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89
#닥터 플레이어 489화 – 외전 37
프라딘 공작도 레이몬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프라딘. 폐하의 빛에 감명받았습니다! 폐하같이 위대한 빛은 대륙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우리 2마탑을 구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음성이었다.
레이몬드 덕에 2마탑의 오랜 숙원인 마왕을 퇴치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레이몬드가 없었다면 2마탑의 마법사들은 어마어마한 피를 흘려야 했을 것이다.
‘선천 마법사에 천무지체에 저런 위대한 품성이라니.’
프라딘 공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이몬드의 소문이 과장된 건 아닐까 하고 품었던 의심은 온데간데없어진 상태였다.
레이몬드는 완벽한 이였다.
“폐하께서 왜 1마탑의 프리셉터(인도자)라고 인정받았는지 알겠습니다. 우리 2마탑도 폐하를 프리셉터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프라딘 공작이 물었다.
레이몬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2마탑과도 연을 터 두면 싼 가격에 마도구를 공급받을 수 있겠지. 철의 제국에서 장사할 때 원가 절감에 도움이 될 거야.’
“네, 부족하지만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흐흐, 나중에 싼 가격에 마도구를 뜯길 각오나 하라고.’
레이몬드는 속으로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건 미래의 일.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보상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프라딘 공작은 약속을 지켰다.
5천만 페나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크하하하! 5천만 페나! 5천만 페나!’
레이몬드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느라 고생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지만, 아직 레이몬드의 탐욕을 만족시켜 주기에는 모자랐다.
‘그래, 아직 모자라. 더 큰 돈이 날 기다리고 있어.’
더 큰 돈.
성왕을 치료하고 벌어들일 돈이었다.
이제 성왕을 살릴 차례였다.
* * *
다행히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마왕의 심장 구조가 인간과 동일해 큰 문제가 없었어.’
대수술을 끝낸 레이몬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했던 거부반응도 없었다.
프라딘 공작이 말했던 것처럼 마왕은 정신체가 형상화한 것이라 숙주의 면역 반응을 유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난 후, 성왕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성왕은 눈을 깜빡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였다.
그러다가 옆에 서 있는 레이몬드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가난의 황제, 당신께서 절 살리셨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왕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말을 못 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전과 다르게 멀쩡한 목소리로 말하는 성왕이었다.
성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말을 하지 못했던 건 저주 때문입니다. 이제 저주가 풀렸으니,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로즈를 비롯해 함께 있던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성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하시고 있겠지만, 전 이전의 제가 아닙니다.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허수아비 국왕이 된 지 오래입니다. 심지어 힐 능력을 제외한 모든 권능도 잃은 상태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외대륙 요르문드의 혼돈의 지배자입니다.”
예상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하지만 성왕께서도 강력한 혼돈의 지배자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일을 겪으시다니?”
“상대가 그만큼 강대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요.”
“……!”
성왕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두려움이었다.
“절 제압한 이는…… 스스로를 요르문드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칭하더군요.”
유일한 지배자.
일전 들었던 단어였다.
‘탐욕의 마왕이 힘을 빌리며 했던 이야기야!’
2마탑의 봉인처를 무력화시킨 이와 동일한 존재인 게 분명했다.
“전 그자의 강대한 힘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섯 장의 날개가 모조리 잘렸고, 그자의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지요.”
장내의 모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성왕은 레이펜타이나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존재인데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도대체 그 존재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
얼마 전, 탐욕의 마왕의 부름에 그 존재가 힘을 발현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느꼈던 섬뜩한 기운에 레이몬드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젓고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저와 했던 내기의 조건으로 패자가 이긴 이의 소유가 되자고 했던 것은 그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까?”
“네, 그것만이 그 존재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폐하께서는 제 주인이 될 ‘자격’이 있으셨으니 청했던 도박이지요.”
자격.
레이몬드가 가진 혼돈의 지배자 자격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혼돈의 지배자니, 내 소유가 되어 그 무서운 존재에게서 벗어나려는 속셈으로 그런 이상한 내기 조건을 내걸었던 거구나.’
성왕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폐하의 빛에 베팅을 해본 건데, 다행히 성공한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네, 이제 저 뮤펜하임은 폐하의 소유입니다.”
레이몬드는 큼큼, 헛기침하였다.
성왕이 자신의 소유라니.
조금 표현이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
‘성왕을 저임금 노동자로 부려먹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챙길 수 있을 거야.’
그것뿐이 아니다.
‘성왕이 지금껏 쌓은 재산도 내 것! 성왕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한 번에 뜯어가면 욕먹겠지?’
그런데 한창 희희낙락하던 레이몬드는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시선을 돌리니 로즈가 서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로즈뿐이 아니라, 크리스틴도 별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지?’
레이몬드는 로즈가 왜 그런 눈빛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고객님? 성왕을 휘하에 거둔 게 너무 좋으신가요?”
“네? 네? 그게……?”
레이몬드는 로즈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흐음.”
레이몬드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로즈는 무서운 느낌의 미소를 짙게 지었다.
“이 문제는 고객님과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중요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죠.”
로즈는 성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그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모두가 성왕의 입을 주목했다.
성왕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레이펜타이나 대륙의 정복.”
“……!”
“레이펜타이나 대륙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그자의 목적입니다.”
장내가 고요해졌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이 컸다.
“그러면 지금껏 일어났던 일들은 모두 그자에 의한 것이었던 겁니까?”
“네, 맞습니다. 십자연맹제국, 철의 제국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들은 모두 그자의 음모로 벌어졌던 일입니다.”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막아서 다행이네.’
만약 막지 않았다면 십자연맹제국과 철의 제국 역시 성국과 같은 꼴이 될 뻔했다.
그런데 성왕이 무겁게 말했다.
“다행히 폐하께서 그자의 음모를 무산시키긴 했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자의 본격적인 계획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양 제국에 있었던 일들은 그저 본 계획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였을 뿐, 진정 끔찍한 재앙은 이제부터입니다.”
“도대체 그자가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길래?”
성왕이 무겁게 말했다.
“대전(大戰).”
“……!”
“곧 외대륙 요르문드의 혼돈의 지배자들이 레이펜타이나 대륙으로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할 겁니다. 레이펜타이나 대륙은 전란의 겁화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모두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 * *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레이몬드는 눈이 컴컴해졌다.
‘갑자기 뭔 놈의 대륙 전쟁이야?! 안 돼!’
이제 기껏 슈퍼 리치의 꿈을 달성하기 직전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런데 로즈가 날카롭게 물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외대륙 혼돈의 존재들은 선천적 제약으로 외해를 쉽게 넘어올 수가 없는데. 대전을 일으킨다고요?”
그 말에 사람들은 의아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양 대륙 간에 놓인 외해 때문에 지금껏 혼돈의 존재들이 레이펜타이나 대륙에 넘어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간혹 제약을 피한 소수만 넘어왔을 뿐이다.
“그 존재는 제약을 피할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국에 거대한 공간 도약 포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포털이 완성되면 혼돈의 존재들은 어떤 제약도 없이 레이펜타이나 대륙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
장내에 죽을 듯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문제는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란 점이다.
‘나도 공간 이동 포털을 쓸 수 있으니까. 만약 그 존재가 내가 쓰는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쓸 수 있으면 충분히 가능해.’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정말 어마어마한 재앙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성왕이 다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도 가난의 황제 폐하 덕에 실낱같은 빛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네?”
“그자가 양 제국에서 이런 끔찍한 음모를 벌인 건 단순히 양 제국을 배후에서 장악하려는 의도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바로 피.”
“……!”
성왕이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포털을 완성하는 데는 제물을 바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레이펜타이나 대륙에 환란을 일으켜 죽은 이들의 피를 대가로 포털을 완성하려 했는데, 폐하 덕분에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이몬드는 그 말에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성국만 잘 수복하면 되겠구나.’
공간 이동 포털이 완성되는 곳은 성국이었다.
성국을 수복해 놈의 계획을 무산시키면 염려하는 대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성왕이 원래의 권력을 찾는 게 나한테도 이득이고 말이야.’
레이몬드는 슬그머니 욕심이 들었다.
성왕은 그의 소유가 되었다.
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구책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소유는 소유였다.
‘이왕이면 일개 힐러로 부려먹는 것보다는 성국의 왕으로 있는 게 훨씬 더 등골까지 빨아먹기 좋겠지. 성왕의 권력을 이용하면 성국에서도 온갖 사리사욕을 챙길 수 있을 거야.’
레이몬드는 전대륙에서 꿀을 빠는 웅장한 상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