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45
#닥터 플레이어 345화
“특히 페닌슐라 왕국은 국내 정치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우니까요. 저들 왕국을 자신의 세력으로 만든 후 그 힘을 이용해 페닌슐라 왕국을 제패하려는 마음일 수도 있어요.”
“그 말씀은…….”
라이나가 무겁게 말하였다.
“네, 기드온 대공과 로드리고 후작. 둘 중 하나가 놈들의 수장인 ‘로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예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 * *
“……설마, 그럴 리가요.”
기드온 대공과 로드리고 후작 중 한 명이 놈들의 흑막일 수도 있다니?
너무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저도 그저 가능성을 말해본 것일 뿐이에요. 지금은 누구든 용의 선상에서 놓고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라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조심스럽게 조사해 봐야겠어요. 만약 둘 중 한 명이 흑막이 맞는다면 조사해서 나오는 게 있겠지요.”
라이나는 싱긋 웃었다.
“어쨌든 어메이징. 전하의 혜안이 맞는다면, 페닌슐라 왕국의 1왕위 계승권자인 전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겠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만약 그들이 진짜 흑막이면, 마탑에서도 함부로 나서기 어려웠다.
페닌슐라 왕국의 왕자인 레이몬드가 나서주어야 했다.
그렇게 라이나는 사라졌고, 레이몬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아아. 내 도움이 필요하긴 뭘 필요해!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기드온 대공과 로드리고 후작이 놈들의 흑막일 수도 있다니!’
확실한 건 아니었다.
혹시나 그럴지도 정도의 이야기였지만, 등골이 서늘해졌다.
‘안 돼. 나 페닌슐라 왕국에서 돈 벌어야 한단 말이야.’
그래, 아닐 것이다.
이미 남부럽지 않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그들이 무엇하러 이런 일을 꾸미겠는가?
애써 그렇게 생각해 보았지만, 무시하기에는 찝찝했다.
‘페닌슐라 왕국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설명이 되긴 해.’
기드온 대공과 로드리고 후작.
둘 중 누구도 서로를 압도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외부의 왕국을 손에 넣어 그 힘을 이용하려고 한 거면?
‘만약 놈들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이미 페닌슐라 왕국을 뛰어넘는 힘이잖아.’
휴스톤 왕국과 카탈 왕국.
이 둘은 4약 중 1위, 2위 국가이다. 사실상 4약 전체를 손에 넣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체르만 왕국까지.
4약 전체와 체르만 왕국이 기드온 대공이나 로드리고 후작 중 하나를 지지한다면?
그때는 그자가 페닌슐라 왕국의 왕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사냥 대회 때 일어난 일도 찝찝해. 하필, 페닌슐라 귀족들을 노리고 일어난 일이잖아.’
레이몬드가 페닌슐라 왕국에 데뷔했던 녹음의 사냥 대회.
그때 일도 석연치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당시엔 멸망의 추종자 잔당이 일으킨 일이라 치부하고 넘어갔지만, 하필 왜 페닌슐라 왕국이었단 말인가?
멸망의 추종자들을 토벌하는 데 손을 보탠 국가는 많은데, 하필 페닌슐라 왕국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정말 둘 중 하나가 흑막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으아아. 안 돼. 이제 발을 빼기엔 늦었단 말이야. 너무 투자를 많이 했어.’
레이몬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얼마 전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휴스톤 왕국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돈도 좋지만, 그 무시무시한 놈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투자한 게 너무 많았다.
십자연맹제국에서 땅값 가장 비싼 라펜텔에서 화려하게 치료원 개원.
가난한 백성 구휼.
상단 설립까지.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했다.
‘추가된 빚이…… 얼마야.’
레이몬드는 눈물을 삼켰다.
왜 하필 타이밍이 이렇단 말인가.
투자한 돈만 아니라면, 뒤도 안 보고 도망쳤을 텐데, 지금은 도망쳐도 빚을 못 갚아 죽는다.
‘으아아. 제길, 내 인생은 맨날 왜 이래!’
한참이나 머리를 쥐어뜯은 후에야 안정할 수 있었다.
‘아니야.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애초에 십 국 중 하나가 흑막일 거라는 생각 자체가 가정일 뿐이잖아.’
그래,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이런 걱정은 진상이 확실히 밝혀진 후 고민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모르는 척 돈이나 벌고 있는 거야. 진짜 흑막을 밝히는 건 마탑에서 해주겠지.’
도망치는 건, 진짜 흑막이 밝혀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마침, 시종이 그를 찾아왔다.
“레이몬드 전하, 국왕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레이몬드는 반색하였다.
지금까지 암울한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
사건을 해결한 보상을 받을 차례였다.
* * *
“감사합니다, 왕자님. 당신께서 우리 체르만 왕국을 살리셨습니다.”
카슬란 국왕은 붉어진 눈시울로 말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온 가족을 사악한 악마에게 잃고, 왕국마저 송두리째 넘기게 되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리슈테인 왕가의 일원이자, 환자를 위하는 힐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그렇게 말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타파니스 마정석!’
이번 기회를 통해 타파니스 마정석 수급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다행히 카슬란 국왕은 입으로만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
“유프란에게 왕자님이 바라는 바를 들었습니다. 타파니스 마정석을 통해 대륙의 수많은 환자를 위하고자 한다고요?”
카슬란 국왕은 시종을 통해 서류를 레이몬드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본 왕국에 있는 타파니스 광산의 지분 양도 서류입니다. 총 지분의 20%를 양도할 테니, 앞으로 매년 채굴되는 타파니스 마정석 중 2할은 전하의 몫이 될 겁니다.”
“……!”
레이몬드는 깜짝 놀란 얼굴을 하였다.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보상이었다.
단순히 좋은 조건에 마정석을 공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일정 부분의 채굴량을 통째로 넘겨준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거한 보상이라 레이몬드는 심장이 쿵쾅 뛰었다.
“아, 아니, 이건 너무 과한…….”
“과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리 체르만 왕국은 악마의 손에 넘어갔을 테니까요.”
카슬란은 고개를 저었다.
“도리어 이 정도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정석 광산의 지분은 우리 왕가만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국내외의 여러 귀족이 얽혀 있어서.”
국왕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레이몬드도 더 거절하지 않았다.
사실 입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내가 마정석 광산의 주주가 되다니. 이제 나는 슈퍼 리치…… 는 아니지만, 곧 슈퍼 리치가 될 거야!’
타파니스 마정석은 그 자체로는 큰 가격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걸 탈모 치료제로 가공한다면?
가히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되리라.
레이몬드는 눈앞에 황금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카슬란 국왕의 보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혹시, 더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만약 힘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돕고 싶습니다.”
카슬란 국왕이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
무언가 의미심장함이 깃든 눈빛.
그 눈빛에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거하게 보상해 주려고 작정하셨구나. 음, 근데 뭘 받지?’
체르만 왕국은 그가 제후로 있는 라팔드 지방보다도 더 작은 소국이다.
몇 개의 마정석 광산으로 먹고사는 지방.
그러니 이미 마정석 광산의 지분을 받은 터라, 더 받을 만한 게 없었다.
결국, 레이몬드는 이리 말하였다.
“앞으로 제가 하려는 일에 체르만 왕국이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하려는 일.
여러 고가의 의료 사업을 할 생각이었다.
이곳 체르만 왕국은 작지만 부유한 곳이니, 잠재 고객이 아주 많았다.
국왕의 전격적 지원이 있으면, 의료 산업도 손쉽게 진출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카슬란 국왕의 눈빛이 묘해졌다.
“……역시. 알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체르만 왕국은 왕자님이 하시는 일을 온 국력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비장한 음성이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좋게 생각하였다.
‘열심히 도와주면 좋은 거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대담을 마치고, 레이몬드는 셔트폰을 타고 페닌슐라 왕국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셔트폰을 타고 날아가는 그의 모습은 장엄한 영웅과 같았다!
카슬란 국왕과 대신들이 그 모습을 감탄하여 바라보았다.
“정말 영웅 같은 분이군요. 저런 분이 세상에 있다니. 가난의 성자란 명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카슬란 국왕도 대신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웅이지. 기드온 대공과 로드리고 후작에 뒤지지 않는 분이야.”
“전하, 그 말씀은?”
“어쩌면 저분으로 인해 페닌슐라 왕국의 질서가 뒤바뀔 수도 있겠어.”
카슬란 국왕은 날카롭게 생각하였다.
직접 만나본바, 레이몬드는 인성이면 인성. 능력이면 능력. 모든 걸 갖춘 영웅이었다.
심지어 그는 커다란 야망도 지니고 있었다.
‘앞으로 제가 하려는 일에 체르만 왕국이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카슬란 국왕은 웃음을 흘렸다.
저 거침 없는 야망이라니.
그가 하려는 일은 아마 페닌슐라 왕국의 백성들을 구원하겠다는 것일 것이다.
소문대로 그의 야망은 오로지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일 테니까.
‘과연 라스텔 전 왕세녀의 핏줄다워. 그분이 살아 있었다면, 페닌슐라 왕국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겠지.’
그때, 대신들이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하지만 전하, 아직 레이몬드 왕자의 입지는 불안합니다.”
“불안한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카슬란 국왕은 반문했다.
페닌슐라 왕국 내 레이몬드의 세력은 아직 보잘것없다.
하지만 그건 페닌슐라 왕국 내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이미 휴스톤의 왕세자야. 더구나 드로튼 왕국과 카탈 왕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 그리고 이번엔 우리 체르만 왕국의 은인이 되었어. 그런데 그의 입지가 불안한가?”
십자연맹제국 전체로 시선을 돌리면, 이미 그는 기드온과 로드리고 후작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페닌슐라 왕국 귀족들의 지지까지 얻으면, 그는 페닌슐라 왕국마저 품게 되겠지.’
그렇게 판단한 카슬란 국왕은 전격적인 결정을 하였다.
‘우리 체르만 왕국은 그의 편에 서겠어.’
원래 체르만 왕국은 기드온 대공을 지지했다. 그게 가장 안정적인 길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이번 만남으로 알게 되었다.
레이몬드는 분명 파란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그때 그가 도움을 바란다면, 체르만 왕국은 기꺼이 그의 편에 설 것이다.
단순히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카슬란 국왕은 소국의 군주로서 오랜 시간 체르만 왕국을 지켜왔다. 따라서 정치적 균형 감각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그런 그녀가 판단하기에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레이몬드의 시대일 확률이 높았다.
특히 그녀가 직접 본 레이몬드는 체르만 왕국의 미래를 걸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웅이었다.
‘기대되는군. 저분이 지상의 가장 참혹한 낙원이라는 페닌슐라 왕국을 어떻게 바꿀지.’
카슬란 국왕은 옅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