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72
#닥터 플레이어 272화
레이몬드는 뻣뻣하게 굳었다.
화살을 피하다니.
이런 사태는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검은 어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레이몬드에게 달려든 거다.
[이 빌어먹을 성자 놈! 네놈이라도 죽여주겠다!]“마, 마스터!”
“주군!”
제자들이 깜짝 놀라 레이몬드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검은 어둠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레이몬드는 당황해 생각했다.
‘아니? 이 정도면 익스퍼트를 훨씬 뛰어넘는 움직임이잖아?’
다들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리치는 최상위 언데드!
따라서 마법사임에도 일반 인간을 훨씬 상회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더구나 검은 어둠은 마지막 남은 마나로 자신의 몸에 근력, 민첩을 올리는 헤이스트, 스트렝스 마법을 걸었다.
최후의 순간, 어떻게든 레이몬드라도 죽이려는 작정이었던 것이다.
사악한 기운에 물든 시커먼 뼈 손아귀가 레이몬드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안 돼!”
“주군!”
제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
레이몬드는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왜 별로 안 빨라 보이지?’
아니, 빠르긴 하다.
그런데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힐러의 살신성인, 생존 본능이 발현된 것도 아닌데?’
두 스킬 모두 며칠 전 듀라한을 상대할 때 사용해 쿨 타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이몬드는 곧 답을 깨달았다.
‘나, 강해졌구나.’
현재 그의 레벨은 240에 육박한다. 기본 체력, 감각 스탯도 100에 가까웠다.
즉, 호신 스킬의 도움 없이도 익스퍼트 초급 이상.
어쩌면 익스퍼트 중급에 가까운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무리 리치가 기본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익스퍼트 중급에 가까운 힘을 지닌 레이몬드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뿐이 아니었다.
[사악한 악과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숭고한 용맹에 ‘성궁’의 의지가 깃듭니다!] [성궁의 스킬, ‘불굴의 힐러 정신’을 계승합니다!] [불굴의 힐러 정신]분류 : 호신 스킬
등급 : 유니크
숙련도 : D
-악과 맞서 싸운 성궁의 주인, 레니스 성자의 불굴 정신을 계승한 스킬! 환자를 위해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환자를 위하는 싸움 시 호신 스킬의 쿨 타임이 50%로 감소.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쿨 타임 50%로 감소!
생존 본능과 힐러의 살신성인의 쿨 타임이 7일에서 3.5일로 감소하게 된 거다.
‘듀라한과 싸운 게 5일 정도 전이었으니?’
과연,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생존 본능’, ‘힐러의 살신성인’이 발현됩니다!]스탯이 뻥튀기되었다.
무엇보다 ‘투사의 본능’!
레이몬드의 시야가 이질적으로 변했다.
‘빈틈!’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온갖 빈틈이 보였다.
완력만 강하지 전문적인 무술을 익힌 건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레이몬드는 본능적 감각에 따라 주먹을 내질렀다.
기어스 왕국의 싸가지 왕자에게서 뺏은 후 착용하고 있던 ‘심연의 건틀릿’이 순간적으로 빛을 뿜었다.
모두 놀라 레이몬드의 일격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강맹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일격이었다.
특히, 이 자리의 최강자, 소드 마스터 본슬론 백작은 더욱더 크게 경악하였다.
‘어떻게 저런 공격을?’
카탈 왕국 최고 천재 기사인 그는 곧바로 알아보았다.
지금 저 공격이 어떤 뛰어난 체술에 의한 게 아니라, 그저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한 것이란 것을.
하지만 더없이 치명적이었다.
‘설마 정말 소문대로 천무지체?’
본슬론 백작의 눈이 경악으로 떨릴 때였다.
레이몬드의 주먹이 검은 어둠의 가슴을 강타하였다.
우지끈!
리치의 가슴뼈가 단번에 부서져 나갔다!
투사의 본능이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이끈 것일까? 하필 정확히 핵이 위치한 곳이었다.
검은 어둠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악!]그 비명은 점차 잦아들더니, 검은 어둠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소멸한 것이다!
그렇게 레이몬드는 검은 어둠을 퇴치하였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카탈 왕국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업적을 칭송하듯 주르륵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위대한 업적에 대한 특전으로 성궁의 특수 스킬, ‘성스러운 정화’를 익힙니다!]전혀 생각지 못한 메시지였다.
성스러운 정화.
성궁에 내재한 힘이었다.
또한, 세인트급 힐러의 전유물 스페셜 힐의 하나이기도 했다.
레이몬드는 이번 업적으로 불완전하나마 ‘스페셜 힐’의 하나를 익히게 된 것이다.
* * *
검은 어둠의 재림!
워낙 외진 곳에서 은밀히 벌어진 일이라 소문이 빠르게 퍼지진 않았다.
하지만 카탈 왕국의 수뇌부들은 곧바로 이번 소식을 접했다.
미엔이 지원군을 요청할 당시, 남부군의 기사들이 왕국 수도에 보고를 올린 것이다.
“검은 어둠이 살아 있었단 말입니까?”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이!”
통신구를 통해 소식을 접한 왕국 수도의 귀족들은 발칵 뒤집혔다.
반란 당시 검은 어둠이 남긴 공포는 그만큼 컸었으니까.
수많은 이가 공포에 사로잡혀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채 며칠도 되지 않아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검은 어둠이 퇴치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타국의 왕세자, 휴스톤의 빛 레이몬드에게.
“무슨…… 거짓말인 것 아니오?”
“맞습니다. 아니면, 애초에 검은 어둠이 살아 있던 게 아니던가?”
다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검은 어둠이 어떤 존재인데, 이렇게 간단히 퇴치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곧 모두 믿게 되었다.
-모두 맞습니다. 휴스톤 왕국의 왕세자, 레이몬드 전하께서 검은 어둠을 퇴치하였습니다.
본슬론 백작이 이런 전언을 보내온 거다.
잔뜩 자존심이 상한 음성이었고, 카탈 왕국의 수뇌부들은 모든 소문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검은 어둠을 퇴치하다니! 어마어마한 공입니다!”
“역시 세 개의 왕관을 얻은 전설의 주인공입니다!”
“국왕 전하의 이름으로 포상을 내려야 합니다!”
일부 귀족들이 그렇게 레이몬드의 공을 칭송하였다.
쥬드 왕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일부 귀족은 썩 반갑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특히 현재 카탈 왕국의 권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계파, 버몬트를 위시한 정치 힐러들은 모두 마땅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일이 백성들에게 알려졌을 때의 파장을 염려한 것이다.
“곤란하군요. 레이몬드 왕세자는 쥬드 왕세녀와 한패 아닙니까?”
“만약 그들이 저주마저 해결하면 큰일입니다.”
레이몬드가 록타르 지방의 저주를 정화하러 간다고 했을 때만 해도 다들 큰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어둠을 퇴치하다니?
여기에 저주마저 성공적으로 정화해내면 레이몬드는 카탈 왕국의 완전한 영웅이 될 것이다.
덩달아 쥬드 왕세녀도 부각될 것이고.
그건 결단코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수를 써야 합니다.”
“훼방을 넣는 건 어떻습니까?”
“절대 그들이 저주를 정화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백성을 살리는 일인데, 훼방을 넣자니?
힐러들은 추악하기 그지없는 논의를 하였다.
그때, 버몬트파의 이인자 기렌이 방법을 내었다.
그는 왕국 수석 힐러로 버몬트와 더불어 카탈 왕국 내 두 명밖에 없는 세인트급 힐러였다.
“우리 측이 선수를 쳐 저주를 정화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 말씀은?”
“죽음의 저주가 결국 전염병이었다면, 다른 저주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치료 병단을 파견해 우리가 대신 저주를 정화해 내는 것이지요.”
레이몬드 왕세자와 쥬드 왕세녀가 세울 공을 그들이 가로채자는 뜻이었다!
힐러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마침 록타르 지방 인근 남부 사령부에 마란 경이 있으니 보내면 되겠습니다.”
남부 사령부.
남쪽 국경을 책임지는 카탈 왕국의 방위군이었다.
그곳에 정예 힐러 병단이 있었다.
소속된 힐러만 무려 오십 명!
A급 이상이 5명이나 되었고, 특히 지휘관인 마란은 트리플 A급의 힐러였다.
수십에 달하는 힐러가 가면 전염병을 해결하는 건 간단하리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미리 소문을 잔뜩 퍼뜨려 놓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힐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 병단이 해낸 일이 부각되게 왕국 모든 이의 시선을 미리 집중시키자는 거다.
“어떻습니까, 공?”
기렌이 가장 상좌의 버몬트에게 물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군요. 그렇게 하십시오.”
“……?”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버몬트의 심기가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그러면 전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버몬트는 그들을 놔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후, 통신 수정구를 켰다.
수정구 건너편에 처음 보는 인물이 나타났다.
“안녕하셨습니까, 후작.”
버몬트가 고개를 숙였다.
놀라운 모습이었다.
왕의 동생인 그가 상대에게 완전한 예를 표한 것이다!
상대는 그 예를 당연하다는 듯 받았다.
-별로 안녕하지는 못하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검은 어둠이 소멸하다니?
“죄송합니다. 뜻밖의 사태가 일어나서.”
버몬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놀라울 정도의 저자세였다.
도대체 상대가 누구기에?
‘로드리고.’
버몬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상대의 이름이었다.
정확히는 로드리고 드 페르난도.
페닌슐라 왕국의 귀족이었다.
더욱 자세히 말하면, 페닌슐라 왕국의 정계를 양분하는 귀족파의 수장이었다.
‘실질적인 페닌슐라 왕국의 이인자이지.’
버몬트는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현재 페닌슐라 왕국의 최고 실권자는 대공파의 수장, 기드온 대공이었다.
그에 버금가는 이가 바로 눈앞의 로드리고 후작이었다.
그 외 국왕파와 왕녀파가 있지만, 앞의 두 명에 비해서는 세력이 현격히 쳐졌다.
‘패륜 왕자.’
버몬트는 로드리고 후작의 또 다른 별명을 떠올렸다.
페닌슐라 왕국 4개 정파의 수장들은 모두 리슈테인 왕가의 피를 이었다.
로드리고 후작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는 현 국왕 페이안 7세의 피를 이은 친아들이었다.
다만, 그는 에메랄드빛 성안을 타고나지 못했다.
로열 하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어릴 때부터 온갖 패악을 저질렀고, 누이인 전 왕세녀 라스텔에게 내쫓김당했으나 악마 같은 능력을 발휘해 페닌슐라 왕국의 상계를 장악하고 귀족파의 수장자리에 올랐다.
‘이후 페닌슐라 왕국의 악몽이 되었지.’
눈앞의 남자에 의해 얼마나 많은 페닌슐라 왕국의 백성이 눈물 흘렸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