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20
Chapter 088화.
그래도 태수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제가 모르면 팍팍 깨주시면 되죠.”
“오, 화끈하시네.”
“그런데 여러분들이 모르시면……. 제가 깨도 됩니까?”
“뭐요? 하하하.”
얄밉지 않게 당찬 태수의 제안에 다들 또 한 번 파안대소했다.
태수도 그들 사이에서 똑같이 웃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사람을 대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난 사람이 참 좋아.’
이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NGO의 일원이었다.
어느덧 파둠시의 의료봉사가 10일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먼저 변한 건, 첫날 수술한 환자들의 퇴원이 시작되었단 점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퇴원한 환자들과 의료진들이 병원 앞 불타는 드럼통 앞에 두런두런 모여 있었다.
각자 종이컵을 든 채 대화중이었다.
자원봉사자가 함께 해 그들의 통역을 도왔다.
“%@#$…….”
“에, 어제 저녁에 얄롭과 화해를 했다네요.”
“그거 좋은 소식입니다. 한 동네 사는데 작은 오해는…….”
대화 내용은 정말 별게 없었다.
주민들끼리 사소한 오해부터 시작해서, 자식들이 속 썩인단 하소연.
심지어는 키우는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지 알리기도 했다.
마치 동네 자그마한 의원을 찾은 분위기였다.
처음부터 이런 사이가 된 건 아니었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대화만 오가고, 병을 치유하는데 집중했다.
워낙 환자가 많기도 했다.
그보다 떠날 사람, 남을 사람이라 서로를 구분 짓고 거리를 뒀다.
그 마음속 거리를 누군가들에게 자극 받은 의료진들이 먼저 좁히려 노력했다.
그런 과정이 쉽진 않았다.
계속 통역을 대동해야 하는 불편함.
문화의 차이로 인한 오해들.
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어색함 등등.
다양한 시행착오가 발생했다.
그래도 의료진들은 노력을 거듭했다.
그 결과 지금처럼 집안의 사소한 일들까지 대화하는 친근한 사이가됐다.
당연히 헤어짐의 아쉬움이 없을 순 없었다.
그러나 의료진과 환자들은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게 서로를 향한 아주 작은 배려였다.
의료진들을 변화시킨 주역들도 환자를 배웅 중이었다.
태수와 정민수, 브레드 김이 그 주인공이었다.
통역은 당연히 김혁권이 담당했다.
그들이 배웅하는 환자는 살레나였다.
살레나의 피부에 홍조가 돌고 뽀얗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체중도 늘어났는지 훨씬 건강해 보였다.
살레나는 영어책과 잔트라의 노트를 소중히 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그간 공부한 영어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
아직 암기한 단어가 충분하지 않은지 중간부터는 이곳 언어로 말했다.
그걸 김혁권이 바로 캐치해 통역해줬다.
“우리들 덕분에 살아갈 이유를 찾았답니다.”
“저희가 아니었어도 찾으셨을 겁니다. 조금 앞당겨진 겁니다.”
“%$@$.#^……. 영어 좀 쓰지. 크흠. 그날 딸아이 노트를 만나지 않았다면 다음은 없었을 거랍니다.”
김혁권은 통역을 하면서 살레나를 흘겨봤다.
이미 지난 일이라도 듣기 좋은 소린 아니었다.
스윽.
김혁권을 지나친 태수가 살레나 앞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잔잔한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망설이지 않길 잘 했나 봅니다.”
“%(#$&……. 그런 거 같답니다.”
“솔직히 서두르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습니다.”
“&%$#^%……. 전혀 아니라네요. 그보다 영어가 늘지 않아서 고민이 된답니다.”
김혁권이 좌우를 오가며 대화가 끊이지 않게 다리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전 익숙해진 대화 방법이었다.
그런 태수의 옆에 정민수가 다가서서 대신 말을 건넸다.
“제가 한 마디 해도 될까요?”
“#%@#$%…. 얼마든지 하랍니다. 내 생각은 안 해주지만요.”
김혁권은 슬쩍 우스갯소리를 덧붙였다.
타인의 말만 전달해주다보니 자기말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적당한 농담이라 분위기는 더욱 부드러워졌다.
분위기에 휩싸인 정민수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할 수 있었다.
“타이밍 이즈 나우.”
“타이밍……. 이즈 나우?”
살레나가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따라했다.
쉬운 단어들이었지만 살레나에겐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걸 직감한 정민수는 김혁권의 통역 실력을 믿고 뜻을 풀어서 전했다.
“행동을 해야 한다면 지금이란 말입니다.”
“#@$%#$%……. 의미 있는 말인 거 같다네요.”
“네. 제가 한번 망설이는 사이, 앞에 다가온 기회는 훌훌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정민수의 미소가 약간 무거워졌다.
그때였다.
스윽.
브레드 김이 정민수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살레나에게 말했다.
“닥터 정 말이 맞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 그러면요. 랍니다만?”
“이제서 공부하는 게 아니고, 지금이 공부할 때인 겁니다.”
찡긋.
브레드 김이 점잖게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런 대화들을 나누다보니 살레나의 무겁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답니다. 나는 입 좀 편하고 싶답니다.”
김혁권이 슬쩍 앓는 소리를 했다.
으레 하는 소리였다.
그래도 태수는 그의 바람을 담아 살레나에게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땐 여기 미스터 김이 좀 쉴 수 있게 해주세요.”
“오, 그거 좋은 말입니다. @^$%$#……. 최고 멋진 영어 선생님이 되겠답니다.”
“열정은 좋지만 그 아이들은 잔트라가 아닙니다.”
“#@%#@$%…….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내 아이 같이 아낄 거라네요.”
김혁권이 통역해준 후였다.
살레나가 뭐라고 길게 말을 시작했다.
김혁권은 귀를 기울이며 조금씩 끊어서 통역해줬다.
“^@$#.$…….”
“나중에 정말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
“교실에 빈 책상하고 의자 하나 놓을 겁니다.”
통역하는 김혁권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
듣는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살레나는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
“잔트라가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요.”
“#$%#@$.”
“또 제가 얼마나 잘 지내는지 잘 지켜볼 수 있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닌지 살레나의 미소가 밝았다.
태수와 일행들도 같이 웃음을 지었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행복한 교실이 되겠네요.”
희망찬 응원을 건네며 그 모습을 상상해 봤다.
서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겠지만 함께 있음을 느낄 거라 생각했다.
빨리 그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랬다.
잠시 후.
살레나와 환자들이 떠나갔다.
군용 트럭 적재함에 앉아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의료진들은 의료 텐트 앞까지 나와 크게 손을 흔들어줬다.
부우웅.
트럭 엔진소리가 이내 완전히 지워졌다.
“자, 그럼 일……. 저 짐들은 뭐야?”
누군가 가리켜 바라보자 여행용 캐리어들이 놓여 있었다.
이젠 친숙해진 의료진들 중 10여명이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 중 친숙한 닥터 존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닥터 존슨이 먼저 다가와 브레드 김에게 손을 내밀었다.
“브레드, 또 이별이네.”
“며칠 전에 간다더니, 그게 오늘이었어?”
“조금 시간이 있었는데, 교대할 인력이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나봐.”
닥터 존슨은 아쉬움을 가득 내보였다.
이어서 태수와 정민수를 바라본 닥터 존슨이 재차 입을 열었다.
“닥터 최, 닥터 정.”
“네. 닥터 존슨.”
“두 사람은 작지 않아.”
조금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태수와 정민수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듣고 있었다.
“좀 더 자신감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그건 닥터 정만 해도 돼. 닥터 최는 자신감이 넘쳐서 탈이니까. 하하.”
닥터 존슨이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친분관계가 아니라 친근함이 물씬 느껴졌다.
그래도 헤어짐의 시간이 머지않았는지 웃음소리가 밝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추측이 정답이었을까?
부우웅.
저쪽에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군용트럭과 미니버스가 보였다.
“…….”
다들 닥터 존슨을 바라봤다.
그도 이동할 차량임을 직감했는지 찡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언젠가 어디선가 또 보자고.”
“고생하셨습니다.”
서로 많은 인사가 오겠다.
환자들과 에어질 때와 달리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NGO의료진들의 헤어짐은 늘 그래왔다.
곧 저쪽에 PKO의 군용 트리과 미니버스가 멈춰 섰다.
진료가 조금 한가해진 맛에 그쪽을 힘끔거렸다.
태수도 신기한 표정으로 감상을 말했다.
“버스도 있었네.”
“너도 처음 보는 거야?”
“내가 저거 타고 다닐 데가 있었겠냐.”
태수의 대답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인생이 외골수인데.”
“너도 만만치 않아.”
둘이 자그맣게 투덕거릴 때였다.
미니버스 문이 내리더니 사람들이 먼저 내렸다.
검은 머리에 살색 피부의 동양인들이었다.
관심 있게 지켜보던 김혁권이 먼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사람들 뭡니까?”
“추가인원이 있었……. 한국사람?”
정민수가 의문을 표한 순간 태수가 바로 끼어들었다.
“아니야. 잘 봐봐.”
“음. 일본 쪽 생김새 같이 보이기도 하고.”
“나도 그쪽이 맞다고 봐.”
유심히 관찰하던 태수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혁권이 물었다.
“일본이랑 사이 안 좋지 않아요?”
“그렇죠.”
“별로 안 좋아하겠네.”
김혁권이 추측을 확신으로 단정지어버렸다.
그 점은 정민수가 먼저 정정했다.
“모든 일본 사람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생김새 비슷한 외국인으로 본다는 게 옳을 겁니다.”
태수가 덧붙여 말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본인이란 이유로 싫어하진 않는다.
그건 정상적인 일본인에 한해서 였다.
억지논리로 잡음을 만들어내는 정치권이나 우익세력까지 관대하진 않았다.
그래서 태수와 정민수가 일본 의료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덤덤했다.
그때 일본인들에게 닥터 올리버와 몇몇 중견 의사들이 다가갔다.
서로 악수를 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듯 했다.
지켜보는 사이 옆에서 그들의 대화 소리가 김혁권 목소리로 들려왔다.
“닥터 구라모토, 오랜만에 뵙습니다.”
“닥터 올리버상, 이렇게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김혁권에게로 향했다.
“저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시죠?”
“내 귀는 정상범주에 속하니까 걱정 마시고, 입술 모양을 읽는 겁니다.”
“아, 독순술이라죠? 들어본 거 같네요. 그런데 그걸 익히셨다고요?”
“통역사가 항상 깨끗한 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비즈니스 분야에서는요.”
김혁권이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에 대해서 대화할 때마다 퉁명하게 반응했다.
다들 알기에 괜히 자극하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던 김혁권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난 슬슬 내 일터로 돌아갑니다.”
“좀 더 있다가 가시죠.”
“언제까지 놉니까. 가서 접을 색종이가 한 가득인데요.”
김혁권은 생각만으로도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취향과는 확실히 맞지 않을터였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 미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