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57
#닥터 플레이어 157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반대하던 귀족들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러다 정말 레이몬드에게 제후 자리가 내려지게 생긴 것이다. 비록 조건을 달성해야 하는 거지만 말이다.
특히 가장 곤란해한 건 레이몬드, 본인이었다.
‘아니, 여러분? 지금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후라니. 난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이러다가 난데없이 제후가 되게 생겼다.
레이몬드는 더 늦기 전에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제후가 되면, 어마어마한 부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날 무시하던 귀족들의 콧대를 눌러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그런 속물적인 욕심이 들며 멈칫하게 되었다.
간단히 거절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마어마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는 단순한 성공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힐러로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보람을 알고 있으니까.
성공해도 환자를 치료해 성공하고 싶었다.
제후 같은 자리는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
‘으으,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탐나는데! 부귀영화뿐 아니라, 권력, 명예를 한 번에 손에 쥘 수 있잖아!’
그때, 오든이 입을 열었다.
“분명 말하지만, 짐은 조건 없이 페닌 백작에게 제후 자리를 내리겠다고 한 게 아니다.”
그렇다.
조건이 있었다.
반년 안에 전쟁 피해를 복구해 라팔드 지방을 안정시키고, 백성의 민심을 다독이는 것.
“만약 그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다 판단하여 루인 영지를 하사하는 건 없는 일로 할 것이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다른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
“그러나.”
오든이 나직이 말을 이어갔다.
“페닌 백작이 이 일을 모두 해낸다면.”
서늘한 눈으로 선언했다.
“페닌 백작에게 루인 지방을 내림을 확정함과 동시에 그를 후작으로 승작시키고 휴스톤 왕국의 ‘오제후(五諸侯)’의 일인으로 임명하겠다.”
휴스톤 왕국을 폭풍처럼 뒤흔들 선언이었다.
그렇게 레이몬드는 뜻하지 않게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 * *
논공행상이 끝났다.
이후, 오든과 단둘이 된 갈먼이 물었다.
“그런 조건을 내건 건 페닌 백작에게 명분을 실어주려는 겁니까?”
아무리 전쟁 영웅이 되었다고 해도 레이몬드를 한 지방 전체의 대영주, 제후로 삼는 건 과했다.
그래서 그에게 명분을 실어주고자 그런 임무를 추가로 내린 것이다.
만약 레이몬드가 라팔드 지방을 안정시키는 공을 추가로 세우면 사람들도 더는 그가 제후가 되는 걸 반대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갈먼은 무겁게 말했다.
“하오나, 아무리 페닌 백작이라도 전하가 말씀한 조건을 달성하는 건 쉽지는 않을 겁니다.”
“…….”
“방해의 손길이 많을 겁니다.”
물론 갈먼도 레이몬드의 능력을 안다.
그가 가진 능력이라면 라팔드 지방을 안정시키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를 방해할 요소가 있었다.
‘귀족들이 레이몬드에게 순순히 순응할 리가 없어. 분명 반발하고 어깃장을 놓을 거야.’
심지어 라팔드 지방에 새롭게 임명된 영주들은 카이른과 리머튼을 지지하는 귀족이 많았다.
레이몬드를 지지하는 귀족이나, 그에게 우호적인 라이프 공작과 연이 있는 귀족들은 주로 영지보다 다른 종류의 포상을 받았고, 주요 영지의 영주 중에는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영주들은 레이몬드에게 복종은커녕 어떻게든 방해하려 할 거다.
‘아무리 레이몬드라도 그런 방해를 이겨내고 조건을 달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때, 오든이 말했다.
“어려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쉬워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
“사생아를 제후로 삼는 일이다. 이만한 난관 정도도 극복해 내지 못하면 곤란해.”
오든은 차갑게 말했다.
“이 정도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힐러로 여생을 보내는 게 페닌 백작에게도 낫겠지.”
그제야 갈먼은 오든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명분을 실어주려는 게 아니야. 레이몬드의 자질을 시험하려는 거야.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마련했어.’
갈먼은 이번에 라팔드 지방에 영주로 임명된 이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레이몬드에게 적대적인 이들이었다.
특히 2왕자 카이른이나 3왕자 리머튼을 따르는 귀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건을 달성하려면, 적대적인 귀족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필수. 전하는 레이몬드의 그릇을 시험하려는 거야. 과연 제후가 될 자격이 있는지.’
갈먼은 침음을 삼켰다.
그때, 한 가지 추측이 퍼뜩 떠올랐다.
‘설마 전하께서 레이몬드를 왕위 후보로 염두하기 시작한 건가?’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과한 추측이었다.
레이몬드를 왕위 후보로 삼는 건 어마어마한 반발을 일으킬 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오든이 그런 생각까지 했을 가능성은 적었다.
다만.
‘만약 레이몬드가 라팔드 지방에 가서 또다시 어마어마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갈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히 피해를 복구하는 게 아니라, 레이몬드가 이번 전쟁 때 보여주었던 것처럼 또다시 어마어마한 능력과 업적을 보인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확답할 수 없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뛰어난 공은커녕 제후가 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피해 복구가 관건이 아니었다.
그를 방해할 온갖 손길이 있을 거다.
그 방해의 손길을 모조리 극복하고 반발하는 귀족들을 굴복시켜야 한다.
그래야 제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차라리 실패하는 게 레이몬드한테도 나을지도.’
갈먼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사실 지금 레이몬드는 굉장히 위험한 처지였다.
끊임없이 두각을 드러내며 두 왕자의 경계 대상이 된 상태니까.
언제고 사달이 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 일에 실패하면?
실망한 사람들은 더는 레이몬드를 왕위 후보로 여기지 않게 될 거고, 왕권 다툼에서 멀어진 그는 도리어 안전한 처지가 된다.
평온히 힐러의 삶을 사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설마 전하께서는 이런 점까지 생각하신 건가?’
갈먼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요즈음 오든은 레이몬드를 관련해 복잡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갈먼은 곧 고개를 저었다. 저 오든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오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 데가 있으니 암행을 준비하도록.”
“갑자기 어디에?”
“페닌 백작에게.”
“……!”
오든은 무심히 말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 전, 그의 마음을 들어봐야겠지.”
* * *
그때 레이몬드는 페닌 치료원 저택 옥상에서 홀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도저히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 어쩌지? 제후라니! 제후라니!’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라팔드 지방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특사가 된 건 받아들일 수 있어. 드로튼의 국왕 마카펠 3세와 한 약속도 있으니.’
그는 마카펠 3세와 약속했다.
라팔드 지방에 페닌 치료원을 세워 라팔드 지방의 백성을 보살펴 주기로.
또한, 전후 복구와 민심 안정.
힐러인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침 딱 알맞은 직업으로 승급하기도 했고.’
그는 방금 떠오른 메시지를 떠올렸다.
[레벨이 161이 되었습니다! 승급 기준치를 충족한 상태입니다!]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전후 복구를 위해 힘쓰고자 한다면, 군의관 이후의 특수 클래스로 전직 가능합니다.]‘특수 클래스?’
[전후 복구를 위한 특수 클래스, ‘평화유지단’으로 승급 가능합니다!] [평화유지단]설명 : 전쟁이 막을 내리며 당신의 군의관 역할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종전은 새로운 시작. 힐러로서 전후 복구에 힘쓰며 평화에 힘쓸 때입니다! 전후 복구를 위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전후 복구 상황에 모든 항목 능력치 상승.] [전후 복구를 위해 백성에게 강력한 ‘지도력’ 발휘 가능.] [전후 복구 상황에 ‘카리스마’ 상승.] [스킬, 재난 지휘 습득. (숙련도 D)] [재난 의학 습득. (숙련도 B)]지도력과 카리스마 상승!
재난 지휘 및 재난 의학도 습득 가능했고, 그 밖에 의무병 지휘나, 일반병 지휘 숙련도 상승도 있었다.
현재 그의 상황에 딱 필요한 클래스로 승급한 것이다.
‘힐러로서 전후 복구를 위해 노력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제후라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감당할 수 없어. 내 주제에 무슨.’
그는 힐러였다.
그것도 돈 버는 게 좋은 속물 치료사.
그의 그릇은 딱 그 정도였다.
무슨 대영주이고, 제후란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정말 안 돼? 왜? 내가 미천한 사생아라서?’
그는 생각했다.
정말 자신이 그런 꿈을 꿔본 적이 없는지.
솔직히 말하면 있었다.
사생아로 무시받을 때마다 누구보다 존귀한 존재가 되어 남들 위에 서는 꿈을 꾸었다.
제후가 되면, 그 꿈을 단번에 이루게 되는 것이다.
레이몬드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탐이 났다.
그런 어마어마한 직위가 욕심나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그를 무시했던 모든 이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마정석 광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됨은 물론일 거고.’
하지만 그는 결국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이건 아니야. 난 환자를 치료하는 게 좋아. 힐러의 삶을 살고 싶어.’
그는 자신이 오늘 아리스 후작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도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 그는 누구보다도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며 성공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가 바라는 건 단순한 성공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하며 성공하고 싶었다. 특히 환자들을 위하고 싶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보람을 알고 있으니까.
그 기쁨을 알고 있으니까.
제후는 그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힐러였다.
‘으아아.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데. 내가 제후라니! 지금껏 날 무시하던 놈들한테 완벽히 한 방 먹일 수 있는 거잖아! 어쩌지? 왜 나한테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레이몬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의 길이 아닌 건 안다.
하지만 포기하기 너무 아쉬웠다!
그때,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형님!”
잔뜩 취한 라오가 옥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참고로, 밑에서는 레이몬드를 제외한 이들이 기쁨의 술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덕분에 가문의 빚을 갚고, 출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 축하해.”
“이 라오 형님께 평생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솔직히 요즘도 가끔 형님이 속물인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그건 모두 악마가 주는 생각이야! 앞으로는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서라도 그런 못된 의심은 하지 않겠어!’
라오는 굳게 다짐하고는 잔뜩 꼬인 말투로 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제후가 되실 겁니까?”
레이몬드는 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라오는 웃으며 말했다.
“형님도 3명의 성자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군요.”
“음?”
“형님께서는 성자 메디락과 성자 플리톤, 성자 파미슨 중 누구의 길을 가고자 하십니까?”
라오는 역사상 유명했던 3명의 성자를 언급했다.
휴스톤 왕국의 성자는 아니다.
드넓은 대륙, 다른 나라의 성자들.
각기 다른 곳의 성자들이지만, 3명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힐러로서 성공해 군주의 자리를 제안받았다는 것.
‘사실 최상위 등급의 힐러가 봉토를 받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니까.’
최상위 힐러들은 강력한 힐 능력으로 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공을 세운다.
따라서 왕의 환심을 사 작위와 봉토를 받는 일이 많았다.
그중 라오가 말한 3인은 특별히 특출한 공들을 세워 지금 레이몬드처럼 대영주, 제후의 자리를 제안받은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