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2
00345 345화
자신과 의견이 대립된다고 생각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저 태수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태수는 성급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수도 없이 이런 대화가 오갔었다.
그렇기에 제임스의 의도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태수로 하여금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스승이 가르쳐 주는 귀중한 시간.
이걸 무의미하게 날려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태수는 더욱 신중하게 그동안 배운 것과 카프레네의 임상 경험을 동원해 환자에 왼쪽 신장 검사 결과를 샅샅이 뜯어봤다.
다른 의료진들은 그런 태수를 단 한 번도 보채지 않고 기다렸다.
자신들이 외국에서 수없는 경험을 쌓는 사이 태수는 한국에 있었다.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태수의 안목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한 터였다.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지만 정작 태수는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환자 상태에 집중했다.
또다시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태수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는지 제임스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변성 부위만 제거한다면 상당히 회복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퍼센트로 계산한다면?”
“최대 70퍼센트 정도 기능을 회복하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대로 본 건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태수의 솔직한 대답을 들은 제임스는 엄지를 내밀었다.
척.
“좋아.”
“네?”
“아주 훌륭한 예측이라고.”
제임스의 칭찬에 태수는 기뻤다.
하나 기쁨을 표현하기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더 좋은 수술법이 있는 건 아닙니까?”
“아니, 우리도 그렇게 의견이 좁혀지고 있었어. 자네 눈썰미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확인도 해보고 싶었고.”
“아직 괜찮습니까?”
태수가 슬쩍 넉살을 부리자 제임스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름 쓸 만해. 그동안 놀고먹진 않은 모양이군.”
“레지던트들을 가르치려니까 오히려 제가 더 공부하게 됩니다.”
“좋은 방법이지.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만큼 알아야 하니까.”
“감사합니다.”
태수의 인사에 제임스가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내가 왜 닥터 최를 요청했는지 혹시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태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단적으로 제임스의 전화 한 통이면 세계 각국에서 뛰어난 외과 의사들이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올 터였다.
그런데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태수를 불렀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친분 때문에?
환자 앞에서는 그런 친분도 제임스에겐 무의미하다.
그건 물론 태수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그만큼 잘 알고 있기에 궁금함도 더했다.
제임스는 그런 태수의 궁금증을 느긋하게 풀어줬다.
“내가 알고 있는 외과 의사 중에 임기응변에 강한 의사 중에 한 명이니까.”
“저보다 훌륭한 분이 너무나 많은데요.”
“물론 있겠지. 하지만 한국에서 내가 아는 의사는 닥터 최가 유일해. 이번 수술, 아마도 쉽지 않을 거야. 예측하지 못할 일도 많이 벌어지겠지.”
제임스가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자 주변에 있던 의료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나름 수많은 케이스를 접했다.
또 이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눴는지 전부 비슷하게 어렵단 걸 짐작하는 모양이다.
태수도 제임스의 그 말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신장 두 개를 동시에 수술해야 하는데다 혈압도 높은 편이다.
혈압이 높으면 수술에 애로 사항이 많다.
가장 큰 문제점은 수술 중 사망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제임스의 예측에 가슴 깊이 공감했다.
“그럴 거 같습니다.”
“그때마다 재빠른 판단과 움직임으로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의사가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닥터 최 밖에 떠오르지 않았어.”
“그건 정말 과찬이십니다.”
“아니, 난 내가 내 눈으로 본 것만 신뢰해. 지극히 현실적으로 본다는 것도 잘 알지 않나?”
“…….”
태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침묵하는 게 좋은 대처법이다.
그 생각이 옳았는지 제임스는 차분하게 뒷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그 응급 대처 실력이 꼭 필요할지도 몰라.”
“…….”
“내가 잘못 생각했나?”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는 건 약속할 수 있습니다.”
태수는 겸손을 보였지만 자신감까지 꺾진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제임스가 만족한 얼굴로 태수에게 물었다.
“그럼 닥터 최는 어느 파트를 담당하고 싶나?”
“어디든 지정해 주시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집도에 대한 욕심은 없나?”
제임스가 진솔하게 물어왔다.
태수라고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환자를 두고 욕심을 부리는 건 절대 금물이었다.
“욕심이야 엄청 나지요. 그런데 제 욕심 때문에 환자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욕심을 내보고 싶을 거 같은데 말이야.”
“제임스와 조나단, 그리고 브레드 김도 계시는데요. 그리고 아직은 이식수술을 진행하기에 경험이 많이 부족합니다.”
태수가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머릿속으로 수술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니 집도의가 두 명 필요했다.
조나단의 실력은 제임스 수술팀에서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물론 다른 곳에 가면 상황은 백팔십도로 달라진다.
조나단의 수술 실력이면 미국 유명병원에서도 두 손 들고 환영하며 스카우트할 정도였다.
그만큼 제임스를 비롯한 수술팀의 실력은 쟁쟁했다.
물론 태수가 그를 젖히고 수술을 집도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
다만 응급에 특출하다.
제임스가 앞서 평가한 대로 태수는 아직 그 정도였다.
물론 또래 의사들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나긴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 태수는 이식수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조금 더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한단 점도 잘 알고 있다.
자기 욕심을 누르며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에 제임스의 표정이 더더욱 부드럽게 변했다.
“이번 수술이 많은 공부가 될 거야.”
“그럼요. 아주 자그마한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배워갈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신장이식은 나와 닥터 최가 맡기로 하고, 자가이식은 조나단과 브레드가 담당하는 걸로 하지.”
제임스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뭐래도 제임스가 수술팀에선 결정권자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결정된 건 아니야. 환자 상태부터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변화를 지켜보고, 그에 따라서 수술 방법도 언제든지 바뀔 테니까.”
“네.”
“자, 일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
제임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브레드 김이 빔 프로젝터를 종료했다.
다시 모두가 마주하게 된 순간 제임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 내일 수술할 환자는 아니니까 첫날부터 무리하진 말자고.”
“그럼 수술 날짜는 언제로 잡혔습니까?”
“3일 후에. 그사이에 최대한 기력을 회복시켜 놓고 한 번에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제임스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닥터 최도 그때까지는 체력부터 가다듬어 두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나가지. 이제부터 주린 배를 채우고 쉬도록 하자고.”
제임스가 장내를 정리하려 할 때였다.
잠시 생각하던 태수가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제가 남아 있어도 되겠습니까? 누군가 한 명은 만약을 대비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아니야. 우리는 수술만 하는 걸로 이야기가 됐어. 수술 전후 케어는 이쪽 의료진이 계속 모니터링하기로 했으니까 괜찮아.”
“아, 그렇군요.”
“물론 수시로 현황을 보고받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저쪽도 전문의들이니까 어련히 잘 알아서 할 거야. 자, 그럼 일어나지.”
제임스는 지체하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태수도 그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시선은 제임스에게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뭔가 이상했다.
제임스의 평소 환자를 대하는 성품이라면 누군가를 남겼어야 했다.
카슈미르나 네팔에선 꼭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뭔가 이야기가 오갔다는 건 짐작이 되지만 자세한 상황까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환자를 수술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관여하지 않겠다.
이런 느낌이다.
평소의 제임스 모습과 달라 태수가 의아함이 감돌았다.
만약 연성에서 뭔가 제임스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제임스는 환자밖에 모르는 의사다.
그게 아니라면 제임스가 수술을 앞둔 환자를 두고 병원 밖으로 나갈 리가 없다.
무슨 일일까?
잠시 생각하던 태수가 이내 결론을 얻었다.
수술은 몰라도 케어는 연성대학병원 의료진이 한다고 주장했을 법했다.
그런 요구는 당연히 제임스의 심기를 건드렸음이 분명했다.
평소 제임스 성격이라면 수술 전부터 마지막까지 환자를 케어함이 맞다.
그 이유리라.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태수 또한 환자에 대한 걱정은 없다.
기부 수술을 이야기할 정도면 꽤나 부자 아니면 정재계 실력자임이 확실했다.
그런 VIP 환자라면 연성대학병원에서 허투루 방치할 리는 없다.
게다가 주치의까지 병원에 상주한다니 환자에 대해서 예민하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또한 간만에 공식적인 외출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하루쯤은 마음 놓고 쉬고 싶었다.
동성종합병원의 생활이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송민규나 정민수가 부담을 줄여주고 있기에 혼자 전전긍긍할 일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 여러 사건 때문에 잠 한번 편히 잘 수 없었다.
태수에게도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쉬자.
이런저런 생각도 오늘은 그저 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소회의장을 나선 태수는 제임스 일행을 안내하며 몸을 움직여 복도를 걸어가던 중이다.
저 멀리 강영준의 모습이 보였다.
제임스를 확인했는지 강영준이 얼른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물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게 있습니까?”
당연히 한국어다.
이 정도 영어를 못할 강영준이 아니지만 깊은 대화에 들어간다면 골치아프다.
마침 옆에 태수가 있기에 편하게 말한 탓도 있었다.
그걸 들은 제임스가 알아듣지 못해 태수를 바라봤다. 옆에 브레드 김이 있지만 계속 통역을 해서 그런지 일부러 한 발자국 뒤로 빠져 있었다.
자연히 시선을 마주한 태수는 바로 통역해 줬다.
“도와드릴게 있냐고 물어봅니다.”
“아니야. 우리 일정 이야기해 주고 내일 보자고 해.”
“알겠습니다.”
태수는 대답하고는 강영준과 시선을 마주했다.
“식사하시고 호텔에서 쉬자고 하셨어.”
“아, 그래? 그럼 안내는 어떻게 하지? 아니다. 네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나야 고맙지. 그보다 오늘은 다들 못 볼 거 같은데.”
태수가 말끝을 흐리자 강영준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일도 시간 있잖아. 우리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안내 잘 부탁해.”
“그럴게.”
“아, 호텔은…….”
강영준은 알고 있는 걸 얼른 이야기해 줬다.
물론 브레드 김이 그동안 안내했던 부분들이지만 태수에게 한 번 더 설명했다.
호텔은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제임스가 연성대학병원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호텔 이름만 들어도 알 거 같았다.
강영준의 설명이 끝나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잘 부탁할게.”
“알았어.”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강영준이 슬쩍 옆으로 비켜서자 그제야 태수는 제임스를 다시 안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