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06
#닥터 플레이어 106화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나중에는 소드 익스퍼트 이상으로 강해지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중요한 일 아니니, 가서 환자나 보자.’
그렇게 치료원에 가서 환자 치료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먹구름이 휴스톤 왕국군을 집어삼켰다.
전염병 발병이었다!
“큰일입니다, 치료사님!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레이몬드는 깜짝 놀란 얼굴을 하였다.
‘올 게 왔구나.’
군대에서 전염병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가 열악한 환경에서 밀집돼 생활하니까. 전염병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었다.
오죽하면, 싸우다 죽는 숫자보다 전염병으로 죽는 숫자가 더 많은 경우도 있겠는가?
‘초기에 잡아야 해! 그래야 환자 수를 최소화할 수 있어!’
레이몬드는 라이프 공작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이 있는 막사로 향했다.
“전염병이 확실한가?”
“네, 7명의 환자 모두 피부에 동일한 양상의 반점들을 보입니다.”
힐러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란드 자작이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바로 조처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환자가 늘어날 겁니다.”
“조처라면 무엇을?”
“격리 후 소거해야 합니다.”
격리 후 소거!
환자들을 외딴곳에 몰아놓아 불에 태우자는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일반적이고 확실한 전염병 차단책.
군 수뇌부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건 좀…… 병사들을 소거하자니.”
일반 백성들과 달랐다.
동고동락하는 병사를 소거하면 당장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거다.
특히 이번에 전염병이 발병한 병사들은 징집병이나, 소집 영지병이 아닌, 군의 핵심을 차지하는 정예 상비 정규군들이었다.
“발병 초기인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만약 전염병이 더 퍼지면 그때는 아무런 수도 쓸 수 없을 겁니다. 최악에는 전황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겁니다.”
전황에 악영향.
패전을 말하는 거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고래로 전염병 때문에 다 이긴 전쟁이 뒤집힌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
“…….”
라이프 공작은 입을 다물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어쩌면 전쟁의 승패가 갈릴지도 모를 선택이었다.
그때, 한 음성이 장내에 퍼졌다.
“제가 환자를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레이몬드였다!
그가 빼꼼히 손을 들었다.
란드 자작을 비롯한 상급 힐러들이 불쾌한 얼굴로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대 같은 사이비 잡술을 쓰는 이가 끼어들 때가…….”
“아, 네. 그래서 제 사이비 잡술로 수도의 전염병이랑 남부의 전염병도 다 해결했지요. 그때, 고귀한 힐러님들은 뭐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힐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때도 그들은 무작정 소거를 주장했었다.
“그대가 한번 보도록.”
라이프 공작이 허락하자, 레이몬드는 환자를 보러 갔다.
참고로, 환자들은 전염을 우려해 병영 바깥쪽에 따로 격리해놓은 상태다.
레이몬드는 환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피부에 발진이 심해. 그런데 열이 나거나 하지는 않네?’
레이몬드는 환자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음을 주목했다.
발진만 심할 뿐, 멀쩡했다.
또한, 주목할 점이 더 있었다.
‘모두 이마, 얼굴, 손목, 목 등 밖에 노출되는 부위에 발진이 생겼어. 그것도 홍반성 구진과 소수포들이.’
거기까지 관찰한 레이몬드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이거 전염병 아닌 것 아니야?’
일반적인 전염병과는 양상이 달랐다.
‘전염병보다는 오히려…….’
생각을 마친 후, 수뇌부가 모여 있는 막사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묵직한 음성이 그에게 물었다.
“알아낸 게 있는가?”
라이프 공작이었다!
세이틸과의 악연 때문일까? 레이몬드는 라이프 공작과 마주할 때마다 쿵쾅 심장이 뛰었다.
다행히, ‘강철의 심장’이 발동해 긴장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건 전염병보다는 다른 질환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러니까…… 일반 피부병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막사 안의 이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부병?”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특히 힐러들은 대놓고 비웃음을 지었다. 천한 사이비 잡술 따위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절대 전염병이 아니야. ‘그 피부병’이 분명해.’
그때, 라이프 공작이 날카롭게 물었다.
“네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
“역병은 병사들의 생명이 걸린 일. 어쩌면, 전쟁의 승패가 좌우될 수도 있는 중한 일이다. 그런데 네 말을 책임질 수 있는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역시 소드 마스터의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제대로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답을 확신하고 있으니까.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건 전염병이 아닙니다.”
그러고 레이몬드는 정확한 진단명을 말했다.
“이 병은 접촉성 피부염. 그러니까…… 과민성 피부병입니다.”
* * *
접촉성 피부염!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접촉해 피부에 발진을 일으키는 피부병이었다!
그 접촉성 피부염과 병사들의 증상은 똑같았다.
물론 힐러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도 안 됩니다! 단순 피부병이 어째서 이렇게 많은 환자에게서 똑같이 생깁니까?”
“전염병이 확실합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접촉성 피부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테니까.
‘접촉성 피부염에 대한 의학 지식을 설명해 봤자, 안 받아들일 거고.’
가장 좋은 건, 증명해 보이는 거다.
‘접촉성 피부염은 독이 되는 원인 물질과 피부가 접촉해 생기는 피부병이야. 분명 원인이 되는 물체가 있을 테니, 그걸 알아내면 돼.’
마침, 퀘스트가 발생하였다.
[병영 내 역병을 해결하라!](의술 퀘스트)
등급 : 투 메스
난이도 : 하
퀘스트 설명 : 병영 내 원인 모를 역병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술로 사태를 해결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역병 원인 규명 및 해결
퀘스트 보상 : 보너스 레벨 업, 스킬 포인트 30점
특전 : 뜻밖의 추가 공로(?)
“제게 약간의 시간만 주십시오. 이 병이 전염병이 아니란 건 물론, 환자 치료, 원인 규명까지 모두 깨끗이 해결해 내겠습니다.”
그 자신감 넘치는 말에 군 수뇌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레이몬드가 과거 세운 업적들을 알고 있었다.
그때, 라이프 공작이 경고했다.
“페닌 남작, 그대의 말을 따랐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할 거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대에게 책임을 물겠다.”
레이몬드는 일순 멈칫하였다.
책임!
무거운 이야기였다.
만약 전염병이 맞는다면 죄를 묻겠다는 거니, 어떤 중벌을 받을지 몰랐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이건 백 퍼센트 접촉성 피부염이 맞으니까. 질 걱정하지 말자.’
레이몬드는 ‘의학 지식’을 믿기로 하였다.
그는 이왕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 기회를 살려 필요한 걸 챙기기로 하였다.
“대신 제가 이번 일을 해결해 낼 경우, 원하는 상을 하나 내려주십시오.”
“무얼 원하지?”
“지휘권입니다.”
“……!”
레이몬드는 더욱 구체적으로 요구하였다.
“제게 특수 인원 30명과 일반 병사 20명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내려주십시오.”
라이프 공작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특수 인원이면?”
“하급 힐러들을 모아 치료에 특화한 ‘치료 병대’를 만들고자 합니다.”
지금 페닌 치료원은 기존 인원만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손이 모자라 한계였다.
보조 인력들이 더 필요했다.
‘즉, 의무병이 필요해. D급의 하급 힐러들을 모집해 속성으로 가르쳐 부려 먹자. 일반 병사 20명은 청소, 침구 세척, 물품 정리, 등 자질구레한 잡일을 시키고.’
또한, 지휘권을 얻으면 커다란 이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힐러들의 지휘관이 되는 셈이니 ‘마법 병단’의 단장과 같은 급의 직위가 되는 거야.’
장교식으로 따지면 천인장과 비슷한 급의 지위!
‘그렇게 되면 아무도 날 쉽게 무시 못 할 거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라이프 공작은 잠시 지그시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칼날 같은 시선에 레이몬드의 심장이 두근 뛰는 순간.
“2일 주겠다.”
라이프 공작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안에 해결하도록.”
* * *
이후 라이프 공작은 지휘부 막사로 돌아갔다.
“왜 페닌 남작에게 맡긴 겁니까? 전염병이 퍼질 위험부담이 있지 않습니까?”
참모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으나, 라이프 공작은 이렇게 답했다.
“맡기지 않으면?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동고동락한 병사들을 불에 태워야 하지 않나?”
“아…….”
“그리고.”
라이프 공작 레이몬드가 보인 눈빛을 떠올렸다.
겁먹었음에도 물러서지 않는 눈빛.
‘……환자를 위하는 의지인 건가?’
라이프 공작은 피식 웃었다.
‘제법.’
그래, 그건 제법이었다.
“확신에 차 있었으니까.”
“네?”
“조금의 의심도 없는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죄 없는 병사들을 곧바로 불에 태우기보다는 믿고 맡겨볼 만하지.”
그것 말고도 이유는 또 있었다.
사사로운 개인적 이유였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지 확인해 보고 싶군.’
전쟁이 시작된 후, 레이몬드는 라이프 공작의 시선을 끝없이 끌었다.
힐러로서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병사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사기를 대폭 증진하기까지 했다.
이는 지휘관, 아니, 지도자의 자질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불가해한 검술 재능까지.
라이프 공작은 레이몬드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 * *
‘접촉성 피부염을 해결하려면 원인 물질을 찾아야 해.’
질병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독성 물질에 ‘접촉’해 생기는 병이다.
‘즉, 어떤 독성 물질에 접촉했는지 알아내면 돼.’
이번 경우, 다행히 어렵지 않았다.
병사들이니 다들 균일한 물질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갑옷들이야!’
모두 갑옷과 맨살 피부가 접촉한 부위에 염증이 생겼다.
‘그런데 왜 갑옷 때문에 접촉 피부염이 생겼지? 그것도 괜찮다가 갑자기?’
레이몬드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멀쩡하던 갑옷에 어째서 독성 물질이?’
그리고 조사 후,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모두 이번에 새로 보급된 갑옷들이야!’
새로운 갑옷이 보급되었는데, 그중 7명에게서 접촉성 피부염이 발생한 것이다.
‘우연일까? 아니면?’
싸한, 뭔가 구린 느낌이 들었다.
“제자님, 뭐 하나 도와주겠습니까?”
“뭐든지요.”
“이 방어구를 검으로 베어보십시오.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요.”
크리스틴은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까앙!
당연한 이야기지만, 크리스틴의 검은 방어구를 베지 못했다.
애초에 제대로 된 방어구의 기준이 ‘마나’를 싣지 않은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