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74
#닥터 플레이어 474화 – 외전 22
레이몬드는 곧바로 이 사실을 로즈에게 알렸다.
로즈는 황명을 내려 당장 철탑의 약 처방을 중단시켰다.
철탑의 힐러들은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됩니다! 우리 철탑이 처방한 약 때문에 좀비화 사태가 일어났다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레이몬드가 증거를 내밀자 망연자실하였다.
특히, 철탑의 탑주 랠프는 시체처럼 안색이 질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그럴 리가…… 어, 어째서 철탑의 약에 저런 끔찍한 벌레가?”
완전히 넋을 잃은 모습.
레이몬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랠프가 범인이 아닌 건가?’
저 모습이 연기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범인이라고 여길 수도 없었다.
‘누군가 탑주 몰래 일을 벌인 것일 수도 있으니.’
철탑의 탑주가 약을 제조하는 데 일일이 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약 제조를 담당하는 누군가가 탑주 몰래 일을 벌인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수은을 공급하는 연금술사 쪽에서 수작을 부린 것일 수도 있지.’
레이몬드는 랠프는 이번 사태와 연관이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겠지.’
실제 이번 음모에 가담했든 하지 않았든, 랠프는 철탑의 대표였다. 책임을 져야 했다.
랠프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질끈 눈을 감고는 로즈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닿으며 빌었다.
“폐하, 이 모든 건 탑주인 제 책임입니다! 절 죽여주십시오!”
“…….”
“다만, 맹세컨대 저희 철의 탑은 이번 일과 무관합니다! 저희 철의 탑은 그저 간악한 흉수에게 이용당한 것일 뿐이오니, 절 죽이고, 철의 탑에는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로즈가 싸늘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랠프를 내려다보았다.
랠프의 바람과 다르게 랠프와 철탑은 선처받지 못할 것이다.
랠프는 사형당할 거고, 약 제조와 조금이라도 관련되었던 이들도 모두 끔찍한 고문을 당한 후 죽임당하게 될 것이다.
철탑도 해체될 게 분명했다.
그만큼 이번 사태의 여파는 컸다.
‘피바람이 몰아치겠네.’
레이몬드는 혀를 찼다.
처형당할 이 대부분이 음모와 관련 없는 억울한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선처를 주장할 수도 없었다.
이건 철의 제국 내의 일이다.
로즈가 결정할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 냉철한 면이 있는 레이몬드였다.
그런데 로즈가 가만히 있더니, 뜻밖의 말을 하였다.
“랠프 탑주, 그대의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함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철의 탑도 해체함이 지당하고.”
철의 탑을 해체한다는 말에 랠프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랠프는 단순한 탑주가 아니었다.
원래 철의 제국은 십자연맹제국처럼 힐을 위주로 쓰는 치유의 탑의 영향권이었다.
그런 치유의 탑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치료 방법인 철술을 확립하고, 철의 탑을 세운 게 랠프였다.
즉, 철의 탑은 랠프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이나 다름없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짐의 말이 틀린가?”
“…….”
하지만 랠프는 로즈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심각했다.
철의 제국이 뒤집힐 뻔했으니까.
관련자를 모두 처형하고 철탑을 해체해야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폐하의 말이 옳습니다.”
랠프는 비참하게 답했다.
‘어쩌다 이런 재앙이 내려왔단 말인가?’
그는 맹세코 범인이 아니었다.
철의 탑을 이용한 정체 모를 흉수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로즈가 아무도 예상 못 한 말을 하였다.
“하지만 특별히 그대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지.”
“폐하?”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야 함이 마땅하나, 너희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분이 있어서 말이야.”
로즈가 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십자연맹제국의 빛, 레이몬드 황제께서 너희의 선처를 부탁했다.”
랠프가 눈을 크게 떴다.
레이몬드도 같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언제?’
로즈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레이몬드에게만 눈을 희미하게 찡긋했다.
레이몬드는 로즈가 무언가 그를 위한 속셈으로 지금 이러는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무, 무엇입니까?”
“첫째, 레이몬드 황제를 도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랠프는 허겁지겁 답했다.
“따, 따르겠습니다! 철의 탑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 이게 더 중요하다.”
로즈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짐이 듣기에 페닌 치료원의 치료술에 비해 철탑의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고 하더군. 페닌 치료원에서는 금지한 수은을 모든 약에 섞어 쓸 정도이니.”
랠프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이번 좀비화 사태의 진상을 밝혀내며 레이몬드가 보인 지식은 철탑의 지식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준의 차이가 아득했다.
“그러니 황명으로 명하겠다. 앞으로 철의 탑의 힐러들은 모두 페닌 치료원의 제자가 되도록. 즉, 앞으로 철탑은 페닌 치료원 산하 소속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지식으로 환자들을 위하도록 하여라.”
“……!”
랠프는 눈을 부릅떴다.
원래라면 아무리 황명이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명이었다.
하지만 로즈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제안을 거절하면,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여제는 거리낌 없이 철탑을 해제할 것이란 것을.
“며, 명에 따르겠습니다.”
랠프는 피눈물을 삼키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철탑의 처분이 일단락되었다.
모두가 물러난 후 레이몬드는 어안이 벙벙해 로즈를 바라보았다.
“로즈 님?”
“어때, 마음에 드셨나요? 제 선물이?”
로즈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보잘것없는 것들이지만, 나름대로 고객님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선물이야.’
철탑을 페닌 치료원이 품는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일이었다.
‘철탑의 힐러들은 다른 힐러들보다 치료 지식이 뛰어나. 빠른 속도로 ‘의사’로 만들어 부려먹을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철탑은 철의 제국 전역에 뻗어 있었다.
그 치료망을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다.
신속하게 철의 제국에 의술을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최소 10년은 빠르게 철의 제국의 치료계를 손안에 넣을 수 있으리라.
돈 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런 배려를 해주다니.’
레이몬드는 살짝 감동한 얼굴로 로즈를 바라보았다.
로즈는 늘 그렇듯 무서운(?)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무섭기보다 예뻐 보였다.
“감사합니다. 이런 선물을 주셔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뭘요. 우리 사이에.”
로즈는 고개를 돌리며 뜻 모를 이야기를 하였다.
“고객님이 철탑을 가지면 나한테도 좋은 일이기도 하고요.”
“……?”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로즈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그저 웃기만 했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미소였지만, 레이몬드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그런데 하나 여쭐 게 있습니다.”
“흐음?”
레이몬드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번 일의 보상은 이게 끝은 아니겠지요? 일전 말했던…….”
“네, 그럼요. 기억하고 있어요. 금전으로도 보상하기로 했지요. 이 로즈, 공과 사는 철저히 구별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레이몬드는 안도하였다.
‘흐흐, 이러다가 금세 슈퍼 리치가 되겠는데?’
철의 제국에 온 뒤로 일이 너무 쉽게 풀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행복하게 웃는데, 로즈가 왠지 샘난다는 얼굴을 하였다.
“그렇게나 좋으세요?”
“네?”
“환자와 백성들을 위할 수 있는 게 기뻐서 그렇게 웃으시는 거잖아요.”
“…….”
로즈는 레이몬드가 돈을 요구한 게 환자와 백성들을 위해서라고 착각하는 듯했다. 지금까지 늘 그랬으니까.
“고객님의 그런 면이 좋은 거긴 하지만, 조금 샘이 나기도 하네요. 고객님의 머릿속에는 늘 환자와 백성만 있는 것 같아서.”
로즈가 레이몬드에게 다가와 머리를 쓸어넘겼다.
고혹적인 향이 로즈의 손에서 흘렀다.
로즈가 레이몬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뭐, 그래도 상관없어요. 고객님이 딴생각하셔도 고객님과 저는 쇠사슬보다 더 짙은 속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레이몬드는 로즈의 속삭임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로즈가 말하는 짙은 속박.
빚을 말한다.
‘……이제 곧 빚 갚을 텐데?’
이번 좀비화 사태를 해결한 대가를 받으면 빚을 갚기 충분했다.
로즈도 그 사실을 알 텐데?
‘뭐, 상관없지. 난 빚 갚으면 그만이니.’
로즈가 싫은 건 아니다.
아니, 좋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빚은 갚고 싶었다!
‘로즈 님 말대로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로즈 님이 좋아도 빚은 갚아야지. 머지않았어, 흐흐.’
레이몬드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다.
그리고 얼마 뒤.
레이몬드는 로즈가 왜 그리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는지 깨달았다.
철의 탑이 로즈에게 진 빚이 5천만 페나가 넘었다.
……철의 탑을 인수함으로써 그 빚도 함께 인수하게 된 것이다.
* * *
‘당했어.’
레이몬드는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5천만 페나라니! 철탑은 뭔 놈의 빚을 이렇게 많이 진 거야?’
정확히 말하면 빚이 아니라 투자금이었다.
철의 제국 황실은 자국 치료계의 발전을 위해 철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들어간 자금이 5천만 페나인 것이다.
‘이런 게 어디 있어?! 이건 사기야!’
물론, 원하지 않는다면 철탑 인수를 취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그러지 못했다.
‘철탑을 인수하지 않으면 철의 제국에 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돈이 더 들게 분명해.’
레이몬드는 눈물을 삼켰다.
즉, 이건 빚이 든 성배였다.
빚이 있음을 앎에도 마실 수밖에 없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철탑을 인수하는 대가로 5천만 페나면 싼 것일 수도 있다.
철탑의 인력, 그리고 유통망 등의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하면 고작 5천만 페나 수준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레이몬드에게 남는 장사이긴 하지만 그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내 빚쟁이 탈출 계획이 또 뒤로…….’
이번 사태를 해결한 대가로 철탑의 빚까지 변제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그것까지는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기존의 빚인 1억 페나도 모두 변제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이런 커다란 재앙을 해결했는데, 고작 빚 변제도 못 요구하냐고?
빚이 워낙 커서 그렇다.
1억 페나란 금액은 이번 공로로도 다 변제할 수 있을지 의문인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어. 최대한 뽕을 뽑아먹을 수밖에. 철의 제국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어주겠어. 각오하라고. 철저히 등골을 빨아 먹어줄 테니!’
레이몬드는 탐욕에 불타오르는 눈빛을 하였다.
“린든, 크리스틴 경! 당장 제자들을 동원해 구호 활동을 시작하겠습니다!”
“네, 폐하!”
철의 제국민들의 등골을 빨아먹기 위한 1단계 작전.
바로 봉사 활동을 통해 시민들을 현혹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