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73
#닥터 플레이어 473화 – 외전 21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위기감이 들었다.
피해야 하나?
그런데 또 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모르겠다.
갈팡질팡한 자신의 마음에 레이몬드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그…… 그러고 보니! 이번 일을 해결하면 로즈 님께 보상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돈이요?”
“네? 네, 그걸 어떻게?”
“고객님이 바라는 거야 이 로즈는 항상 잘 알고 있죠. 돈이야…… 뭐, 앞으로도 옭아맬 기회야 많을 테니.”
로즈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다가왔다.
“그러면 이제 우리 다른 이야기 할까요?”
“……그러니까 어떤?”
“깊은 이야기요.”
로즈의 입술이 레이몬드의 입술을 덮었다.
* * *
로즈와 다른 이야기를 한 레이몬드는 멍한 얼굴을 하였다.
로즈와 나눈 ‘깊고 깊은 이야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폐하? 폐하?”
그런 레이몬드를 보며 린든이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에서 손을 휙휙 저어보다가 반응이 없자, 펄쩍 뛰었다.
“폐, 폐하께서도 좀비화가……!”
“……아니거든.”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좀처럼 ‘깊은 대화’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였다.
‘이번 일 잘 해결하면 나도 빚 갚을 수 있는 거지?’
깊은 대화 때문에 흐지부지 넘어가긴 했지만, 로즈는 분명히 대답했다.
돈 주겠다고.
철의 제국를 뒤흔드는 사태를 해결해 주는 거니, 커다란 돈을 요구할 수 있을 거고 빚도 갚을 수 있을 거다.
‘흐흐, 좋아. 내 꿈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어서 해결하자!’
레이몬드는 파이팅에 넘쳐 말했다.
“린든, 역학 조사 내용을 가져와 봐. 전파 경로를 알아내야 하니.”
“넵!”
중요한 문제였다.
어떤 경로로 전파된 것인지 알아야 추가 전염을 막고,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린든은 수북하게 쌓인 서류를 가져왔다.
“생존한 가족들에게 물어 좀비화가 진행된 환자들의 최근 2주일간 식단 내용을 확인했어요.”
“공통점이 있니?”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히 식이와 연관은 있는 것 같아요.”
린든이 설명하였다.
“같은 가족 단위로, 그리고 같은 구역 내에서 좀비화가 진행된 경우가 많아요.”
같은 식재료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좀비화가 진행되었다는 거다.
문제는 어떤 식재료에 문제가 생겼냐는 거다.
“공급 업체 쪽은 확인해 봤고?”
식료품을 통해 기생충을 퍼뜨렸다면, 중간 유통 과정에서 손을 썼을 거다.
물론 식자재는 수 없는 상단을 통해 공급된다.
하지만 희생된 환자들의 구역으로 공통으로 납품하는 공급 업체가 있을 거다.
그걸 알아내야 했다.
그런데 린든이 난색이 표했다.
“철의 제국 측을 통해 확인을 해봤는데, 공통된 업체가 없어요.”
“응?”
“황도 전체에서 넓게 환자가 발생했는데, 구역마다 식재료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모두 달랐어요. 공통되는 업체는 하나도 없었어요.”
“꼭 하나의 업체가 아니어도 좋아. 여러 개의 업체를 통해 기생충을 퍼트렸을 수도 있으니. 환자들의 분포와 공통분모가 많은 업체가 전혀 없었어?”
“네, 확인해 봤는데 없어요. 철의 제국 상계는 경쟁이 치열해서 어느 상단 하나가 특정 식재료를 독점하는 일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혹시 식자재를 통한 전파가 아닌 건가?’
하지만 기생충은 대부분 ‘식이’를 통해 섭취된다.
간혹 상처를 통해 들어오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환자의 분포 상황을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아니면 경로가 음식이 아닐 경우?’
‘식이 전파’는 음식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다음 유력한 경로를 떠올렸다.
‘물이야.’
음수 또한 기생충의 주요 전파 경로였다.
레이몬드는 로즈를 통해 철의 제국의 수로와 물 공급 체계를 확인했다.
하지만 물 역시 아니었다.
‘환자마다 공급받는 수원이 모두 달라. 그러면 뭐지?’
식자재와 물.
기생충 전파에 가장 대표적인 경로 두 개 모두 아닌 것으로 판단되자, 레이몬드는 다시 미궁에 빠졌다.
‘아니면 경구 섭취로 인한 게 아닌 건가? 하지만 기생충이 호흡기나 비말 전파일 리는 없잖아.’
전파 경로는 무조건 경구 섭취일 거다.
하지만 식자재와 물 말고 어떤 경로로 대규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레이몬드는 발병 환자들의 분포를 표시한 지도를 다시 바라보았다.
중구난방 한 분포.
어떤 규칙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로즈의 최고 심복 칼스였다.
레이몬드와 함께 있던 로즈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일이지?”
“성국의 성왕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성왕에게서?”
“네, 지난번 초청 건에 대한 답변입니다.”
로즈는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그들은 성왕을 초청해 속을 떠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좀비화 사태가 일어나 그 계획은 공중에 붕 뜬 상태였다.
“일전에 이야기했던 초청 건은 본국의 사태가 정리되면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전하도록.”
“이미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칼스가 눈썹을 날카롭게 찌푸렸다.
“그래도 본국에 방문하겠다고 합니다.”
“어째서?”
“본국에서 일어나는 좀비화 사태에 도움을 주겠다고 합니다.”
“……!”
레이몬드와 로즈는 눈을 크게 떴다.
칼스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성왕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 좀비화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 * *
칼스가 사라진 후, 레이몬드와 로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역시 성왕이 배후가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레이몬드는 무겁게 생각했다.
‘곤란하게 됐어.’
지금도 철의 제국 사람들은 이 좀비화 사태를 하늘이 내린 진노, 신벌이라고 여기고 있다.
황제인 로즈에게 모든 비난이 쏠리며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성왕이 이 사태를 해결하면?
‘성왕은 하늘의 진노를 돌이킨 신의 사자가 될 거야. 그러면 앞으로의 일은 성왕이 원하는 대로 진행될 거야.’
성왕이 노리는 건 아마 일전 루드비히가 그랬던 것처럼 철의 제국을 암중에서 지배하는 것일 거다.
만약, 철의 제국민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 성왕이 자신과 손을 잡은 꼭두각시를 로즈 대신 황제로 지지하면 로즈는 정치적으로 큰 곤란에 처할 수도 있었다.
‘성왕이 오기 전에 사태를 해결해야 해.’
레이몬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최대한 빨리 전파 경로를 알아내야 해. 그래야 추가적인 감염을 막을 수 있어.’
레이몬드는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살피기로 하였다.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부족해. 모든 현장을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
레이몬드는 단서가 발견될 때까지 모든 현장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하였다.
‘분명 답이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쉽게 답은 발견되지 않았다.
좀비화가 일어났던 집집을 모두 샅샅이 살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째일까?
레이몬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돈 버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생각해 보니 철의 제국에 온 다음부터 끝없이 강행군 중이었다. 맞닥뜨리는 사건의 난도도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아무리 돈을 향한 탐욕에 화이팅이 넘치는 레이몬드라지만 피로함을 안 느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레이몬드의 한숨에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고구마 삼인방이 난리를 피웠다.
“폐하께서 한숨을! 저희가 부족해서…… 크흑. 이 늙은이의 응원을 받으십시오! 너희도 무엇하느냐! 폐하께서 이리 힘들어하시는데!”
“폐하 파이팅입니다! 힘내십시오!”
“냐옹! 냐오옹.”
고구마 삼인방이 ‘폐하 힘내세요’ 라는 곡조로 응원하였다.
‘그런 거 하지 마! 고구마 먹은 것 같다고.’
레이몬드는 더욱더 피곤함을 느꼈다.
그때, 크리스틴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
“마실 거라도 구해올게요.”
“괜찮은데…….”
“제가 괜찮지 않아요.”
크리스틴은 찬바람이 쌩하고 사라졌다.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폐하께서 저리 힘들어하시다니. 다 내 탓이야. 내가 부족해서.’
그녀는 레이몬드의 곁에 서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의술로라도 레이몬드에게 보탬이 되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했다.
‘언제 폐하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건지.’
크리스틴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실 것을 구해 왔다.
“영양 주스예요. 제가 확인해 보니 특별히 안 좋은 성분은 섞이지 않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레이몬드는 주스를 마시려다가 흠칫하였다.
철탑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뭐야, 철탑에서 생산한 주스야?’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얘네는 언제부터 영양 주스를 만들어 판 거야? 영양 주스를 만들어 팔 생각은 나도 못 해본 건데.’
자신은 왜 이리 좋은 아이디어를 못 떠올렸는지 레이몬드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페닌 치료원 이름으로 영양 주스를 만들어 팔면 불티나게 팔렸을 텐데.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레이몬드는 멈칫하였다.
‘잠깐만. 영양 주스?’
레이몬드는 멈칫하였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영양 주스가 의심된다는 건 아니었다.
레이몬드가 의심하는 건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이 경구로 섭취하는 건 음식과 물뿐이 아니잖아.’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약도 포함돼.’
약!
철탑은 힐에 의존하지 않는다.
페닌 치료원처럼 수술과 약으로 환자를 치료했다.
‘만약, 철탑에서 처방하는 약에 기생충을 섞었다면 이런 중구난방적인 역학 분포를 보이는 게 가능해!’
지금 그들을 가장 미궁에 빠뜨리는 건, 규칙성 없는 환자 분포였다.
철탑이 원인이라면 모두 설명이 된다.
“린든, 좀비화가 진행된 환자들이 최근 철탑의 약을 복용했는지 확인해 줘!”
“아, 넵!”
린든이 눈을 크게 떴다.
레이몬드가 뭘 의심하는지 눈치챈 것이다.
곧 조사 결과가 나왔다.
“환자들 모두 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해요! 가족 단위로 좀비화가 진행된 경우에는 가족 모두 약을 복용했고요.”
레이몬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환자들이 복용했던 약을 가져와 줘.”
환자마다 복용한 약은 천차만별이었다.
다만,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철탑의 약에는 모두 수은이 소량 들어갔다.
감초처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왜 약에 독이나 다름없는 수은을.”
제자들은 질색했다.
반면, 레이몬드는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구에서도 오랜 기간 수은을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고는 했으니까.’
약을 살펴도 육안으로는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확대경을 꺼냈다.
천 배 이상의 고배율로 확대 가능한 마도구로 철탑의 약. 그중 함량된 수은을 살피니.
“……!”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보였다.
기생충이었다.
혼돈의 기운을 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