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61
제 961화
여하륜은 그런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다가 차를 후룹 마셨다.
“형. 정말 강해졌군.”
무공 말하는 모양이다.
진천희는 붉어진 뺨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응. 노력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천마신공을 그렇게 쓸 수 있다니. 놀랐다.”
“그래? 나는 천마신공은 오히려 이런 식으로 쓰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여하륜이 물었다.
“그런 식?”
“혹시 색에 대해 알아?”
“설명을 해주면 좋겠군.”
“…….”
깨달음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다.
언어로 담을 수 있는 것은 그 깨달음의 극히 일부, 자칫하다가는 오히려 훗날 얻을 성취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렇기에 진천희는 푸른 눈을 뜨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약돌을 고르듯 단어를 하나씩 골라내기 시작했다.
“빨강, 노랑, 파랑, 하양, 보라. 그런 여러 가지 물감을 전부 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모른다.”
“검은색이 돼. 진한 검은색. 내가 본 천마신공 역시 그랬어. 진한 검은색 같은 거지. 그렇기에 추출만 잘 할 수 있다면 다른 색과 섞기도 좋고.”
“흠……. 그렇군. 그래서 독운이 독공과 천마신공을 같이 수련한 건가.”
후릅-
진천희는 깊게 차향을 들이켰다.
숲의 향기가 목 안쪽 비강까지 가득 채운다.
“아마 다른 소교주들도 그럴걸. 저 흑운이라는 자는 합마공을 썼으니까. 아마, 순수하게 천마신공을 그냥 쓰고 있는 건 너뿐일 거야. 천마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종육가는 경험으로 이미 이 정보를 알고 있는 거고……. 그 외의 소교주들은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었겠군.”
“그런 의미에서 네가 대단한 거지.”
“그런가? 허나, 천마신공만 수련해도 달리 부족함은 없었다.”
“…….”
……다른 소교주들이 들었으면 아주 많이 짜증 냈겠군.
그만큼 천살성의 재능은 다른 단점을 덮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이니까.
진천희가 말했다.
“그나저나 소교주 쟁탈전이라……. 하긴, 슬슬 시기가 되긴 했네. 아니 오히려 한참 지난 건가?”
“알고 있었나?”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어.”
“…….”
여하륜은 어떻게 형이 그걸 알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진천희도 구태여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두 사내에게는 그 짧은 문답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지금 소교주는 몇이지?”
“나를 포함해 다섯이 남았다.”
“다섯이나…….”
생각보다 많이 남긴 했다.
여하륜이 말을 이었다.
“본교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천마께서 하나의 소교주만 남기라고 했으나……. 그것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지. 내가 만나러 갔던 간자도 본교의 변화는 몰랐던 것 같았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려나.’
제국은 넓다. 더럽게 넓다.
당연히 천뢰응 같은 영물이 전서를 나른다고 해도 며칠은 꼬박 걸리는 상황.
거기다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전서의 양이 정해져 있는 데다가 탈취를 대비하여 암호로 써야 하니 전달하기도 쉽지 않다.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십만대산은 너무 멀어.’
어지간한 새외보다도 먼 곳이 바로 십만대산이다.
여하륜이 말했다.
“일단 본교에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일어나려는 여하륜을 진천희가 붙잡았다.
“……형?”
왜일까.
이대로 여하륜을 보낸다면 두 번 다시 못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영원히 평행선을 그리며 달려갈 것 같은 감각.
아니다. 한 번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마지막으로 볼 때는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기묘한 운명의 분기점.
그 분기가 지금이라 말하고 있었다.
피이이이이잉——.
진천희 눈이 순식간에 기묘한 빛을 낸다.
왜인지 비슷한 일을 경험해본 것 같았다.
이 손으로 여하륜을 죽이고, 그 역시 진천희를 죽였다.
서로의 시체를 끌어안고 죽었던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도 눈이…… 내렸을까.
형제의 핏물을 뒤집어쓰고.
기억?
아니다. 단 한 장면도 떠오르지 않는 게 어찌 기억이라 할 수 있겠나.
예감?
비슷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강렬하다.
육감?
모르겠다. 하지만 여하륜이 떠나려는 순간, 손끝이 따끔거린 건 사실이니까.
그저 기분.
기분만으로 선택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책사로서의 배움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진천희는 여하륜을 붙잡는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다음 말을 생각했다.
“내 생각에 그건 아닌 것 같아.”
“……?”
“이대로 갔다가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 너에게 정보가 전달이 안 되었다는 것부터 이미 불공정하잖아. 이건 공평한 싸움이 아닌 것 같은데. 애초에 저쪽은 마종육가의 지원을 받는 것부터 불공평한 출발선을 가지고 있고.”
논리.
다행히 논리가 있다.
그를 붙잡을 논리가.
“그런가. 하긴, 지금 상황에서는 천마께서 어떤 의중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없고 믿을 수도 없겠군.”
“그렇겠지. 그런데 너 왠지 웃고 있네?”
여하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 녀석도 사실 붙잡아주길 바랐던 건가.
여하륜은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나는 일월의 의지를 믿을 뿐이다. 형은 좀 더 본교에 대해서 알아야 할 듯하군.”
“아니, 내가 일월신교의 교리에 대해서 알아서 뭐 하게…….”
“활인천마.”
“크윽!”
진천희는 조금 죽고 싶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내가 알 필요가 있나……? 애초에 내 게살탕수 뺏어가셔서 강제로 주고 갔잖아?”
“형. 그 대가로 천마신공을 배웠으면 남는 장사다. 광증에라도 물들면 모르겠는데, 형은 아예 천마신공으로 생긴 심마조차도 무학에 넣어 쓸 수 있게 되어 활인천마라고 스스로를 칭하게 된 것이지.”
“……그 호칭은 그만해 주지 않을래?”
진천희는 접싯물에 코를 박고 싶어졌다.
“왜? 멋지고 강하지 않나. 앞으로도 활인천마라고 칭하고 다니자.”
“그거… 좋은…… 생각… 활인천마… 멋지다…….”
문득,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비록 방심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사람의 기척을 없앨 수 있던가.
심지어 황구조차도…….
‘아니, 황구는 자고 있다.’
냄새나 기척은 몰라도 소리까지 못 듣는 건 이상했다.
진천희와 여하륜, 모두 동시에 옆을 본다.
그곳에는 복숭앗빛 머리색에 학사의를 입은 여성이 그들과 같은 탁자에 앉아 있었다.
허나, 뭔가 이상했다.
몸 뒤에 있는 문, 그 문의 윤곽이 비쳤다.
반투명한 몸.
‘환상? 실체가 없어 보이는데. 일종의 주술 같은…… 건가?’
진천희의 두뇌가 곧바로 다음을 깨닫는다.
‘주술 인간.’
방금 떠올린 단어임에도 진천희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 본좌는…… 심혼귀령가의 가주… 주유려…….”
“주술로 저희를 찾은 겁니까?”
“그래…. 본좌는…… 그런 게 특기… 천기역행자…… 천살성… 두 개의 특이점… 주술로 찾기…… 쉽기도 하지만… 천마신공을 익힌 자이기에… 더욱 특정하기 쉬우니까…….”
주술로 찾기 쉽다고?
그게 정말 쉬웠다면 혈선교와 드잡이질을 할 것도 없이 옛날에 납치라도 당했을 터.
‘필시 주술의 고수다.’
모산파의 장문인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위 단계의 경지.
여하륜이 물었다.
“심혼귀령가의 가주라고? 그 자리는 오랫동안 공석이었다만.”
“본가의… 가주는 오로지…… 본좌뿐이니까…. 다른 가문들과는 다르다……. 자… 천살성 여하륜… 소교주인 너에게…… 천마께서 전언을… 남기셨노라…….”
그녀는 구부정한 허리를 쭉 폈다.
곱상한 외모와 구부정한 상체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꽤나 큰 키, 그리고 어깨 역시 넓고 단단하여 무골.
그것도 꽤나 잘 발달된 극상의 무골 같아 보였다.
‘허나, 그럼에도 주술사. 그것도 심혼귀령가의 가주라.’
“말해라.”
“후후후……. 그런 불퉁함도… 귀여워……. 그럼… 전해 주마…….”
그녀는 여하륜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여하륜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넘어 할 수만 있다면 강환이나 먹여줄 것 같은 표정이지만.
이윽고 환영의 모습이 천마의 모습으로 변했다.
빛 한 점도 반사하지 않는 새카만 눈동자.
그리고 그만큼이나 어두운 머리카락.
무늬 없는 무복은 가난한 강호인이나 입을 것처럼 허름하였으나, 그녀가 입으니 정갈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지독하게 금욕적인 여인이나, 뒤집어서 보면 그녀처럼 탐욕스러운 자가 없다는 것을 강호의 모든 이가 알고 있다.
그랬다.
그저 환영이 모습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찌리릿-
팔뚝의 소름이 위험신호를 뱉으며 곤두선다.
‘미친, 그사이에 더 강해진 건가.’
진천희는 황망한 눈으로 천마를 본다.
그저 환영일 뿐인데도 진천희는 그녀의 의념을 조금이라도 엿본다.
물론 ‘본다’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강대하지만. 그렇게 강대하기에 환영조차도 희미하게 반사해내는 것이지만.
진천희는 십만대산의 거대함을 보았다.
그녀는 진실로 거악(巨惡).
세상을 마(魔)로 물들이기 위해 살아있는 자였다.
그런 그녀가 눈을 뜬다.
[천살성. 나의 제자가 된 꼭두각시야. 아마도 천기역행의 아해가 함께하겠지. 여(余)가 하늘의 괴뢰(傀儡)에게 전언을 남기노라.]이 목소리. 이 위압감!
틀림없는 천마다.
[너에게 명하노니. 다른 소교주들을 모두 잡아먹고, 내 앞에 서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니…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노라.]웃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로 그녀는 분명 여하륜에게 모두를 잡아먹으라 이르고 있었다.
‘즐기고 있는 건가?’
이윽고. 그 말을 끝으로 환영이 사라진다.
심혼귀령가의 가주 주유려의 환영으로 모습이 다시 변했다.
“전했다……. 발버둥 치고… 살아남아 보아라…….”
그녀는 졸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안 되지. 정보 하나라도 더 내놓으셔야지!’
여하륜이 지존천마 때보다 인간관계가 좀 더 넓어졌고 수하가 많이 살아남았다고는 해도 마종육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철저하게 언더독으로 싸우는 중 아닌가.
작은 정보라도 이쪽은 소중하다.
진천희는 여하륜의 책사가 되어주기로 했다.
“잠깐.”
“……?”
다행이다.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진천희는 빠르게 입을 털었다.
“그래서 마종육가들도 하륜이를 죽이려고 전부 달려들 겁니까?”
“재미있는… 아이…구나……. 전부는…… 아니다……. 본가를 비롯한… 다른 놈들의 진짜 정예는… 혈선교 놈들과의 전쟁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소교주의 수하들은… 같이 움직이겠지…….”
“당신들도 혈선교를 적대하긴 하는군요.”
“너… 정보…… 얻어 가려고 하는구나…. 현명한 자세….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지……. 나도 네가 싫지…… 않으니까.”
그녀가 눈을 감는다.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곧… 놈들은 없어질 것이다…. 놈들의 교주도… 천마께서… 그 목을 베어낼 터다…. 무존 때문에 그 시기가 늦어졌지만… 자아. 그러면… 천기역행자… 너는 네 마음대로 행하라……. 그것이 마(魔)의 마음이니… 후후. 후후후……. 귀여운 천살성… 귀여운 책사…….”
그 말을 끝으로 주유려가 사라졌다.
“…….”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다는 듯.
“형,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정보를 얻어 주다니.”
여하륜은 감동한 모양이다.
하지만 진천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부터 분기점이다.’
좀처럼 물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는 게 바로 천마.
그녀가 움직였다는 것은 즉, 지금이 어떤 분기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나와 하륜이군.’
천기를 거꾸러뜨리는 자, 그리고 천기의 꼭두각시.
반상 한가운데 두 개의 졸(卒)이 서 있다.
졸(卒)은 과연 포(包)를 잡고 마(馬), 상(象)을 잡아내어 마침내.
‘왕(王)을 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반상을 얼마나 많은 자들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