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
기수는 창고 문을 열고 선반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재고 확인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대사형도 진짜 수량을 알고 싶어서 시킨 일이 아니니까 일일이 저울로 재볼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보고할 때마다 대사형도 건성으로 받아들였고, 요 며칠 사이엔 보고 자체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수는 그만둘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걸 트집 잡아 또 때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숫자를 적은 기수는 정두원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요즘 들어 부쩍 짱 박히는 횟수가 늘어난 것 같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온 도관을 다 뒤져도 그를 찾지 못한 기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채 쪽으로 가보았다.
객청과 내실을 슬쩍 엿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여기 있을 리가 없지.’
그러면서 돌아서 나오자니 짜증이 났다.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씨발.”
안 해도 될 일을 맡기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술래잡기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열이 받았다.
바로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지만 귀가 쫑긋, 눈이 번쩍 떠지는 그 소리는 바로 여자가 떡 칠 때 내는 신음소리였다.
안채는 장문인의 거처라 일반 제자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기수는 도저히 그 색기 넘치는 소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소리가 담 옆 창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누님. 좋아요?”
“아잉… 말도 못하게 좋아.”
기수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정두원이 분명했고, 놀랍게도 여자 목소리는 사모인 것 같았다.
‘설마…’
기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창고를 빙 둘러 돌아가며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동하다가 벽의 갈라진 틈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눈을 대자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뭐야, 씨발. 진짜로 사모잖아?’
기수는 보면서도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사모의 하얀 맨살과 정두원의 시커먼 알몸이 제대로 엉켜 있었다.
체위는 후배위. 정두원은 사모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히프를 기운차게 전후진 하는 중이었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 동서양을 넘나드는 수많은 AV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라이브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운드 이펙트, 특히 여자의 신음소리와 결합 부위에서 나는 마찰음이 엄청나게 리얼해서 아랫도리가 발딱 섰다.
‘와! 사모 유방이 저 정도로 컸었나?’
리듬에 맞춰 앞뒤로 출렁거리는 볼륨이 거의 멜론만한 것 같았다.
기수는 머리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 지금 구경할 때냐?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잖아.’
머릿속은 그렇게 돌아갔지만 눈은 창고 안의 상황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사모의 허리에서 엉덩이, 거기서 다시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이 장난이 아니었다.
긴 옷 속에 감춰져 있던 몸매가 적나라하게 펼쳐지니까 기수는 도무지 생각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1년 동안 타의에 의해 끊었던 AV의 광경들이 전부 다 되살아나서 온몸의 혈류를 2배로 빨라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등 뒤로 누가 다가와도 전혀 눈치를 못 챘다.
“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기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장문인 관자추가 서 있었다.
“사, 사부님…”
기수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너희들 이제 좆됐다. 사부님이 오셨단 말이다!’
기수보다 더 놀라고 당황한 건 창고 안의 두 사람이었다. 관자추의 목소리를 들은 정두원은 급히 뺀(뭘?) 뒤 옷을 걸쳤고. 경홍부인도 몸을 가리기 바빴다.
관자추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창고 문을 열었다.
안에서 나는 인기척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젊은 아내와 수제자의 반쯤 벗은 몸을 보게 되었다.
“너, 너희들이…. 어찌…”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관자추는 대뜸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두 년놈을 찔러죽일 생각이었다.
정두원과 경홍부인은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관자추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단 일검에 간부간부를 죽이려고 했는데, 뒷목이 뻐근해지면서 몸이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흥분이 지나쳐 기혈이 막힌 증상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경홍부인이 정두원에게 외쳤다.
“어서 검을 빼앗아!”
정두원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명령에 따랐다. 사부의 검에 찔려 죽거나, 아니면 그 반대. 둘 중 하나의 선택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정두원이 검을 움켜쥐자 관자추는 급히 한 호흡 진기를 순환시켜 무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다.
본래 정두원이 익힌 무공은 전부 다 관자추에게서 나온 것이라 상대의 수법은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힘이 부족했다. 정두원은 아랫도리 힘만 센 게 아니었다. 오랜 세월 연마한 무공이 늙은 사부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억지로 검을 빼앗은 정두원은 관자추를 찔렀다.
“으윽! 네, 네놈이 감히 나를….”
배를 찔린 관자추는 정두원의 멱살을 움켜쥐려 했다.
정두원의 얼굴에 살기가 번졌다.
사모와의 불륜을 들킨 이상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길은 목격자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상춘관이 자신의 도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준비해오지 않았는가. 그는 검을 뽑아 다시 한 번 관자추를 찔렀다. 이번엔 심장을 노렸다.
관자추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제자의 눈빛에서 살의를 읽은 그는 손을 뻗어 검을 밀어낸 후 창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찔린 자리의 출혈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관자추는 창고 입구에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서있는 기수를 발견하고는 급히 품안에 손을 넣어 기름종이에 싼 물건 하나를 그 손에 쥐어주었다.
그것은 바로 관자추가 백일간 정성을 다해 만든 단약이었다.
이름하여 순양무극태양대환단(純陽無極太陽大還丹)!
그것이 완성되어 기쁜 마음에 아내에게 자랑하려고 내려왔는데 상상도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든 기수는 관자추를 부축했다.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없었다. 피가 온통 번져서 기수의 도복을 금방 시뻘겋게 만들었다.
관자추가 말했다.
“어서 가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예? 예. 알겠습니다.”
기수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이곳에 있다가는 검을 휘두르며 뛰쳐나온 정두원에게 죽음일 면치 못할 게 분명했다.
그는 즉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음 내공을 전부 다 끌어 올렸기 때문에 아마 현대였다면 우사인 볼트와 비슷했을 속도였다.
경홍부인이 외쳤다.
“저 놈을 놓치면 안 돼!”
그 사실은 정두원도 잘 알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사부의 뒤통수에 먼저 검을 찔러 넣어 확실히 죽인 뒤, 그 검을 뽑지 않고 그대로 놔둔 채 기수를 쫓아갔다.
힐끔 뒤를 돌아본 기수는 정두원과의 거리가 급격하게 좁혀지는 것을 확인하고 공포에 질렸다.
‘씨발. 이게 뭐냐.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약초 자르기 노동만 하다가 간통죄 저지른 놈한테 맞아 죽게 생겼잖아.’
사부도 죽인 놈이 자기를 살려둘 리 없었다.
기수는 제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을 쪽으로 달아났다.
사람이 많으면 정두원도 자기를 함부로 죽이지 못할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기수가 사형제들이 잔뜩 모여 있는 식당 쪽으로 들어서자 뒤 따라오는 정두원이 소리를 질렀다.
“기수를 잡아라! 저 놈이 사부님을 죽이고 도망치는 중이다!”
그 소리에 상춘관 제자들을 깜짝 놀랐다.
“사부님이 돌아가셨다고요?”
“그렇다! 기수가 범인이다!”
기수는 항변하려 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두 사람이 상반된 주장을 하는데, 그 한 쪽인 대사형은 뒤를 쫓아오고, 다른 한 쪽인 자신은 온통 피가 묻은 옷을 입고 달아나고 있으니 누가 자기 말을 믿어주겠는가.
나중에 사모가 가짜 증언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고 누명을 쓸 게 분명했다. 사부를 죽인 제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기수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자 다른 제자들도 함성을 지르며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기수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는 오로지 빠져나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씨발. 산 위로 올라가면 어쩌자는 거야.’
이제 와선 되돌아 내려갈 수도 없었다.
기수는 위를 향해 달렸고 결국 단약을 만들던 북두단에 이르게 되었다.
“거기 꼼짝마라!”
정두원을 선두로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길을 막았다.
북두단 뒤는 깎아지른 절벽. 이젠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었다.
기수는 정두원을 노려보며 외쳤다.
“재미는 너 혼자 다 봤으면서 왜 날 죽이려고 하냐!“
정두원은 옆에 있던 제자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이놈이 끝내 지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매가 약이지.”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강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까지 한다면 상황은 더욱 끔찍해지는 것이다. 정두원에게 고문당할 바엔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부를 찌른 검에 누구 지문이 묻어 있나 확인해봐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CSI도 아니고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때 갑자기 정두원이 몸을 날렸다. 기수를 잡으려 하는 것이었다.
기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그대로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으아악…!”
손발을 휘저어 겨우 나뭇가지를 붙잡고 멈춘 기수는 위를 쳐다봤다.
정두원을 비롯한 제자들이 빼꼼이 얼굴일 내밀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만 있어! 구해달라고.”
그러나 막상 말을 해놓고 보니 그들이 밧줄을 내려준다고 해도 그걸 잡고 올라갈 수는 없는 처지였다.
정두원이 밧줄을 가져오라고 시키더니 그걸 자기 허리에 묶고 제자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내려가서 사부님을 시해한 놈을 죽이고 오겠다. 너희들은 이 줄을 꽉 잡고 내가 풀라는 만큼만 풀어라.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예! 대사형.”
정두원과 사모 사이의 일을 모르는 제자들은 대사형의 용맹을 속으로 칭찬하며 일제히 달려들어 밧줄을 잡았다.
정두원이 검을 쥔 채 내려오자 기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고문당하지 않는 건 다행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죽기는 싫었다.
기수는 절벽의 나무와 풀, 그리고 갈라진 틈에 손과 발을 얹어 조금씩 옆으로 이동했다. TV에서 보던 암벽등반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안전장비가 하나도 없다는 것.
기수가 움직이자 정두원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왼쪽으로 이동해! 줄을 좀 더 풀어!”
기수는 어떻게든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이동했고, 결국 밧줄이 닿기 어려운 지형까지 피하는데 성공했다.
정두원은 이리저리 해봐도 안 되니까 위로 올라갔다.
“오냐 좋다! 네놈이 언제까지 거기서 버틸 수 있는지 보겠다.”
그러더니 제자들로 하여금 교대로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정두원은 경홍부인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어느새 상복으로 갈아입고 관자추의 주검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정두원은 사부를 보고 잠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 감정은 곧바로 사라졌다.
그가 죽은 이상 이제 상춘관과 경홍부인은 전부 자기 차지가 된 것이다.
제자들이 있어서 다른 행동은 취할 수 없었지만 부인과 정두원은 슬쩍 시선을 맞추고 공범의 미소를 교환했다.
경홍부인이 몹시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놈을 잡았느냐?”
“지금 절벽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놈이 문주님으로부터 단약을 훔쳐 달아났는데, 그것을 먹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겠느냐?”
제자들은 기수가 사부 죽인 이유를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두원은 제자들의 그런 심리상태를 읽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부에게 들켰을 때만 해도 죽음을 각오했는데 기수 한 놈을 희생시켜서 앞뒤가 착착 들어맞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그가 부인에게 대답했다.
“순양무극태양단은 이름 그대로 양기의 극을 달리는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걸 그냥 먹었다가는 온몸이 다 타버릴 것입니다.”
경홍부인이 다소 실망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약 아니냐? 그런 걸 뭐 하러 만들었담.”
정두원은 슬쩍 미소 지었다.
경홍부인은 잠자리에선 최고지만 단약에 대해선 잘 몰랐다. 양이나 음의 극을 추구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알 리가 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부인은 그저 침상에서만 실력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여자가 똑똑하면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었다.
한편 절벽에 매달린 기수에게 시련이 겹쳤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비에 옷이 흠뻑 젖자 체온이 급격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수는 하늘을 원망했다.
‘뭐냐고. 씨발. 나 그냥 알바하면서 살게 내버려두면 어디 덧나냐고. 왜 엉뚱한 곳으로 오게 해서 이런 시련을 주는 거야.’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엄마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체온이 자꾸 내려가면서 손이 곱아 잘 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도 빗줄기는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거세어졌다.
‘이대로 더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텐데…’
기수는 사부가 준 단약을 기억해냈다.
‘순양무극 머시긴가 했으니까 열이 날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한 손을 내려 기름종이를 비벼서 뜯고 한 입 살짝 베어 물어 보니 몹시 쓴 맛이 나면서도 은은하게 향긋하고 상쾌했다.
기수는 그것을 전부 입에 털어 넣고 우걱우걱 씹어서 꿀꺽 삼켰다.
잠시 기다리자 뱃속이 조금 따듯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계속 굵어지는 빗줄기 때문에 체온은 자꾸만 내려갔다.
기수는 비를 조금이라도 피해볼 생각으로 좌측에 보이는 소나무 아래를 향해 조금씩 이동했다. 그러다가 그만 실수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빗물에 미끄러진 것이다.
“헉! 아아악….!”
자유낙하.
기수는 빗방울들과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