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61
#닥터 플레이어 361화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였다.
그런데 미스헬트 대공이 도리어 이렇게 반문했다.
“고작 이런 조건으로 괜찮겠소? 힐러 한 명당 교육비가 1년에 1,000페나밖에 안 한다고?”
‘충분히 많은 데요?’
레이몬드는 답을 삼켰다.
지금 페닌 치료원은 제자들에게 일절 교육비를 받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제자들에게는 도리어 보수도 주고 있었다.
페닌 치료원의 주된 교육 방식이 선배들과 함께 환자 치료를 병행하며 지식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페닌 치료원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
몰려드는 환자들에 비해 힐러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한창 의술 지식을 쌓는 중인 제자들도 현장에 투입해야 했다.
초보 제자들은 경증 환자를.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인 숙련된 제자들은 중증 환자를.
그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환자를 보며 의술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니 페닌 치료원의 제자들은 의술을 배우는 제자이면서, 동시에 현장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현역 힐러이기도 했으니 보수를 주고 있었다.
‘……자유 도시 연합 출신 힐러들도 페닌 치료원에 오면 영혼이 빠지게 일해야 할 텐데.’
그런데 무보수에 도리어 교육비를 1년에 1천 페나씩이나 지급하겠다니!
너무 악독한 조건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스헬트 대공은 되려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 비기를 가르치며 고작 1천 페나의 교육비로 괜찮다니. 아무리 환자를 위한다지만. 쯧. 그대는 숭고한 만큼 무른 면이 있는 것 같소. 먼저 군주의 길을 걸은 이로서 충고하자면 때로는 독심이 필요한 법이요.”
“…….”
“교육비는 1인당 1년에 1만 페나로 하겠소. 이런 비기를 전수하는 데 이것도 너무 싼 것이겠지.”
레이몬드는 눈이 핑핑 돌아갔다.
‘호, 호구 천사 대공. 사랑합니다.’
기타 다른 조건들도 협의하였다.
향후 자유 도시 연합에 페닌 치료원 지부를 최소 3개 이상 설립할 것.
설립에 드는 최초 비용은 자유 도시 연합에서 부담할 것.
자유 도시 연합 출신 제자들은 향후 그 페닌 치료원에서 최소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전부 나한테 일방적으로 좋은 조건이잖아!’
하지만 미스헬트 대공은 반대로 생각하였다.
‘고작 이런 조건으로 의술을 전파받다니. 로즈, 그분이 아끼는 분인데 나중에 한 소리 듣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
의술이 자유 도시 연합에 퍼졌을 때 생길 이득을 따져 보면 레이몬드가 지금 제시한 조건은 헐값이나 다름없었다.
의술이 퍼지면 여러 이득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득은 바로 이것이었다.
백성들이 질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크게 준다는 것.
자유 도시 연합 전체로 보면 그건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이득이었다.
특히 자유 도시 연합은 같은 위상의 강대국인 철의 제국, 십자연맹제국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적었다. 그러니 전염병이 덮치거나 하면 국가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의술이 퍼지면 그런 타격도 줄일 수 있으리라.
그것만으로도 지금 이 투자 비용은 뽑고도 남았다.
‘나라면 이런 대단한 비기는 타국에 절대 전수하지 않았을 텐데. 정말 뼛속까지 성인이구나.’
미스헬트 대공과 레이몬드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생각했다.
‘거룩한 바보라더니.’
‘호구 대공이었어.’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그러면 2번째 부탁은 무엇입니까?”
“자유 도시 연합의 귀족들과 부유한 평민들 사이에 돌고 있는 괴질을 해결해 주시오.”
“귀족들과 부유한 평민층에 괴질이 돌고 있습니까?”
“그렇소, 심각하게.”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괴질은 돌 수 있다.
그런데 귀족들과 부유한 이들에게만 도는 괴질이라니?
‘보통은 반대인데?’
질병은 위생과 환경이 열악한 가난한 층에 주로 돌게 마련인데, 기이한 일이었다.
“혹시 어떤 증상의 괴질인지 알고 있습니까?”
“환각을 보고, 자제력을 잃고, 증상이 심해질 시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하오. 한 번 걸리면, 회복도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 퍼진지도 오래되었소. 최소 십 년 이상은 된 것 같군.”
레이몬드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환각에 자제력? 그런 전염병이 있다고? 더구나 귀족들과 부유한 이들에게만 퍼지고?’
퍼진 지 십 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도 이상했다.
레이몬드는 항상 자유 도시 연합과 철의 제국 치료계의 동향을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괴질이 돌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괴질은 전염력도 무척 강하오. 최악은 사회를 좀먹는다는 것이지. 그간 나는 자유 도시 연합의 맹주로서 이 괴질을 뿌리 뽑으려 노력했지만, 불가능했소.”
미스헬트 대공은 한숨을 내쉬었다.
“괴질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소. 어떤 것일 것 같소? 그대도 아는 질병이오.”
미스헬트 대공의 물음에 레이몬드는 고민에 잠겼다.
‘환각을 보고, 자제력을 잃고, 부유한 이들 사이에만 퍼진다라. 이런 괴질이 세상에 있다고?’
쉽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레이몬드는 자유 도시 연합의 동향을 조사할 때 들었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역시 이런 괴질에 대한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부유한 이들에게만 퍼진다는 건, 부유한 이들이 접하는 물건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야. 부유한 이들만 접할 수 있는 물건이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레이몬드는 한 가지 추측이 퍼뜩 떠올랐다.
“설마, 이 괴질은?”
“맞소.”
미스헬트 대공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이오. 십자 연맹 제국에서 건너온 마약이 자유 도시 연합을 병들게 하고 있소.”
* * *
레이몬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약!’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었다.
자유 도시 연합에 마약 문제가 극심하다고.
십자 연맹 제국은 마약 중독 환자가 많지 않다. 법으로 엄금했고, 처벌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건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다. 특히 철의 제국 같은 경우는 더욱 처벌이 심해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사형에 처한다.
하지만 자유 도시 연합은 달랐다.
물론, 자유 도시 연합도 마약을 엄금한다.
하지만 자유 도시 연합의 각 도시는 자치권이 있었고, 법령도 모조리 달랐다. 파고들 틈이 많은 것이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마약 문제가 만연하게 퍼져 있었다.
“그런데 마약이 십자 연맹 제국에서 왔다는 말씀은?”
“이야기 그대로요. 자유 도시 연합에 유통되는 마약 대부분은 십자 연맹 제국에서 온 것이지.”
“그런…….”
레이몬드는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카탈 왕국에서 검은 어둠이 재배하던 마약.’
그는 카탈 왕국에서 검은 어둠을 퇴치하고 거대한 마약 재배지를 발견했다.
그때, 발견한 마약의 용도는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검은 어둠은 그만한 마약을 왜 재배했던 걸까? 검은 어둠 자신이 사용한 건 아니었다. 분명 어딘가에 팔려고 재배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검은 어둠이 십자 연맹 제국에 마약을 유통한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마약은 모두 어디로 유통되는 것이었을까?
‘……자유 도시 연합에 유통했던 거야.’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시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이제야 풀렸다!
하지만 의문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었다.
‘검은 어둠은 어떻게 자유 도시 연합에 마약을 유통했던 거지?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텐데.’
리치인 검은 어둠 혼자 이런 거래를 하는 게 가능했을 리가 없다. 분명 검은 어둠과 손을 잡고 자유 도시 연합에 마약을 유통한 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탈 왕국에서 이런 일을 했을 만한 이가…….’
카탈 왕국은 자유 도시 연합과 왕래가 별달리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은밀한 밀거래를 할 만한 역량이 부족했다.
‘카탈 왕국은 대부분 페닌슐라 왕국을 통해 자유 도시 연합과 교역하잖아.’
카탈 왕국뿐이 아니다.
지리적인 여건상 십자연맹제국의 대부분 국가가 페닌슐라 왕국을 거쳐 자유 도시 연합과 교역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레이몬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섬뜩한 가정이 떠올랐다.
‘……설마?’
그리고 마침 미스헬트 대공이 답을 말해주었다.
“정확히는 그대의 모국, 페닌슐라 왕국에서 들어온 물량이 대부분이지.”
“……!”
레이몬드는 당황했다.
페닌슐라 왕국에서 마약이 들어오고 있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미스헬트 대공은 거짓을 말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을 읊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뻔하지 않소? 그대 왕국에 이런 일을 할 만한 인물이 누가 있겠소?”
그 말에 레이몬드는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로드리고 후작입니까?”
“그렇소. 로드리고 후작은 원탁 위원회의 일부와 손을 잡고 자유 도시 연합에 마약을 공급하고 있지.”
“……!”
레이몬드는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추어졌다.
로드리고 후작이 어떻게 원탁 위원회의 후의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마약을 공급한 덕이었다!
‘쓰레기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따위 짓을 하고 있었다니.’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잘못도 아니건만,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그…… 죄송합니다.”
“그대가 죄송할 게 뭐가 있소? 듣자 하니, 그대도 그놈 때문에 곤욕을 겪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레이몬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같은 나라의 인물이 다른 나라에 이딴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어쨌든 그대의 능력으로 이 빌어먹을 괴질을 해결해 줄 수 있겠소?”
레이몬드는 멈칫하였다.
돕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여긴 십자연맹제국이 아니야. 여기서 난 어떤 힘도 없는 일개 힐러에 불과해.’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과연 제가 할 수 있을지…….”
“아니, 도리어 그대만이 가능한 일이오.”
“네?”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미스헬트 대공은 씁쓸히 말했다.
“로드리고 후작과 손을 잡은 원탁 위원들은 카르탄, 로시스, 레인트, 모란스요.”
익숙한 이름들.
얼마 전 게이볼그 대공가에 선전포고를 했던 군주들이었다!
“자유 도시 연합의 도시들은 각자 자치권이 있지. 그러니 아무리 우리 게이볼그라고 해도 다른 도시를 수사할 수는 없소. 특히 저들 군주들은 우리 게이볼그 가를 견제하니, 더더욱 허락하지 않을 거요.”
“그래서 제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군요.”
“맞소. 그대는 힐러인 동시에 자유 도시 연합의 최고 우호국 중 하나인 페닌슐라 왕국의 왕족이오. 그러니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자유 도시 연합을 누빌 수 있지. 마약에 빠진 이들과 접촉하기도 쉬울 테고.”
레이몬드는 미스헬트 대공의 의도를 깨달았다.
미스헬트 대공은 지금 레이몬드가 힐러로서 마약에 빠진 환자들을 치료하며 단서를 잡아주길 요청한 것이다.
“그대가 단서를 잡으면, 뒤는 이 미스헬트가 알아서 하겠소. 그 로드리고란 놈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