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99
#닥터 플레이어 99화
하지만 드넓은 대륙에는 이들 말고도 여러 국가가 있었는데, 드로튼 왕국을 비롯한 ‘남부 국가 연합’이 그중 하나였다.
‘남부 국가 연합’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드로튼 왕국은 휴스톤 왕국의 남측에 자리하고 있었다.
애초에 드로튼 왕국 자체가 휴스톤 왕국 남쪽 절반이 독립하여 건국된 나라였으니 말이다.
“다행히 드로튼 왕국 외 다른 남부 국가들은 중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참모가 라이프 공작에게 보고하였다.
“페닌 남작께서 밝혀낸 여러 증거 덕분입니다. 드로튼 놈들이 행한 악마 짓이 밝혀진 이상 다른 국가들은 참전할 명분이 없어졌습니다.”
명분이 이래서 중요하다.
레이몬드가 밝혀낸 증거들 덕분에 드로튼 왕국은 홀로 고립되었다.
“크게 유리한 전쟁이 되겠군요.”
“페닌 남작이 정말 큰일을 해냈습니다.”
막사 안의 여러 사람이 레이몬드를 칭찬하였다.
라이프 공작은 냉철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만. 방심은 금물이다. 전쟁은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곧바로 라팔드 지방으로 진군한다.”
“네, 각하!”
라팔드 지방.
드로튼 왕국의 북부 지역이다.
휴스톤 왕국과 인접한 국경 지역.
전쟁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라팔드 지방에 들어가면, 드로튼 놈들과의 전투에 대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라이프 공작의 이야기처럼 라팔드 지방에 진입 후, 적군과 마주하게 되었다.
총 6만.
드로튼 왕국군의 숫자였다.
총 7만 대 6만의 대군이 대치하였다.
숫자가 크게 차이 나는 건 아니지만, 두 병력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사기.
드높은 사기로 무장한 휴스톤 왕국과 다르게 드로튼 왕국군의 사기는 낮았다.
휴스톤 왕국군은 첫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라팔드 지방 북쪽 지방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드로튼 왕국군은 전략을 바꾸었다.
평야의 회전보다는 라팔드 지방의 거친 산악 지형을 이용한 방어전에 나선 것이다.
휴스톤 왕국군은 서군, 중군, 동군으로 갈래를 나누어 라팔드 지방 점령에 나섰고, 이후 전장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때, 전장에 페닌 치료원을 차린 레이몬드는 무얼 하고 있었냐 하면은.
환자가 오지 않아 고심에 빠져 있었다.
* * *
최고의 공로를 세우자!
그게 전장에 나온 레이몬드의 다짐이었다.
그래서 노른자위 영지는 물론, 커다란 명성을 쌓자.
그런 마음으로 패기 넘치게 치료원을 열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환자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왜지? 번쩍번쩍하게 차려놨는데.’
레이몬드는 막사를 보았다.
마치 황제가 전장에서 머물 법한, 아니, 그것보다도 넓어 보이는 막사였다.
내부도 전장이란 걸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고 아늑했다.
이렇게 멋지게 차려놨는데, 왜 아무도 안 오는 거지?
‘환자가 안 생기는 건 아닐 텐데.’
요충지를 함락하기 위해 지금도 전투가 거듭되고 있었다.
분명 부상자가 여럿 생겼을 텐데,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아닐까요?”
린든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출정 전 ‘응급 구호술’ 교육을 하며 잔뜩 광고했으니까. 병사들 모두 페닌 치료원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음, 뭐지.’
슬쩍 바깥으로 나가보니 역시나 여기저기 부상병들이 있었다.
그런데 치료원 마크가 딱 붙어 있는 막사를 보고도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오히려 C급, D급 하급 힐러들에게 줄을 서 있었다.
레이몬드는 부상병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저기 저 막사는 뭐야? 으리으리한데?”
“아, 페닌 남작이란 분의 치료원이라는데? 힐이 아닌, 의술이란 걸 쓴다더라고.”
“의술 그게 뭔데?”
“나도 몰라. 처음 들어. 수도에서 온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니, 나름대로 효과는 있는 것 같긴 하던데…… 치료할 때 배를 갈라서 치료한다더군.”
“뭐?!”
병사들은 경악한 얼굴을 하였다.
“배를 갈라?!”
“사람의 피를 주입한다고도 하는데?”
“무슨 그런 악마의 치료가?! 국왕 전하께서 그런 악마의 치료를 지켜보셨단 말인가?”
그때, 한 병사가 다급히 의술을 변호했다. 아마 레이몬드가 있던 수도 출신의 병사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야. 의술은 그런 이상한 치료가 아니고, 효과도 아주 좋아. 페닌 남작님도 아주 훌륭한 분이고.”
“훌륭한 분이 사람의 배를 가르고, 생피를 몸에 집어넣는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차라리 악마의 성격이 좋다고 하게!”
다른 병사들이 의술을 편드는 병사를 면박 주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레이몬드는 커다란 문제점을 깨달았다.
‘의술은…… 병사들에게 낯선 치료구나.’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의 노력으로 페닌 치료원이 있는 수도에서는 의술을 인정하고 있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치료일 테니까.
더구나 병사들은 치료법에 예민하다.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니 새로운 치료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어쩌지?’
곤혹스러움을 느꼈지만, 곧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떻게 하긴, 의술의 위대함을 보여주면 되지.’
고작 이런 일.
지금껏 겪은 난관에 비하면 우스울 따름이다.
막사에 돌아온 레이몬드는 왕진 가방을 들었다.
“나가자, 한슨.”
“마스터?”
“당분간은 찾아가는 힐러 서비스 모드다.”
병사들이 의술을 꺼려 찾아오지 않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직접 찾아가면 된다.
찾아가 강제로 의술의 위대함을 보여주리라.
* * *
마침 딱 맞게 퀘스트가 발생하였다.
[병사들에게 의술의 위대함을 알려라!](의술 퀘스트)
의술 등급 : 투 메스
난이도 : 중
퀘스트 설명 : 당신은 종군 힐러
하지만 병사들은 당신의 의술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의술의 위대함을 알려 그들의 경계를 풀어주십시오!
클리어 조건 : 의술의 위대함 입증
퀘스트 보상 : 보너스 레벨 업×2, 스킬 포인트 30점
퀘스트 설명처럼 병사들은 레이몬드의 의술을 경계했다.
“치료해 드릴까요?
“네? 아, 아닙니다! 다 나았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호환 마마를 보듯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병사를 치료하려고 왕진 가방을 열었는데,
“허억! 칼!”
“아, 이건 메스란 것으로…….”
“톱, 바늘 암살 도구까지!”
“…….”
여러 의료 도구를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 뒤 병영에 이런 괴담이 돌았다.
페닌 남작이 들고 다니는 가방은 전천후 암살 병기라고.
‘확!’
순간, 분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 아쉬운 건 레이몬드였다.
왜 다친 병사들이 아쉽지 않고, 그가 아쉬우냐고?
‘……전장에 페닌 치료원 차리려고 빚 잔뜩 냈단 말이야. 공로를 세워 노른자위 영지 못 받으면 파산이야.’
그가 새롭게 진 빚은 무려 20만 페나 이상!
물품을 조달받기 어려운 전장이니, 약초, 붕대, 등 의료 도구를 미리 바리바리 사 가지고 온 탓이다.
‘군 예산으로 어느 정도 지원을 받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군의 재정에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빚을 낸 것이다.
물론 나중에 몇 배로 돌려받을 빚이었다. 환자들을 치료할수록 공로가 쌓이는 거니까.
20만 페나의 빚 따위. 나중에 공로를 쌓아 받을 노른자위 영지의 가치에 비하면 우스울 따름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최대한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 해.’
그때, 병영이 소란스러워졌다.
“끄아악!”
한 병사가 들것에 실려 왔다.
“비켜!”
“급해! 힐러를!”
힐끗 보니, 오른 가슴에 관통상을 입은 환자였다!
‘저런 환자는 살릴 수 없어.’
레이몬드의 눈이 무거워졌다.
분명 흉곽 안에 있는 중요 장기를 찔렀을 거다.
당연히 병사들을 담당하는 힐러들은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없네.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도록.”
참고로, 일반 병사들을 담당하는 힐러는 C, D급이다. B급 이상의 힐러들은 모두 기사, 장교급 이상의 환자들만 치료했다.
C급 힐이 중환자 치료에 큰 효과가 없는 걸 고려하면, 큰 부상을 당한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레이몬드 님! 제발 저 환자를 치료해 주십시오!”
갑자기 한 병사가 레이몬드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전 수도에서 레이몬드 님께 치료받은 적이 있는 병사입니다! 레이몬드 님의 의술이라면 저 병사를 치료해 줄 수 있을 거로 믿습니다!”
모든 병사가 의술을 터부시하는 건 아니었다.
레이몬드의 활동지였던 수도 출신의 병사들은 의술을 믿고 있었다.
‘……나도 이 환자는 자신이 없는데.’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물론 자신이 없다고 해서 도망치는 건 옳지 않았다. 평소라면 되든, 안 되든 일단 치료해 보려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라고.’
수많은 병사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만약 저 환자를 치료하다가 실패하면?
그러면 병사들 사이에서 의술은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치료로 낙인찍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끄으으…… 메, 메리…… 보, 보고 싶어…….”
환자가 나직이 부르는 이름을 듣는 순간.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니야. 이번 일은 어떻게 생각하면 기회야. 병사들에게 의술의 뛰어남을 각인시킬 기회.’
지금까지 늘 그랬듯.
의술의 가치는 환자를 치료하는 걸로 인정받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걸 떠나 그는 힐러이니까.
죽어가는 환자를 치료할 의무가 있다.
“환자를 치료원 막사 안으로 옮겨주십시오.”
레이몬드는 한슨에게도 말했다.
“곧바로 수술 시작할 테니, 준비해 줘.”
* * *
‘할 수 있을까?’
막사 안에 마련된 수술장에서 레이몬드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현재 등급은 ‘수석 치프’, 즉 아직 레지던트 수준이다.
하지만 흉부 관통상은 레지던트 선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난이도였다.
최소 ‘전문의’급은 되어야 했다.
‘이제 곧 레벨 100이니, 전문의도 멀지 않았지만, 어쨌든 현재 수준에서는 쉽지 않은 수술이야.’
레이몬드는 소독한 장갑을 끼고 메스를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해볼 수밖에.’
[스킬, ‘서전의 손놀림’이 발동합니다!] [스킬, ‘서전의 경험(D+)’이 발동합니다!]감각 수치가 대폭 상승하였다.
참고로, ‘서전의 경험’은 ‘수석 치프’가 되며 숙련도가 D+급으로 올랐고, 스탯 상승치가 3에서 4로 올랐다.
‘반드시 해내자.’
찌익.
메스가 갈비뼈 사이 흉벽을 갈랐다.
울컥 안의 피가 쏟아져나왔다.
“혈압 떨어집니다! 혈압 60/30입니다!”
“수액을 주입해 줘!”
“네, 마스터!”
린든이 답했다.
참고로, 크리스틴은 가문의 일로 당분간 지휘부에 있어 이번 수술의 어시스트는 한슨이 섰다.
린든은 ‘순환 보조 인력’의 역할을 맡았다.
수술 필드에 서지는 않되, 주변에서 필요한 도구 등을 건네며 보조를 하는 것이다.
린든은 워낙 눈치가 빨라, 재빠르게 보조를 잘했다.
‘출혈량이 많아. 대동맥이나 심장까지 관통된 건 아니겠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