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11
#닥터 플레이어 211화
“……?”
소고기 파티장의 모두가 놀란 얼굴을 하였다.
VIP 환자 프로젝트라니?
“휴스톤 왕국의 중요한 귀족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프로젝트입니다. 무상으로요.”
“무상이요?”
“네, 말 그대로 이건 휴스톤 왕국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니 대가를 받을 수는 없지요.”
다들 의아한 얼굴을 했다.
세상 만인을 위하고 싶어 하는 레이몬드다운 발상으로 보였지만, 과연 괜찮을까?
‘페닌 치료원은 매달 최고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다들 그런 걱정을 했다.
페닌 치료원은 라팔드 지방에 온 후 단 한 순간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매달 적자 신기록을 경신 중이었다. 그것도 가파르게.
그런데 저런 일까지 하려 하다니?
물론 괜한 기우였다.
레이몬드는 속으로 음흉하게 생각했다.
‘뼛속까지 속물인 내가 손해 보는 일을 하려고 할 리가 없잖아?’
참고로 ‘VIP 환자 프로젝트’의 진짜 명칭은 ‘최고 호구 뜯기 프로젝트’였다.
레이몬드는 말했다.
“대신 치료비를 받지 않는 대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따라 백성을 위한 기부를 받을 겁니다.”
“……!”
기부금 뜯기!
이게 바로 그의 진짜 의도였다!
‘치료비는 아무리 많이 뜯어내도 한계가 있어. 아무리 상대가 귀족이라도 기껏 해봐야 환자 한 명당 수천 페나 정도가 한계야.’
반면 이런 식으로 하면 뜯어낼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없었다.
말 그대로 치료비가 아니라, 백성을 위한 기부이니까!
‘사실 이건 내가 생각해 낸 게 아니라, 성국의 성왕이 치료비를 뜯어낼 때 쓰는 방법이지.’
성왕.
명실상부 대륙 최고의 힐러이자, 또한 대륙 최강의 기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초인이었다.
그는 막대한 성국의 예산을 힐러로 번 돈을 통해 유지했고, 저런 방법을 사용해 대륙 각지 유력자들의 돈을 뜯어낸다고 한다.
여기서 레이몬드는 하나의 꼼수를 더 썼다.
“백성을 위해 커다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들은 신문에 게재해 감사의 인사를 할 겁니다. 물론 그 기부금을 어떤 용처로 사용했는지도 다 밝히고요.”
기부금 경쟁을 붙이려는 의도였다.
명예가 걸린 일이니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돈을 내려고 할 게 분명했다.
다만, 이 방법은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첫째, 받은 돈은 오로지 백성을 위해서 써야만 했다. 또한, 라팔드 지방만이 아닌 휴스톤 왕국 전체를 위해 써야 했다.
‘이건 괜찮아. 운하 건설은 결국 휴스톤 왕국 전체를 위한 일이니까. 운하 건설에 쓰면 돼. 백신 생산도 그렇고.’
그리고 또 다른 단점.
같은 맥락에서 개인적인 용도로 쓸 수 없었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지금도 내가 쓸 수 있는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는데.’
레이몬드는 눈물을 삼켰다.
그래도 가끔 소고기 사 먹는 정도는 괜찮을 거다.
환자를 위한 면역력 증강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
한편, 그런 레이몬드의 시커먼(?) 속마음도 모르고 제자들은 감탄을 거듭했다.
‘과연 형님! 그야말로 백성과 환자를 동시에 위할 절묘한 방책을 생각해 냈구나.’
‘과연 주군! 이 늙은이 주군의 선한 마음에 또 감동했습니다!’
‘과연 마스터! 존경해요.’
모두 존경의 시선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았고, 레이몬드는 결연히 선언했다.
“높은 귀족들도 아프면 똑같이 괴로운 환자입니다. 앞으로 페닌 치료원은 귀족들의 고통도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의 뜻은 이러했다.
어떤 VIP 귀족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 호구로 삼겠다고.
그렇게 라팔드 지방을 먹여 살리기 위한 호구 뜯기…… 아니, VIP 환자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 * *
호구 후보 조사…… 아니, 환자 조사는 어렵지 않았다.
크리스틴의 권한을 이용해 치유의 탑의 정보를 이용하면 되니까.
상급 힐러를 쓰려면 치유의 탑에 연락해야 하니 치유의 탑은 모든 귀족 환자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에요.”
레이몬드는 크리스틴이 가져온 서류를 보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귀족 중에도 환자가 많구나.’
생각해 보면 현대 지구에서도 환자가 전혀 없는 가정은 드물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환자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질병 예방이 훨씬 발달한 현대 지구에서도 그런데, 이곳 레이펜타이나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귀족 가문에 환자가 들끓었다.
‘이제 내 명성도 크게 쌓였으니, 귀족도 내 치료를 거절하지 않을 거야.’
사실 구상 자체는 예전부터 했다.
다만, 물리적 거리상 시작할 엄두를 못 냈다. 환자 한 명을 치료할 때마다 매번 일주일, 이주일 넘는 거리를 말을 타고 갈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수도로 복귀하면 시작하려고 했는데, 셔트폰이 거리의 제약을 없애주었다.
‘소고기 많이 먹어 얄미운 놈이긴 하지만, 이렇게 예쁜 일을 하네. 어쨌든 좋아.’
고통받는 환자도 치료하며, 큰돈도 번다!
그야말로 레이몬드의 이상에 부합한 프로젝트였다.
한편 크리스틴, 한슨 등은 그런 레이몬드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환자를 치료할 생각에 저렇게 설레 하다니.’
‘역시 환자 바보 마스터.’
그때, 서류를 보던 레이몬드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테른 후작가의 인물은 없군요?”
“네, 테른 후작가의 인물 중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이는 없어요.”
레이몬드는 입맛을 다졌다.
사실 가장 탐나는 호구는 테른 후작이었다.
‘테른 후작의 호구를 뜯을 수 있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일전 이야기한 석재 건만이 아니었다.
휴스톤 왕국에서 가장 부자 제후는 크리스틴의 가문인 동쪽의 래번 공작이었다.
그다음 부자 제후가 바로 테른 후작이었다.
테른 후작의 영지는 비옥한 평야와 풍부한 자원으로 커다란 부를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만약 운하가 개설되면 가장 중요한 고객이 될 손님이었다.
‘테른 후작과 우호 관계를 맺으면 라팔드 지방에 커다란 이득이 될 거야. 나도 큰돈을 벌 거고.’
레이몬드는 상상해 보았다.
테른 후작 영지의 자원이 그가 건설할 운하를 거쳐 드로튼 왕국으로 수출되는 광경을.
레이몬드는 앉아서 떼돈을 벌게 될 것이다.
‘테른 후작은 과거를 잊고 반드시 친해져야 하는 친구인데.’
레이몬드는 쩝 아쉬운 얼굴을 했다.
‘하지만 혼자 원한다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니.’
어떤 계기라도 있다면 모를까, 상대방이 혼자 미워하는데 가까워질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레이몬드의 표정을 오해한 크리스틴이 묘한 눈으로 물었다.
“테른 후작은 평소 마스터를 적대했는데, 그런데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시는 건가요?”
“그야…….”
테른 후작가는 돈이 되니까.
하지만 크리스틴은 감탄하여 말했다.
“원수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숭고한 마음이시군요.”
“…….”
“마스터께서는 평소에 어떤 환자든 가리지 않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으니까요.”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거 전혀 아니었지만, 그냥 닥치고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틴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주변을 향해 말했다.
“한슨 경, 메빈슨 공, 실례지만 자리를 비켜줄 수 있으시겠어요?”
“……?”
둘이 물러나자 레이몬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자님?”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건 사실 절대 말해서 안 되는 극비예요. 마스터를 믿지만,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겠어요?”
“환자와 관련한 겁니까?”
“네.”
크리스틴은 잠시 숨을 죽인 후 말했다.
“테른 후작가의 일원 중, 마스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긴 해요.”
“누구입니까?”
“3왕비마마예요.”
“……!”
레이몬드는 놀란 얼굴을 하였다.
생각지도 않은 이름이 나온 거다.
3왕비 비네트.
리머튼의 친모로 테른 후작의 친동생이었다.
사실상 테른 후작은 3왕비 때문에 리머튼을 지지하는 거였다.
‘왕비라.’
레이몬드는 왕궁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왕비 중 3왕비가 그나마 나았지.’
잘해준 건 아니었다.
그나마 그에게 잘해준 왕비는 1왕비. 소피아의 친모였다.
3왕비는 레이몬드에게 그냥 무관심했다. 3왕비는 아들인 리머튼에게만 모든 애정을 쏟았고 레이몬드를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무시했다.
‘정확히는 더러운 오물을 무시하듯 했지.’
그래도 다른 왕비들에 비하면 나았던 거다.
투기가 심했던 2왕비와 4왕비는 그를 경멸하고 트집을 잡아 매질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무시한 게 차라리 잘해준 거다.
‘으, 갑자기 안 좋았던 기억이.’
왕비들을 떠올리자 기분이 나빠졌다.
‘아, 그러고 보니 3왕비가 하나 잘해준 게 있긴 하구나.’
레이몬드는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워낙 오래되어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처음 왕궁에 들어간 뒤 얼마 안 되었을 때, 3왕비와 마주쳤을 때였다.
그를 보고 혐오스럽게 눈썹을 찌푸린 3왕비는 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네 잘못은 아니지.’
그때는 3왕비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왕궁에서 유일하게 그렇게 이야기해 준 사람이었지.’
물론 그렇다고 3왕비가 좋은 인물이라는 건 아니다.
학대하진 않았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3왕비마마께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해요.”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왕비가 신의 저주이라니?
“정확히 무슨 신의 저주에 걸린 겁니까?”
신의 저주.
힐로 치료 안 되는 질병 중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병을 총칭하는 용어다.
당연히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크리스틴은 무겁게 답했다.
“얼굴의 종양이에요.”
“……!”
레이몬드는 깜짝 놀랐다.
얼굴의 종양이라니?
“그러면 혹시 3왕비께서 테른 후작가로 휴양을 가 계신 게?”
3왕비는 왕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휴양. 정확히는 국왕 오든과의 불화를 이유로 꽤 오래전부터 테른 후작가에 가 있었던 것이다.
“네, 휴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숨은 거래요. 이리저리 핑계를 대어 국왕 전하도 왕비마마께 생긴 병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고 해요.”
레이몬드는 침음을 흘렸다.
얼굴의 종양.
남자든, 여자든 누구라도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병이다.
하필 왕비에게 그런 병이 생기다니.
“어떻게 그 내용을 알게 된 겁니까?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고 있을 텐데?”
“사실 얼마 전 저에게 은밀히 연락이 왔어요. 와서 치료해 줄 수 있느냐고.”
“아.”
레이몬드는 그녀가 치유의 탑에서 유명한 힐러인 걸 기억했다.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술의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마스터께 직접 연락하기는 껄끄러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