌아오자, 유진이 물었다.
“느껴지셨습니까?”
박창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 단전이 균형을 이루는 진짜 무공의 세계가, 어렴풋이 보이던가요?”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주저앉아 있었다.
유진은 그런 박창영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눈길을 돌렸다.
“나는…….”
박창영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대체 왜,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노력했다.
처음부터 잘못된 길인 줄 모르고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렇게 이류에 멈추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파견직 무인이 되어 이리저리 치이며 근근이 연명했다.
과거에 겪었던 인생의 굴곡들이 하나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참아야 했다. 재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게 인생의 속성이라고 자위하며 견뎌 왔다.
젊고 강한 무인들이 자신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모욕해도.
파견지에서 하대를 당하고 그가 할 필요 없는 잡일까지 떠넘겨도.
애써 모르는 체하며 웃어넘겼다.
가족을 위해.
“끄윽…….”
유진은 이내 손을 뻗어서 박창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박창영은 땅에 머리를 박은 채 흐느꼈다.
“대체 왜, 왜 아무도 나한테, 알려 주지 않은 거야. 대체 왜…….”
유진은 창문 바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무림에 있을 때는 고개를 드는 순간 쏟아질 듯 펼쳐진 별의 바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땅의 밤하늘은 너무 어두워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박창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주 사소한 오류조차 한 인간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사부라 칭하는 이들은 제자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진짜 노력했는데…….”
박창영의 흐느낌이 커졌다.
유진은 그의 낙담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림에도 이러한 경우가 많았다. 조금만 더 제대로 배웠더라면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안타까운 무인들이 있었다.
유진은 박창영을 처음 본 순간 깨달았다.
재능이 뛰어났다.
단전의 유연함은 부족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박유원 못지않았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그가 처음부터 중단전 진동법을 익혔다면, 지금쯤 능숙한 화경의 고수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리라.
꿈에 그리던 상승무공을 웃으면서 펼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그가 눌러 삼켜야만 했던 지난날의 아픔들이 애초에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미몽이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끄으윽…….”
“박창영 씨, 그럴 수 있습니다.”
“무사부…….”
“예.”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유진은 쭈그려 앉아 박창영의 등을 쓸어내렸다.
“맞습니다. 지나간 나날에 어찌 후회가 없겠습니까. 아까울 수 있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처음에 한 말 기억하십니까? 여섯 개의 주먹을 보고 정말 좋았다고 했지요.”
“고작 그따위…….”
“그따위가 아닙니다.”
유진은 박창영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중단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인이 그런 무공을 펼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겁니다. 비록 중단전과 상단전을 연마하진 못했지만, 그 때문에 하단전으로 할 수 있는 온갖 방식의 진기 운용과 초식들을 익히셨지요.”
“그건 어쩔 수 없어서…….”
“조금 늦어졌다고는 하나, 박창영 씨는 그 어느 무인보다 더 강인하고 질긴 하단전을 품으신 겁니다. 지금부터 나아지면 됩니다. 쉽게 쉽게 위로 올라간 놈팡이들보다야,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뿌리를 다진 우리 박창영 씨의 상승무공이 훨씬 무서울 것은 자명하지 않습니까?”
“저, 정말 그럴까요……?”
“물론입니다.”
유진은 그답지 않게 부드러운 말로 박창영을 위로했다.
항상 강한 척을 하던 제자들도 때로는 절망에 빠져 낙담할 때가 있었다. 육체적 구타를 서슴지 않던 유진이었지만 그럴 때에는 따뜻한 말로 달래 주어야 했다. 특히 천마 녀석이 질질 짤 때는 정말 곤욕이었다.
유진은 빙그레 웃었다.
“박창영 씨. 박창영 씨는 그냥 싸움을 잘하고 싶어 무공을 배웠습니까?”
“아니요…….”
“아니면 부와 명예를 얻고 싶어서 무공을 배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고수가 되는지, 경주하려고 무공을 배웠습니까?”
“그럴 리가요…….”
“그렇습니다. 조금 돌아오게 되긴 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무공이 아니지요. 무(武)에는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눈물을 거두세요.”
유진이 빙그레 웃었다.
“내게 아내분과 아드님을 자랑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시간이, 정말로 후회해야 마땅한 과거라고만 생각하십니까?”
“아니, 아닙니다…….”
“박창영 씨는 인생에서 무공보다 더 귀한 것을 얻으신 겁니다.”
유진이 박창영을 일으켜 세웠다. 한동안 흐느끼던 박창영은 이내 눈물을 닦고 유진을 마주 쳐다보았다.
박창영은 새삼스럽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어린 청년이, 무공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그보다 까마득한 스승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박창영이 물었다.
“무사부. 무사부는 대체 누구입니까?”
“말 그대롭니다.”
유진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무(武)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박창영이 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울음을 터뜨리면서 유진에게 안겼다.
“커흐흑…….”
“하하, 눈물이 많으시군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어요. 마음껏 울어도 됩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경호팀 직원들과 박유원 또한 눈시울을 붉혔다.
“차, 창영이 형님, 울지 마세요…….”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이 업계에 사짜 새끼들이 너무 많아.”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어찌 그리 사셨는지…….”
경호팀장인 구마진이 문득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고아다. 아버지가 없지.”
갑작스러운 고백에 경호팀 직원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구마진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모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에 대해 알겠지.”
“서, 설마…….”
“그래.”
그의 뜨거운 시선이 유진을 향했다.
***
박창영은 반복된 훈련 끝에 올바른 방식으로 내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억지로 쥐어짜 진동을 일으키던 그의 하단전은 더 이상 불필요한 개입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러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하단전 진동법을 바로잡은 것만으로 박창영은 순식간에 이류를 넘어 일류에 도달했다.
황용금속공업의 경호팀 직원들과 레드슈의 조직원들이 박창영의 성취를 축하했다.
“형님, 축하드립니다!”
“역시 노익장이십니다.”
“야, 인마. 오십이 무슨 노익장이야.”
“그럼 뭐지? 중익장?”
“중익장 좋다.”
“곧 전력 평가 있으시다면서요. 승진하시겠습니다!”
“이대로 절정, 아니, 화경까지 갑시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박창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전부 교습소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형님.”
“제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감격스럽습니다. 어서 무관 허가를 얻어 무사부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해야 하는데…….”
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요. 법, 바로 법이 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어떤 악인도 그 어떤 괴물도 두렵지 않지만 법은 지켜야 하지요.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하기야 요새 무관 허가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워낙에 문제 일으키는 놈들이 많아서요.”
“한심한 녀석들.”
“진짜는 고개를 숙이는데 말야.”
“무공 좀 할 줄 안다고 시비 걸고 다니는 녀석들이 널렸어.”
모두가 해당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황용금속공업 경호팀 팀장 구마진이 레드슈 2번대 대장 강재훈에게 말했다.
“무공 좀 한다고 자기가 대단해진 줄 아는 놈들이 많지. 무공은 남을 괴롭히거나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완성하는 수단인데 말이야. 안 그러냐?”
“그, 그렇긴 하지.”
강재훈이 엉거주춤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슈 또한 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강재훈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반응이 뭐야. 너 혹시 약한 사람 괴롭히고 다니냐?”
“헛소리 마라.”
“영 찔리는 표정인데?”
“원래 이런 표정이다.”
그런 제자들을 바라보며 유진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때가 되면 하늘이 도울 것입니다.”
“역시 인격마저도 훌륭하십니다.”
박창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 아들도 무사부의 가르침을 받으면 정말 좋을 텐데…….”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굳이 강권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이상한 무공 서적에 빠져서는…….”
박창영의 아들은 현재 고등학생으로서, 박창영의 재능을 빼닮아 날고 기는 8학군 학생들 사이에서도 무공 실기 1등을 차지하는 기재였다.
박창영은 자신의 아들이 유진의 가르침을 받으면 대단한 고수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도통 박창영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무공 서적 하나만 있으면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깟 무공 서적으로 어떻게 고수가 되겠습니까. 사람을 만나서 배워야지. 책만 보면 사고가 닫히기 마련인데…….”
“무공 서적이라…….”
유진이 미간을 모았다. 이 세계의 무공서는 제대로 된 게 거의 없었다.
“혹시 그 무공 서적 이름이 뭡니까?”
“그게 뭐였더라. 진수? 진수검결 첨삭?”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박유원이 눈을 크게 떴다.
“창영이 형님, 설마 진수검결 첨삭본이요?”
“아, 예.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그걸 갖고 싶다고 애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큰맘 먹고 사 줬는데 확실히 실력이 늘긴 했습니다.”
“아니, 형님…….”
박유원이 유진을 쳐다보았다.
유진은 어느새 턱을 치켜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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