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49
협곡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기문진은 어렵게 만들더라도 드나드는 사람 모두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통과하는 방법은 쉽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었다.
덕분에 기수와 아투사는 은밀하고 민첩한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었고 협곡 내부에 들어선 이후에도 안쪽의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기수는 일단 주변 정황을 살펴보았다.
깎아지른 듯 한 두 개의 암벽 사이에 계류가 흐르고 양쪽으로 비스듬한 언덕과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숲 사이로 초옥들이 보였다.
‘꽤 많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을 훈련시킨 거지?’
기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방의 이곤과 동창의 곽염, 그리고 천마교의 멸천제와 몇 명의 마령들이 그 대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지어진 초옥들의 수용 가능 인원은 100이란 숫자를 훌쩍 넘을 것 같았다.
그것은 한 번에 연공할 수 있는 사람의 최대치가 100이라는 의미이지 이제까지 이곳을 거쳐 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는 아니었다.
‘설마… 무슨 군대 같은 걸 만든 건 아니겠지?’
기수는 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답답한 존재는 다음 사도를 처치하기 전엔 손톱만큼의 조언도 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만약 주군이란 자가 무림 주요 문파에 자기 부하를 심어놓고 난세를 준비했다면 군대를 보유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절정 고수 키우기보다는 그 쪽이 훨씬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불안감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주군이란 자가 단기간에 고수 만드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이미 입증된 사실. 거기다가 곱하기 N 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그는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냐! 난 12사도만 처치하면 끝이라고. 3분의2인 8명은 끝냈고, 3분의1인 4명만이 남았을 뿐이야.’
그러나 그 나머지가 진짜 어려운 도전일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캠프에서 조련된 병사들이 방패 역할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투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은 적은 19명이에요. 그리고 남쪽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져요.”
기수는 씩 웃었다.
뭔가 제대로 수련을 한 살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사신파라는 게 어새신의 어원인가?’
영어 발음과 페르시아 원어 사이의 차이를 고려하면 맞을 것도 같았다.
마교의 전신인 명교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식의 무협지를 읽었던 기억도 났다.
‘아투사의 이상한 무공이 천마교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
혈천제나 자영을 보면 천마교에 뭔가 독특한 스타일의 무공이 있는 건 분명했다.
아투사가 짧은 대롱을 꺼내고 복면을 당겨 그것을 입에 대며 말했다.
“나를 따라오세요. 조용히 적의 수를 줄여야 하니까.”
그녀의 신법은 빠르고도 극히 조용했다.
기수는 원래 자기가 앞장설 생각이었지만 두말 않고 아투사를 따라갔다.
자세를 낮춘 미녀를 뒤따르는 편이 볼 게 많았기 때문이다.
‘살집은 자영만큼 없네.’
하지만 라인은 좀 더 섹시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문진을 믿기 때문인지 따로 경비병은 없었다.
첫 번째 도달한 초옥 안에선 4명의 사내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중이었다. 아투사는 창 너머로 대롱을 들이밀고는 짧게 투! 하는 미약한 소리를 4번 냈다.
계속 아래쪽을 보고 있던 기수는 그녀 어깨 너머로 창 안쪽을 보고 놀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4구의 시체가 생긴 것이다.
얼굴색이 순식간에 검푸르게 변한 것을 보니 아까와 달리 독침을 쏜 게 분명했다.
“다 죽이면 안 돼!”
“적이 훨씬 많아요. 가능할 때 최선을 다해 줄여 놔야죠.”
기수는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자기도 여유 부릴 몸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초옥은 사내들의 잡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투사가 수신호로 둘은 자기가 처치할 테니, 둘은 기수에게 맡으라는 신호를 보낸 후 검지를 입술에 댔다. 조용히 끝내자는 의미였다.
기수는 검은 복면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깊고 맑은 눈, 오똑한 코, 그리고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에 빠져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내가 왜 이러지? 훨씬 예쁜 애들도 많이 만났었잖아?’
훨씬이라는 건 좀 어폐가 있었다.
미(美)라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아투사의 얼굴을 보면 볼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사실이었다.
‘이국적이라서 그러나?’
아름다움은 인종의 구분도 넘어서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남자가 빤히 보면서 볼이 상기되니까 아투사도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양 볼에도 살짝 홍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아투사는 기수와 달리 자객의 본분에 충실했다.
정신 차리라고 기수의 눈을 똑바로 보며 검지로 콕! 찌르는 시늉을 했다.
“아!….”
기수는 딴생각 중이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초옥 안의 대화가 딱 중단되었다. 인기척을 감지한 것이다.
아투사는 즉시 대롱을 물고 독침을 발사했다.
기수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즉시 창 안쪽으로 잔백지를 날렸다.
다행히 이쪽이 기습에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4명 모두를 제압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이 쓰러지면서 탁자 위에 있던 큰 접시를 바닥에 떨어트린 게 문제였다.
요란한 소리가 나자 건너편 초옥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물었다.
“어이! 거기 무슨 일이야?”
기수와 아투사는 시선을 교환한 후 그쪽 초옥을 향해 달렸다.
대답이 없자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그는 기수의 잔백지에 맞아 쓰러졌고, 그 모습을 본 초옥 안의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 적이다! 침입자다!”
기수는 문을 부수며 뛰어 들어가 적을 공격했다.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들은 먼저 간 동료들처럼 쉽게 당하지 않았다.
기수의 잔백지에 한 놈이 쓰러졌지만, 나머지 둘은 같은 수법에 당하지 않고 민첩하게 좌우로 나뉘어 협공을 가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문을 부순 기수만 봤을 뿐, 그 사이 뒤쪽 창문으로 은밀하게 침입한 아투사의 존재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뒤통수에 각각 독침과 표창이 박혀 생을 마감한 것이다.
기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고, 아투사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맑은 미소에 기수는 찌릿함을 느꼈다.
‘자객치고는 참 선한 미소군.’
어쩌면 착하고 선량한 소녀가 아사신파에 속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바람에 몹쓸 기술을 배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옥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짧은 신음을 토했다.
어느새 초옥 주변이 포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수와 아투사는 본능적으로 서로 등을 의지하고 섰다.
적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모두 암습에 의한 것이었고, 개활지에서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인 것이다.
그들 사이에 해골처럼 바짝 마른 노인이 서 있었다.
기수는 그가 바로 사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도는 아니군.’
아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와 싸울 컨디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은 자루가 짧고 도신이 휘어진,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 진영이 쓰던 군도 디자인이었다.
상아로 만들었는지, 흰 재질의 손잡이에 커다란 홍옥이 박혀 있었다.
사범이 기수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기수는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너희들에겐 대답할 의무만 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남자가 검으로 찔러 들어왔다.
“사범님에게 그게 무슨 무례한 언사냐!”
기수는 검극이 몸에 닿기 직전에 허리를 회전시켜 피하며 상대의 가슴에 일 장을 후려쳤다.
그러자 퍽! 소리와 함께 그의 장포 등 쪽이 찢어졌다.
멸천제를 이겼던 격산타우의 파동타법을 사용한 것이다.
“으윽…. 커억!… 으으….”
폐와 심장에 극심한 타격을 입은 사내는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다가 죽고 말았다.
기수 입장에선 좀 잔인하게 손을 쓴 셈인데, 미안하거나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는 건 전혀 없었다.
상대는 고수였고, 자기를 죽일 작정으로 검을 휘둘렀으니까 알량하게 손속에 사정을 둘 계제가 아니었다.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에 파동 타법의 실전 적응 훈련을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었다.
동료가 단 일 합에 목숨을 잃자 적은 흠칫 놀라 다들 한 걸음씩 물러섰다.
가슴을 쳤는데 힘의 여력이 등 쪽으로 삐져나오는 타격법을 보고 보통 고수가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기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거다.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봤겠지?”
아투사가 기수 쪽으로 반 보쯤 당겨 섰다.
그가 고수인 줄은 알았지만 방금의 일격을 보고 좀 더 신뢰감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사범이 허리에 차고 있는 킬리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범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놈이 누구인지, 누가 시켰고, 여기엔 어떻게 들어왔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내가 말했지. 너희에겐 대답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라고.”
“후후…. 좋다. 전력을 다해 상대해주마! 비환진을 펼쳐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살아남은 5명의 무사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기수와 아투사를 협공해 왔다.
기수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막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합격진의 위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은근히 아투사가 걱정되었는데, 그녀는 쌍칼을 회전시키는 특유의 무공으로 잘 버텨내고 있었다.
‘문제는 난가?’
사범이란 자가 버티고 있는 상태에서 적의 합격진과 평수를 이루어서는 희망이 없다고 봐야 했다. 컨디션 핑계나 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기수는 세 단전을 모두 가동시키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기혈 흐름이 예전만 못했지만 전투 의지를 구현해낼 정도는 되었다.
합격진의 변화보다 빠른 선풍보와 분광권.
적은 당황했고, 치밀하게 손발을 맞추던 진의 움직임은 금세 흐트러졌다.
기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새로운 타격법을 적극 활용하여 적을 후려쳤고, 아투사도 톡톡히 한몫을 해서 오래지 않아 다섯 명 모두를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버렸다.
사범은 제자들이 모두 죽어가는 데도 칼을 뽑지 않고 구경만 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두 눈이 무시무시한 살광을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수가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히는 동안 아투사가 쌍칼로 그를 겨누며 말했다.
“칼을 내놔라!”
사범은 칼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이것 말이냐?”
“그렇다. 그 칼은 주인이 따로 있다!”
사범은 피식 웃었다.
“이것은 주군께서 내게 선물하신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는 절대로 가져갈 수 없다.”
“오냐! 그렇다면 널 죽이고 가져가마.”
아투사의 양손이 십자로 교차된다 싶더니 표창 서너 개가 한꺼번에 사범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그것들을 쳐냈다.
그리고 표창과 비슷한 속도로 돌진해 온 아투사의 쌍칼 공격을 역시 여유로운 동작으로 일일이 쳐내며 말했다.
“파사국의 무공이로구나. 몇 년 전부터 우리를 귀찮게 하던 그 패거리인가?”
아투사는 악을 썼다.
“부모님의 원수!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후후…. 고작 이따위 실력으로? 곧 네 부모를 만나게 해주마.”
사범의 도법이 바뀌었다.
방어 일변도에서 벗어나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수는 바닥에 떨어진 장검을 주워들고 즉시 싸움에 뛰어들었다.
아투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기수가 가세하자 전세는 즉시 역전되었다.
사범의 도법은 변화가 다양하고 엄중한 경력이 실려 있었지만 기수의 검과 아투사의 쌍칼을 모두 당적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기세를 탄 아투사가 외쳤다.
“당장 칼을 내놔라!”
사범이 비소를 흘리며 말했다.
“날 죽일 능력이 있다면 가져가거라.”
기수는 그가 밀리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는 게 이상했다.
‘혹시 숨겨 둔 동료라도 있나?’
급히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범이 말했다.
“재미는 충분히 봤으니까 이제 슬슬 끝내 볼까?”
순간, 기수는 그의 기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멸천제의….!’
멸천제가 스스로 자신의 혈도를 눌러서 전투력을 끌어올리던 바로 그 수법이었다.
그런데 사범은 따로 혈을 누르는 게 아니라 싸움 중에 자연스럽게 그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의 눈이 빛나자 기수는 황급히 몸을 날렸다.
“아투사! 위험해!”
두 명 중 무공이 처지는 아투사를 먼저 죽이고 1:1 대결로 전환하려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자기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쨍! 소리와 함께 기수의 검이 부러졌다.
사범의 칼은 장검을 부러뜨린 후에도 여력이 남아 기수의 팔을 긋고 지나갔다.
“크윽!…..”
아투사는 깜짝 놀라 기수를 부축했다.
“양소협! 괘, 괜찮아요?”
그녀는 방금 그 일격을 기수가 나서서 막아주지 않았다면 자기가 당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일이었다.
기수는 우선 혈도를 눌러 베인 자리의 지혈부터 했다.
“칼이 꽤 예리하군.”
사범이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하하하!…. 내 제자들을 해친 너희 년놈들을 곱게 죽일 것 같으냐? 한 겹씩 포를 떠줄 테니 기대하거라. 하하하!”
그의 해골 같은 얼굴이 더욱 괴기스럽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