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56
#닥터 플레이어 156화
‘좋았어! 내 요구대로 보리슨 영지를 받게 될 거야!’
그가 요구한 영지는 라팔드 지방 케널 산맥 깊은 곳에 자리한 보리슨 영지였다.
지금껏 어떤 이도 보리슨 영지를 하사받지 않았으니, 그의 몫이 분명했다.
‘하얀 수정 광산이 내 손으로!’
하얀 수정!
마정석의 일종이었다!
마정석은 마도구를 만드는 데 필수가 되는 광물로 그 값어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그 마정석의 일종인 ‘하얀 수정’이 보리슨 영지에 매장되어 있었다.
‘전쟁 중 우연히 발견한 사실이지.’
원래 보리슨 영지에는 폐광이 있었는데, 그 광산 깊은 곳에 하얀 수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전쟁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물론 보리슨 영지에는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긴 하지만.’
레이몬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고에 따르면 폐광 주위에 정체불명의 여러 환자가 생겼다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건 내 의술로 해결하면 돼.’
더 큰 문제는 하얀 수정 광석의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기존의 하얀 수정과 다소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고 하던데. 불순물이 섞인 것 같다나?’
하얀 수정은 투명한 광석 내 마나가 담겨 있는 광석이다.
광석 내 마나의 빛깔에 따라 품질이 결정되는데 마나의 성분이 다소 탁해 보인다고 했다.
따라서 보리슨 영지에 매장된 하얀 수정은 최하품(最下品)으로밖에 취급받지 못할 거다.
‘하지만 최하품이라도 마정석은 마정석. 일반 광산보다는 훨씬 값어치 있어. 난 오늘부로 부자가 될 거야.’
그렇게 꿈에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트렌비 백작이 오든 앞에 나섰다.
참고로, 트렌비 백작은 몰락한 백작가의 가주로 가문을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용감히 전쟁에 임했다.
전장의 선두에서 가장 많은 적 기사를 베었고, 수공 작전에 휘말렸을 때도 적들의 거센 추격을 막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두 번째 공로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레이몬드에게 강한 경쟁심을 지니고 있었는데, 단상에 나서기 전 레이몬드에게 한차례 적대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래, 그래. 실컷 노려봐라. 좋은 날이니 기쁜 마음으로 넘어가 주마.’
레이몬드는 느긋하게 트렌비 백작이 상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러한 공으로, 트렌비 백작, 그대에게 보리슨 영지를 내리노라.”
“……!”
레이몬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가 바라던 보리슨 영지가 난데없이 트렌비 백작에게 간 것이다!
‘뭐야? 보리슨 영지를 왜 트렌비 백작에게 내려? 말도 안 돼!’
레이몬드는 재상 갈먼을 바라보았다.
마침 재상 갈먼도 레이몬드를 보고 있어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데 재상 갈먼의 눈빛이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경악한 눈빛.
‘……왜 저런 눈빛이지?’
그러고 보니 재상 갈먼뿐이 아니었다.
연회장 모두가 경악해 레이몬드를 보고 있었다.
‘뭐지?’
그때, 레이몬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정석 광산이 있는 보리슨 영지가 두 번째 공로자인 트렌비 백작에게 갔다.
그렇다면 가장 큰 공로를 세운 레이몬드에게는?
마정석 광산보다 더욱 가치 있는 영지가 내려져야 사리에 맞는 것이다.
‘그러면 난 어떤 영지를 받게 되는 거지?’
그때, 사람들이 이런 속닥임을 나누었다.
“아직까지 ‘그 영지’의 주인이 결정되지 않았어요.”
“설마 페닌 남작에게 ‘그 영지’가?”
“말도 안 돼!”
레이몬드는 라팔드 지방의 지도를 머릿속에 촤르륵 떠올렸다.
그리고 뻣뻣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있었다.
아직 행방이 결정되지 않은 영지가.
보리슨 영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커다랗고, 가치 있는 최고의 영지였다.
‘……서, 설마?’
레이몬드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말도 안 돼. 아니겠지. 그 영지를 내게 하사할 리가?’
그때, 오든이 말했다.
“페닌 남작, 단상으로 나오도록.”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앞으로 나섰다.
연회장 모두가 곧이어 벌어질 일을 직감하고 경악 어린 시선을 보냈다.
“페닌 남작, 그대는 종군 힐러로 참전하여 무수히 많은 공을 세웠다.”
국왕 오든은 앞서 했던 것처럼 레이몬드의 공을 하나하나 열거하였다.
“힐러로서 수많은 병사와 기사, 귀족의 목숨을 구했으며, 마음으로 병사들을 대해 사기 진작을 이끌었다. 또한, 적국의 간교한 계책을 간파하여 아군을 위기에서 구했고, 중요 성들을 함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가 않았다.
전쟁 때 세운 공이 워낙 많아서였다.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레이몬드의 귓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하나의 생각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서, 설마 정말로? 내게 그 영지를?’
이윽고.
“다음과 같은 공로로 그대에게 다음과 같은 상들을 내리겠다. 페닌 남작, 그대의 작위를 백작 위로 승작하겠노라.”
“……!”
연회장이 술렁였다.
백작 위!
무려 두 단계 승작을 한 것이다!
기사 위를 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무려 백작까지 승작한 것으로 대륙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세운 공이 워낙 커서 백작 위를 받을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었으니까.
문제는 봉토였다.
‘과연 어디를 영지로?’
‘설마 정말로 그 영지를?’
입을 열기 전 오든이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찰나, 깊은 눈빛이 레이몬드의 눈빛을 꿰뚫었다.
“페닌 백작, 그대를 나 오든의 뜻을 대리하는 ‘대리자’로 임명하겠으니.”
“……!”
“그대를 전쟁으로 피폐해진 라팔드 지방의 전후 복구를 맡기는 ‘특사’로 임명하겠다.”
사람들 사이에서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전후 복구를 위한 ‘특사’라니. 뜻밖의 임명이었던 것이다.
‘힐러인 그에게 어울리는 직위이긴 하지만.’
‘라팔드 지방의 민심을 다독이는 일에도 적합할 거고.’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전쟁으로 피폐해진 라팔드 지방을 복구하는 일은 필요했다.
또한, 100년이나 적국으로 싸웠던 백성이니 그들의 민심을 다독여 휴스톤 왕국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일도 필요했고.
레이몬드보다 이 일을 잘해낼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힐러로서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
그가 받을 영지는?
그때, 오든이 말을 이어갔다.
“페닌 백작, 그대는 짐의 뜻을 대리하는 이로써 반년 안에 전쟁 피해를 복구해 라팔드 지방을 안정시키고, 백성의 민심을 다독이도록. 만약 그대가 반년 안에 이 일을 이루어낸다면.”
묵직한 음성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이번 전쟁에서 세운 공과 합쳐, 그대에게 루인 영지를 봉토로 내림과 동시에 라팔드 지방을 총괄하는 대영주, 제후(諸侯)로 봉하도록 하겠다.”
* * *
연회장이 충격과 경악에 빠졌다.
루인 영지!
라팔드 지방의 핵심이자 주도(主都)인 루인 성이 위치한 곳.
참고로, 루인 성은 드로튼 왕국 전체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커다란 성이었다.
또한, 대대로 라팔드 지방 대영주의 봉토였던 곳!
루인 지방의 영주는 늘 라팔드 전체의 대영주, 제후로 불렸다. 역사상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런 곳을 내리겠다니!’
‘저 사생아를 라팔드 지방의 제후로 봉하겠다고?’
연회장 모두가 경악해 생각했다.
제후!
얼마나 지고한 자리인가?
영주들의 영주, 왕 바로 밑에서 왕국의 한 지역을 다스리는 대군주의 자리였다.
그런 자리를 레이몬드에게 주겠다니?
아무리 조건부라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레이몬드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나한테 제후라니?’
그가 바란 건 단순히 슈퍼 리치가 될 노른자위 영지였다.
제후 같은 높은 자리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렇게 레이몬드가 충격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전하, 충성 된 마음으로 간언컨대 그 결정은 다시금 숙고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테른 후작!
휴스톤 서쪽 지방의 제후였다.
참고로 그는 3왕자 리머튼을 지지하는 이의 수장으로, 레이몬드의 입지가 더 강해지는 걸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다른 이들도 동조의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전쟁 영웅이라 해도 과해.’
‘그런 중요한 직책은 다른 정통 명문 귀족이 받아야…….’
‘그래, 너무 과해. 난 그냥 돈 많이 벌 영지를 바랐을 뿐인데.’
참고로, 마지막은 레이몬드의 속생각이었다.
레이몬드는 테른 후작의 말이 맞는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 테른 후작이 말했다.
“루인 지방은 이제 갓 백작이 된 페닌 백작보다는 다른 자격 있는 이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든은 강경하게 나왔다.
“왜 페닌 백작에게 자격이 없다고 하는 거지?”
“그건…….”
테른 후작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사생아 출신 귀족이니까.’
그것 외에는 트집 잡을 게 없었다.
하지만 어떤 흠보다 큰 결격 사유였다.
물론 그의 능력은 인정한다.
이제 레이몬드가 사생아라고 무턱대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무려 제후의 자리이다.
라팔드 지방 전체를 총괄할 대영주.
다른 직위면 몰라도, 그런 지고한 자리를 레이몬드에게 넘기길 바라는 귀족은 없었다.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인가? 모두 페닌 백작에게 루인 지방을 내리는 걸 반대하는가?”
대답은 없었다.
명백한 반대의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웃기는군. 페닌 백작이 자격이 없다면 누가 자격이 있다는 거지? 이번 전쟁 때 어떤 공로도 세우지 못한 테른 후작 그대? 아니면, 그릇된 판단으로 왕국군에 막대한 피해를 준 리머튼 왕자 전하?”
거침없는 언사.
라이프 공작이었다!
“마, 말이 심하십니다, 공작 각하.”
“뭐가 심하다는 건지 모르겠군.”
라이프 공작은 싸늘하게 말했다.
“나 라이프 공작은 남부 케이른 지방의 제후로서 국왕 전하의 결정에 동의합니다.”
그때, 또 다른 뜻밖의 음성이 나섰다.
“이거 제가 나서도 되는 자리인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저도 휴스톤 왕국의 마법사들을 대표해 국왕 전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마탑의 샤메론이었다!
라이프 공작을 의식해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걸 시작으로 다른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저, 저도 동의합니다.”
“저도입니다.”
지금껏 레이몬드에게 은혜를 입었던 귀족들이었다!
그 수가 마냥 적지만은 않았다.
그간 레이몬드가 베푼 은혜가 돌아온 것이다.
그때, 레이몬드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음성이 튀어나왔다.
“본 왕녀도 휴스톤 왕국의 1왕녀이자, 4위의 왕위 계승권자로서 국왕 전하의 결정에 동의합니다.”
소피아 공주였다!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반대 의견을 표한 이들을 노려보았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페닌 백작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페닌 백작 말고 이 중임에 어울리는 이가 누가 더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라이프 공작과 소피아 공주. 두 거물이 나서자 장내가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