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81
#닥터 플레이어 381화
댐 옆으로 고대 유적의 입구가 보였다. 아마 지하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유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입구부터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흘러나오고 있어, 그가 설사 유적의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정복할 가능성은 0으로 보였다.
‘어쨌든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난 그냥 실패하고, 돌아가면 목표 달성이야.’
그런데 레이몬드는 유적 옆으로 생각지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 있었다.
‘뭐야, 저 사람들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 왜 저렇게 많이 모여 있어? 설마, 날 보러?’
그런 것 같았다.
함께 온 로딘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자유 도시 연합의 시민들입니다. 깃발을 보니 각 도시에서 나온 이들이군요. 전하는 이미 자유 도시 연합의 영웅이니, 전하를 응원하러 몰려온 것 같습니다.”
레이몬드는 당황했다.
무슨 대군이 모여 있는 것 같다.
“무슨…….”
“이 유적을 정복하는 건 자유 도시 연합의 숙원이기도 하니까요. 다들, 전하께 잔뜩 기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때, 마침 밑에 모인 사람들이 셔트폰을 발견했다.
“그리폰이야!”
“저기, 가난의 성자님이 계셔!”
“후광이!”
“빛이야!”
누차 이야기했지만, 셔트폰을 타고 날아오는 레이몬드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설 속 영웅과도 같다.
사람들은 레이몬드의 그런 장엄한 모습에 마치 눈물을 흘릴 것처럼 감동하여 외쳤다.
“와아아!”
“자유 도시 연합 만세!”
“우리 자유 도시 연합의 영웅, 가난의 성자 만세!”
“자유 도시 연합의 빛 만세!”
하늘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
마치 그를 자유 도시 연합 사람처럼 여기는 듯한 외침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있었다.
반박하듯 한편에서 외침이 들려온 것이다.
“자유 도시 연합의 빛은 무슨! 왕세자님은 우리 페닌슐라의 빛이야!”
“페닌슐라 왕국 만세!”
“왕세자 전하 만세!”
“페닌슐라의 빛 만세!”
레이몬드를 응원하기 위해 페닌슐라 왕국의 상인들이었다!
자유 도시 연합에는 페닌슐라 왕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자유 도시 연합에서 맹렬히 영웅적 행보를 보인 레이몬드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숫자 자체는 자유 도시 연합 측에 비해 적었지만, 어찌나 열광적으로 함성을 지르는지 자유 도시 연합 측이 움찔했을 정도이다.
자유 도시 연합은 발끈하여 외쳤다.
“질 수 없다!”
“가난의 성자님은 우리의 영웅이기도 해!”
“그래, 저런 분을 독점하려고 하다니! 이 욕심 많은 놈들! 저분은 우리 자유 도시 연합의 빛이야!”
“가난의 성자님, 그냥 자유 도시 연합으로 오십시오!”
다시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졌다.
어찌나 열정적인 함성인지, 착각이겠지만 잠잠한 호수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였다.
도전하자마자 탈락할 예정인데, 다들 지나칠 정도로 열광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음, 내가 직접 소문을 퍼뜨리긴 했지만, 뭐가 이렇게 많이 모인 거야.’
레이몬드는 삐칠 식은땀이 흘렀다.
‘……뭐, 잘된 일인가.’
그는 이번에 최대한 자신의 실패를 ‘홍보’할 계획이었으니, 저렇게 사람이 모인 게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모여든 게 일반 백성들뿐이 아니란 것이다.
신분이 높고, 유명한 이들이 숱하게 레이몬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미라클. 전하를 뵙습니다. 또 기적을 일으키시러 발걸음 하셨군요.”
라이나가 새빨간 드레스를 찰랑이며 레이몬드에게 다가왔다.
“이 라이나, 전하를 뵈니 가슴이 떨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끝맺지 못하였다.
“걸리적거리니, 외부인은 비키시오.”
“뭐?”
라이나가 사나운 눈빛을 하였다.
고개를 돌리니, 라이나 못지않게 무서운 얼굴의 중년 남자, 라이프 공작이 서 있었다!
“전하는 이 몸의 영광스러운 ‘제자’. 사제 간에 인사를 나누어야 하니, ‘외부인’은 저리 비켜 주시오.”
라이나는 ‘제자’란 말에 움찔하였다. 그녀가 이제는 감히 바라기 어려운 사제 관계를 이미 상대는 이룬 것이다!
하지만 곧 ‘외부인’이란 말에 발끈하였다.
“호호, 외부인이라니요. 전하는 우리 마탑과 긴밀한…….”
“묻지 않았소이다. ‘스승’ 된 입장에서 당신과 전하와의 얄팍한 관계 따위 관심 없소.”
“……!”
라이나의 눈동자에 빠직 스파크가 튀었다.
그렇지 않아도, 라이나와 라이프는 이전에도 몇 차례 안면이 있었고, 만날 때마다 레이몬드를 가운데 두고 비슷한 다툼을 벌였다.
지금껏 쌓인 감정이 터지며, 라이나는 호호 싸늘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라이나와 라이프가 본격적으로 다툼을 시작할 기미를 보이자, 틈새로 다른 인물이 끼어들었다.
“스승님!”
쥬드였다!
“자유 도시 연합 사람들을 위하기 위해 이런 어려운 발걸음을 하시다니. 저 쥬드! 스승님의 광채를 보고 나태해진 마음을 다시 채찍질하겠습니다!”
“아, 아니. 채찍질할 것까지는…….”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쥬드와도 깊게 대화를 나눌 틈은 없었다.
게이볼그 대공가의 소른.
여타 안면이 있었던 자유 도시 연합의 유력자들 등등.
수많은 사람이 레이몬드에게 몰려들었고, 장내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
여러 이야기가 쏟아졌지만, 결국 다들 하는 말은 이거였다.
‘과연, 빛!’
레이몬드는 어색하게 웃음만 지었다.
그러던 찰나, 뜻밖의 인물이 레이몬드에게 다가왔다.
이제 13살쯤 되었을까? 금발 푸른 눈이 인형처럼 귀여운 인상의 어린 소녀였다.
온갖 거물만 모인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
그런데 소녀가 등장하자, 순간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이었다.
‘뭐지? 유명한 아이인가?’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그때, 소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어요, 성 로제트 왕국의 왕녀 피오네라고 합니다.”
“……!”
레이몬드는 화들짝 눈을 떴다.
피오네!
상상도 못 한 인물이 나타났다!
‘성 로제트 왕국의 차기 왕권 계승자!’
피오네는 현 국왕인 슈테판 3세의 손녀였다.
원래 왕세자였던 슈테판 3세의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 후, 남은 손녀인 그녀가 차후 왕위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성 로제트 왕국에서 이렇게나 높은 거물이 오다니?’
레이몬드는 주춤하였다.
“위대한 성 로제트 왕국의 왕녀를 뵙습니다. 레이몬드 드 휴스톤 리슈테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왕녀께서 어째서?”
레이몬드는 의문을 참을 수 없어서 물었다.
성 로제트 왕국의 사람이 온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왕녀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게.”
피오네는 잠시 말을 못 하고 주저했다.
“사실 왕세자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따로 잠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레이몬드는 의아한 표정을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잠시 인적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씀하십시오.”
“일단, 사과를 드릴게요. 제가 갑자기 와서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아, 아닙니다.”
레이몬드는 그런 피오네의 인사에 놀라 고개를 저었다.
3강. 그것도 십자연맹제국을 건국한 종주국의 왕녀인데, 굉장히 예의 바른 태도였던 것이다.
“사실, 제가 온 건 할아버지께 고집을 피워서예요.”
“고집이요?”
피오네 왕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사실 왕자님 팬이거든요. 그간, 왕자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오로지 백성들만을 위하는 빛이시라고.”
“…….”
“그런데 이번에 자유 도시 연합 백성들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하여 꼭 직접 만나 뵙고 싶어서 할아버지께 졸랐어요.”
성 로제트 왕국의 왕녀가 그의 팬이었다니!
상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하긴…… 어린 나이니까.’
철두철미한 이미지 메이킹 덕에 어린아이 팬이 많이 있었다.
‘귀엽네.’
그간 괴물 같은 이들만 보다가, 오래간만에 정상적인(?) 소녀를 보니, 귀엽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피오네가 우물쭈물 말하였다.
“혹시…… 죄송한데, 여기 사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인요?”
레이몬드는 흠칫 경계하였다.
사인.
혹시나 사기당할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피오네 왕녀는 순수한 눈으로 말하였다.
“최근 황도에서는 유명인의 사인을 수집하는 게 유행이거든요. 왕자님의 기념품을 가져가고 싶어서요.”
“……아, 네.”
공주는 빼꼼히 손수건과 휴대용 펜을 내밀었다.
다행히 손수건에 하는 사인은 어떤 법적 효력도 없다.
레이몬드는 이토록 귀여운 공주를 의심한 자신을 자책하며 사인을 해주었다.
피오네 왕녀는 살짝 얼굴이 붉어져 손수건을 받았다.
“그런데 왕자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무엇입니까?”
“왕자님은 정말 순수히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하시는 건가요?”
“……!”
레이몬드는 흠칫 고민하였다.
‘뭐라고 답하지? 이번에도 이미지 메이킹을?’
사실 최근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너무 이미지 메이킹을 과하게 한 것 아닌가, 하는.
그래서 이제는 너무 숭고하게 보이는 걸 자제토록 하려 했지만.
‘그래도 성 로제트 왕국의 후계이니 호구로 만들면 나중을 위해 좋지 않을까?’
그는 어마어마한 탐욕을 가지고 있다.
고작 페닌슐라 왕국에서 멈출 생각 없었다.
최소 십자연맹제국 전체를 의술로 정복해 어마어마한 돈을 쓸어 담을 것이다.
이 소녀는 언젠가 성 로제트 왕국의 국왕이 될 터.
미리 호구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내게 좋은 인상을 받고 있으니. 한마디 잘하면 내게 쉽게 감화시킬 수 있을 거야.’
“네, 그렇습니다. 전 오로지 환자와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네, 그들의 미소가 억만금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니까요.”
레이몬드는 최대한 숭고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답했다.
그런데 왜일까?
찰나 피오네 왕녀의 눈에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착각으로 느껴질 정도로 짧게.
레이몬드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피오네가 말했다.
“그렇군요. 왕자님의 말씀 잘 들었어요. 시간 뺏어서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그러면, 이번 유적 정복 응원할게요.”
피오네 왕녀는 함께 온 성 로제트 왕국의 일행에게 돌아갔다.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뭐지? 뭔가 꺼림칙한 느낌인데?’
하지만 그는 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은발의 여인.
오르비아 공작이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오랜만이네요, 전하. 뵙고 싶었습니다.”
오르비아가 레이몬드를 향해 싱긋 웃었다.
* * *
그때, 성 로제트 왕국의 일행.
“드디어 레이몬드 전하와 만나셨군요.”
수행인이 웃으며 말했다.
피오네가 이전부터 레이몬드의 팬이었던 건 수행원들 모두 알고 있었다.
“음…….”
그런데 피오네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무언가 고민에 잠긴 얼굴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게…… 잘 모르겠어.”
“네?”
“소문대로의 영웅인지 잘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