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91
기수는 사득공을 최대한 빨리 처치하고 공주를 도와 한귀비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득공을 제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었다.
무공만 놓고 보자면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은혈대법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종이봉투 꺼낼 여유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타격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멸천제와 동일한 방식일 거라 생각하고 그를 쓰러트릴 때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든 파동 타법을 사용했다.
껍질 너머 내부에 충격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사득공의 단단함은 뭔가 달랐다.
파동이 잘 전달되지 않고 소멸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기수를 괴롭혔다.
붕대 감은 그의 팔과 얽힌 뒤로 따끔따끔한 느낌이 와서 손을 살펴본 기수는 깜짝 놀랐다. 빨갛게 달아오르며 화상과 같은 상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게 뭐지? 설마…“
사득공의 붕대에는 녹색 물이 배어나왔다.
기수는 크게 놀랐다.
‘혹시 붕대 안은 강시 아냐? 그럼 프랑켄슈타인이라도 된다는 건가?’
말하는 거나 움직임에 부자연스러운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붕대 안쪽엔 분명 녹색 체액의 강시가 들어 있을 거라는 의심이 점점 굳어져갔다.
‘젠장! 살아 있는 강시라니…’
무공과 유연성이 업그레이드 되서 파천강기도, 파동 타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칠 때마다 체액이 묻으니 결국엔 이쪽만 피해를 입을 것이었다.
“흐흐흐…. 왜 머뭇거리느냐?”
사득공이 여유롭게 웃으며 팔을 늘어뜨렸다.
“자. 마음껏 쳐보려무나.”
급소를 훤히 드러냈지만 기수는 손을 내지 않았다.
대신 상대의 방심을 이용하여 염정구심술을 시전했다.
사득공은 가슴을 내밀며 한 걸음 다가섰다.
“왜 치지를 못하는 게냐? 어서 마음껏 공격해봐라.”
기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버지와 형이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완성하려 했던 반혼지체를 네가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건 축하한다.”
“뭐, 뭣이라고? 어, 어떻게…”
“하지만 그래봤자 살아있는 시체에 불과하지 않느냐?”
“무슨 개소리냐!”
“여자를 안지 못하는 몸은 개나 줘버리란 뜻이지!”
기수는 양손에 파천강기를 끌어올렸다.
파괴력 강화 목적보다는 손 보호용이었다.
그리고 화류의 호신강기를 확! 일으켜 일단 화염으로 겁을 준 후 상대가 내민 가슴에 연타를 먹였다.
“크윽!… 으으윽!….”
반혼지체를 이룬 사득공은 혈도의 배열이 달라져서 보통사람과 급소의 위치가 상이했다. 그래서 몇 대 맞더라도 상대의 손을 못 쓰게 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엄연히 살아 있는 몸인 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런 화염에 놀라 주춤한 사이 은은한 청색 기운을 띤 기수의 양손이 무차별 난타를 가했고, 요혈을 타격당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아팠다.
기수는 전술을 확정했다.
급소를 쳐서 제압하는 건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패기로 한 것이다.
‘이쑤시개로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은?’이란 넌센스 퀴즈의 정답이 ‘죽을 때까지 찌른다.’였던가… 사득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지면 지지~인 놈이니까 몸은 화류 호신강기로 보호하고, 두 손은 파천강기를 글러브처럼 둘러 보호한 뒤에 반혼지체가 부서질 때까지 패는 것이다.
사득공은 쩔쩔매며 막고, 물러서기에 바빴다.
창칼로도 흠집 낼 수 없는 단단한 몸을 지녔지만 상대의 주먹은 그보다 강했다.
상대의 피와 살을 녹여낼 수 있는 독액을 온몸에 지니고 있지만 상대는 거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혼지체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충분한 대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적을 만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격을 당하다 보니 후회스럽고 당혹스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기수는 나름대로 초조한 마음이었다.
최대한 빨리 죽여야 하는데, 사득공이 끈질기게 버텼기 때문이다.
파천강기 위로 진득하게 번지는 녹색 액체도 기분 나빴다.
혹시라도 피부에 닿을까봐 계속 진기가 더 주입되었다.
“이만 포기해! 넌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어!”
“으으…. 웃기지 마라!”
승세를 탄 기수는 사득공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강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상대도 고수이다 보니 정타를 먹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아투사가 사득공의 배후에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애당초 공주를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한귀비의 움직임이 워낙 거세서 매화육궁진과 공주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기수 쪽 상황을 관찰하니 거기엔 가능성이 보였다.
사득공이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투사는 사득공 뒤로 돌아갔고, 암기를 던진 후 자신의 무기인 쌍칼을 꺼내 들었다.
사득공은 날아오는 암기를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피부를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표창이 튕겨져 나간 뒤에 힐끔 뒤를 돌아본 게 전부였다.
아투사의 쌍칼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찌르고, 베고 별 짓을 다 해봐도 사득공은 끄덕 없었다.
기수가 말했다.
“조심해! 놈의 몸에 강시 체액과 비슷한 게 배어 있어.”
아투사는 쌍칼의 날이 흰 연기를 내는 걸 발견하고 급히 풀에 문질러 닦았다.
그녀는 한 차례 몸서리를 쳤다.
만약 기수나 공주 없이 사득공을 만났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 같았다.
암기도 튕겨내고, 칼날도 들지 않는 상대와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그러나 이대로 구경만 하기는 싫었다.
그녀는 자신이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순간 양손에서 뇌전격의 푸른 번개가 일어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의 쌍칼까지 그 파란색 실뱀 같은 선들이 이어졌다.
철에 전기가 통하는 건 현대인에겐 당연한 상식이지만, 아투사는 그런 식으로 뇌전격이 연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하게 된 터라 마냥 신기했다.
‘그래. 이거라면…’
예전에 기수가 해준 말이 기억났다.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을 칼로 베어 죽이려면 급소를 제대로 자르고도 절명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지만, 뇌전격은 아무리 거인이라도 한 방이라고…
그렇다면 창칼로 뚫을 수 없는 사득공도 마찬가지로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1대1로 싸우는 거라면 무공이 딸려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사득공은 자신의 공격에 대해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악문 아투사는 뇌전격의 칼날을 사득공의 등에 쿡! 찔러넣었다.
“끄아아악!…..”
괴이한 비명과 함께 사득공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가 싶더니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나 의외의 일이라 싸우던 당사자인 기수는 물론, 건너편의 공주와 매화육궁진의 구성원들, 그리고 한귀비도 잠시 손을 멈추고 사득공을 봤다.
사득공은 손을 내저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기수 같은 고수를 앞에 두고 무너진 자세로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아투사는 자신이 해낸 일이 너무나 신기해서 칼끝을 내려 지그시 눌러주었다.
“끄아아~!”
사득공은 다시 괴성을 지르며 사지를 쭉 뻗고 경련했다.
아투사는 얼른 멈추었다.
기수의 얘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막상 그 위력을 경험해보니 실로 엄청났다.
그녀는 칼을 떼었다가 이번엔 사득공이 비틀거리며 완전히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려고 할 때 다시 칼을 슬쩍 뻗어서 사득공의 몸에 갖다 댔다.
사득공은 그 칼을 쳐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억지로 칼날을 움켜잡기까지 했지만, 뇌전격이 발동되자 그 움켜쥔 손을 타고 온몸에 파란 불꽃이 퍼져 나갔다.
“끄으으아아악!….”
사득공이 쓰러지자 아투사는 다시 접근했다.
기수가 그런 그녀를 제지했다.
“자. 이제 그만…”
“하, 하지만 한 번만 더…”
“이제 됐어. 충분해.”
그리고 기수는 발바닥에 진기를 잔뜩 주입한 후 사득공의 머리를 밟았다.
퍽!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는 속절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격파 연습 하듯 고정되어 있는 목표인데 기수가 부수지 못할 리 없었다.
사득공이 죽은 순간, 기수는 온몸을 감싸는 희열을 느꼈다.
뜻하지 않게 사도 한 명을 제거하여 이제 3명만 남게 된 것이다.
곧바로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하구나!]
[잠시만요. 저 지금 급합니다. 나중에 얘기합시다.]
기수는 한귀비마저 처리한 뒤에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짜릿한 전율은 상당 시간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한귀비는 나름대로 계산을 했다.
사득공을 죽인 궁녀와 비급에만 나와 있을 뿐, 실제로는 주군의 휘하 중 누구도 해내지 못한 뇌전격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궁녀.
지금 상황에 그 둘이 가세한다면 자기에겐 빠져나갈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았다.
판단을 내린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공주는 깜짝 놀라 그녀를 추격했다.
한귀비는 공주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웬일인지 주군의 숙적인 궁녀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최대한 간격을 벌려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긴 해서 마지막으로 일격을 가하기로 했다.
“죽어랏!”
한귀비는 들고 있던 단검을 힘껏 던졌다.
공주는 깜짝 놀라 몸을 회전시켰고, 날아오는 단검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나무에 박힌 단검은 부르르~ 떨렸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단검을 본 공주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단검을 뽑아 들고 한귀비를 추적했다.
도망치더라도 단검을 가지고 가야 그녀를 계속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한귀비는 혈매궁 여섯 사매의 추적을 받고 있었지만 거리는 빠르게 멀어져갔다.
공주는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여섯 사매를 추월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한귀비와의 간격을 좁히기 힘들었다.
여러 차례 추적을 당한 한귀비는 경공을 펼치는 중에도 은혈대법의 운용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공주는 한귀비의 등을 향해 단검을 있는 힘껏 던졌다.
파공음을 듣고 잡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한귀비의 경공이 워낙 빠르다 보니 단검은 그녀에게 미치지 못한 채 떨어지고 말았다.
“아! 가지고 가야 하는데…”
공주는 아쉬움에 한숨을 토했다.
그때 기수가 일행에 합류했다.
“어디야! 어느 쪽으로 갔어?”
공주는 한귀비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고, 기수는 선풍비를 최고속도로 시전했다.
500미터, 1킬로미터, 2킬로미터…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한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따라왔다면 모를까, 중간에 가세해서 공주의 손가락 방향만 어림잡아 달려왔으니 애당초 확률이 떨어지는 추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귀비가 사력을 다해 도망친 것도 큰 이유일 것이었다.
결국 기수는 추격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일행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아투사가 희색이 만면했다.
사매들이 칭찬 릴레이 중이었기 때문이다.
기수도 거기에 가세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줬어. 고마워.”
꽤나 골치 아픈 상대인 사득공을 그녀 덕분에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다.
“아이… 뭘요.”
아투사는 손을 내저었지만 겸손함이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단검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보세요. 제가 뭘 찾았나.”
기수는 자루에 박힌 단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어?”
그는 신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온몸에 퍼지는 전율을 정리하느라 한귀비가 던진 단검에 공주가 맞을 뻔 한 광경을 보지 못했다.
공주가 나서서 설명해주었다.
“그년이 나를 죽이려고 던졌어.”
“가, 가만있어 봐. 이게 여기 있으면 이젠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아투사는 웃던 표정을 거두었다.
자기는 부모님이 그토록 찾기 원하던 보물 세 개를 모두 찾아서 기쁘기 한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큰일이 난 것이다.
공주가 긴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어쩌긴… 열심히 찾아봐야지.”
그게 얼마나 막연한 얘기인지 알기에 기수도 더불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투사와 입장이 달랐다.
사도 하나를 더 처치해서 이제 셋만 남게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한귀비를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네비게이션이 고장 나버린 것이다.
이런 줄 알았으면 아까 한귀비를 쫓아갔을 때 일찍 포기하지 말고 좀 더 뒤져볼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다.
그러나 이젠 늦은 일이었다.
여섯 사매는 기수만 바라봤다.
기수는 터덜터덜 대결 장소로 걸어가 사득공의 옷을 뒤졌다.
아무 거라도 단서가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돈주머니와 십여 개의 독 가루 종이봉지, 그리고 짧은 편지 한 장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
편지에 기대를 걸고 펼쳐보았지만, 적힌 내용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만나서 얘기하자.’
그리고 끝에 수결이 있었다.
사매들이 거기에 대해 얘기했다.
“이게 무슨 글자지? 혹시 소(素)잔가?”
“아냐. 청(靑)자 같은데?”
기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갈겨쓴 사인이 무슨 글자인지 알아낸다고 해서 한귀비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