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23
기수는 사매들과 함께 전망대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여기저기 드러나는 강렬한 살기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짜 다 몰려온 모양이네.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사매들 모두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춘매가 걱정스런 어조로 중얼거렸다.
“일월신교에게 우리를 포위할 기회를 준 게 잘 한 일일까?”
기수는 사매들을 안심시켰다.
“하핫! 그래봤자 우두머리 목을 치면 다 흩어질 거라는 사실엔 변화가 없어.”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저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자들과 다른 것 같아.”
그동안 습격한 방파들은 상대적으로 인원도 적고 경비도 허술한 곳만 골랐으니까 정예병들과 격차가 날 수밖에 없었다.
기수가 말했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야. 그리고 우리에겐 기문진이 있잖아. 걱정 마.”
기수는 웃는 낯을 유지했지만 오라는 강시는 안 오고 다른 적들만 잔뜩 몰려온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혹시 사도가 왔을까?’
그러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적의 수가 꾸역꾸역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혈매궁 쪽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기수는 부하들을 연무장에 집합시켜 평소처럼 도법 훈련을 시켰다.
훈련이 끝나자 왕사동이 물었다.
“궁주님. 그냥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까요?”
그 역시 겁먹은 표정이었다.
“걱정 마. 너희들은 감시초소 근무만 정해준 대로 열심히 서면 돼.”
“전서구로 원군이라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괜찮대도.”
“아, 알겠습니다.”
모두들 불안해했지만, 결국은 기수의 생각이 옳은 것으로 밝혀졌다.
인원이 어느 정도 차자 일월신교 교도들은 사흘 연속으로 기문진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무극환혼진은 아무도 뚫지 못했다.
기수는 부하들을 이끌고 진으로 내려가서 적진을 향해 화살을 쏘도록 했다.
적은 무림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야 밖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화살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로 인해 진 안으로 바짝 들어와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왕사동을 비롯한 부하들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완전히 두려움을 떨치게 되었다.
그들은 경계를 서지 않는 인원으로 열 명씩 3개조를 만들어 적이 가까이 접근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활을 쏘는데 재미를 들였다.
저쪽에선 이쪽이 보이지 않는 듯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데, 이쪽에선 목표가 빤히 보이니 거저먹기였다.
사매들도 적의 수가 많은 것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일월신교 측은 방법을 바꾸었다.
사람을 내보내 산채 쪽을 향해 큰소리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혈매궁 궁주와 얘기하고 싶소!”
기수는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하루 종일 떠들어도 대답이 없자 일월신교 측에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기수는 왕사동을 불렀다.
“너희들 중에서 욕 제일 잘 하는 녀석들을 골라서 내보내라. 잘 하면 상금을 주마.”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헤헤….”
산적출신답게 욕 잘하는 부하는 많이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일월신교 교도들은 더욱 분노하게 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사오일쯤 지난 뒤에 기수는 부하들에게 얘기할 말을 지시했다.
“우리 궁주님을 만나고 싶으면 너희들 우두머리가 직접 나서라!”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왔다.
두 명의 고수가 선두로 나서서 내공 가득 담긴 목소리로 산이 쩌렁쩌렁하도록 외쳤다.
“난 일월신교의 대도왕! 이쪽은 풍도왕이라고 한다! 혈매궁의 궁주는 썩 나서라!”
기수과 사매는 감시초소 위로 올라갔다.
기수가 내려다보니 2명의 거한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레슬링 선수처럼 거대한 체격의 소유자로 손엔 전체 길이가 3미터, 날 길이만 1미터는 됨직한 큰칼을 들고 있었다.
그가 바로 대도왕이었다.
옆에 선 자는 훨씬 나이가 들어서 머리카락과 수염이 전부 백발인 노인이었는데 깡마른 체형에 유난히 팔이 길어 거의 무릎에 닿을 정도였고, 금속성의 빛나는 장갑을 양쪽 손 모두에 끼고 있었다.
기수는 그들의 기도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구마왕 중 두 명이나 온 건가? 한 번 붙어보고 싶군.’
강자는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기보다는 호승심을 불러 일으켰다.
기수가 부하들에게 신호를 해서 진의 일부를 바꾼 후 그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혈매궁의 궁주다! 너희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우리 산문을 막고 있느냐?”
기수가 보이자 대도왕과 풍도왕은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생각보다 젊구나.”
기수는 피식 웃었다.
“너희들은 예상대로 늙었구나.”
대도왕이 이를 갈다가 다시 말했다.
“네가 박피왕을 죽였느냐?”
“그렇다. 추수철도 아닌데 낫을 휘두르다가 내 손에 당했지. 하하!”
대도왕의 목소리가 커졌다.
“너는 무슨 이유로 그 일을 둘째 도련님이 시켰다고 말했느냐?”
기수는 대도왕이 둘째 유지광의 편이고, 풍도왕은 장남 유지상의 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하! 오해를 풀기 위해 양측 진영에서 한 명씩 온 거구나.’
그렇다면 진실을 얘기해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대도왕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 그게 무슨 뜻이냐? 왜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느냐!”
“나는 분명히 풍도왕, 박피왕, 한빙왕,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부하들을 닥치는 대로 없애라는 청부를 받아들였고 그대로 시행할 뿐이다.”
그 말에 대도왕을 향한 풍도왕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대도왕은 더욱 당황했다.
“거짓말이다! 둘째 도련님은 네게 그런 청부를 한 적이 없다!”
기수는 좌우의 사매들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청부를 받았다고만 했지, 유지광의 청부라고는 안 했잖아?”
사매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혈매궁에 청부한 주체는 대장군부였다.
기수는 아래쪽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그 사람을 직접 데리고 와라! 나와 대면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풍도왕은 이제 아예 대놓고 대도왕 쪽으로 돌아서서 노려봤다.
대도왕은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오해를 풀러 왔는데 오히려 상황이 더 꼬였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는 대도로 땅을 쿵! 찍더니 기문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기필코 네놈을 잡아 진실을 밝히고 말 것이다.”
기수는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진실은 이미 밝혀졌는데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나.”
혼자서 무극환혼진 안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없었다.
대도왕의 칼은 무시무시한 바람소리를 내며 무슨 포크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위를 부수고 땅을 파냈다.
그러나 기수는 이미 그런 상황에 대비책을 세워놓고 있었다.
대도왕은 조금씩 더 깊이 들어올수록 체력 소모만 늘어날 뿐 기문진의 구성엔 변화를 주지 못했다.
탁지연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쩜 저렇게 무모할 수가 있죠? 기문진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뛰어들다니.”
기수가 대답했다.
“그러게 말야… 홱~! 돌아버리면 평소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꼭 있다니까.”
탁지연은 기수의 겨드랑이를 꼬집었다.
기수는 당하기만 하지 않고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리고 나서 왕사동에게 손짓을 해서 진 일부를 열어주도록 했다.
춘매가 물었다.
“궁주. 왜 진을 열어주라고 한 거야? 저 자가 쉽게 들어오잖아?”
“그래야지. 힘을 너무 많이 빼면 싸움에 재미가 없어지니까.”
“저 자와 싸우려고?”
“응. 몸이 막 원하고 있어.”
기수는 두 주먹을 움켜쥔 후 부르르 떨었다.
강적과 싸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탁지연이 말했다.
“궁주. 왜 싸움을 어렵게 하려고 해요? 저 자는 지금 진에 완전히 갇혔어요. 한 시간쯤 놔두면 혼자 휘둘러대다가 힘이 다 빠질 텐데…”
“아냐. 그러면 재미가 없다니까.”
그러자 풍매가 말했다.
“궁주. 그런데 저 자를 꼭 궁주가 처리해야겠어?”
“당연하지. 나와 싸우겠다고 오는 거잖아?”
“우리한테 양보할 생각은 없어?”
“뭐? 하하! 너희들이 구마왕을 상대하겠다고?”
“왜? 못할 것 같아?”
“위험해. 그냥 내가 하게 놔둬.”
기수는 사매들이 다치는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풍매는 의외로 진지했다.
“궁주. 연무할 때 우리 육궁진을 상대로 이긴 적 있어?”
“그거야 뭐….”
그들을 제압하지는 못했지만 진짜 작정하고 파천강기 혹은 붉은 암경을 사용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사매들도 목숨 걸고 사생결단하는 살초를 쓰지는 않았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교주 다음으로 꼽히는 구마왕인데….”
그러자 추매가 나섰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내공도 증진시키고 검진 연습도 했는데, 여섯 명이 고작 한 명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단 말야?”
그녀도 풍매처럼 한 번 싸워보고 싶은 눈치였다.
“너희들과는 체급이 다른데….”
대도왕은 키 195에 체중 150kg은 될 것 같은 거구였다.
몸무게로 따지면 사매 3명을 합쳐야 비슷한 것이다.
그런 거인이 휘두르는 큰칼을 과연 당적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기수가 망설이자 춘매가 말했다.
“우리도 강적하고 싸워봐야지.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춘매뿐만이 아니었다. 동매와 설매, 그리고 탁지연에게까지 그 느낌이 전염되어서 모두가 다 싸우겠다고 나섰다.
기수도 실전경험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수와 싸운다면 지금보다 좋은 상황도 없을 거야. 대도왕이 진에 갇혀 있으니까 위험해지면 언제든지 피할 수 있잖아.’
그렇게 생각한 기수는 그녀들의 요구를 수락했다.
“좋아! 너희들이 해 봐.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는데, 저 밖의 풍도왕은 내 차지다. 그 놈은 너희들이 탐내면 안 돼.”
“걱정 마. 궁주.”
“대도왕이 한 시간 정도 헤매도록 놔둔 후 싸워 봐.”
그러자 풍매가 말했다.
“사냥감이 힘이 빠지면 무슨 재미야? 사저들, 우리 가요!”
“좋아!”
사매들은 검을 뽑아 들고 대도왕을 향해 달려갔다.
기수도 검과 유성추를 챙겨 들고 그녀들을 따라갔다.
흥분한 김에 기문진으로 뛰어든 대도왕은 덜컥 겁을 먹은 상황이었다.
온 길을 되돌아 나가려고 해도 주변 풍경이 자꾸 바뀌어서 동서남북조차 분간이 안 되었다. 꼼짝없이 갇힌 것이다.
그는 산 정상이라고 짐작되는 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사내라면 당장 나와라! 비겁하게 이 따위 사술 뒤에 숨지 말고.”
“호호호!… 네가 뭐라고 감히 우리 궁주님을 오라 가라 하느냐?”
대도왕은 여섯 명이 여인이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기문진이 생각보다 더 신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네놈을 죽일 지옥의 사자들이다.”
“흐흐흐…..”
대도왕은 여섯 미녀를 훑어봤다. 다들 키가 크고 몸매도 기가 막혔다. 게다가 한 번 보면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의 미녀들이었다. 한 명을 만나기도 어려운 미녀가 여섯이나 한 자리에 있으니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네년들은 내가 일을 마친 뒤 마음껏 가지고 놀아주마. 어서 궁주를 나오라고 해라.”
“이 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풍매가 먼저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대도왕은 음흉하게 웃고 있다가 그 공격에 깜짝 놀랐다.
빠르고 정묘한 초식에 내력이 가득 담겨 있어서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허겁지겁 피하다가 겨우 기회를 얻어 대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밀리던 기세가 비로소 조금 진정되었다.
춘매가 풍매에게 물었다.
“우리가 도와줄까?”
“아니. 아직은 괜찮아.”
풍매는 자기 혼자 싸워서 이겨보고 싶었다.
모두가 함께 있을 때는 몰랐지만, 대도왕의 칼 움직임이 훤히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내공이 상당히 증진된 게 분명했다.
탁지연이 대장이 된 이후로 절정의 순도도 높아지고, 음양대법의 효과도 올라간 것 같아서 그녀에게 살짝 고맙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 는 것이 신났지만 구경하는 기수는 조마조마했다.
유성추를 손에 들고 언제든지 풍매가 위험해지기만 하면 곧장 던질 준비를 했다.
지난번에 회전시켜 던져서 다리를 옭아매는 식의 사용법을 찾아냈기 때문에 언제라도 대도왕의 팔이나 칼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풍매는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
기수는 그녀가 사숙의 검술을 대성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구마왕 중 한 명을 상대로 버티다니 굉장한데?’
어쩌면 혈매궁의 힘이 생각보다 엄청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매들 얼굴을 보니 다들 싸우고 싶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야! 넌 그만큼 재미 봤으면 됐어! 이제 내 차례야!”
하는 소리와 함께 동매가 뛰어들어 싸움에 가세했다.
대도왕은 두 사람을 상대로 쩔쩔맸다.
그러자 동매가 풍매에게 비키라고 했고 풍매는 아쉬움을 접고 물러섰다.
그렇게 동매가 10분 정도 마음껏 검술 실력을 확인하고 나자 다음에 추매가 교대했고, 다른 사매들도 차례차례 대도왕과 겨루었다.
대도왕은 기가 막혔다.
아녀자라고 우습게 봤는데 다들 검술이 매섭기 짝이 없었다.
힘으로는 자신이 월등히 앞서지만 상대를 맞추지 못하면 소용없었다. 그리고 상대의 검에 요혈을 찔리면 자기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나 상대의 검술을 파악하고 우세를 점할라 치면 교대해 버리니 자기만 체력이 소진될 뿐이고, 상대는 쌩쌩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지속되면 자기가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춰두었던 비기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