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88
#닥터 플레이어 488화 – 외전 36
레이몬드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경계하는 순간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파지지지직!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며 봉인처 안에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프라딘 공작이 경악해 외쳤다.
“아, 아니?! 봉인 마법진이 갑자기 오작동을!”
“……!”
시야는 금세 다시 밝아졌다.
하지만 장내의 모습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곳곳에 박혀 있던 아카네의 돌의 빛이 시커멓게 꺼져 있었다.
발밑의 봉인진의 색도 탁해져 있었다.
‘어째서? 아까 목소리의 주인이 일을 일으킨 건가? 말도 안 돼.’
레이몬드는 경악했다.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원격으로.
‘위대한 진정한 지배자라고?’
하지만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거친 광소가 들려왔다.
[크하하. 이 해방감……! 오랜만이구나!]탐욕의 마왕이 미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몬드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위압감에 눈을 크게 떴다.
‘봉인이 풀리면서 원래의 힘을 되찾았어!’
망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행이 다급히 그의 주위로 뛰어왔다.
“폐하!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빛을 지키자!”
“냐옹냐옹!”
아카네의 돌은 마왕뿐 아니라, 함께 온 다른 이들의 힘도 억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카네의 돌이 기능을 잃자, 일행도 힘을 합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행뿐이 아니었다.
“봉인이 무너지다니.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요.”
프라딘 공작이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레이몬드 곁에 섰다.
“최선을 다해 마왕을 토벌할 수밖에요. 아크 메이지들과 소드 마스터들을 호출했으니, 금방 도착할 겁니다.”
레이몬드는 그 말에 안도했다.
‘그러면 이제 나는 안 나서도 되는 거구나!’
천만다행이었다.
곧 위에 있던 2마탑의 아크 메이지들이 빠르게 합류했다.
레이몬드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아무리 마왕이라도 머릿수 앞에는 장사 없겠지.’
그런데 수많은 초인이 자신을 에워쌌는데도 마왕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뭐?”
마왕이 손을 펼쳤다.
[지옥이 강림할지니. 모두 탐욕의 나락에서 몸부림쳐라!]“……!”
마왕이 권능을 사용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장내에 있던 이들의 눈가에 모두 핏발이 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건?”
“갑자기 왜 가슴이? 마음이 진정 되지가 않아!”
탐욕의 마왕이 악랄한 웃음을 흘렸다.
[큭큭. 내 권능은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해 뜻대로 조정하는 것. 탐욕이 없는 인간은 없으니, 누구도 내 권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탑의 아크 메이지들의 눈이 시뻘게지고 있는 게 보였다.
모두 강대한 마법사답게 마왕의 권능을 거부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버티지 못하고 곧 이성을 잃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대로라면 모두 마왕의 꼭두각시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살육전이 일어나리라.
‘나도 힘들어.’
레이몬드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게 느껴졌다.
마왕의 권능에서는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슴속의 탐욕이 미친 듯이 머리 위로 차올랐다.
‘돈 벌고 싶어. 돈 벌고 싶어.’
레이몬드의 눈이 시뻘게졌다.
원래도 돈 욕심이 강했는데, 마왕의 권능 때문에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돈 생각만 들었다.
‘이대로라면, 돈 욕심에 이성을 잃게 될 거야.’
위기감이 차올랐다.
제대로 된 사고가 힘들었다.
그런데 탐욕이 가득 차오른 레이몬드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돈 벌려면 저 마왕을 죽여야 하잖아.’
레이몬드는 충혈된 눈으로 마왕을 바라보았다.
마왕의 목에 걸린 돈이 그의 이성을 완전히 잃게 했다.
“……반드시 네놈을 쓰러뜨리겠다.”
레이몬드답지 않은 거친 기세!
원래 레이몬드는 천생이 겁쟁이라 마왕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마왕의 권능 때문에 돈 욕심으로 눈이 돌아가자 그런 두려움이 사라졌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맹렬한 투쟁심!
마왕은 그런 레이몬드를 보며 조소를 흘렸다.
[완전히 이성을 잃었군. 이제 내 노예가 되어라!]마왕은 레이몬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탐욕에 눈이 먼 레이몬드를 인형처럼 조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마왕은 흠칫하였다.
[네놈……?]마왕은 말을 더듬었다.
[어, 어째서 내 정신 조작이 네놈에게 먹히지 않는 거지?]당황한 음성이었다.
마왕의 능력은 상대의 탐욕을 단순히 증폭시키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간단한 능력이라면 마왕이라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왕의 진정한 능력은 상대의 탐욕을 증폭시켜 상대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만약 성공하고자 하는 탐욕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탐욕을 극대화해 이성을 마비되게 한 후, 교묘히 상대를 부추겨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저놈을 죽여야 네 욕심을 이룰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탐욕으로 이성을 잃은 상대는 마왕의 속삭임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고 마왕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레이몬드에게는 전혀 그런 정신 조작이 먹히지 않았다.
마왕은 레이몬드의 정신에 계속해서 간섭을 시도하였다.
탐욕에 눈이 멀어 주변 이들을 죽이도록.
하지만 소용없었다.
[왜? 탐욕이 없는 건가? 아니야. 그런 건 전혀 아니야.]마왕은 레이몬드의 상태를 살폈다.
탐욕을 증폭시키는 권능은 제대로 먹혔다.
원래도 욕심 많은 놈이어서 그런지 눈동자에 탐욕이 미칠 듯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놈을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가 없었다.
“……네놈의 목에 걸린 돈…… 모두 내가 가져가 주마.”
저벅.
레이몬드가 발걸음을 옮겼다.
마왕은 그제야 레이몬드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미친. 돈을 벌려는 탐욕이 너무 강해 내 정신 간섭이 먹히지 않다니!’
레이몬드는 지금 마왕을 처단해 돈을 벌려는 탐욕에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문제는 그 탐욕이 지나치게 강해 마왕의 정신 간섭이 전혀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그런 레이몬드를 보며 제자들이 경탄해 외쳤다.
“……폐하!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이를 위해 마왕과 싸우려고 하시다니.”
“봐라, 린든! 마왕의 저주조차 폐하의 빛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폐하, 그만 빛나시고 우리 그냥 도망가요!”
그렇게 외치는 제자들을 보며 마왕은 다시 눈을 부릅떴다.
‘뭐지? 저놈들은 왜 탐욕에 이성을 잃지 않고 있는 거지?’
마탑의 고명한 아크 메이지들이 이성을 잃고 있는 데 반해서 레이몬드의 제자들은 비교적 멀쩡했다.
마왕의 권능이 전혀 먹히지 않는 모습.
레이몬드와는 정반대의 이유 때문이었다.
레이몬드가 탐욕이 너무 강해 마왕의 정신 간섭이 먹히지 않는다면, 제자들은 탐욕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오로지 남들만을 위하는(?) 레이몬드의 모습을 보고 배운 영향 때문이었다.
한슨의 유일한 탐욕은 레이몬드의 빛을 대륙에 퍼뜨리고자 하는 탐욕.
린든의 유일한 탐욕은 놀고 싶다는 탐욕.
검성, 엘무드, 미엔은 레이몬드를 지키고 싶다는 탐욕이었으니 마왕의 권능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무, 무슨 저런 대단한 성인(聖人)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다니?]마왕은 그런 제자들의 모습에 당황해 외쳤다.
레이몬드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성장한 제자들은 한 명, 한 명이 숭고한 성인이나 다름없었다.
제자 중에는 단 한 명.
크리스틴만 남몰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참기 힘들어.’
크리스틴은 자신의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어 이를 악물었다.
레이몬드를 향한 감정이었다.
‘이대로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자신도 모르게 레이몬드에게 발걸음을 옮길 뻔한 크리스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못하다가는 레이몬드에게 평생 후회할 실수를 할 것만 같았다.
“리, 린든 경!”
“네?”
“제 손을 꽉 잡아주세요!”
“네? 네?”
“얼른요! 제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 놓지 말아주세요!”
혹시나 이성을 잃으면 린든에게 잡아달라고 부탁한 것이었지만, 린든은 또 깨알같이 오해하였다.
‘내, 내게 왜 이런 부탁을? 날 의지하려는 건가? 역시 크리스틴 공녀님은 날 마음에? 그런데 공녀님이 나보다 훨씬 강하지 않나?’
진실을 모르고 린든은 희희낙락했다.
다행히 탐욕의 마왕은 크리스틴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으르렁 다가오는 레이몬드 때문에 다른 데 정신을 팔 여유가 없었다.
[네, 네놈. 성자인 주제에 탐욕에 눈이 멀다니. 부끄럽지도 않냐!]“시끄러워.”
[……!]탐욕에 이성을 잃은 덕에 레이몬드는 평소와 다르게 거칠게 답했다.
“그딴 게 뭐가 중요해!”
돈만 벌면 되지!
레이몬드의 검이 탐욕의 마왕을 내려쳤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맹한 일격!
[이, 이런……!]탐욕의 마왕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렸다.
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탐욕에 불타오르는 레이몬드는 강했다.
검이면 검. 마법이면 마법.
레이몬드의 공격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끝이다.”
[아, 안 돼.]탐욕의 마왕은 최후를 직감했다.
그리고 레이몬드의 검이 탐욕의 마왕의 목을 베었다.
[마왕을 처단하였습니다!] [업적 : ‘마왕 살해자’를 달성하였습니다!] [당신의 위업이 외대륙 요르문드에 퍼집니다!] [외대륙 요르문드의 강대한 지배자들이 당신의 존재를 다시금 강렬히 인식합니다!] [일부 지배자가 당신을 잠재적 적으로 여기고 경계심을 가집니다!] [일부 지배자가 당신을 구원자로 여기고 희망을 품습니다!] [당신의 ‘지배자’로서의 격이 한 단계 격상합니다!] [‘위대한 지배자’가 될 자격을 획득합니다!]이해가 되지 않는 메시지들이었다.
* * *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레이몬드는 마왕을 토벌했다.
‘부끄러워. 탐욕으로 이성을 잃다니.’
레이몬드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사실, 마왕을 토벌할 당시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성을 완전히 잃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성을 잃은 내 모습을 봤겠지?’
레이몬드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 어떻게 하지, 라고 걱정하였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되레 다 반대로 생각하였다.
“마왕의 권능이 먹히지 않는다니. 폐하께서는 얼마나 탐욕이 없으시면.”
“아니야. 폐하께서도 사람인데, 탐욕이 전혀 없지는 않으시겠지. 그때, 보니 마왕의 권능에 눈이 충혈되긴 하셨더군.”
“그런데 어떻게?”
“그야 당연하지. 다른 이를 위해 마왕을 해치워야겠다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마왕의 권능을 물리친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 레이몬드의 모습을 목격한 아크 메이지들이 감동하여 떠들었다.
모두 레이몬드가 숭고함(?)으로 마왕의 권능을 극복했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