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66
#닥터 플레이어 466화 – 외전 14
“……저기 가면 우리 또 소고기만 먹게 되는 건가요?”
“이미 지금도 소고기만 먹고 있잖아요, 린든 경.”
“…….”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셔트폰이 도착하였다.
산맥의 커다란 분지에 건물들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으리으리한 저택들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산맥 중간에 저런 저택 마을을 짓고 사는 거지?’
레이몬드는 부러운 얼굴을 하였다.
황제인 자신은 빚에 시달리며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데, 뱀파이어들은 팔자 좋게 평화로이 소를 키우며 온갖 부를 다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괜찮아. 나도 부자가 멀지 않았으니. 이번 일이 시작이야!’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환자들을 본 순간.
그런 한가한 생각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 건물입니다, 폐하. 여기에 안 좋은 이들을 모아놓았습니다.]레이몬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상보다 환자들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 * *
“끄윽…….”
“쿨럭, 쿨럭.”
뱀파이어 환자들은 마을의 가장 커다란 건물에 함께 모여 있었는데, 증상이 모두 심각했다.
“린든, 크리스틴 경! 다른 제자들과 함께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해 주세요!”
“네, 폐하!”
크리스틴, 린든이 함께 온 제자들을 이끌어 급히 바이탈 및 증상을 확인하였다.
린든이 재빨리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하였다.
“다들 좋지 않아요. 심각한 쇼크인 이들도 많고, 쇼크 전인 전신 염증 반응 증후군(SIRS) 상태인 이들도 많아요.”
“환자들의 의심 진단은?”
레이몬드가 물었다.
이제 린든도 수많은 환자를 보아 어지간한 진단은 쏙쏙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린든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그게……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다고?”
“네, 여러 증상이 뒤섞여 있는데…… 이상해요.”
이상하다.
의학적이지 못한 표현이었다.
“제가 보기에도 이상한 것 같습니다.”
“크리스틴 경?”
크리스틴이 옆으로 다가와 추가로 설명하였다.
“환자들 하나하나는 특별한 질환이 아닙니다. 물론, 정확한 진단은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증상으로 추정해 보면 폐렴, 뇌수막염, 식내막염, 출혈열 같은 감염병을 앓고 있어요.”
레이몬드는 ‘이상하다’란 말의 의미를 눈치챘다.
“그런 다양한 종류의 질환이 여러 명의 환자에게 한꺼번에?”
“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환자들이 앓고 있는 하나하나의 질환은 특별할 게 없었다.
흔히들 볼 수 있는 질환.
하지만 그 질환들이 한꺼번에 발병했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레이몬드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그가 아는 ‘저주’의 원리와 달랐다.
저주, 그중 신체에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종류의 원리는 마나나 혼돈의 힘으로 신체에 안 좋은 영향을 일으켜 문제를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
폐에 염증을 일으켜 폐렴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나게 한다든지, 응고 체계에 문제를 일으켜 출혈병을 일으킨다든지, 급성 심장 마비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니면 세균 및 바이러스 등을 소환해 문제를 일으키는 종류의 저주도 있었다.
강력한 저주일수록 치료하기 어렵고,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저주라도 한 번에 여러 종류의 질환을 일으킬 수는 없어. 그것도 이렇게 수많은 이를 상대로.’
지금 이곳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이들은 무려 수백에 달했다.
저 많은 이의 몸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광역 저주를 거는 것만으로도 극히 어려운 일인데, 저런 다양한 질병이 나타나게 한다니?
‘아무리 혼돈의 지배자라도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이해할 수가 없어 뻣뻣이 굳어 있을 때였다.
저 구석에서 한 뱀파이어가 왈칵 피를 토하며 외쳤다.
“우,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 뉴브위라 님을 거역했으면 안 됐는데! 커억, 컥!”
그 외침이 끝이었다.
바닥을 흥건히 적실 정도의 피를 토하고는 축 처져 눈을 감았다.
“……사망했어요.”
린든이 하얀 안색으로 말했다.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일단, 레이몬드는 패혈성 쇼크에 준해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정확한 진단은 아직 알 수 없지만, 환자들의 증상을 보면 감염병 종류야. 항생제를 투약하고, 쇼크에서 회복하게 해야 해.’
“린든, 크리스틴 경. 쇼크 상황 매뉴얼에 따라 환자들을 치료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크리스틴과 린든이 제자들을 이끌고 중환자들을 처치하였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항생제를 투약하고 쇼크 처치를 해도 뱀파이어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약을 투여함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속절없이 악화하더니, 하나둘 수많은 이가 죽음을 맞았다.
‘이런.’
레이몬드는 자신 앞에서 죽음을 맞은 환자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 뭐지?’
이상했다.
‘만약, 감염증을 유발하는 저주면 항생제 및 쇼크 처치에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효과가 없어.’
일족들이 죽어갈수록 루디안의 얼굴도 점점 하얗게 굳어져 갔다.
그때, 거친 음성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프린세스?! 뉴브위라 님을 따라야 한다고!”
백발의 노인 뱀파이어였다.
그가 쿨럭쿨럭 기침하며 외쳤다.
“이건 위대한 혼돈의 군주가 우리에게 내리신 저주입니다! 힐러들 따위가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만.”
루디안이 낮은 음성으로 말하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여기 가난의 황제님은 지금껏 숱한 기적을 일으켰던 분이라고. 혼돈의 군주가 내린 저주라도 치료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명령이니 조용히 하도록!”
루디안이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상대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납득한 기색은 아니었다.
억지로 입을 다물었지만 곧 다시 반발하리라.
루디안은 레이몬드에게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실 지금에라도 뉴브위라 님께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이가 많아서.”
“…….”
“하지만 전 폐하를 믿고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무거운 얼굴을 하였다.
‘일단, 이 저주의 정체를 밝혀내야 해.’
다른 것보다 그게 급선무였다.
이 저주가 정확히 신체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것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레이몬드는 가정을 해보았다.
‘감염병을 일으키는 저주는 맞아. 문제는 어떤 감염병이냐는 거야.’
정체가 짐작되지 않았다.
‘이렇게 수많은 질환이 한번에 나타나다니?’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레이몬드의 머릿속에 하나의 진단명이 퍼뜩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하나 있잖아. 이런 다양한 종류의 감염병이 한번에 올 수 있는 질환이.’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레이펜타이나에서는 아직 출몰한 적 없는.
하지만 의술의 본고장인 현대 지구에서는 아주 유명한 질환이었다.
‘에이즈(AIDS)야!’
에이즈, 후천적 면역 결핍증.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망가지는 그 질환이면 지금처럼 다양한 감염병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었다.
‘저주로 T 면역 세포의 기능을 억누르면 충분히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게 할 수 있어!’
레이몬드는 곧바로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아공간 소환!’
에이즈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했다.
허공에서 시커먼 구멍이 열리더니, 집채만 한 커다란 기계가 소환되었다.
일전, 렘브란트 대공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던 투석기보다 열 배는 커다란 덩치.
소환 비용도 당연히 비쌌다.
[아공간에서 소환하는 물건의 부피가 ‘특대형’ 이상입니다!] [50만 페나의 기부를 맹세하십시오!] [기부를 이행하지 않을 시, 차후 강력한 페널티가 가해집니다!]‘……빌어먹을. 뭐가 이렇게 비싼 거야.’
레이몬드는 욕을 삼켰다.
이 스킬,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너무 비쌌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저 도구는 레이몬드가 마탑과 합작해 특별히 제작한 검사 도구로 여러 면역 세포의 활성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CD4+ T 임파구의 수치도 측정할 수 있어. 혹시나 에이즈 비슷한 질환이 있을까 봐 미리 넣어둔 기능인데, 다행이야.’
루디안이 놀란 얼굴로 레이몬드가 소환한 기계를 바라보았다.
“폐하, 저건?”
“저주의 정체를 밝혀낼 검사 도구입니다.”
“아아!”
드디어 희망의 빛을 본 루디안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일단 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에이즈를 유발하는 저주가 맞는다면 해결책이 있었다.
‘이건 진짜 AIDS는 아니니까. 어떤 종류의 저주도 영원하지는 않아. 면역 기능을 도와주며 버티다 보면 저주가 약해지며 면역 기능이 회복되어 환자들의 상태도 좋아지게 될 거야.’
특히 이런 식으로 치명적인 위력의 저주는 시술자도 강한 부담을 지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길게 봐도 1~2주 이상 저주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에이즈가 아닐 때인데.’
레이몬드는 걱정스레 생각했다.
지금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은 전형적인 HIV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것과는 살짝 괴리가 있었다.
‘감염병들의 발병과 진행이 너무 빨라. 아무리 HIV여도 이런 식으로 빠르게 감염병이 나타나지는 않는데.’
하지만 지금 이건 정확한 에이즈라기보다는 저주로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 거니, 어느 정도의 괴리는 있을 수 있었다.
‘검사를 해보면 알겠지.’
레이몬드는 긴장하며 검사를 시작하였다.
환자의 피를 채취해 커다란 마도 기계에 반응시켰고, 기계는 미리 정해진 마법 술식에 따라 검체를 분석하였다.
복잡한 술식을 거치기에 반응이 빠르지는 않았다.
레이몬드를 비롯한 이들의 가슴이 긴장으로 뛰었고, 이윽고 결과가 표시되었다.
[CD4+: 1,230]“……!”
레이몬드의 얼굴이 굳었다.
정상이었다.
‘뭐지?’
HIV는 T 세포가 파괴되어 면역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정상이었다.
‘AIDS가 아니었어. 그러면 뭐지?’
다시 미궁에 빠진 레이몬드는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루디안도 무언가 상황이 잘 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 안색이 굳어졌다.
그때, 밖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큰일입니다, 루디안 님!”
“뭐지?”
뱀파이어 한 명이 뛰어왔다.
“뉴브위라 님의 화신(化身)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 * *
루디안은 즉시 밖으로 나갔다.
레이몬드도 멀찍이서 뒤따랐다.
‘화신이라니.’
화신.
아바타를 말한다.
강대한 혼돈의 군주들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이러한 화신을 만들 수 있다고 라이나가 설명해 주었다.
‘무서우니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