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5
5화
EPISODE.03
휴버트 교수와 상담을 마친 러셀은 일단 식당으로 가 뒤늦은 점심을 먹었다.
물론 식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코마 일행과 마주치긴 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아하니 대충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 모양인데.’
녀석들이 러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시선을 돌린 것이다.
그 장면을 본 학생들도 몇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카데미에 남아 보충수업을 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학기가 시작할 때쯤에는 코마 일행이 러셀에게 겁을 먹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거질 것이 분명했다.
물론.
모두가 러셀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사원소학의 심화라.’
세상은 물, 불, 바람, 땅의 사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과거 한 마법사의 발언을 기초로 한 학문이다.
물론 진짜 세상이 사원소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마법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마법사 아카데미를 가건, 중요하게 여기고 가르치는 학문이 바로 사원소학이었다.
‘세상 전체는 아니라도, 마법에는 사원소를 기초로 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지.’
두툼한 서적의 페이지를 펼치자, 그 옛날 배웠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미 닳고 닳을 대로 읽었던 것이지만,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와작.
간단한 샌드위치와 함께 책을 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휴버트 교수와 면담까지 했던 러셀이 가질 수 있었던 점심시간이라곤 고작해야 30분 남짓.
짧다면 짧고, 길다면 충분히 긴 시각이었다.
기초라곤 하나 마도학의 갈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사원소학의 기초.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그 짧은 시간 안에 휴버트 교수가 말한 페이지를 모두 독파하기는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러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러셀에게 부족했던 것은 마나와 관련된 재능이었을 뿐, 지식을 쌓는 재능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사실상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복습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30분이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레포트에 적을 내용도 구상을 마쳤고…….’
탁.
그렇게 책을 접고 일어난 러셀이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다음 수업의 시간표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저녁부터는 본격적으로 마나로드를 단련해야겠지.’
과거의 자신이 2써클에 오를 수 있었던 바로 그 방법.
머릿속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씩 그려졌다.
* * *
저녁 여섯 시 반.
모든 일과를 마친 채 저녁까지 먹고 기숙사 내(內).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러셀은 가장 먼저 휴버트 교수의 레포트를 마무리했다.
어떤 내용에 관해 써야 하는지는 이미 머릿속으로 다 구상해둔 후였다.
그렇게 서둘러 레포트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러셀을 맞이한 것은,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기숙사 복도였다.
학생들 대부분이 고향으로 돌아간, 방학 무렵에서야 느낄 수 있는 복도.
코마 일행 같은 머저리들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학생들 역시 대부분이 도서관에 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비록 성적이 낮아 보충수업을 받고 있는 처지들이긴 하지만, 그들 역시 마법사를 꿈꾸고 들어온 아카데미의 학생들이었으니까.
본래라면 자신 역시도 그렇게 했어야 할 터다.
하지만.
‘시간 낭비야.’
아니, 솔직히 말해 시간 낭비는 아니다.
그들이 도서관에서 알뜰살뜰하게 보낸 시간과, 그 과정에서 쌓은 지식은 언제고 그들이 성장할 거름이 되어줄 테니까.
하지만 러셀 본인에게만큼은 시간 낭비가 맞았다.
‘마탑의 서고도 아니고, 그래봐야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위한 도서관.’
이미 진즉에 다 읽은 책들이었다.
‘교수와 조교용 서고라면 또 모를까.’
그렇기에 러셀은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신 밖으로 나섰다.
아카데미 중앙에 위치한 넓은 교정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일단은 이 썩어빠진 몸뚱이를 바꿔야 해.’
그에게 부족했던 재능은 마나를 받아들이고 발출하는 재능.
지나치게 약한 마나로드에서 오는 문제였다.
‘마나로드.’
마나가 순환하는 길.
들이쉰 숨을 통해 받아들인 마나는 마나로드를 통해 순환하며 결국에는 심장으로 가 쌓인다.
이 일의 역순이 마법을 발출하는 것.
다시 말해, 마나로드가 튼튼하면 튼튼할수록, 마나를 쌓고 발출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마나로드는 지나치게 얇고 가늘었다.
‘하지만, 7년이나 더 어린 시절로 돌아온 지금이라면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고대마법.
오버로드[Over Road], 그리고-.
‘위저드 바디[Wizard Body]’
둘 모두 아주 우연한 기회에 손에 넣은 것이었다.
용병 일 때문에 방문했던 어떤 사막.
‘그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피하기 위해 방문했던 폐 성터에서 얻었지.’
언제 지어진 것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고 낡은 폐 성터.
러셀이 이 두 마법을 손에 넣은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오래도록 모래 속에 묻혀 있던 마법서가, 모래바람으로 인해 드러난 거였으니까.’
두 마법서를 발견하던 순간에는 얼마나 기뻤던지.
물론 그 기쁨이 실망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버로드는 육체를 단련하는 것으로 마나로드를 넓힐 수 있는 방식이야.’
위저드바디는 근육을 단련시켜 그 근섬유로 마나로드의 일부를 대체할 수 있는 마법이었고.
둘 모두 익힐 수만 있다면 러셀에게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마법들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어.’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로 몸을 변화시키기에는, 당시 러셀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몸이 성인으로서 완전히 완성되어 있었기에, 변화의 폭 역시 크지 않았고.
‘그래도 덕분에 2써클은 달성했지만…….’
성장기인 지금 이 마법을 다시 익힌다면, 더 빠른 시간 내에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터.
‘그럼 시작해볼까.’
천천히 몸을 풀던 러셀이 이내 정원의 외곽을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연이어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바로 이것이 오버로드의 수련법.
‘땀을 흘리는 것으로 몸에 쌓인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고, 특유의 마나 순환 체계를 이용해 마나로드를 넓고 튼튼하게 만드는 방식이지.’
물론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마나로드를 개선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비루하다고 평가받던 육체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과 동등한 반열에 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단꿈에 부푼 러셀이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미션]고대마법 ‘오버로드’의 수련.
2km 달리기.
현재 달성도 : 0.05/2km
‘오버로드’로 인한 체질 개선 속도 일정량 증가.
[특이사항]이 미션은 ‘오버로드’를 수련할 경우 하루에 한 번,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버로드’의 수준에 따라 달려야 하는 거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버로드’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미션이 생성되지 않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미션창이 튀어나왔다.
‘달려야 하는 거리는 2키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긴 거리는 아니다.
과거, 용병 일을 하던 육체라면 널널하게 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몸은 아니었다.
체력단련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육체.
뛰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가 분명하다.
‘그래도 한다.’
보상이 무려 체질 개선 속도의 증가였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하루에 한 번, 반복적으로 수행 가능한 미션이라니.
힘차게 팔을 움직이며 러셀이 발을 뻗었다.
뜀박질을 반복했다.
오래지 않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허억, 허억.”
이제 고작 반을 조금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입고 있는 옷이 마치 철갑이라도 된 듯, 무겁게 느껴졌다.
폐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헐떡거렸지만, 러셀은 달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그였다.
‘고작 이 정도에서 주저앉을 수 없지.’
마법사로서의 성장도 해야 했고, 가문을 일으켜 세울 준비도 해야 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복수도.’
크게 보면 제국 전체가 아버지의 원수라고 할 수 있었으나, 단 한 사람의 원수 역시 존재할 테니까.
‘5써클의 마법사셨던 아버지가, 평범한 이에게 당하셨을 리가 없다.’
최소한 소드 익스퍼드 정도의 오러 수련자에게 당했을 것이 분명한즉, 원수를 찾고 싶었다.
원수를 갚고 싶었다.
그렇기에, 전과는 다르게 바꿀 거다. 그런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
1.99/2km
2/2km
.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눈앞에 떠오른 수치가 2km으로 바뀌는 순간.
러셀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런 그의 전신을 타고 미약한 빛이 그물처럼 복잡한 선을 그리며 번져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마나로드.’
러셀은 빛이 자신의 몸 위로 그려내는 길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것은 마나로드였다.
빛이 마나로드를 타고 흐르며, 노폐물을 배출하고 마나로드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되돌아온 세월은 무려 7년가량.
‘그 세월 동안 꾸준히 반복하기만 한다면.’
[오버로드의 효과가 소폭 상승합니다.]2km를 쉬지 않고 모두 달린 탓에 피로가 쌓이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긴장이 풀린 것일까.
서 있던 러셀의 다리가 일순, 비틀하고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쓰러지지 않았다.
“후욱. 후욱.”
쓰러지는 대신 손을 뻗어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며 다시 한번 거친 숨을 내뿜었다.
‘아직 끝이 아니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방금 막 마친 것은 ‘오버로드’의 수련뿐, 아직 ‘위저드 바디’의 수련이 남아 있었다.
‘오버로드와 마찬가지로 위저드 바디 역시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수련법이야.’
차이가 있다면 달리기 등의 유산소를 하는 오버로드와는 달리, 위저드 바디는 근섬유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점 정도?
‘근력운동이라…….’
과거 근육을 비대하게 키웠던 용병들에게 들은 여러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러셀이 원하는 것은 그 정도의 몸이 아니었다.
과하게 부푼 몸보다는-.
‘본업이 마법사라곤 하지만, 잘 수련한 기사 정도의 몸이라면 여러 방향에서 도움이 되겠지?’
몇 가지 근육 단련법을 떠올린 러셀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도…….’
[미션]아니나 다를까.
자세를 잡는 순간 미션을 알리는 반투명한 녹색의 창이 나타났다.
‘팔굽혀 펴기 50번, 윗몸일으키기 50번, 스쿼트 50번.’
그 외의 내용들은 ‘오버로드’를 수련할 때와 똑같았다.
‘해야지.’
그의 선택 역시 다르지 않았다.
러셀이 그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식어가던 몸이 다시 달궈지고, 땀 역시 다시 비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후두둑-.
땀방울이 떨어지며 러셀이 팔굽혀펴기를 하는 땅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어지는 것은 윗몸일으키기와 스쿼트.
“끄으으으으으-!”
배와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아프고 폭발할 것처럼 화끈거렸다.
이런 걸 좋다며, 매일 같이 수백 개, 무거운 바위까지 들고 해내던.
근육 빵빵하게 부푼 용병 놈들이 괴물같이 느껴질 정도!
‘아니, 괴물보다는 변태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마침내 그 모든 과제를 완수해냈다.
‘끝!’
마침내 마지막 하나 남은 스쿼트를 끝냈을 때.
다시 한번 ‘오버로드’때와 같은 빛이 러셀의 근육 위를 뒤덮었다.
[위저드 바디의 효과가 소폭 상승합니다.]미미한데다, 러셀밖에 볼 수 없는 빛.
그 빛을 바라보며 러셀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네.’
힘들게 해낸 후의 보상이 확실한 편이었으니까.
‘흐.’
그 후로의 일들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부여잡고, 샤워실로 향해 물을 씻었고 어찌어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곯아떨어졌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눈을 뜬 곳이 자신의 침대 위일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휴버트 교수에게 레포트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