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6
#닥터 플레이어 26화
100페나.
지금 레이몬드가 받는 치료비에 수십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실제 이들 치료사가 받고 있는 금액이었다.
그들은 한 번 치료하는 데 최소 100페나 이상을 받아오고 있었으니까.
여유가 되는 평민들에게도 등골이 휠 금액인데, 빈민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빈민이 있을 리가 없잖아.’
치료비를 올려 받는 건 레이몬드도 간절히 바라는 바였다.
솔직히 말해, 그도 최대한 비싸게 돈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뜯어내려고 해도 상대에게 돈이 있어야 뜯어낼 것 아닌가?
지금 레이몬드가 받는 금액도 빈민들에게는 거의 한계치의 돈이었다.
“이 빈민가에 그런 커다란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
“우리가 사용하는 힐은 하늘이 내려준 힘입니다. 그런 고귀한 치료를 받으려면 당연히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지요. 돈이 없는데 치료만 받는다? 그건 도둑놈 심보이지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돈이 없으면 얌전히 뒤지는 게 맞겠지요.”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많은 치료사가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눈앞에서 환자가 죽어가도 꿈쩍도 않는 치료사가 수도 없었으니까.
‘그건 아니잖아.’
레이몬드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도 돈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베이 구역의 사람들이 변변한 치료를 못 받아온 건 저놈들의 이런 행태가 지대한 몫을 했지.’
아무리 돈을 바라도 치료사라면 최소한 지켜야 할 도리가 있건만, 저놈들은 인간도 아니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
“알겠다니 다행이군요. 그러니 어서 치료비를……!”
“그런데 너희들 눈 안 까니? 나 귀족인데.”
“…….”
치료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레이몬드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거만하게 발을 꼬았다.
“들어올 때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언성도 높이고. 누가 보면 너희가 귀족인 줄? 한슨, 너도 봤지? 저놈들이 나 협박하는 거?”
한슨이 침착한 어조로 보조를 맞췄다.
“네, 저놈들이 ‘기사’님을 모욕하고 협박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습니다.”
“이거 힘없는 귀족 나부랭이 평민 무서워서 살겠나.”
악덕 치료사들은 어버어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그들은 평민. 레이몬드는 명예직일지언정 귀족 계층.
방금 그들이 보인 태도는 명명백백 잘못한 것이었으니까.
“오, 오해입니다. 우리는 그런 의도로 한 게…….”
“그래? 분명 날 협박했던 것 같은데. 귀족 모독죄로 경비대에 넘겨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오려나. 한슨, 문 열어라! 경비대에 찾아가게!”
참고로, 이 세계는 오로지 귀족에 의한, 귀족을 위한 곳.
따라서 귀족 모독죄는 형벌이 셌다.
치료사들은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응, 뭐라고? 돈만 밝히는 병신 놈들 이야기라 잘 안 들리는데?”
“용서해 주십시오! 절대 경을 모독하러 한 게 아니었습니다!”
“목소리가 작은 것 봐서 별로 반성 안 하는 것 같네.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봐야 반성하는 마음이 들려나.”
치료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레이몬드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비웃음을 지었다.
“꿇어.”
“……네?”
“반성하면 꿇으라고. 허어! 동작 굼뜬 것 봐라! 한슨, 경비대에 갈 준비해라!”
악덕 치료사들은 허겁지겁 무릎을 꿇었다.
레이몬드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봐.”
“……네, 나리.”
“너희가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는 않겠어. 내가 몇 마디 한다고 해서 니들이 개과천선할 것도 아니고.”
레이몬드는 짧게 말했다.
“대신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마. 이건 경고야.”
치료사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 도망치듯 사라졌다.
“……괜찮을까요? 나중에 해코지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죠?”
한슨은 뒤늦게 걱정되는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레이몬드는 의외로 쿨하게 답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한슨, 너 혹시 내 신조 아니?”
“누구보다 환자들을 위하자, 입니까?”
“……아니, 너 자꾸 무슨 오해를 그렇게…… 내 신조는 강약약강이야.”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자.
레이몬드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저놈들 우리한테 아무런 해코지도 못 해.”
* * *
도망친 치료사들은 한자리에 모여 레이몬드를 성토했다.
“절대로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방법을 내야 합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모두 망할 거다.
누가 몇십 배나 되는 치료비를 내고 그들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겠는가?
물론 그들도 치료비를 낮추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런 선택은 할 생각이 없었다.
“어떤 방법을 쓰면 되겠습니까?”
“음…….”
그들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명예직이지만 귀족이다. 그것도 사생아지만, 왕의 피를 이은.
그러니 최대한 신중히 일을 저질러야 했다.
그때, 한 치료사가 구석에 앉아 있는 젊은 인물에게 물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랑스 님?”
놀랍게도 질문을 받은 인물은 익숙한 얼굴을 지닌 자였다.
랑스!
레이몬드를 잔뜩 괴롭히던 수석 치료사였다.
어거스트 백작가의 클리앙을 죽을 위기에 빠뜨려 치료사 자격을 박탈당했던 그가 이곳 베이 구역에 숨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이곳에 모인 치료사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였다.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 쫓겨나거나, 치료사 자격증을 박탈당하거나.
그런 결격 사유가 없다면 빈민가까지 올 이유가 없으니까.
“……어려울 것 없지요.”
랑스는 비틀린 음성으로 말했다.
벨런드 치료원에서 쫓겨난 후 온갖 고초를 다 당했다.
‘힐러 자격을 뺏긴 건 물론,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태형도 50대나 맞아야 했어.’
랑스는 이를 바득 갈았다.
귀족을 기만한 죄로 태형 50대를 선고받았다.
죽을 뻔했다.
스스로 힐을 퍼붓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지 모른다.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다리를 절었다.
‘날 이런 꼴로 만들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레이몬드.’
랑스는 흉악한 얼굴을 했다.
이전 당당하던 젊은 치료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삐쩍 말라 악독한 독기만이 눈빛에 가득했다.
“그놈이 펼치는 치료술이 엉터리라고 퍼뜨리면 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미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놈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을 매수하면 됩니다.”
랑스는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10페나만 주어도 이곳 빈민들은 눈이 돌아가 놈을 매도할 겁니다. 그렇게 놈의 치료가 형편없다고 바람을 잡고 쫓아내면 그만입니다.”
치료사들은 옳다는 듯 무릎을 쳤다.
“좋은 생각입니다. 당장 시행토록 합시다!”
* * *
그들은 곧바로 음모에 착수했다.
특히 레이몬드에게 이를 갈고 있는 랑스가 앞장섰다.
‘이렇게 복수할 기회가 오다니.’
랑스는 이를 갈았다.
그는 자신이 시궁창에 떨어진 걸 레이몬드의 탓으로 돌렸다.
“돈을 받고, 그분을 음해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놈 때문에 병이 악화하였다고 하면 돼.”
“…….”
그런데 상대의 반응이 이상했다.
당연히 덥석 미끼를 물 거로 생각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잘 생각해 봐. 너희 같은 거지들에게 이런 돈을 만질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
“닥쳐.”
“……뭐?”
랑스는 멍한 얼굴을 하였다.
“이 쓰레기 같은 개 작자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고작 10페나를 받고 그분을 음해하라고?
환자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레이몬드는 환자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친절한 치료사였다. 레이몬드의 따뜻한 말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르는데, 지금 뭐라고?
“돈이 모자라면 20페나로…….”
“닥치라고!”
퍼억!
랑스의 눈에서 별똥이 튀었다.
망치 같은 주먹이 그대로 안면을 강타했다.
“커억!”
랑스는 바닥을 구르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치유력을 타고나 늘 대접받으며 살던 그에게 이런 폭력은 처음이었다.
“감히 이게 무슨 짓이냐?!”
랑스는 얼굴을 감싸며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랑스는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소리를 지를 처지가 아니란 것을.
“무슨 짓이긴. 쓰레기를 혼내주는 중이지!”
퍼억!
다시금 주먹이 강타했다.
이번엔 쌍코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남자는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퍼억! 퍽!
“커억! 자, 잠깐!”
“이 쓰레기 자식이! 감히 날 뭐로 보고?!”
소란이 벌어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니, 이 쓰레기 자식이 말이야.”
남자는 랑스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달했고, 사람들의 얼굴에 분노가 타올랐다.
“이 망할 자식이.”
“감히 우리 왕자님께.”
레이몬드가 이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큰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레이몬드를 음해하려는 수작에 사람들은 커다란 분노를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잘됐다. 한번 네놈들을 손봐주고 싶었는데.”
“오늘 매타작 한 번 제대로 해보자.”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랑스는 당황해 외쳤다.
“자, 잠깐!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괜찮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괜찮지 않으면 뭐? 경비병들이라도 부르게?”
랑스의 안색이 하얘졌다.
무법천지 베이 구역에서 경비병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 잠깐!”
“닥쳐!”
퍼억! 퍽!
“커억! 컥!”
베이 구역의 빈민 중 악덕 치료사들을 싫어하지 않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특히 랑스는 구제 불능의 쓰레기답게 짧은 기간임에도 미운 짓을 많이 했다.
“꾸엑!”
빈민들은 지금껏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흠씬 풀었고, 랑스는 그날 거의 걸레가 되도록 두드려 맞았다.
자업자득이었다.
* * *
“끄윽. 끄응…….”
랑스는 신음을 흘렸다.
자신에게 힐을 사용했지만, 워낙 심하게 두드려 맞아 전신이 아팠다.
“괘, 괜찮으십니까?”
다른 악덕 치료사들은 그런 랑스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랑스가 하려던 일이 소문이 나 지금 그들은 베이 구역의 공적이 된 상태였다.
돌이라도 맞을까 함부로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정말 레이몬드, 그자를 이대로 두면 안 되겠습니다.”
지금껏 그들이 못되게 살면서도 무사했던 이유는 베이 구역의 유일한 치료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무례히 대하면 병들었을 때 치료를 받을 수 없으니, 다들 그들의 눈치를 본 것이다.
하지만 이제 레이몬드가 나타나 상황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그자를 쫓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랑스님?”
랑스는 두드려 맞은 통증에 이를 갈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 가릴 때가 아니니, 암흑가 길드를 이용합시다.”
악덕 치료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암흑가 길드!
베이 구역에 숨어든 여러 조직을 뜻한다.
“그건 너무 위험한 일 아닙니까? 그리고 애초에 청부를 받을지가…….”
암흑가 길드라도 치료사를 향한 청부는 잘 안 받으려고 한다. 훗날 어떤 도움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레이몬드는 보통 치료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함부로 나서려 하지 않을 텐데?
‘섣불리 암흑가 길드를 이용하려 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역풍.
분노한 암흑가 길드의 피의 보복을 뜻한다.
하지만 랑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