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3
제 213화
사마현이 말했다.
“형이 자고 있는 동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고. 뭐, 그건 이제 비무를 앞둬서 그런 거지만. 형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몇 있어서 형 깨어나면 오라고 했어. 언제 깨어날지는 나도 모른다고 했고.”
“스승님은?”
“백린의선을 말하는 거라면 행적이 묘연해서 연통 넣느라 고생 좀 했어. 여기서 자고 있다고 전했어. 형이 안 쉬려고 해서 억지로 재웠다고.”
‘약 썼다는 이야기는 안 한 모양이군.’
은근슬쩍 중간에 중요한 말을 빼놓았지만 일단 거짓말은 안 했다.
“백린의선께서는 굉장히 희한한 곳에 계시던데?”
당연했다. 제갈린과 진천희, 두 사람은 약속을 했다.
앞으로 일어날 환난에서 진천희는 사람을 구하고, 제갈린은 그런 제자를 구하겠노라고.
그걸 위해서는 몇 가지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위해서 일분일초라도 아껴야 했으니까.
“…….”
“안 놀라는 걸 보면 형도 대충은 알고 있는 모양이네. 둘이 뭘 꾸미는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그나저나 더 자. 닷새를 못 잤잖아.”
“닷새? 나 닷새나 일했어?”
“사람 치료하느라 시간 관념도 잊은 모양이네. 아무리 형이 내공이 삼 갑자라고 해도 그러고 살면 과로사로 죽어.”
“대체 네가 내 내공을 어떻게 아는…… 아니지. 됐다, 됐어.”
슬슬 사마현 놈의 스타일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분명 선의로 돕는 건데 약간 섬뜩한 데가 있는 게 이놈 스타일 같다.
실제로도 크게 도움이 되고는 있다.
“형. 이거.”
사마현이 내려놓은 장부에는 각종 의각에서 쓰는 물품이나 자재가 적혀 있었다. 거기에 구하기 애를 먹은 우모침이 다량으로 들어 있어서 놀라웠다.
‘이걸 대체 어떻게 구한 거지?’
진천희도 당아와 친분이 있고, 당아 자신도 ‘그리 뒷일을 신경 쓰지 않는 착한 아이’다 보니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마현이 구해 놓은 우모침은 상당한 양이어서 도무지 당가 개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수량이 아니었다.
“친구의 친구가 구해 줬어.”
사파의 ‘친구의 친구’란 도깨비 방망이 같은 건가.
사마현이 말을 이었다.
“본 경기 들어가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신경 썼어. 거기다 노점 하고 계시는 상인을 몇 분 수배해 뒀으니 아침, 점심, 저녁 모두 거기서 보내줄 거야.”
“그건 이미 무림맹에서 지원받고 있어.”
“알고 있어. 근데 그거 먹으려면 식당까지 가야 하잖아. 내가 보내는 건 도시락이랑 간식거리니까 거기서 먹으면 돼. 끼니 거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미친놈은 맞는데 빈틈도 없다.
“고맙지?”
생색도 잘 낸다.
“고맙네.”
“헤헤헤. 누구 동생인데 당연하지.”
‘임시’ 또는 ‘예비 2번’이라는 말은 빼고 진천희가 답했다.
“그래. 덕분에 불안했던 것들이 많이 해결됐어. 고마워.”
“그러면 조금만 더 자. 일각만 더 자자. 형.”
“…….”
진천희는 대답 대신 도로 침상에 누웠다.
사마현은 그런 형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하는 것을 들으며 남은 일들을 해 나갔다.
* * *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그랬냐. 아무리 휴식이 필요했어도 그렇지.”
진천희는 뚱한 표정으로 무복을 갈아입었다.
사마현은 턱을 괴고는 그런 형을 바라본다.
“말? 뭐, 형은 이제 자야 한다고? 사람이 그렇게 일하면 죽는다고? 그런다고 들을 형이야? 분명 일 생기면 도로 응급실로 달려가겠지. 형이 이알이라고 부르던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 그것도 배웠군.
무복 허리끈을 조이고는 거울을 보았다.
오늘은 용봉지회가 시작되는 당일. 물론 본선은 아니고 예선전이 시작된다.
“무당파분들이나 공손세가랑 개방분들에게도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
“그분들도 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면 양해해 줄 거야. 사람은 잠을 자야 해, 형. 밥을 먹어야 하고.”
사마현은 무복으로 갈아입은 형을 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형, 잘 어울린다. 이렇게 입으니 의원이 아니라 무인 같네.”
“오냐.”
“빈말 아닌데 그러네. 아무튼 그런 인사는 예선 끝나고 해도 되는 거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용봉지회는 강호의 가장 큰 행사.
다 큰 어른들이 치고받고 했다가는 혈사가 일어날 테니 젊은 후기지수들이 서로 합을 겨루게 하는 게 그 목적이다.
후기지수는 문파의 미래이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상대 문파의 미래를 점칠 수 있게 되는 법.
어찌 보면 10년 후 강호의 축소판이 용봉지회라고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중한 게 없을 테지.
이번에는 무슨 생각인지 정파와 사파 모두 아우르는 용봉지회를 열게 되었다.
‘맹주님은 사파의 힘도 빌리려는 거군.’
그 속내는 비단 진천희뿐만 아니라 장로급의 강호인이라면 쉬이 짚어 낼 수 있다.
“너는 예선 언제인데? 나는 7조다만.”
“나는 24조니까 아직 멀었어.”
“그러냐?”
“형은 비무 하고 다시 이알 갈 거야?”
“그냥 응급실이라고 해. 일단 돌아가는 꼴을 보고 급환이면 가야겠지. 하지만…… 음… 현아. 꼭 다치는 사람이 생겨야 할까?”
“비무잖아. 다치는 건 당연하지.”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승부가 끝나도 다치지 않으면 응급실에 갈 필요도 없고 우리 백린의각 일도 줄지 않을까……? 물론 항복을 받아야 하니 죽도록 아프거나 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다소 일어날 수도 있지. 하지만 말이다, 환자의 삶의 질도 좋아질 거고, 내 일도 줄잖아.”
“형…… 비무 상대는 무인이라고 부르지 환자가 아니야.”
“결국 같은 말이잖아. 현아, 어차피 실려 오면 환자야.”
사마현은 보았다.
무복을 입은 자신의 형의 동공이 스산하게 빛나고 있음을.
물론 현기로 가득 찬 맑은 눈빛이었고.
형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그런데 어지간한 광인보다도 섬뜩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 그렇지…… 형…… 형이 닥치는 대로 다 패서 항복시키면 응급실의 일이 줄……겠지.”
“그래. 내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100여 시간을 풀로 뛰면서 깨달았어, 현아. 비무라는 게 꼭 그렇게 누군가가 다쳐야 할 필요는 없는 거야.”
사마현은 생각했다.
형의 무학은 심후했고, 형에게는 삼 갑자 내공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이룰 강철 같은 의지와 응급실에서의 악몽적 기억까지 모두 있었다.
무인으로 치면 은원과 실력과 성격이 모두 모인 셈.
큰일을 이루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형…… 만약에 나 중간에 만나면 봐줄 거야?”
“형은 평화주의자다, 현아. 그러니 네가 항복하면 돼.”
“안 하면?”
“사부님께서 호신용으로 가르쳐 주신 신공이 하나 있어. 칼까지는 안 쓰고 해 볼게.”
제갈린이 쥐여 준 알라의 요술봉.
황보무휘를 상대로 실전 테스트도 했겠다, 이 제자, 응급실의 평화를 위해 알차게 쓸 계획이다.
‘사 대 당주님들께서 좋아하시겠군.’
진천희만큼 갈리신 건 아니지만 침구당과 추나당도 노고가 컸다.
그분들도 수만 번 생각하셨을 거다.
비무고 명예고 은원이고 나발이고, 모두 재워 버리는 히어로를!
“일단 비무 대진표는 나왔어?”
“여기.”
사마현이 건네준 대진표를 훑어보다가 진천희가 물었다.
“원래 늘 이런 식으로 짜니?”
“응. 역시 위화감을 눈치챘네? 원래 위선적인 무림맹 놈들이 수를 잘 써.”
“무슨 소리야?”
“32개의 조 안에 구파일방과 팔 대 세가 소속의 후기지수가 하나도 같이 붙어 있지 않다는 게 우연 같아? 서로 싸우다가 예선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주최 측의 배려지~”
“…….”
“생각보다 표정이 담담하네. 형 성격에 실망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이지.”
“무림맹주가 공명정대한 사람이라고는 해도 실무진은 실무진의 속셈이 있는 법이니까.”
아니, 과연 맹주는 모르고 실무진이 알아서 한 걸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파일방과 팔 대 세가는 무림맹을 구축하는 핵심.
누구 하나라도 1회전에서 탈락해 치욕을 보이게 된다면 그런 개망신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있게도 해당 문파나 세가와 거래를 이어온 상단과 표국, 또는 그 지역과 유착하는 관리들에게도 영향이 간다.
물론 겉으로는 비웃는 일도 없고, 당장 바뀌는 것도 없다.
다만 화무십일홍이 될 문파에 연을 오래 대지는 않는다.
보통 가능성이 있는 후기지수가 많은 문파에 선물을 보내는 것이 그 시작.
지구나 이곳이나 가진 자들만큼 권력에 예민한 존재도 없다.
무가에서 권력은 무(武)에서 나오고, 그것이 모든 소득과 명예를 차지하는 법.
‘그러니 처음부터 돈을 고른 사마현이 별종은 별종이지.’
진천희가 말했다.
“맹주님의 뜻이든 아니면 실무진의 뜻이든 변화를 싫어하는 건 확실하네.”
“그게 끝이야?”
“의원은 의원의 일을 할 뿐. 다른 일까지 가타부타 할 생각은 없어.”
그랬다. 진천희는 의원의 일을 할 생각이다.
‘미래의 환자’를 ‘미래의 건강한 기절자’로 만드는 일이다.
잘린 사지 어딘가를 봉합하면서 이 환자의 수족이 무사히 복구가 될지, 지금 일어난 출혈과 염증을 상대로 어떻게 처방을 할지.
방금 전 일격으로 장기 손상이 왔는데 이걸 절제해도 정상적으로 일상 영위가 가능할지 걱정하는 미래보다는 훨씬 알차고 ‘물리적’으로 건강한 미래!
무림의 응급실에서 닷새를 버틴 진 교수는 그렇게 과로로 돌아 버렸고.
지금부터는 물리적 평화를 추구하기로 했다.
‘모든 일에는 예방이 중요해. 그래. 내 양 어깨에 백린의각 스태프들의 과로가 달려 있다.’
“그나저나…… 구파일방과 팔 대 세가 다 해도 열여덟이잖아. 32조 중에서 남은 조는 대충 채워 넣은 거야?”
“아니~ 형처럼 특별한 사람들도 따로 뺐어.”
“나 같은?”
“구파일방이나 팔 대 세가에 속하지는 않지만 정파와 협력 관계인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사파도 용봉지회에 참가하잖아. 걔들은 적당히 싸우라고 뒤섞어 놨더만.”
“……그걸 사파에서 내버려 둬?”
“당연히 사파는 사파식으로 해결하고 있어. 혹시 알아? 갑자기 팔 대 세가 자제가 아침밥 먹고 피부에 이상한 발진이 나서 기운이 없을지.”
“……개판이군.”
이 와중에 생각나는 건.
‘약재당주님이 안 오셨으니 침구당주님이 대신 그것도 일하고 있겠군.’ 하는 서글픈 생각.
사마현이 진중하게 말했다.
“여기는 권모술수가 판치는 도산검림의 강호 무림. 나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니까~”
“배탈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긴 하네.”
“비무장도 아니고 진짜 독은 안 써. 진짜 그랬다가는 뒷일 감당 못 하니까.”
정파도 대진표로 장난을 쳤듯, 사파도 적당히 장난친 수준인가.
정파만이 용봉지회에 참가했을 때는 정파 미래의 축소판이었다.
이제는 사파까지 들어왔으니 강호 미래의 축소판이 되었다.
“그래, 내가 힘낼게. 현아, 이 형이 힘내서 평화를 지킬게!”
진천희는 사마현의 어깨를 붙잡고 각오를 다졌다.
“이 형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눈빛이 미쳤어!”
대체 무슨 눈빛을 말하는 건지 진천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침구당주님, 추나당주님! 부술당 상의원, 중의원 스태프분들! 제게 힘을 주십시오……!’
이 알라의 요술봉으로 반드시 끝까지 올라가 한 명의 환자라도 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