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92
01995 1995화
그 순간 유병태는 왜 박성민이 질책하는지 직감했다.
“그걸…… 저 자식들이 해내고 있는 거라고요?”
“해내고 있어? 안 보이냐? 아주 가지고 놀고 있잖아.”
“괴물 같은 자식들.”
“……그래. 잊었네. 잊고 있었어.”
박성민이 탄성을 말하자 유병태가 얼른 물었다.
“네? 뭐가요?”
“저 자식들이 괴물이라는 걸 말이야.”
박성민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괴물.
오랜만에 떠올린 태수의 별명이었다.
지금은 그 괴물이 둘이나 눈앞에 있었다.
부러워 미치겠다.
그런데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또 든든한 건 왜일까?
박성민의 눈빛은 복잡하지 않았다. 수술 중인 심장에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은 수술 외에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다.
박성민의 말은 정확했다.
태수와 정민수는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면서도 각 부위의 특징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관상동맥을 단순히 우회시키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억.”
“윽.”
이번에는 태수가 먼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정민수가 마주 목소리를 짜냈다.
그리고 1차로 길게 연결한 관상동맥의 중간 지점으로 향했다.
틈틈이 봉합사로 혈관과 심근을 꿰어 놓은 곳들 중 하나였다.
정민수의 손에는 놀랍게도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위가 들려 있었다.
그 가위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방금 연결한 혈관을 찔렀다. 그리고 자그마한 구멍을 만들었다.
기껏 연결해 놓았는데.
그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상황이다.
누가 봐도 열이 뻗쳐 뒷목 잡을 모습이었다.
그때 태수의 손이 그 구멍 난 혈관으로 향했다. 그의 손엔 새로운 우회혈관이 쥐어져 있었다.
우회혈관을 구멍에 맞춰 대자 정민수가 어느새 니들홀더로 바꿔 꿰맸다.
‘I’ 자로 연결됐던 우회혈관이 ‘Y’ 자로 변했다.
이게 바로 컴포짓 그래프트다.
아까 박성민의 말에 힌트를 얻어 다시 떠올린 방법이었다.
컴포짓 그래프트 또한 빠르게 진행됐다.
이번에는 태수가 다른 부위를 잡아 구멍을 뚫자 정민수가 연결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번갈아 컴포짓 그래프트를 빠르게 이어 갔다.
‘I’ 자로 연결된 관상동맥이 점점 변화했다.
‘Y’, 그다음에는 ‘F’, ‘K’, ‘E’ 등등 점점 연결되는 혈관이 늘어났고, 그 방향도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어떤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이라 해도 서로가 원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 관한 건 도성민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새끼들, 잔머리는.”
“넌 또 왜?”
유병태가 묻자 도성민이 곧장 대답했다.
“지금 새로 연결한 혈관 곳곳을 심근하고 합쳐 놨잖아.”
“그건 떨어지지 말라고…….”
“정말 이유가 그 하나뿐일까?”
도성민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유병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곧 그 질문에 대한 이유를 찾았다.
그와 동시에 유병태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흐음!”
“맞아. 거기가 바로 컴포짓 그래프트 할 위치야.”
“메인을 연결할 때 이미 샛가지 위치까지 다 생각해 놓았다고?”
유병태가 경악하자 도성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을 줄이기에는 최고지. 보통 잔머리가 아니야.”
“음, 그래도 많이 수술하면 대충 위치를 상상할 수 있지 않나?”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심장의 움직임까지 계산해 가면서?”
“…….”
“저 새끼들 머릿속에는 심장이…… 그것도 아주 팔짝팔짝 뛰는 심장이 있어. 당장 그려 보라고 하면 근육의 결까지 표현될 정도로 자세하게.”
도성민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유병태는?
아예 판단을 포기했다.
그는 외과 전문의다.
물론 응급상황에서 흉부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수술에서 어시스던트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전문 의과가 아니기에 그 정도가 딱 좋았다.
생각하던 유병태가 멈칫했다.
만약 심장만이 아니라 모든 장기를 저렇게 수술할 수 있다면?
유병태의 눈빛이 다시 살벌하게 변했다.
자신의 전문 의과가 아니기에 흉부외과적 수술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외과적 수술까지 저렇게 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순간 느긋하게 먹었던 마음이 다시 초조해졌다.
경악하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서영우의 표정도 어이없다는 듯 변했다.
“도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
“선생님.”
거친 표현에 놀란 노지연 간호사가 슬쩍 바라봤다.
그러나 서영우는 흔들리지 않고 수술대를 향한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는 각종 모니터들이 놓여 있다.
그 수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변화가 있어야 할 수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수치도 있다.
서영우가 짧고 굵게 숨을 내뱉었다.
“후. 잔소리는 사양이야.”
혼잣말로 중얼거린 그가 각종 모니터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오더를 내리기 시작됐다.
“산소 올리고 이산화탄소 낮춰 줘요. 칼슘 조금 더, 전해질 조금 더…….”
“네!”
노지연 간호사도 눈에 불을 켜고 움직였다.
그런데 서영우의 오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이번 수술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 곳 더 있었다.
“체외순환사님, 혈액이 적습니다. 와파린…… 아니, 동결침전제제를 더 늘려 주세요. 와파린은 최대한 제한적으로 사용해 주시고요.”
“수혈량 늘렸습니다. 동결침전제제 하나 추가했고요.”
“혈액 온도도 약간만 낮춰 주세요. 대신 혈류는 조금 빠르게…….”
서영우의 오더가 단위 하나까지 세세하게 변했다.
알고 있는 지식과 그동안의 경험들을 모두 더한 오더였다.
그 또한 자신의 모든 걸 꺼내 부딪쳤다.
그렇게 태수와 정민수가 수술하는 데 어떤 불편함도 없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태수와 정민수는 몰랐다.
숨 쉴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수술이 계속되었다.
그런 두 사람의 경이로운 속도 덕분에 관상동맥은 빠르게 연결되고 있었다.
격하게 움직인 만큼 땀도 빠르게 흘렀다.
닦아 달란 소리가 없었다.
스윽!
팔로 대충 얼굴을 쓸고 말았다.
아니면 얼굴을 돌려 어깻죽지에 땀을 찍어 냈다.
한 방울의 땀도 수술 부위에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태수는 한눈을 팔았다.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20분 전.’
직접 확인한 사항을 정민수에겐 말하지 않았다.
굳이 말로 표현할 사이가 아니었다.
태수는 바로 가늠부터 했다.
현재까지 진행된 걸 퍼센트로 표현하면 70퍼센트 남짓이다. 남은 30퍼센트를 제한된 시간 안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
태수의 차가운 눈빛이 일순간 굳어졌다.
시간이 없다면?
스스로 더 속도를 내면 된다.
그 생각과 동시였다. 태수의 양손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태수의 변화에 정민수의 손도 덩달아 빨라졌다.
어떤 이유로 빨라졌는지 정민수는 모른다. 태수가 속도를 올렸으니 보조를 맞출 뿐이었다.
그게 바로 신뢰였다.
이유를 묻기보다, 설명을 하기보다 앞에 있는 파트너의 행동에 의심 없이 따라 주는 게 믿음이었다.
그 믿음에 죽어나는 건 이선정 간호사와 최소현 간호사였다.
정민수의 손이 빨라진 만큼 오더도 변화무쌍했다.
“썩션.”
“여기.”
“모스키토. 보비 대기.”
“네. 모스키토요.”
“보비, 니들홀더 준비, 그다음 썩션, 다시 보비 순으로.”
정민수는 다음다음 순서까지 지정해 줬다.
그건 결코 과한 오더가 아니었다.
그 순서가 찰나에 돌아와 양쪽에서 내민 수술 도구를 순식간에 교체했다.
이선정 간호사와 최소현 간호사 또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시간은 흘러갔다.
하지만 누구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수술 속으로 의식이 빨려 들어갈 정도로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던 탓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작은 변화가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의 얼굴은 물론 수술복 상의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이다.
그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한 듯이 처음 속도 그대로 지금까지 계속 수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두 사람의 손이 일순간 멈췄다.
번뜩 고개를 든 태수와 정민수는 동시에 전자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05:11:23
총 수술 경과 시간이다.
그렇다면?
태수와 정민수는 빠르게 말을 주고받으며 계산했다.
“내 부재 40분.”
“심실 수술 3시간.”
“상행대동맥 20분…….”
“그걸 빼면?”
정민수의 질문으로 대화가 뚝 끊겼다.
갑작스러운 계산에 머릿속이 헝클어진 상태였다.
그때 박성민의 목소리가 퉁명하게 들려왔다.
“야, 이 수술만 아는 바보 새끼들아, 그게 계산이 안 되냐!”
“네?”
“니들이 씨불인 대로 3시간 50분을 저기서 빼면 1시간 20분 남지. 그중에 10분은 지체된 시간이었으니까…….”
“그럼 1시간…… 10분?”
태수가 눈을 굴리며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서영우에게서 들려왔다.
“그래. 최 팀장이 예상한 대로 1시간 10분 지났어. 정확하게 1시간 9분 43초.”
서영우의 대답이 끝난 후였다.
태수와 정민수의 시선이 다시 서로에게 향했다.
그와 동시였다.
“푸우우.”
“후하아.”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마치 지금까지 숨을 한 번도 쉬지 않은 사람처럼 굵고 긴 숨소리였다.
성공의 기쁨?
아직은 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하는 눈빛에 또 하나 해냈단 자랑스러움까지 억누를 순 없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지금은 잠깐으로 만족해야 했다.
박성민의 목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이놈들아, 니들이 지금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방방 뛸 때냐?”
“저희가 언제요?”
“말대답은……. 심장부터 되돌려야 할 거 아니냐고.”
“물론입니다.”
태수가 대답한 순간이었다.
탁.
박성민이 인공심폐기와 심장이 연결된 밸브를 하나 잡았다. 그리고 태수를 향해 날카롭게 물었다.
“바쁘다고 대충 한 거 아니지?”
“…….”
태수도 정민수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강렬한 눈빛으로 마주 볼 뿐이다.
턱, 턱.
그리고 각자 다른 밸브를 잡았다.
전환해서 증명하겠단 의미다.
그 패기에 박성민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한번 확인해 보자고. 집도의 양반, 타이밍 잡아.”
끄덕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서영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로 그의 답이 들려왔다.
“이쪽은 준비됐어!”
그다음은 체외순환사.
“됐습니다.”
한결같이 단단한 목소리였다.
태수도 눈빛을 굳혔다.
오늘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 순간이 무사히 지나가야 이후 수술이 진행될 터였다.
태수는 마지막으로 박성민과 정민수를 다시 바라봤다.
끄덕.
끄덕.
눈빛을 마주치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선 도성민과 유병태의 눈빛 또한 날카롭게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성민의 손에는 제세동기가 들려 있고, 유병태는 강심제가 든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만약의 경우까지 대비한 상태였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실행만 남았을 뿐이다.
긴장감을 유지한 채 태수가 낮게 말했다.
“대동맥 전환 시작.”
끼릭.
인공심폐기로 가는 혈류를 차단하고 심장으로 돌렸다.
태수의 오더에 맞춰 박성민과 정민수도 동시에 움직였다.
“전환 완료.”
“이쪽도!”
대답 소리는 귀로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