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07
#닥터 플레이어 107화
“이번엔 이 방어구를 베어보겠습니까?”
레이몬드가 새롭게 꺼낸 건 병사들에게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킨 방어구였다.
그제야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한 크리스틴의 얼굴이 굳었다.
까앙!
놀랍게도 이번엔 결과가 달랐다.
같은 힘으로 베었는데, 방어구가 일부 베어진 것이다!
“이건…… 설마?”
“아마 맞는 것 같습니다.”
레이몬드도 얼굴을 굳혔다.
“누군가 후방에서 보급품에 장난을 친 것 같습니다.”
* * *
‘누군가 제대로 된 강철 말고 다른 금속을 섞었어. 그 금속이 하필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킨 거야!’
즉, 군납 비리였다!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레이몬드는 이번 일을 곧바로 후방을 책임지고 있는 재상 갈먼에게 보고했다.
‘군 윗선으로 보고하면 중간에 은폐될 가능성이 높아. 누가 연루되었는지 모르니.’
-아니, 그게 정말인가?! 알았네. 내가 확인해 보도록 하지. 그대의 말이 사실이면, 이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통신 수정구로 내용을 보고받은 갈먼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재상 갈먼은 모든 힘을 동원해 해당 사안을 파헤쳤고, 금세 진상이 밝혀졌다.
수도에서 보급품을 담당하는 크림 백작이 범인이었다!
그가 보급품에 장난을 친 것이다.
“아,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오해?”
재상 갈먼은 싸늘하게 증거품을 내밀었다.
“마탑과 대장간에 의뢰해 성분을 분석해 보았네. 일부 강도가 약한 저질 금속이 섞여 있더군.”
크림 백작은 대장간과 짜고 방어구에 저질 금속을 섞었다.
그런데 그 저질 금속들에 니켈이 섞여 있어 니켈에 과민성 체질을 지닌 몇몇 사람에게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킨 것이다.
그게 레이몬드에게 딱 걸린 것이고.
‘어, 어째서 들통 난 거지? 안 들킬 거라 생각했는데?’
크림 백작 입장에서는 운이 나빴다.
저질 금속을 섞으며 강도가 다소 떨어졌지만, 의심해 작정하고 비교하지 않으면 눈치챌 정도는 아니었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갑옷의 특성상 어느 정도 강도 차이는 나게 되어 있으니까.
또한, 접촉성 피부염도 갑옷을 입은 병사 중 과민성 체질인 일부에게서만 생긴 거니, 연관성을 짓기 어려웠을 거다.
‘원인 모를 전염병 혹은 피부병으로 치부되어 흐지부지됐겠지.’
재상 갈먼은 속으로 생각했다.
즉, 레이몬드가 아니었다면 쉽사리 눈치채지 못했을 비리였다.
‘레이몬드가 또 공을 세웠어. 전장에 나가서도 계속해서 공을 세우고 있다니.’
재상 갈먼은 시시각각 전장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그런데 힐러인 레이몬드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최근 승전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거기에 더해 군납 비리까지 밝혀냈으니, 대단하기 그지없었다.
“크림 백작이 보급하던 물품들을 샅샅이 조사하도록. 또 다른 비리가 있을 수도 있어!”
“네, 알겠습니다!”
이후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크림 백작은 갑옷뿐 아니라, 여러 보급품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크고 작은 비리들을 저지르고 있었던 거다.
크림 백작뿐 아니라, 여러 군부 출신 귀족들이 엮인 초거대 비리 사건이었다.
“레이몬드 덕에 그나마 늦지 않게 썩은 좀 벌레를 뿌리 뽑을 수 있었습니다.”
재상 갈먼은 오든에게 말하며 크게 한숨 돌린 얼굴을 하였다.
만약 레이몬드가 아니었다면, 좀 벌레들이 얼마나 군비를 갉아먹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페닌 남작이 확실히 큰 공을 세웠군.”
“……!”
갈먼은 살짝 놀란 눈을 하였다.
늘 레이몬드를 향한 칭찬에 인색한 오든이었는데, 이번엔 의외로 선선히 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조금 변하셨어. 그날 이후로.’
갈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날, 레이몬드와 단둘이 ‘승전 의식’을 치른 후.
오든의 분위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뭐라고 정확히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상을 내리도록.”
“어떤 상을 내리는 게 좋겠습니까?”
“좀벌레 놈들에게 몰수한 재산 일부를 페닌 치료원에 치료비로 지원하도록 하지.”
갈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만 생각하는 레이몬드가 가장 기뻐할 상이었다.
“그것 말고도 페닌 남작이 기뻐할 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이지?”
“소고기입니다.”
재상 갈먼이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었다.
“페닌 남작은 사비를 털어 소고기를 사들여 부상병들을 위로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기특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번에 비리 귀족들에게 몰수한 재산으로 소고기를 비롯한 위문품을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겁니다. 페닌 남작은 자신보다 병사들을 위하는 걸 바랄 위인이니 크게 기뻐할 겁니다.”
좋은 의견이었다.
군납 비리로 뒤숭숭해진 병사들의 불만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을 거다.
“그렇게 하지. 다만.”
오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문품 전달은 왕가의 이름이 아닌, 페닌 남작의 이름으로 하도록.”
“……!”
갈먼은 다시금 놀란 얼굴을 하였다.
오든은 평소처럼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페닌 남작이 세운 공이니, 그의 이름으로 하는 게 당연하겠지. 그렇게 하도록.”
* * *
레이몬드가 군납 비리를 소탕한 소문은 병영의 병사들에게도 퍼졌다.
다들 크게 감탄하였다.
“페닌 남작님께서 뒤에서 개수작을 벌이는 좀벌레 놈들을 소탕하였단 말이야?”
“어쩐지. 배급 식량의 질이 형편없는 것 같더라니. 그런 이유가 있었어.”
병사들이 울분을 토하자, 다른 이들이 외쳤다.
“이제 괜찮을 거야! 페닌 남작님 덕분에 다 뿌리 뽑았으니 말이야.”
“맞아. 정말 다행이야. 역시 우리 왕자님밖에 없어.”
“그래, 우리를 생각해 주는 이는 왕자님뿐이야.”
“왕자님 만세!”
그렇게 병사들 사이에서 레이몬드의 이름이 끝없이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웬 마차들이 병영으로 잔뜩 들어왔다.
움메~!
소와 위문품을 잔뜩 실은 마차들이었다.
“저게 뭐지?”
“소고기? 위문품?”
운송을 맡은 이들이 위문품의 사연을 말해주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페닌 남작님이 전해 주는 위문품입니다!”
“페닌 남작님이?”
“그게…….”
위문품 전달을 맡은 이는 벅찬 음성으로 말했다.
“페닌 남작님께서 군납 비리를 소탕한 공로로 받을 상을 병사분들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길 바랐다고 합니다.”
“……!”
“그분께서 그러셨다는군요. 거친 전장에서 고생하는 병사분들이 이 소고기 및 위문품들을 통해 조금의 위안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사실 레이몬드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재상 갈먼이 레이몬드라면 이랬을 것이다~ 라고 지레짐작한 것이 와전된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야 어쨌든 병사들은 크게 감동하였다.
또다시 레이몬드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것이다.
삭막한 전장에서 그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온기 가득한 보살핌이었다.
“……나. 이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나도.”
수도 출신, 지방 영지 출신, 정예 정규군, 이번에 징집된 신병 등등.
수많은 종류의 병사가 있었지만.
이 순간 그들은 똑같은 마음을 공유했다.
레이몬드에게 ‘감사하다’고.
* * *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보너스 레벨 업을 합니다!] [보너스 스킬 포인트를 30포인트 얻습니다!] [업적 : ‘군납 비리 타파’를 달성하였습니다!] [보너스 레벨 업을 합니다!] [보너스 스킬 포인트를 30포인트 얻습니다!] [군대 내 명성이 올라갑니다!]그 메시지들을 보며, 레이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다 이렇게 일이 커진 거야?’
접촉성 피부염을 해결하러 한 것이었는데, 군납 비리로 연결되더니, 이제는 온 병영의 병사들이 그를 칭송하고 있었다.
‘치료원에 추가 지원금을 받기로 했으니, 잘된 일이긴 하지만. 위문품 전달은 전혀 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쨌든 갈먼의 오지랖 덕분에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이윽고.
[군대 내 명성이 기준점을 돌파하였습니다!] [새로운 칭호를 얻습니다!] [칭호 : ‘병사들을 감싸는 자’ 획득.] [칭호 획득에 따른 부가 효과를 얻습니다.] [병사들을 감싸는 자]설명 : 병사들에게 따스한 보살핌을 내리는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
명성 등급 : 왕국군 중간 병영급
부가 효과 :
-병사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병사들은 더욱 큰 전투력과 사기를 발휘할 겁니다!
[칭호 획득에 따른, 보너스 레벨 업을 합니다!] [보너스 스킬 포인트를 40포인트 얻습니다!]“…….”
레이몬드는 침묵했다.
뭔가, 의도치 않은 칭호를 받은 것 같다.
‘사기랑 전투력 상승이라니. 어차피 난 힐러라 싸울 일 없을 텐데. 별 필요는 없는 칭호이네.’
그때, 레이몬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지금 레벨이?’
원래 그의 레벨은 97이었다.
그런데 퀘스트 달성과 업적, 칭호 획득으로 연달아 3단계의 레벨을 했으니……?
‘드디어?’
가슴이 쿵 뛰는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100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첫 번째 기준점’을 돌파하였습니다!]드디어 외과의사의 등급이 전공의(레지던트)급을 넘어, 전문의급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과연 어떤 변화가?’
레이몬드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기다렸다.
‘고년차 레지던트’, ‘수석 치프’가 되었을 때도 굉장한 변화가 있었다.
이번엔 아예 격 자체가 상승하는 것이니 더욱 큰 변화가 있으리라.
그런데.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된 수련의 과정 끝에 레벨 100을 돌파하였습니다!] [전문의 격(格)에 도전할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도전할 자격? 그게 무슨?’
의아해하는 순간.
놀라운 이야기가 전달되었다.
[전문의가 되긴 위한 자격시험을 시작합니다!] [당신의 의술이 전문의 격(格)에 어울림을 입증하십시오.]“……!”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시험이라고?
* * *
그때, 힐러들의 막사.
란드 자작을 비롯한 상급 힐러들은 분통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기랄!”
“레이몬드, 그놈의 오만한 짓거리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거요?!”
그들이 씩씩거리는 이유가 있었다.
‘힐보다 의술이 나은 것 아니야?’
이런 소문이 자꾸만 병영 내에 돌았던 거다.
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체 높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니, 더욱 뛰어난 치료술에 다들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전통의 치료법이든, 뭐든, 다들 더 뛰어난 치료술로 치료받고 싶어 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슨 뚜렷한 방법이 있겠는가?
이렇게 패배자처럼 모여 분통을 터트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제기랄.’
란드 자작은 홧김에 막사에서 술을 마셨다.
그때, 더욱 그의 기분을 가라앉히는 일이 일어났다.
“클레버 왕국군의 엔리케 왕자님이 다시 고열이 납니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