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61
01864 1864화
그런 모습에 태수가 어이없는 얼굴로 변했다.
“우리 병은 누가 고쳐 주나.”
“알아서 해야죠. 아니면 다른 닥터에게 보여 주든가.”
“우리 한국 가면 입원 좀 하죠.”
“그 말 진심이죠? 나 그거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김혁권이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태수에게 확답을 요구했다.
그러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병원에서 안 받아 주면 집에서 좀 쉬면 되고.”
“반드시 받아 줄 겁니다. 닥터 박 성격 몰라요? 그냥 병실에 밀어 넣을 인간이라니까.”
김혁권의 말에 태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 보니까 선배가 보고 싶긴 하네요. 이럴 때 선배 농담이 좀 그리운데.”
“난 됐어요. 그 실없는 잔소리가 아주 지겨운 사람이니까.”
“하하.”
태수가 가볍게 웃으며 마무리졌다.
30여 분이 지난 후였다.
펄럭.
수술 텐트 입구를 막은 천이 펄럭이더니 태수가 걸어 나왔다.
뻐근한 양팔과 허리는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 걸을 때마다 미간이 좁혀졌다.
다른 의료진은 아직 더 쉬는 중이었다.
그들을 놔두고 혼자 나온 건 역시 밖의 상황이 걱정된 탓이다.
대략 10시간이 넘는 수술이었다.
처음 수술에 들어갈 때 양쪽 부족의 경계를 봤다.
환자가 중요해 애써 무시하고 수술에 들어갔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그 일이 다시 신경 쓰여서 나온 길이었다.
어두컴컴한 밤이라 보이는 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태수의 시선이 그대로 고정됐다.
모닥불이 두 군데에 피워져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부족이 하나의 모닥불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모닥불 사이의 거리가 상당했다.
그런데 특이한 건 모닥불과 모닥불 사이에 정민수가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은 부족민들의 모습도 심상치 않았다.
특히 지제이가 속한 부족은 전사들만 남아 있고, 다른 부족민들은 집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옴부르 부족의 전사들이 마시리 부족을 향해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었다.
태수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사이먼 기자가 다가왔다.
“수술은 어떻게 됐어?”
“어느 정도 잘 마무리 지었어. 그런데 저건 무슨 상황이야?”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모습이지.”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가뜩이나 피곤한데 사이먼 기자가 농담을 하자 태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사이먼 기자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오해가 있다고 해야 하나? 좌우간 여기 옴부르 부족에서는 마시리 부족을 좀 안 좋게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고.”
“어디가 어딘데?”
“에이씨. 지제이가 속한 데가 옴부르 부족, 환자 데리고 온 데가 마시리 부족. 옴부르 부족이 마시리 부족을 상당히 경계한다고. 반대로 마시리 부족도 옴부르 부족을 굉장히 싫어해.”
확실히 기자라 그런지 정보에 정말 빨랐다.
태수는 대치하고 있는 두 부족을 한 번 더 둘러보며 사이먼 기자에게 물었다.
“서로 싫어하는 이유가 뭔데?”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해야지.”
“그건 또 뭔 소리야?”
태수가 힐끔 쳐다보자 사이먼 기자가 말을 이었다.
“옴부르 부족은 마시리 부족이 악마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마시리 부족은 그런 멸시에 이젠 지쳤다는 게 핵심이야.”
“뭔 악마?”
“좀 더 깊게 들어가자면, 예전부터 두 부족이 썩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엄청 안 좋은 것도 아니었대.”
“그런데?”
“몇 년 전에 마시리 부족에서 성인식을 한 아이들이 각 부족을 돌아다녔나 봐. 그게 이쪽 룰이라나 뭐라나.”
사이먼 기자는 좀 귀찮단 듯이 말했다.
태수도 사실 엄청나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시리 부족에서 다녀간 후에 옴부르 족의 아이들이 몇 명 죽었대.”
“죽어?”
“그래. 어떤 상처도 없고, 피를 쏟은 것도 아니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거야.”
그 소리에 태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죽인 게 아니라면 병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데 옴부르 부족 주장은 우리만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다른 많은 부족들도 피해를 입었다, 뭐 이런 거고.”
“마시리 부족은 그건 말도 안 되다는 입장일 거고.”
“그렇지. 그래서 급격히 사이가 나빠졌고, 마시리 부족은 다른 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거지.”
사이먼 기자의 말에 태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렇게 고립되면 마시리 부족은 살아가는 데 문제없나?”
“곤란하겠지. 지금까지는 채집하고 수렵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는데.”
“상당히 생활이 어려울 거 같은데.”
태수가 심각하게 걱정을 내비치자 사이먼 기자도 그제야 고민스런 얼굴로 변했다.
“그보다 부족의 명예가 더렵혀졌다는 게 제일 기분 나쁘겠지. 아무리 해명해도 변명이라고 받아들이니까.”
“그게 지금 저 모습을 만들어 냈다?”
태수의 물음에 사이먼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거지.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그 몇 년 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야.”
“NGO가 다녀갔다고 했잖아.”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인가 봐.”
사이먼 기자의 대답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 고마워. 난 저기 앉아서 궁상떨고 있는 친구한테 가 볼게.”
“난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으니까 다녀와.”
“저기 수술 텐트 안에 널브러진 사람들 밥 좀 챙겨 주라.”
“그 정도 서비스는 얼마든지. 그리고 뭐든지 먹이고 나서 물어봐야 하거든. 실례.”
사이먼 기자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멀어져 갔다.
식사를 핑계로 인터뷰를 진행할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그의 계산적인 부분까지 상관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사이먼 기자도 여기에 왔으면 뭔가 소득이 있어야 하니 하고 싶은 대로 놔둘 작정이었다.
잘 구슬려 놓아야 나중에 필요할 때 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태수는 마시리 부족에게 향했다.
모닥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험악했다.
낮에 봤을 때 화려했던 의상이 붉은 불꽃에 반사되어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분위기와 달리 그들은 태수를 보자 얼른 일어나 눈빛을 죽였다.
“@#$%@#$.”
뭐라고 계속 말을 하지만 태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보호자들의 입장은 만국 공통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들이 원하는 걸 알기에 태수가 행동을 더해 말했다.
“수술 끝. 이제 자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수술은 잘 끝났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지제이!”
태수가 옴부르 부족 모닥불에 같이 앉아 있는 지제이를 소리쳐 불렀다.
지제이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쉽게 다가오지 않고 정민수가 앉은 즈음에 멈춰 서며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지제이, 도시까지 다녀오신 분이 이러실 겁니까?”
“죄송하지만 악마의 짓이 아니란 건 알고 있어도 저들과 가까이하긴 싫습니다.”
“그럼 말은 전해 주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태수는 애써 짜증을 억누르고 권했다.
지제이의 입장에선 태수와 의료진들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전해 드립니까?”
“수술은 잘 끝났다. 무사하다. 대신 오래 누워 있어야 한다.”
“날이 밝으면 다시 부족으로 돌아갈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만.”
“그건 힘들다고 전해 주세요. 불편하면 돌아가 계시라고 하세요. 그 청년은 우리가 지키겠다고 말하고요.”
태수의 말에 지제이가 멈칫했다.
“그를 여기에 두시겠다고요?”
“통역은 원래 전달하는 역할이지, 되묻는 게 아닙니다.”
“닥터.”
“계속 반대하시겠다면 저희는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아픈 환자를 우선으로 하는 게 저희 방침입니다.”
“저들은 위험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제이가 경고했지만 태수는 덤덤한 얼굴로 받아들였다.
“차라리 우리가 같이 있을 때 그때처럼 아픈 게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럼 치료도 하고 오해도 풀고.”
“어떤 민간요법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민간요법을 상당히 존중하지만, 의학은 처치 방법 자체가 다릅니다.”
태수는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러자 지제이는 뭐라고 말하기 전에 옴부르 부족장에게 향했다.
그사이 태수를 둘러싼 마시리 부족민은 모닥불에 다시 둘러앉았다.
볼일 다 봤으니 안전을 지키겠단 뜻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다가 태수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표정이나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다만 옴부르 부족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부러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면 또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단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겨 있는 순수함까지 오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마시리 부족에게서 벗어난 태수는 정민수에게 다가갔다.
모닥불과 모닥불 사이에 자리 잡고 앉아 있던 정민수가 다가온 태수를 보며 옆을 두드렸다.
툭툭.
“앉아.”
“뭔가 팔자 좋아 보이는데.”
“여기가 제일 편해. 그보다 수술은 잘됐다고?”
정민수 질문에 태수가 밝게 대답했다.
“결론은 잘된 거지. 과정은 좀 이따가 따로 얘기하고.”
“그건 나도 찬성.”
정민수의 말이 끝나자 태수가 물었다.
“넌 저들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도 백방으로 생각해 봤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
“독이나 독충은 아니야.”
“그렇다면 뭔가 흔적이 남으니까. 전염병이라고 생각도 해 봤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죽은 사람들의 수가 적어.”
정민수가 추론한 걸 말하자 태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럼 특정 조건에서 발동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특정 조건을 각 부족이 다 맞출 리가 있나?”
“마시리 부족에서 성인식을 한 애들이 무언가를 가지고 다녔으면 말이 되지.”
“그것도 좀 억지가 있지.”
“뭐, 나도 그건 같은 생각이야. 그리고 정말 천운처럼 재수가 없었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거지.”
“양쪽 입장은 이해가 되긴 하는데, 좌우간 여기서 이럴 건 아니지 않아?”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바로 동조했다.
“내 말이. 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데?”
“해 지고 난 후부터.”
“기준이는?”
태수가 묻자 정민수가 울컥하려다가 참고 말했다.
“왔다 갔어.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3시간 정도 교대해 주더라.”
“너무 후하게 점수 주시는데?”
“그런 거 아니거든! 지금도 완전 마음에 안 들거든!”
정민수가 투덜거렸다.
태수는 어깨를 들썩이고 말했다.
“좌우간 일단 여기 일이 해결되어야 우리도 좀 쉴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아, 저기 오네.”
태수는 지제이가 다가오자 대화를 끊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자 다가온 지제이가 태수에게 말했다.
“부족장님이 문제가 좀 있다고 하십니다.”
“어떤 문제요?”
“여기에 저 청년을 두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부족에서 찾아오지 않을 거랍니다.”
“…….”
“몇 년 만에 이렇게 봉사 와 주신 건 참 고마운데, 저희들의 문제도 조금 이해해 달라고 하십니다.”
지제이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부족의 입장을 대신 전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긴장한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저희는 냉정하게 말해서 다녀가는 입장입니다.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분란에 관여하는 건 옳지 않죠.”
“…….”
난처한 듯 침묵하는 지제이에게 태수가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저 환자는 어느 정도 회복을 해야 부족으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건 저희가 의사라서 양보하기 힘듭니다.”
“음.”
“그래서 팀원들과 지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상의를 좀 해 봐야 합니다.”
태수가 차분하게 말하자 지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