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93
01996 1996화
모든 시선은 심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솨아악.
심장 내부에 피가 차오르는 소리.
들릴 리가 없지만 태수는 그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뛰어야 한다.
분명 뛸 거다.
확신을 굳히던 순간이었다.
두근.
심장이 한순간 꿈틀거렸다.
모두 눈썹이 크게 들썩였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 꿈틀거린 심장이 반응이 없었다.
그 시간이 1초를 지나 2초에 다다르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의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아무래도 제세동을?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빅, 삐빅.
ECG의 소리도 변화했다.
마지막으로 서영우가 쐐기를 박았다.
“움직여. 움직인다고!”
그 소리와 동시에 다들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우와아!”
“아싸!”
모두의 기쁨이 수술실에 폭발했다.
이 수술에서 최고의 고비였다.
그런데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되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태수와 정민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씨익.
동시에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도성민이 태수 옆으로 다가와 인상을 벅벅 썼다.
“개새끼들.”
“…….”
“겁나 부러운 새끼들.”
“…….”
“젠장. 수고했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투박하고 스산한 목소리로 하는 칭찬에 태수와 정민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심장 수술이 이렇게 무사히 끝난 것만으로도 어떤 욕도 감내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이 뿌듯한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찌릿했다.
그렇게 다들 기쁨에 가슴 벅찬 순간, 태수가 멈칫했다.
“잠깐만. 아직 일러.”
“뭔 소리야? 이렇게 팔팔하게 뛰는데.”
“그게 이상합니다.”
태수가 의구심을 보이자 정민수도 움찔했다.
“그러게. 이상한데.”
“이 새끼들이 뭐 하자는 거야? 이렇게 열심히 자기 일에 충실하신 심장님한테 말이야.”
박성민의 짜증에도 태수와 정민수는 굳어진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때였다.
두근, 두두근.
심장의 움직임이 한순간 이상하게 변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집중하고 있던 모두가 그 움직임을 봤다.
심장에 향하던 시선이 태수에게 돌아갔다.
“뭐야?”
“멀쩡하다 왜 이러는데?”
연속된 질문에 태수가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두두근, 투둑, 투둑.
심장의 이상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와 동시에 ECG가 급히 울었다.
삑삑삑!
서영우의 다급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Arrhythmia(부정맥)!”
“뭐?”
다들 놀란 순간 서영우가 이어서 말했다.
“Antiarrhythmic Agent(항부정맥제) 추가할게!”
“바로 투여하세요. 도끼, Defibrillator(제세동기)!”
태수가 오더하자 서영우는 바로 항부정맥제를 투여했다.
도성민도 끝까지 들고 있던 제세동기를 얼른 내밀었다. 기다란 막대에 둥그런 판이 달려 심장에 직접 압박할 수 있는 구조였다.
“여기!”
“충전은?”
“20줄, 이미 완료 상태야.”
“모두 비켜요. 샷!”
태수는 건네받은 충격기를 바로 심장 좌우에 대고 충격을 줬다.
치직!
심장이 전기 충격에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움직임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그 모습에 정민수가 직접 심장을 쥐고 압박을 시작했다.
“하나, 둘…….”
동시에 충격기를 회수해 들고 있던 태수가 도성민에게 말했다.
“30줄로 올려.”
“알았…….”
“올렸어요!”
도성민의 대답이 끝나는 찰나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덮어 버렸다.
유병태와 최소현 간호사는 IV에 도착해 있었다.
“수혈량 늘릴게.”
“서 선생님, 저쪽에서 추가해도 되는 건 저 주세요.”
유병태는 물론 최소현 간호사도 순식간에 자기 자리를 찾았다.
기쁨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부정맥에 다들 바짝 긴장했다.
제세동은 계속됐다.
“샷.”
치직.
“한 번 더!”
“충전 중이에요!”
수술대 주변은 서로 잡아먹을 듯이 사나운 대화들로 가득했다.
서영우가 중심이 된 쪽도 마찬가지였다.
“최 간호사, 이거 유 선생에게.”
“네.”
“유 선생, 아직 혈액 보유량이 낮아!”
“지금 짜고 있잖습니까!”
누구 하나 순순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부정맥이 중요했다.
이 순간이 바로 태수가 김재민에게 말한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걸 넘겨야 한다.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하고, 또 가장 심력을 기울여야 했다.
태수가 충격기를 빼자 정민수가 직접 심장 압박을 이어서 진행했다.
이 시간이 태수가 한숨 돌릴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런 태수를 봤는지 수혈팩을 유병태에게 전달하고 온 박성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네?”
“말이 안 된다고. 만에 하나 수술이 잘못됐다면 벌써 피바다가 됐어야지. 그런데 핏방울은 보이지도 않아.”
“…….”
태수가 듣고만 있자 박성민의 목소리가 더욱 진지해졌다.
“수술의 문제가 아니라면 혹시 환자가 삶을…….”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건데?”
“아주 간단한 이치로요.”
태수의 대답에 박성민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 너하고 민수는 예상했었지. 그래서 그 이유가 뭔데?”
“심장이 아직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접수가 안 된 겁니다.”
“……아!”
박성민이 바로 알아채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심장이…….”
이어서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충전 완료!”
“서른!”
앞뒤에서 연속적으로 소리가 들려오자 태수는 바로 충격기를 심장으로 향했다.
“샷!”
치직.
“아직!”
“충전 중!”
“하나, 둘, 셋…….”
다시 충전하고, 또 정민수가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잠깐의 소란이 끝나자 서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뭐 어떻다고? 두 사람만 이해하고 넘어가지 말란 말이야. 나도 알아야 대응을 하지!”
“좌우심실이 줄어들었죠. 거기다 꽉 막혔던 관상동맥이 고속도로로 변했잖습니까.”
박성민이 대신 대답하자 서영우가 물었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심장이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네?”
“그동안은 심장이 피를 엄청 머금어야 제대로 뛰었는데, 그게 갑자기 줄었으니까 정신 못 차리는 거라고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서영우는 그 많은 수술을 했지만 처음 듣는 표정이었다.
박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이건 뇌도 상관이 있는 문제입니다.”
“거기서 뇌가 왜 나와요?”
“뇌란 녀석은 자기 몸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상처가 나면 뇌가 백혈구한테 명령한다고요. 저기 가서 공사 좀 하라고요.”
박성민의 대답을 들은 서영우가 울컥했다.
“그걸 몰라요? 내가 지금 의학 기초 강의 듣습니까?”
“심장도 마찬가지라고요. 뇌는 심장에 피가 10이 들어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7밖에 안 들어가는데 심장이 그만 넣으래. 그러니까 뇌하고 심장하고 싸우지!”
“그게 부정맥의 원인이라고요?”
서영우의 질문에 박성민이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그렇다니까요.”
“그럼 이제 어째야 되는데요!”
서영우가 빠르게 묻자 그 대답은 태수가 대신 했다.
“뇌하고 심장하고 합의 봐야죠.”
“젠장. 빨리 합의 보라 그래.”
“저도 그러고 싶지만, 둘 다 고집이 상당하잖습니까.”
농담?
아니다.
정말 심각한 대화였다.
태수도 갑갑한지 눈빛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서영우도 할 말이 없었다.
뇌, 그리고 심장.
사람이 살아 있다고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장기들이다.
중요한 만큼 자존심이 강했다.
뇌는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반면 심장은 자기 상태가 이렇게 변했다고 항의하고 있었다.
그런 삐걱거림이 이 상황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 문제점을 확실히 인지한 서영우가 물었다.
“그래서 협상 결렬되면?”
“…….”
“그럼 이럴 때가 아니잖아.”
“그 말씀은 맞습니다.”
“차라리 Tranquilizer(신경안정제)라도 투여해서 뇌를 좀 진정시키는 건 어때?”
서영우가 제안하자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마취 상태에선 큰 효과가 없잖습니까.”
“그럼 맥박을 올려서 심장한테 힘을 실어 주면?”
“터지겠죠.”
태수의 말에 서영우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럼 어쩌자고. 이대로 지들끼리 합의 볼 때까지 우리만 뺑이 치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
“미치겠네. 부정맥이 계속되면 결국 맥박이 떨어지는 거 몰라? 지금도 계속 떨어지는 중이라고!”
서영우의 목소리가 수술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초조함을 넘어서 가슴 졸이는 모양이었다.
그건 태수는 물론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맥박만 문제가 아니다. 그에 영향을 받은 혈압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심장은 결국 지쳐 멈추고 만다.
제세동을 하고 심장을 직접 압박하는 모든 것들이 뇌가 인지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환자의 체력이었다.
이미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 수술이 시작됐다.
얼마나 더 버텨 줄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건 태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희망이 있다면 환자가 가진 삶에 대한 애착과 간절함이었다.
살고 싶단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뇌와 심장의 합의는 빨리 이뤄질 터였다.
곧 이뤄질 거다.
병실에서 고선미 환자의 간절함을 들었다.
삶을 갈구하는 절규를 태수가 직접 목격했다.
그런 의지라면 이겨 낼 거다.
하지만 부정맥이 지속되는 시간은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5분을 지나 어느덧 1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제세동과 심장 압박은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그 외에 수혈과 투약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들 노력한 덕분에 성과는 있었다.
“샷!”
치직!
태수의 전기 충격이 끝난 순간이었다.
정민수가 바로 심장을 압박하려 할 때 서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잠깐!”
“…….”
정민수의 손이 바로 멈췄다.
그게 끝이 아니라 태수와 정민수의 시선이 심장에 고정되었다.
두근, 두근.
일정하게 뛴다.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이다.
돌아왔…….
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 순간이었다.
투둑. 투둑.
“젠장. 다시 Arrhythmia(부정맥)!”
서영우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것에 대한 울컥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건 그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다.
“빌어먹을. 하나, 둘…….”
정민수가 재빨리 다시 직접 압박을 시작했다.
태수의 눈꼬리도 축 처져 있었다.
돌아왔다고 생각됐는데 수포로 돌아가자 허망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돌아와……. 또!”
“이번에는……. 으아악!”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제세동기로 충격을 주면 심장이 잠깐 제대로 뛰었다.
그 시간은 대략 5초.
그 이후 다시 부정맥이 일어났다.
수술 진도는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 상황이 벌써 10분 동안 반복되고 있었다.
기대와 실망이 계속 엇갈리던 중이었다.
또 한 번 심장이 제대로 돌아왔다가 다시 부정맥 증상을 보였다.
그와 동시였다.
“젠장. 어쩌라고!”
텅!
서영우의 짜증과 선반을 내려치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