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41
#닥터 플레이어 141화
“……뭐?”
칼리스는 멍하니 반문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갑자기 그게 무슨 물음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당신이 베라드의 충실한 똥개라는 소문이 많아서요. 혹시 똥도 주워 먹나 궁금해서요.”
순간, 싸한 정적이 깔렸다.
모두 입을 벌리고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아니, 우리 숭고한(?) 힐러님이 저런 말을? 하는 표정이었지만, 레이몬드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도 필요하면 이런 이야기쯤은 할 수 있다고.’
지금은 남들의 시선보다 이기는 게 더 중요했다.
‘칼리스는 오만해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 했지. 최대한 열 받게 도발해 이성을 잃게 하자.’
“너, 너…….”
“그런데 똥은 위생에 안 좋은데. 좋아해도 가려서 먹는 게 좋을 겁니다. 체할 수도 있거든요.”
레이몬드는 계속 이죽대었다.
“아니, 이미 개가 되어 그런 걱정도 없으려나? 소문에 의하면 당신이 베라드 대공의 똥꼬를 핥는 걸 넘어 똥을 그렇게 맛있게 씹어 먹는다고 하던데, 썩은 입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걸 봐서 맞는 것 같군요. 혹시 베라드 대공이 당신을 볼 때 우리 똥개 해피라고 부르는 건 아닙니까?”
“이, 이놈……!”
“어허! 개가 사람처럼 말하려고 하네요? 평소처럼 멍멍, 하고 대답해야지요.”
“당장 네놈의 입을 찢어 죽여버리겠다!”
도발 대성공!
레이몬드는 후다닥 뒤로 물러갔다.
‘이제 우리 편 기사들이 알아서 요리해 주겠지. 파이팅, 엘무드, 다른 기사들!’
상위 기사들의 싸움에 평정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번 말해 입 아프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으니, 무난히 승리할 거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이변이 일어났다.
화아악!
칼리스의 검에서 폭포 같은 ‘오러’가 치솟아 오른 것이다.
장내의 모두가 딱딱히 굳어버렸다.
소드 마스터의 ‘오러’였다.
소드 익스퍼트의 ‘마나 블레이드’가 아니라.
‘……저놈의 검에서 오러가 왜 나와?’
오러는 오로지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얼마 전 깨달음을 얻었지. 깨달음을 갈무리하려고 왕성에 남아 있었던 거고.”
“……!”
“이 오러 블레이드로 찢어 죽일 첫 상대가 페닌 남작, 네놈이라니 기쁘구나.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계산 밖이었다.
칼리스가 정말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면, 지금 그들의 전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긴다.
레이몬드는 급하게 태도를 바꿨다.
“무언가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금 한 말은 가벼운 조크였으니 잊기 바랍니다.”
“……뭐?”
“우리 고귀한 귀족답게 대화로 갈등을 풀지 않으시겠습니까?”
물론 씨알도 통하지 않았다.
“닥쳐라!”
“으아악!”
칼리스는 다른 건 안 보인다는 듯 오로지 레이몬드만 노리고 쇄도했다.
그 기세가 얼마나 빠르고 매서운지,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안 돼!”
“주군!”
엘무드 등이 한 발짝 늦게 달려왔으나, 이미 늦었다.
‘으아아! 엘무드, 뭐 해? 지켜준다며?!’
도살견 같은 칼리스의 얼굴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의 눈동자에 살심이 가득 넘실거렸다.
‘이렇게 죽게 되다니!’
촤르르,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파앗!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갈랐고, 레이몬드의 몸이 절단되기 직전.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콰아앙!
어디선가 탁한 갈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와 칼리스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어?’
레이몬드는 눈을 부릅떴다.
아까 언급했듯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소드 마스터뿐이다.
그 말의 뜻은?
“다행히…… 늦지 않았군.”
나직한.
묵직하게 깔리는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칼리스, 네놈은 내가 상대하겠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의 남성이 레이몬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철벽과도 같은 인상의 무인.
라이프 공작이었다!
* * *
‘어, 어떻게 라이프 공작 각하께서?’
레이몬드는 자신이 꿈을 꾸는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라이프 공작이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밖에서 들었다. 저 베라드의 개는 내가 상대할 테니, 페닌 남작, 그대는 이곳을 빠져나가 성문을 열도록.”
“……!”
“그래도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군.”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의식을 차리자마자,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거야. 힘을 보태려고.’
과연 라이프 공작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파리하기 그지없었다.
검을 든 손끝도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엉망인 상태일 게 분명했다.
“공작 각하, 안정을 취하셔야…….”
“안정?”
라이프 공작은 하얀 안색으로 힘없이 웃었다.
“패전함으로써 난 기사로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내가 안정이라니. 가당찮은 이야기지.”
“…….”
“그래도 그대에게는 크게 고맙다 생각하고 있다. 내 생명을 연장해 줌으로써 설욕할 기회를 주었으니까.”
그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드로튼의 왕성이라. 내 최후의 전장으로 손색이 없겠어.”
레이몬드의 안색이 딱딱히 굳었다.
라이프 공작이 이미 죽음을 각오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죽음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게 분명해.’
라이프 공작은 자존심이 극도로 강한 이.
패전의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적과 싸우며 명예로운 죽음을 맞으려는 게 분명했다.
결전에 임하기 전, 라이프 공작은 회한이 남는 어조로 말했다.
“단 하나, 미련이 남는 게 있다면 불세출의 천재인 그대의 성장을 돕지 못한 게 아쉽군. 그대라면 언젠가 분명 소드 마스터를 뛰어넘어 위대한 검의 주인, 소드 오너의 경지에 발을 들일 수 있을 텐데.”
소드 오너.
소드 마스터 위의 경지라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칭하는 용어로 현재 온 대륙을 통틀어 단 8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경지였다.
“그대의 스승이 되어 내 모든 절예를 그대에게 전수해 주고 싶었거늘…….”
레이몬드를 제자 삼지 못한 게 어마어마하게 미련이 남는지 라이프 공작은 계속 제자 타령을 하였다.
결국, 레이몬드는 더 듣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
‘땀내 나는 기사 따위 되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권하는 거야?’
“지난번 말했듯, 제자는 됐습니다. 그것보다 치료비는 어떻게 하려고 여기서 죽겠다는 겁니까?”
“뭐?”
“치료비 내셔야 하지 않습니까? 참고로, 제 치료비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살아서 치료비 갚으셔야죠.”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기는 뭘 죽어? 내가 얼마나 고생하며 살렸는데! 오래오래 살아 내 호구가 되어야지!’
라이프 공작은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몬드 일행이 작전에 성공할 방법은 하나였다.
라이프 공작이 목숨을 바쳐 칼리스를 막아내는 것!
하지만 레이몬드는 간단하게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공작 각하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마시고, 힘을 합치죠.”
“뭐?”
“우리 전력도 만만한 건 아니거든요.”
레이몬드는 다른 이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차앙!
8명의 소드 익스퍼트가 칼리스에 칼을 겨누었다.
레이몬드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함께 몰매 놓으면, 저놈도 버티지 못하겠지.’
라이프 공작이 합세했으니, 상황은 다시 역전이었다.
“얼른 때려잡고 성문 열러 갑시다.”
그 말을 시작으로 최강의 기사들이 격돌을 시작하였다.
* * *
격전이 벌어진 지 얼마 안 된 후, 레이몬드는 얼굴을 굳혔다.
‘어……? 이게 아닌데?’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라이프 공작 각하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해.’
라이프 공작은 평소의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그는 검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일 테니까.
“하하, 고작 이 정도냐!”
“크윽!
칼리스는 사슴 무리에 떨어진 멧돼지처럼 날뛰었다.
라이프 공작 덕에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만약 그가 무너지면 모두 끝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네놈은 마지막에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칼리스는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레이몬드를 보며 흉흉한 눈빛을 보냈다.
잡히면 산 채로 포를 뜨기라도 할 기세였다.
‘젠장, 어쩌지? 이대로라면 다 죽겠어! 무슨 수를 내야 해.’
그 순간이었다.
레이몬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지금 상황이면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레이몬드는 얼마 전 얻은 스킬을 떠올렸다.
[힐러의 살신성인.]환자를 지키려 적에게 맞설 시 1회에 한 해 강력한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스킬이다.
라이프 공작은 그의 환자이니, 도와주러 나서면 발동 조건에 부합할 것 같았다.
‘무, 물론 무섭고 나 따위가 돕는다고 효과 있을지 의문이지만.’
상대는 무려 소드 마스터다.
그래도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다 죽을 거야.’
헛수고일 수도 있었다.
오히려 위험에만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뭐라도 시도를 해봐야 했다.
레이몬드는 일단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마켓을 열었다.
‘스킬 구입! ‘생존 본능’ 숙련도 상승!’
먼저 포인트를 소모해 ‘생존 본능’의 숙련도를 C등급으로 올렸다.
분류 : 보조 스킬(호신)
등급 : 레어
숙련도 : C
-강력한 적에게 생명을 지키기 위한 호신 스킬입니다.
-일시적으로(1분 15초) 체력, 감각 스탯 1.65배 상승.
사용 조건 :
1. 적이 플레이어보다 강력해야 사용 가능.
2. 1주일에 1회 사용 가능.
레이몬드는 차이점을 주목했다.
‘C등급으로 오르며 제약이 일부 사라졌어.’
D등급일 때는 ‘전장’이라는 제약이 붙었다. 그런데 C등급으로 오르니 그런 제약 문구가 사라졌다.
‘전장이 아니어도 위기 상황이면 사용 가능하단 건가?’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바로 이것.
능력치 상승이 1.65배로 올라갔다!
‘기회는 한 번이야. 반드시 성공해야 해.’
레이몬드는 과거 메이보 백작에게 뺏은 ‘겨울 검’을 꺼내 들었다.
곧 주르륵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수 웨폰, ‘겨울 검’을 들었습니다! 체력 스탯이 5점 상승합니다!] [‘치료사의 호신술’이 발현됩니다!] [적이 극도로 강력합니다! ‘거인을 쓰러뜨린 난쟁이 효과(2+)’가 발현됩니다!] [극도의 위기 상황입니다! ‘생존본능’이 발현됩니다!]스탯이 어마어마하게 뻥튀기되었다.
참고로, 현재 레이몬드의 레벨은 143으로 체력, 감각 스탯은 이러했다.
체력 : 63
감각 : 52
그게 생존 본능을 비롯한 스킬들의 효과로 이렇게 뻥튀기되었다.
[체력 : 63 → 122.45] [감각 : 52 → 94.3]과거 생존본능을 썼을 때 경험했던 느낌이 신체를 지배하였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감각이 예민해졌으며, 동시에 커다란 힘이 느껴졌다.
‘이게…… 도대체 어느 정도의 힘인 거지?’
모른다.
어쨌든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했다.
레이몬드는 검을 들고 격전이 벌어지는 장소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