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72
#닥터 플레이어 472화 – 외전 20
가까이 다가가 ‘환자’들을 본 레이몬드는 숨을 들이켰다.
산전수전 다 겪은 레이몬드로서도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팔다리가 잘리고, 온갖 끔찍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죽지 않은 환자들이 텅 빈 눈빛으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손으로 바닥을 긁으며 이빨로 창살을 물어뜯고 있었는데, 이야기 속 좀비와 완전히 같았다.
“제가 왜 신벌이라 했는지 이제 알겠지요?”
“…….”
“폐하께서도 힐러이니 아실 겁니다. 세상에 저런 ‘병’은 없다는 것을.”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철탑의 탑주, 랠프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병이라기에는 너무 기괴했다.
또한, 병이 아니라 추정되는 근거가 더 있었다.
[혼돈의 군주의 능력이 발현됩니다!] [환자들에게서 혼돈이 감지됩니다!] [혼돈이 환자들을 잠식하고 있습니다!]얼마 전, 혼돈의 군주가 된 후 혼돈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데, 이 환자들에게서 혼돈이 느껴졌다.
즉, 이건 병이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병이 아니면, 그가 도움을 줄 방법은 없었다.
‘방법이 없는 건가?’
* * *
그래도 레이몬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설사, 이게 병이 아니라고 해도 해볼 수 있는 건 모두 해봐야 했다.
“저 좀비화된 환자들은 완전히 불사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와전된 이야기이고 죽기는 죽습니다. 불에 태우거나, 심장을 완전히 박살 내거나, 출혈량이 극심하거나 하면 말이지요.”
“엄밀히 말해 불사는 아닌 거군요.”
“네, 하지만 도저히 살 수 없는 부상을 당하고도 쉽게 죽지 않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갑니다.”
철탑의 탑주 랠프가 그림자가 깃든 얼굴로 말했다.
“심지어, 머리가 잘려도 바로 죽지 않습니다.”
“……머리가 잘려도요?”
“네, 머리가 잘린 후 최장 여섯 시간 동안 움직인 사례를 확인했습니다.”
옆에 있던 제자들은 기가 질린 얼굴을 하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린든이 대표로 말하였다.
“무, 무서워요. 정말 하늘의 진노인 것 아닐까요?”
린든은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은 눈치였다.
레이몬드도 점점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해.’
“짐이 환자들을 검사해 보겠습니다.”
레이몬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검사 수단을 동원하였다.
피 검사는 물론, 좀비 사체를 부검해 보았다.
아공간 소환으로 CT 및 MRI 기계도 소환했다.
소환 대가로 깨알같이 몇십만 페나가 깨졌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런 검사 결과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환자들 뇌가 거의 망가져 있어요. 뇌 실질의 염증 및 부종이 극심해요.”
크리스틴이 환자들의 뇌 CT, MRI 검사 영상을 보며 말하였다.
뇌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원래 뇌가 이런 상태면 움직이기는커녕 의식 없이 혼수상태여야 하는데.”
그러면서 크리스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시상하부와 뒤쪽 부위가 이상하네요. 비교적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아니, 도리어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등측 선봉 핵(dorsal raphe nucles)입니다.”
레이몬드가 설명하였다.
“시상하부를 통해 공격 신호를 보내는 부위이지요.”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
이 등측 선봉 핵이 활성화되어 좀비화된 환자들이 공격성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뇌가 저렇게 망가지면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딱하지 못해야 맞는데.’
린든도 조심스럽게 한마디 하였다.
“피 검사 결과도 이상해요. 산 염기 수치, 신장 수치 등등 모두 엉망이에요. 살아 있는 인간의 수치가 아니에요. 여, 역시 이건 신벌이 맞는 게……!”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린든이 가져온 검사표에는 pH가 6.7로 표시되어 있었다.
‘7.1 밑으로만 떨어져도 곧 심장 마비가 오는데.’
생존이 절대로 불가능한 수치인데, 여전히 환자들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등측 선봉 핵이 활성화되어 있는 게 이상해. 이게 만약 혼돈에 의한 증상이라면, 굳이 등측 선봉 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을까?’
레이몬드는 이게 ‘신벌’이 아닌, ‘질병’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의학적으로 전혀 설명되지 않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생각해 봐. 아니, 상상해 봐.’
뇌가 망가지고, 전신이 망가져도 죽지 않고 살아서 움직인다.
의학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이 마물도 아니고.’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레이몬드는 퍼뜩 멈추어 섰다.
‘잠깐.’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인간들에게 있는 질병이 아닌 건가?’
얼마 전, 뱀파이어들을 치료한 경험 때문이었다.
인간에 국한하지 않고, 좀 더 범위를 넓히면 비슷한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다.
‘개, 고양이…… 아니야, 포유류를 넘어서 다른 종.’
레이몬드의 머리가 휙휙 돌아갔다.
‘……아예 곤충들까지 범위를 넓히면? 비슷한 질환이 없을까?’
어렴풋이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의학 지식이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되기 전, 읽었던 잡서 중에 비슷한 내용을 본 적이 있어. 곤충 중에 좀비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흥미 위주의 잡서였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이유로 곤충들에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적혀 있지는 않았다.
‘참, 신기한 자연의 신비다’라고 하고 끝맺었을 뿐이다.
하지만 레이몬드에게는 관련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있었다.
‘스킬 구입, ‘곤충 수의학 각론’!’
지금껏 평생 거들떠보지도 않은 스킬이었다.
곤충들에게서 생기는 질환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왔고,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있어. 비슷한 질환이.”
레이몬드는 하나의 단어를 뱉었다.
“좀비 매미.”
* * *
좀비 매미는 하복부가 통째로 사라졌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다니는 매미를 뜻한다.
‘좀비 매미만이 아니야. 이런 질병을 앓는 곤충들이 꽤 있어.’
비슷한 경우로 좀비 개미도 있었다.
매미와 개미 등이 좀비화가 된 원인은 간단했다.
‘곰팡이 때문이야.’
좀비 매미를 예로 들면, ‘매소스포라’라는 곰팡이가 매미에 기생해 숙주의 배를 갉아 먹고, 죽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숙주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곰팡이의 번식을 돕게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흡사해.’
레이몬드는 생각을 이어갔다.
‘만약, 지금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이 무언가가 ‘기생’하여 일으키는 거라고 가정하면?’
그렇다면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었다.
‘기생체가 ‘어떤 식’으로 숙주를 지배해야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지?’
좀비 매미의 경우 곰팡이가 하복부를 파먹지만, 심장 등 장기의 기능을 유지해 죽지 않게 만든다.
좀비 개미의 경우에는 기생체가 근육을 지배해 뜻대로 움직이게 한다.
‘어떻게 하면 뇌의 기능이 완전히 소실되었는데도 몸을 움직이게 할 수가 있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레이몬드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단어를 내뱉었다.
“척수(Spinal cord).”
인간의 몸은 뇌의 명령을 통해 움직인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다.
뇌를 통하지 않고도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경로가 있다.
바로 척수였다.
‘기생체가 척수를 지배하면 지금과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게 가능해!’
자,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
인간은 왜 죽는 것일까?
많은 경우 심장이 멈춰서 죽는다.
호흡 곤란, 과다 출혈, 쇼크 등등 죽음의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심정지였다.
그러면 심장이 멈추면 왜 죽는 걸까?
뇌를 비롯한 장기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죽는다.
하지만 피가 공급되지 않는다고 신경, 근육, 관절 등이 바로 괴사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만약, 기생체가 척수를 지배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거면 지금처럼 죽을 부상을 입고도 한참을 더 불사의 상태로 움직이게 하는 게 가능했다.
‘확인해 봐야 해!’
다 가정일 뿐이었다.
“부검을 준비해 주십시오.”
“하지만 폐하? 부검은 아까?”
“확인할 부위가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어느 부위를 부검할지 말하였다.
“경추의 척수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 * *
육안으로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천 배 이상 확대경으로 보니 보였다.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벌레’의 모습이 말이다.
‘기생충이야!’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보통의 기생충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종인데, 혼돈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경추 척수를 지배하며 좀비처럼 사람들이 움직이게 하고 있어.’
자세히 살피니 움직임이 굉장히 복잡했다.
척수를 지배해 팔다리를 움직이게 함은 물론 혼돈의 힘으로 뇌의 등측 선봉 핵이 죽지 않고 활성화되게 해 숙주가 공격성을 띠게 했다.
그리고 혼돈의 힘으로 심정지가 와도 최대한 장기의 기능을 유지하게 해 숙주가 오랫동안 불사할 수 있게 하였다.
‘이건 자연적으로 발생한 기생충이 아니야. 누군가 일부러 ‘제작’한 기생충이 분명해.’
딱 이야기 속 좀비를 연상시키게 하는 증상이었다.
‘도대체 누가?’
레이몬드는 이를 악물었다.
누구든 용서할 수 없었다.
지금껏 수없이 끔찍한 일을 경험한 레이몬드이지만, 이번 건은 손에 꼽게 끔찍했다.
‘잡아야 해.’
좀비화의 정체를 밝혔으니, 다음 순서는 하나였다.
이 기생충을 유포한 범인을 잡아야 했다.
레이몬드는 로즈에게 자신이 밝혀낸 바를 말했다.로즈를 비롯한 철의 제국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신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거군요.”
“네, 범인을 잡으면 됩니다.”
자연적으로 퍼진 기생충이 아니었다.
누군가 퍼뜨린 이가 있을 테니 놈을 잡으면 이 사태도 일단락될 거다.
“콘시안 놈이 범인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레이몬드는 로즈에게 물었다.
머리가 덜 떨어져 보이긴 했지만, 가능성이 있으니 확인해 봐야 했다.
하지만 로즈는 고개를 저었다.
“콘시안은 범인이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콘시안과 따로 진실한 대화를 해봤어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진실한 대화를요. 눈물을 흘리면서 아니라고 하던데요.”
로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왠지 등골이 오소소해지는 미소였다.
“일단, 피해자들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식이요?”
“네, 기생충이 음식물을 통해 섭취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요.”
기생충은 공기로 전파되지 않는다.
대부분 음식물을 통해 전염된다.
“특히 날 음식을 통해 전염되는 경우가 많으니, 날것으로 먹는 요리의 재료를 확인해야 할 듯합니다.”
“네, 당장 시행하겠어요.”
로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끄러미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만난 다음 너무 일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요.”
레이몬드는 찔끔하였다.
“……그러면 무슨 이야기를 더 합니까?”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로즈가 지그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