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1
00344 344화
똑똑.
“들어와요.”
귀에 익은 브레드 김의 목소리다.
한국이라 그런지 브레드 김의 통역사 역할이 돋보였다.
바로 태수가 안으로 들어가니 큼지막한 회의 테이블과 빔 프로젝트, 그리고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앉아 있는 제임스.
오른쪽에는 마취의인 이작손과 조나단, 브레드 김이 앉아 있었다.
반대편에는 캐서린과 루미에가 앉아 있었다.
언제 봐도 기분부터 상쾌해지는 사람들이다.
다들 태수의 도착을 알고 있었는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태수 입장에선 아무런 사심 없는 그들의 미소가 너무도 그리웠다.
“저 왔습니다.”
“초청 장소를 듣고 놀라지는 않았나?”
조용한 제임스의 목소리에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거 같았다. 그래도 태수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대답했다.
“제임스가 불러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환영입니다.”
“듣기 좋은 말이라는 건 알겠는데, 정말 듣기 좋군.”
“진심입니다.”
태수가 정색하며 대답하자 제임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렇게 정색할 필요까진 없어. 자네에겐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곳이라는 건 알지만, 기왕이면 좋은 추억으로 바꿨으면 좋겠어.”
“추억 쌓기 하러 온건 아닙니다. 물론 전혀 없지도 않지만…….”
“사실은 동성종합병원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쪽에서 펄펄 뛰더군. 그건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제임스는 거침없이 말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눈치 볼 이유가 없는 제임스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해가 간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연성종합병원이다.
그런데 환자를 동성종합병원으로 이송한다?
연성대학병원측에선 자존심이 땅에 꺼짐은 물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당연히 거센 반발이 있었음은 그 자리에 없었어도 알만 했다.
태수는 그런 제임스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불러주신 걸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고생문이 열릴 텐데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다행이야.”
“한데 오즈마와 막스밀리언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태수의 말 그대로였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늘상 제임스와 같이 다녔던 인물들이기에 궁금증이 앞섰다.
그런 태수에게 곧장 제임스의 대답이 들려왔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갔네.”
“외람되지만 여쭤 봐도 됩니까?”
“다른 나라로 급하게 수술하러 갔어. 마땅히 집도할 사람이 없어서 갔네. 물론 빈손으로 오진 않을걸세.”
“그렇군요.”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임스가 짓궂은 미소를 머금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에 아주 믿을 만한 어시스던트가 있어서 보냈지.”
“진심이라 믿고싶습니다.”
“지금은 진심이야.”
“그럼 그때 동성종합병원에 내려오신 게, 아니, 한국에 일찌감치 들어오셨던 것도 이번 수술 때문이었습니까?”
“물론이야. 그동안 일정을 좀 조율해야 할 게 있어서 이제야 불렀어.”
“저야 감사하죠.”
태수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제임스가 살짝 애매한 뉘앙스를 풍기며 바라봤다.
“여기 추억이 그리 좋지않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리 쉽게 잊히진 않네요.”
“한 가지만 명심하게. 정작 수술에선 그런 감정으로 하면 절대 안돼.”
“물론입니다. 환자 상태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수의 신념 어린 말에 제임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아주 좋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태수의 대답을 듣자 제임스의 표정이 더욱 부드럽게 변해갔다.
잠깐 대화가 멈춘 사이 태수는 문득 난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임스, 그런데 이리 멀리 오셔서 직접 집도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날 지목했어.”
“지목이라니요?”
태수는 더욱 궁금했다.
제임스가 누구인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외과 의사 중에 한 명이다.
그 명성도 명성이지만 제임스가 늘 자리한 곳은 의료 혜택의 손이 닿지 않는 어려운 사람들 옆이었다.
그런데 지목한다고 한국에 냉큼 왔다는 게 더더욱 이상했다.
궁금증으로 가득한 태수의 얼굴을 봤는지 제임스가 미소를 띠며 설명했다.
“환자가 NGO에 거액을 기부를 해준다고 해서 말이야.”
“아, 기부 수술인 겁니까?”
태수는 그제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NGO는 순수의료봉사단체였기에 늘 자금난에 시달렸다. 거액의 수술 장비와 치료 약제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각종 기부금으로 단체를 꾸려갔다.
그중에는 다국적 제약회사도 있고, 세계적인 대기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매년 거액의 기부금을 통해 세금을 줄이는 편법으로 써먹었다.
물론 NGO는 그런 이해관계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후진국이나 분란 지역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의술에만 매진했다.
물론 그 외에 개인적인 기부도 받았다.
당연히 세상에 무조건적인 기부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세계적인 부호들이 거액에 기부금을 조건으로 수술을 요구했다.
NGO에서는 기부금의 액수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환자의 수술에 알맞은 의료진들을 파견했다.
물론 기부금을 더욱 많이 내놓으면서 저명한 의사들을 지목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부호들은 살기 위해.
NGO 의사들은 다른 난민들을 위해.
서로 원하는 건 전혀 달랐지만 기부금이란 명목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였다.
태수도 카슈미르에서 있을 때 그런 사례에 대해 종종 들었다.
제임스나 오즈마같이 인지도 있는 외과 의사들이 주로 기부 수술에 많이 파견되는 걸 직접 눈으로도 목격했다.
태수가 바로 이해하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많은 액수를 제시해서 말이야.”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기에 많은 금액을 제시했습니까?”
태수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환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며칠 만에 다시 만났다고 해도 안부를 포함해 궁금한 게 많을 터였다.
하지만 태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제임스도 그런 태수가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바로 제임스가 눈짓하자 브레드 김이 얼른 빔 프로젝터를 가동시켰다.
팟!
소회의장 한쪽 벽에 설치된 하얀 천에 가득 차도록 화면이 떠올랐다.
그 화면은 여러 개의 의학영상으로 가득했다.
너무도 커다란 화면이었기에 조금 떨어져 있는 태수의 눈에도 확연히 들어왔다.
X-RAY, CT, MRI. CBC 등등.
진행한 검사만 대략 9가지 정도였다.
그리고 한쪽에는 그동안 병원을 들락거렸던 환자의 EMR 기록이 시선을 끌었다.
태수는 천천히 영상들을 살펴보며 환자의 병세를 파악했다.
그때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 73세. 남성 환자로 chronic renal failure(만성신부전)로 몇 년 동안 hemodialysis(혈액투석)를 받아왔어.”
“혈액투석 기간만 3년이 넘었네요. 주 3일씩 투석하는 것도 번거로웠을 텐데요.”
“듣자 하니까 집에 혈액투석기를 아예 사 놨다고 하더라고, 주치의도 고용해서 집에 상주하게 했고.”
“제 생각인데 renal transplantation(신장이식)을 받는 게 빠르지 않았을까요?”
태수의 궁금증을 들은 브레드 김이 화면을 바꿨다.
태수가 새로운 검사 영상들로 꽉 채운 화면을 바라보는 사이 브레드 김이 말을 이어갔다.
“이미 오른쪽 신장을 두 차례 신장이식을 했지만 둘 다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더라고.”
“두 차례나요?”
“돈 있는 놈들이 지 살려고 무슨 짓을 못해. 그리고 여기.”
띡.
브레드 김이 퉁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는 리모컨을 눌렀다.
곧 검사 영상이 확대되어 커다란 화면을 채웠다.
그걸 본 태수의 얼굴이 조금은 심각해졌다.
“오른쪽이 이식받은 신장 같은데, 거의 망가졌네요. 왼쪽에 있는 자기 신장은 종양이 많이 보이고요.”
“그래서 세 번째 신장이식과 네 번째 신장이식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야.”
“신장 두 개를 동시에 이식한다라…….”
태수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무리 일치율이 높은 신장을 찾았다고 해도 이식수술은 늘 어렵다. 더구나 이 경우는 더더욱 힘들겠단 직감이 들었다.
앞서 두 번의 신장이식이 문제가 된 것도 그런 이유이란 걸 직감했다.
인체란 소우주란 말이 있다.
그만큼 오묘하고 섬세하다.
자기 장기가 아니면 격렬한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이식수술 기술이 발달해도 막을 수 없는 인체의 면역력이다.
한마디로 남의 것이 아무리 좋아도 결코 자신의 신체 일부가 아니란 의미였다.
그때 제임스가 태수에게 물었다.
“만약 자네가 집도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제 의견이요?”
“다양하게 들어봐야지.”
제임스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자신이 충분히 실수 없이 집도할 수 있는 수술이라고 해도 꼭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 사람이 그런다는 건 그리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제임스는 달랐다.
항상 오로지 환자를 위해 조금이라도 나은 수술 방법을 찾아 헤맸다.
태수도 제임스의 그런 열린 사고방식에 반했고, 덕분에 카슈미르에서도 간간히 의견을 나눴었다.
태수는 대답 대신 검사 영상을 자세히 살폈다.
그걸로는 부족한지 브레드 김에게 부탁했다.
“죄송한데 방금 전 화면에서 MRI와 CT 영상 좀 확대 부탁드립니다.”
“얼마든지.”
브레드 김은 빠르게 노트북에 손을 얹어 태수가 원하는 화면을 만들어 줬다.
커다란 화면이 원하는 대로 바뀌자 태수는 좀 더 집중해서 살폈다.
“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태수는 이식수술에 대한 경험이 턱 없이 부족한 상태다.
어시스던트로 몇 번 참여한 적은 있지만 직접 집도해 본 적이 없단 뜻이다.
하지만 태수의 머릿속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임상 경험이 담겨 있었다.
카프레네.
아직까지 의학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흉부외과의 전설.
흉부외과 분야뿐이 아니라 외과적인 수술도 많이 진행하고 후학들을 위해 많은 저서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했다.
태수는 그런 카프레네의 임상 경험을 하나씩 떠올렸다.
이런 경우에는…….
태수의 머릿속에 카프레네가 집도했던 다양한 수술 방법이 휘몰아쳤다.
그중에서 가장 알맞은 수술 방법이 뭘까?
그리고 제임스와 같이 수술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까.
하지만 태수의 머릿속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10여 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동안 제임스를 포함한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태수 또한 그 시간 동안 충분히 보고, 듣고, 익히고, 머릿속에 담아둔 임상 경험까지 짜깁기했다.
오 분이 더 지나자 태수가 결론을 내린 듯 제임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앞서 이식했던 오른쪽 신장은 재이식을 하는 게 어떨까요?”
“그럼 왼쪽 신장은?”
“좀 더 연구해 봐야 할 거 같은데, 지금 결과만으로 판단하면 autotransplantation(자가이식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가이식술은 자신의 신장을 떼어낸 후 문제가 되는 부분을 치료, 다시 몸에 결합하는 수술을 의미했다.
그러자 제임스가 흠칫한 얼굴로 태수에게 물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유는?”
“상태가 안 좋기는 합니다만 종양 등 변성 부위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 같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아……. 그리고 아무래도 자기 신장이라면 회복률이 훨씬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작용이나 거부반응도 없고요.”
태수가 아는 임상 경험을 총동원해 이야기하자 제임스의 표정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호기심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닌지 태수에게 이어서 물었다.
“지금 왼쪽 신장의 기능 테스트 결과 30퍼센트도 되지 않아.”
“음.”
“이런 상태인데 무리하게 자가이식을 진행할 이유가 있을까?”
제임스는 계속 질문 형식으로 의견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