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83
#닥터 플레이어 383화
그리고.
[도전자의 삶은 ‘숭고함’입니다! 도전자가 극상으로 숭고한 삶을 살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어, 어?’
레이몬드는 눈을 끔뻑하였다.
뭔가 이상했다.
‘아, 아니? 숭고하게 살지 않았는데? 그냥 전부 이미지 메이킹이었는데? 설마 고대 유적도 속은 거야?’
그런 것 같다!
‘말도 안 돼! 어마어마한 마도 문명을 이룩한 고대 유적이라며! 그러면 내 삶이 가식적이기 그지없다는 것도 눈치채야지!’
레이몬드는 속으로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유적의 마도구가 지금 시행한 마법은 그저, 레이몬드의 과거 ‘행적’ 자체를 보는 것일 뿐.
아무리 고대의 문명이 대단하다고 해도, 과거의 행적을 들여다보며 당시의 세세한 ‘속마음’까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 레이몬드의 지난 행적은 숭고함 그 자체니까!
그러니 유적이 이런 점수를 준 것이다.
‘그, 그래도 탈락이겠지? 본성이 탐욕이니?’
레이몬드는 심장이 쿵쾅 뛰었다.
유적은 영혼의 ‘본성’과 실제 과거 ‘행적’을 기반으로 도전자의 숭고함을 판별하는 것 같다.
행적이 숭고해도, 타고난 본성이 탐욕이니, 합격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전자는 탐욕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오로지 숭고한 성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는, 도전자가 타고난 본성을 억누르며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살았음을 뜻하는바! 다른 성인보다 더욱 위대한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뭐, 뭐?’
레이몬드는 뻣뻣하게 굳었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요컨대 본성이 탐욕적이어서 더욱 위대한 성인으로 치부한다는 뜻이다!
‘서, 설마? 지금까지 합격자가 없었던 이유가? 본성이 나빠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거였어?’
레이몬드는 퍼뜩 모든 전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원래 타고난 성품이 착한 이가 착한 일을 하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일 뿐.
하지만 진정 대단한 건, 탐욕적인 본성을 타고났음에도 그 욕심을 억누르고 타인을 위하는 이들이다.
그럴 수 있는 이는 세상에 거의 없었으니까.
진실로 위대한 성인이라 할 수 있다.
‘지금껏 이 유적에 도전했던 성인 중, 나쁜 본성을 지닌 이들은 없었을 거야. 다 본성도 착하고 숭고했겠지. 그러니 모조리 떨어졌던 거야.’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유적은 본성은 탐욕적이지만, 타인을 위해 그 탐욕을 억누르고 숭고한 성인의 길을 걷는 이를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난 그런 성인이 아니라고! 그냥 이미지 메이킹 했을 뿐이었다고! 제대로 좀 봐!’
레이몬드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고대 유적이라도, 과거를 들여다보며, 도전자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일을 했는지까지는 파악 불가능했다.
대신, 고대 유적은 도전자의 행적이 가식인지, 진실한 것인지 파악하는 기준이 있었다.
바로 ‘일관성’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가식적인 행동이었다면, 일관성이 없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레이몬드의 ‘일관성’은,
[도전자의 타인을 위한 숭고한 행적이 한결같은 ‘일관성’을 보임을 확인합니다!]백점, 만점이었다.
‘아니, 손해를 감수한 건, 다 나중을 위한 투자였다고!’
레이몬드는 고대 유적의 헛발질에 답답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고대 유적은 고구마 어택을 멈추지 않았다.
[반면, 영혼의 본성은 지극히 탐욕적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도의 탐욕과 극도의 숭고함.] [이는, 도전자가 타인을 위해 자신의 본성을 극한으로 억누르며 선을 실천했음을 뜻합니다.] [도전자의 숭고함에 최고점을 부여합니다.] [결과는 ‘합격’입니다!]“……!”
레이몬드는 눈을 부릅떴다.
정말 합격해 버린 것이다!
파아아아아앗!
마치 레이몬드의 숭고함(?)을 칭송하듯 찬란한 광채가 터져 나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내의 모든 이가 경악에 뒤덮였다.
“역시! 가난의 성자!”
“유적의 인정을 받다니!”
레이몬드의 숭고함을 익히 알고 있던 이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놀라지 않았다.
“뭐…… 사실, 저는 예상하고 있었어요.”
“맞아요. 마스터 같은 분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에요.”
한편, 성 로제트 왕국의 피오네 왕녀의 놀람은 컸다.
‘유적의 인정을 받다니? 역시, 내가 틀렸던 거야?’
피오네의 귀여운 얼굴이 혼란으로 뒤덮였다.
‘하, 하지만 아까는 진짜 가식적으로 보였는데?’
심지어 지금도 조금 이상했다.
‘왜, 싫어하는 것 같지?’
레이몬드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마치 유적의 인정을 받은 걸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도 내 착각인 건가?’
피오네는 도저히 잘 모르겠어서 고개만 연신 갸웃했다.
그녀는 자꾸 레이몬드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모, 모르겠어.’
아무리 천재라도 이제 13살 어린 소녀였다.
그리고 여기 모인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이들인가?
레이몬드의 수족으로서 한창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제자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적혈의 귀부인, 진홍의 성녀, 게이볼그가의 소대공 등등.
이제 고작 13살 어린애인 그녀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연륜 깊고 유명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열광하고 있으니, 피오네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착각한 거야. 저런 분이 가식적일 리가 없는데. 유적조차 인정했잖아. 저분의 숭고함을.’
피오네는 반성했다.
사실 그녀는 천재로서 자만심이 있었다.
특히 직감적으로 다른 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가히 ‘이능’에 가까워, 성 로제트 왕국의 노왕인 슈테판 3세마저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저런 영웅을 보고 가식적이라니.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아악, 하지만 정말 가식적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거야?’
피오네가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장내에 다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번엔 도전자 레이몬드뿐이 아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울리는 음성이었다.
[도전자의 숭고함 점수가 최고점을 획득해,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였습니다!] [위대한 자격을 확인합니다!] [도전자의 영혼에 새겨진 인장을 검색합니다!] [‘인류의 구원자 후보’ 자격을 확인합니다!]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유적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단 두 명.
눈을 부릅뜬 사람이 있었다.
‘인류의 구원자?’
피오네 왕녀였다.
왕녀인 그녀는 성 로제트 왕국의 왕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하나를 알고 있었다.
바로 ‘인류의 구원자’에 관한 전설이었다!
‘설마 그 전설의 구원자를 말하는 건? 그게 여기서 왜 갑자기?’
피오네 왕녀가 경악에 찬 얼굴을 할 때, 다른 이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몬드였다.
‘인류의 구원자?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인데?’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
‘아, 그때 카탈 왕국!’
검은 어둠을 해결 후, 나헬을 구하러 고대 유적을 갔을 때였다.
그때도 유적이 그를 숭고하다고 잘못 판단해 저런 인류의 구원자 자격시험인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자, 잠깐? 그때 분명?’
순간,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구원자’의 길은 극한의 혈로!] [시험 난이도가 ‘극상’으로 변경됩니다!]분명 하급 의사 시험이었던 것 같은데, 쓸데없이 숭고함을 인정받으며 난이도가 어려워져 어마어마하게 고생했었다!
“아, 안 돼! 그냥 일반 시험으로 바꿔줘!”
허겁지겁 외쳤지만, 늦었다.
카탈 왕국 때와 비슷한 음성이 촤르륵 들렸다.
[당신은 ‘인류의 왕 후보’.] [두 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시험 실패 시 ‘왕좌’에 헛되게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시험 불합격 시 전원 ‘사망’ 처리되니 반드시 최선을 다해 시험에 응해 주십시오!]‘그런 게 어디 있어! 안 해!’
비명을 질렀지만, 역시나 들어줄 리가 없었다.
[시험 주제는 ‘대의를 위한 소(小)의 희생’입니다!]“……!”
무언가 섬뜩한 내용이었다.
장내 모두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왕녀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 자리의 최고 강자, 라이나의 스승과 성 로제트 왕국의 소드 마스터가 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하고 흠칫하여 외쳤다.
하지만 그 순간.
지지직. 지직! 파파팟!
갑작스러운 소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건?!”
“마나 교란!”
사람들의 비명에 레이몬드는 흠칫했다.
마나 교란!
체내의 마나를 교란해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라이나를 비롯한 마법사들이 다급히 마나 교란을 방어하려 하였다.
하지만 유적 내부가 어마어마한 빛에 뒤덮였고, 안에 있던 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크윽!”
“저항할 수가?!”
“이런 마나 교란이라니?! 아무리 고대 유적이라도?”
사람들은 경악한 얼굴을 하였다.
원래 마나 교란은 상대를 무력화하기 위해 흔하게 사용하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마법사든, 기사든 각자 방어하는 수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고대 유적이 퍼붓는 마나 교란은 일반적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아카네의 돌!”
누군가 고대 유적의 마나 교란의 정체를 알아보고 외쳤다.
레이몬드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아카네의 돌? 그거 마에스트로인가, 하는 놈이 사용하던 고대의 마도구잖아?’
과거 카탈 왕국에서 마지막 순간.
마에스트로의 수족인 천문 술사와 싸울 때, 놈이 ‘아카네의 돌’이란 마도구를 사용했다.
마나 교란을 일으키는 마도구로, 덕분에 당시 아군의 강자들이 모두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런데 그 끔찍한 마도구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일전보다 고등의, 훨씬 강력한 형태로.
원래 아카네의 돌은 어느 경지 이상의 아크 메이지나, 소드 마스터의 경우에는 효과가 없다고 알려졌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유적에 있는 이 중 마나를 지닌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폭주하는 마나에 괴로운 얼굴을 하였다.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왜인지 익숙한 상황.
멀쩡한 사람은 레이몬드밖에 없어 보였다.
‘온갖 대단한 사람이 다 모여 있는데, 왜 맨날 나만 멀쩡한 거야?!’
레이몬드는 울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