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23
#닥터 플레이어 223화
‘수술은 문제없어. 주변 림프절까지 깨끗이 청소했으니, 암이 재발할 확률도 낮을 거야.’
레이몬드는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는 오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일전보다 한결 나아진 안색이었다.
실제로 바이탈 사인도 훨씬 안정되었고.
‘문제는 합병증이 생겼어.’
수술 부위가 잘못되어 생긴 합병증은 아니었다.
‘스트레스성 심부전이 오다니.’
스트레스성 심부전(SCMP)!
쇼크, 커다란 외상, 수술 등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심장의 기능에 문제가 오는 거다.
‘다행히 크게 걱정할 합병증은 아니지만.’
원인이 해결된 상태이니, 스트레스성 심부전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회복될 거다.
‘보름? 길어도 한 달? 소드 마스터이니 최소한 그 전에는 좋아지겠지.’
심부전 자체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소드 마스터한테 섬망이 오다니.’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였다.
섬망!
이것도 마찬가지로 육체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때 정신 착란 증상이 오는 것이다.
현대 지구에서도 병원에 가보면 수술 후 이런 섬망 증상을 겪는 환자가 많다.
수술 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합병증이지만, 심신(心身)이 굳건한 소드 마스터한테 섬망이 온 건 뜻밖이었다.
‘거참, 소드 마스터가 섬망을 겪는 건 상상해 보지 못했는데.’
레이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도 인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했다.
“끄윽…… 끅.”
오든은 어떤 착란을 겪고 있는지 인상을 찌푸린 채 간헐적으로 신음을 찌푸렸다.
‘무슨 착란이 온 거지?’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마다 섬망 증상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착란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괴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때, 재상 갈먼이 걱정스레 물었다.
“전하께서는 괜찮으신 건가?”
“아…… 네. 합병증이 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회복하실 겁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레이몬드는 큰 걱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섬망이든, 스트레스성 심부전이든 몸의 상태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좋아진다.
오든의 경우 원인이 되는 병을 치료했으니, 이제 체력을 회복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보름 정도면 좋아지실 거라고 봅니다.”
“아아!”
재상 갈먼은 눈물을 흘렸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페닌 후작, 그대가 휴스톤 왕국을 살렸어!”
레이몬드는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는 시커먼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약속한 대로 모두 다 뜯어갈 거니까요.’
400만 페나!
면세 혜택!
돈 되는 광산 영지!
이번에 그가 받기로 한 보상들이었다.
단 한 푼도 에누리해 주지 않을 거다.
‘나중에 깎아 달라고나 하지 마십시오, 흐흐.’
레이몬드는 국왕 오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서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다.
돈 뜯어내게 말이다. 오든에게서 돈을 뜯으면 아주 아주 통쾌하리라.
‘사과도 받아내야겠지.’
레이몬드는 눈을 가라앉히며 생각했다. 약속대로 사과도 받아내야 했다.
물론 오든을 용서해 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오든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어. 카이른 놈을 처리해야 해.’
그래, 국왕 오든을 치료했지만 모든 문제가 끝난 건 절대 아니었다.
카이른 놈을 확실히 해결해야 했다.
‘카이른 놈이 이대로 순순히 고개를 숙일 리가 없어. 문제는 놈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데.’
물론 이번에 카이른 놈은 커다란 실책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놈을 완전히 처리할 수는 없었다.
‘아직 놈을 따르는 지지 세력이 많아.’
레이몬드는 팔짱을 꼈다.
‘그러니 방법을 써야지.’
방법.
레이몬드는 카이른 놈의 힘을 꺾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놓았다.
‘겸사겸사 돈도 벌면서 놈의 힘을 꺾을 아주 좋은 방법이지.’
레이몬드는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고는 갈먼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하는 이제 괜찮으실 테니, 제게 맡기고, 재상 각하께서는 쉬십시오.”
“아니, 나는 괜찮네. 자네야말로 조금 쉬게. 수도에 도착한 이후로 한잠도 못 자지 않았던가?”
“저는 괜찮…….”
그때, 크리스틴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괜찮아요. 죽을 것 같은 안색이면서.”
“네?”
“마스터 얼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아요.”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하고 거울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안색이었다.
‘별로 안 피곤했는데? 아, 스킬!’
레이몬드는 일전 얻은 ‘지치지 않는 괴물’ 스킬의 설명을 떠올렸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로감이 대폭 줄어듭니다!]‘음…… 어,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레이몬드는 찌릿 식은땀이 흘렀다.
피로감이 대폭 주니 환자를 치료할 때는 좋은데, 자칫 잘못하다간 건강을 상할 것 같았다.
‘안 돼! 건강하게 살아서 오래 부귀영화 누려야 한단 말이야!’
참고로, 그의 신조 목록에는 ‘건강이 최고다’란 내용도 있었다.
크리스틴이 레이몬드의 등을 떠밀었다.
“전하는 제가 돌보고 있을 테니, 쉬고 오세요. 어서요!”
그렇게 레이몬드는 병실에서 쫓겨났다.
‘그래, 조금 쉬고 오자.’
바이탈 사인이 안정화되어 그가 없어도 큰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왕궁에서 임시로 마련해 준 숙소로 걸어가는데 레이몬드는 복도의 전경에 감탄했다.
‘우와, 이 예술품들. 팔면 얼마야?’
오래된 왕국답게 유서 깊은 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왕궁에 있는 예술품을 모두 팔면 400만 페나는 충분히 나오겠지? 흐흐.’
레이몬드는 이게 다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하니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때, 뜻밖의 음성이 들렸다.
“그림에 관심 있으신가요?”
쌀쌀한 얼굴.
소피아였다!
“아, 그냥 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림이 멋지네요.”
레이몬드는 멋쩍게 답했다.
그녀는 레이몬드가 보고 있던 그림을 힐끗 일견하더니 말했다.
“마음에 들면, 가지고 가셔도 돼요.”
“네?”
“이 그림은 150년 전, 당대의 유명한 화공 드로니크 백작이 왕가에 선물한 명화이에요. 제국을 통틀어도 그의 그림은 5점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굉장한 가치의 그림이지요. 원하시면 가지고 가셔도 돼요.”
소피아는 레이몬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만큼 당신은 우리 왕가에 큰 은혜를 베풀었으니까요. 뭐든 원하는 대로 가지셔도 돼요.”
‘이 공주가 갑자기 왜 그래?’
레이몬드는 당황한 얼굴을 했다.
어차피 모조리 털어갈 생각이긴 하지만, 먼저 저러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더욱 경악할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소피아가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드레스를 양손으로 잡더니 레이몬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늦었지만,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릴게요. 나 소피아, 당신께서 아바마마께 베푼 은혜에 왕가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정중하면서도, 은인을 향한 예를 다한 감사의 인사였다.
그 인사를 듣는데, 왜일까?
레이몬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기분이 들었다.
‘저 못된 공주가 나한테 저런 예를 취하다니.’
이전 왕궁에서 수많은 사람한테 당했던 무시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공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는 쪽이 된 것이다.
가슴속 쌓였던 한(恨) 하나가 끊기는 기분이 들었다.
레이몬드는 자신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기특하다고. 지금까지 열심히 잘했다고.
덕분에 이렇게 성공해 모두의 콧대를 눌러줄 수 있게 되었다고.
‘오늘은 기념으로 소고기다. 한슨…… 은 없으니, 왕궁 요리사한테 부탁해서 등심 구워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소피아의 인사에 답했다.
“아닙니다. 힐러이자, 왕국의 신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소피아가 또 뜻밖의 말을 하였다.
“이번 공로에 관한 보상은 차후 아바마마께서 따로 내리실 겁니다. 다만, 그 전에 개인적인 입장으로 당신께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바라는 게 있습니까?”
소피아가 공주의 권한으로 따로 상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뜻하지 않은 보상 타임에 레이몬드는 군침을 삼켰다.
‘보상은 언제나 좋지.’
1왕녀인 그녀에게서 과연 무얼 뜯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 레이몬드는 곧 실망하고 말았다.
‘별로 뜯어낼 게 없잖아.’
소피아는 공주이지만, 따로 커다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막강한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마땅히 요구할 게 없었다.
‘음,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까운데. 아, 이거면 되겠구나.’
번뜩 떠오른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떤 요구든 괜찮습니까?”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요.”
“그러면 사석에서 절 혈육으로 대해주십시오.”
레이몬드는 속으로 사악한 얼굴을 하였다.
‘최근 들어 나한테 잘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의 앙금을 갚아주긴 해야겠지.’
즉, 이건 앙갚음이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못되게 굴었던 그녀에 대한.
‘엄청 자존심 상해하겠지. 따를 리가 없어.’
레이몬드는 과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물론 레이몬드도 정말로 그녀에게 친가족 대접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막상 정말로 그를 친근하게 대하면 소름이 오소소 돋으리라.
‘적당히 당황하게 한 후, 없던 일로…….’
그렇게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레이몬드는 당황했다.
소피아가 빤히 이렇게 답했던 거다.
“오라버니.”
“네?”
“오라버니, 앞으로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죠?”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소피아는 코웃음 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전 한순간도 당신을 가족이 아니라고 여긴 적이 없는데. 전 늘 당신을 오라버니라고 생각했어요.”
레이몬드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
‘……날 가족으로 여겼다고? 그런데 왜 그런 싹수로?’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소피아가 흥 했다.
“전 당신한테 뿐 아니라, 다른 오라버니들한테도 모두 이렇게 대하는 데요? 제가 누구한테 친절한 것 봤어요?”
“…….”
즉, 원래 성격이 싹수없는 거지, 그를 딱히 차별한 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레이몬드는 과거 그녀가 그에게 보냈던 서신들을 떠올렸다.
서신들은 한결같이 싹수없는 말투의 걱정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가 그를 가족으로 생각해서 보냈던 거다.
“어쨌든 당신이 제 오라버니는 맞으니까요. 오라버니라 오라버니로 대하는 거니,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오해는 하지 마세요.”
“…….”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왠지 진 것 같았다.
그때, 그녀가 돌발 발언을 하였다.
“오라버니라 부르는 대신, 저도 한 가지 당신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어린 시절의 일, 죄송했어요.”
“……!”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소피아는 진중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어마마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심적으로 불안해 당신…… 아니, 오라버니께 많은 폐를 끼쳤어요. 어린 시절의 일이라 하나 분명한 잘못. 지금 정식으로 사죄를 드립니다.”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나오면 뭐라고 할 말이 없잖아.’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 있는 인물 리스트에는 소피아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저 사과를 듣는 순간,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흐트러지는 게 느껴졌다.
‘아니야. 고작 사과 한 번에 다 풀면 안 되지.’
레이몬드는 팔짱을 꼈다.
그래, 그는 뒤끝 있는 남자.
고작 사과 한 번으로 퉁 칠 수 없었다.
‘앞으로 두고두고 나한테 잘 해주도록 해야지. 나한테 잘못한 만큼 말이야.’
레이몬드는 굳게 다짐했다.
소피아를 호구로 만들기로.
“정말 제게 죄송하다면, 부탁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뭐든 말씀하세요.”
레이몬드는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호구로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