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쿠궁!
아텀펠의 거대한 홀은 드레이커의 기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하나가 드레이커 소속 기사단의 기사 단장 혹은 부단장 직위를 맡고 있는 거물들이었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아텀펠의 문이 열리고 입단식을 치르는 스물네 명의 신입 기사가 드레이커 전용 제복을 입고 홀 안으로 들어왔다.
드레이커 가문의 정식 기사 입단식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자신이 속할 기사단을 스스로 골라 기사 생활을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기라성 같은 드레이커의 기사단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입 기사들은 가주인 아서 드레이커가 서 있는 단상을 향해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걷는 자세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그리고 그 스물네 명의 신입 기사들 중에는 지크 역시 있었다.
‘살벌하구만.’
지크를 제외한 스물세 명의 기사들은 정식 기사 위를 받은 뒤 혹독한 수습 기간을 통과한 이들이었다.
반면 지크는 드레이커 무투대회 우승자이면서 청색 기사 승급자라는 점을 감안해 특채로 수습 기간 없이 곧바로 정식 입단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신입 기사들까지 입장하며, 인재를 먼저 확보하려는 기사단장들의 뜨거운 시선과 어떻게든 좋은 기사단에 들어가고자 하는 신입 기사들의 열망이 드넓은 홀을 꽉 채우고 있었다.
단상에 오른 스물네 명의 기사들이 정해진 자리에 섰다.
가주인 아서 드레이커가 단상 앞에서 신입 기사들을 바라봤다.
특채로 정식 기사 위를 받은 지크를 제외하고 공식적인 시험을 치른 이들 중 가장 성적이 높은 이가 기수 대표로 가주 앞에 서서 선서를 했다.
아서 드레이커가 직접 기사들의 가슴에 용살패를 달아 줬다.
특채라서 가장 마지막 쪽에 선 지크에게 아서가 다가왔다.
그가 지크의 가슴에 용살패를 달아 주며 말했다.
“어떤 기사단을 선택할지 기대하마.”
아서는 곧장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부터가 입단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신입 기사 스스로가 어떤 기사단에 들어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한 기사단에서 한 기수에 받을 수 있는 기사의 수는 최대 세 명으로 한정되어 있었기에 기사단에서는 가장 좋은 인재 세 명을 데려가기 위해 전략을 잘 짜야 했다.
선서를 했던 기수 대표에게 가장 먼저 기사단을 고를 권한이 주어졌다.
“흑랑단을 선택하겠습니다.”
흑랑단은 수호 기사인 상흔의 기사, 가레스 드레이커가 이끄는 드레이커 가문 직속 기사단이었다.
가레스는 자신의 기사단을 선택한 기수 대표를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흑랑단의 표식이 주어졌다.
다른 신입 기사들 역시 성적순으로 자신이 원하는 기사단을 선택했다.
상위권의 기사들은 원하는 기사단에 입단했지만, 중위권부터는 거절당하는 이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3순위까지, 선택한 기사단에게 모두 거절당한 신입 기사는 다른 기사단이 데려가기 전까지 대기 발령 상태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하위권 성적이라 해도 내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차이가 난 것뿐이지 실력 자체는 의심할 것이 없었다.
어차피 인력이 필요한 다른 기사단으로 자리를 찾아 배치되기 마련이었다.
공식적인 시험을 거친 신입 기사들의 배치가 모두 끝나고 드디어 특채인 지크의 차례가 됐다.
지크가 앞으로 나섰다.
순간 아텀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채이긴 했지만 순혈 각성자이자 최연소 청색 승급자, 최연소 발할라 졸업생인 지크를 모든 기사단이 탐내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드레이커 첩보 부대인 흑무대도 있었다.
흑무대장인 바론 드레이커가 듀크 드레이커와 함께 뭔가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지.’
지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흑무대장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뒤에 있던 아서가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 어떤 기사단을 선택할 것이냐.”
대부분은 지크가 칼리 드레이커가 이끄는 백은 기사단을 선택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사계성에는 그녀가 지크 드레이커를 포섭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크에게 눈빛으로 호소하는 기사단장들이었다.
그때 지크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는 기사단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순간 홀에 정적이 흘렀다.
다들 자신들이 뭔가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정적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낮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홀 안을 채웠다.
단상 위에 있던 아서 드레이커가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묻겠다. 지크 드레이커, 어느 기사단을 선택하겠느냐.”
그러자 지크가 입을 열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대답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무 곳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기사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커졌다.
단상 위에 있던 아서 드레이커가 손으로 탁상을 내리쳤다.
우우우웅!
아텀펠의 홀 전체가 파동에 흔들렸다.
그러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서 드레이커가 단상에서 내려와 지크의 앞에 섰다.
“기사단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게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기사단을 선택하지 않고 혼자 기사로서 임무를 다하려고 합니다.”
그 말에 뒤에 있는 원로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드레이커 역사상 이런 선택을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서가 지크를 향해 말했다.
“그 뜻은 첫 임무 수행을 혼자서 치르겠다는 것이냐.”
드레이커의 신입 기사들은 입단식을 치른 뒤 곧바로 첫 임무에 투입된다.
소속 기사단장이 신입 기사를 평가해 선택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때 어떤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에 따라 그 기사의 격이 정해졌다.
게다가 이때 만약 신입 기사가 첫 임무를 실패하게 되면 그는 그대로 기사 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임무를 선택할 소속 기사단장의 판단과 기사단의 도움이 상당히 중요했다.
지크는 아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서는 지크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는 몸을 돌리더니 모인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는 무소속으로 결정했다.”
아서의 결정에 뒤에 있던 원로들이 깜짝 놀랐다.
“가주, 순혈 각성자가 기사단을 고르지 않는다니! 전통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아서가 단상 위로 오르며 원로들을 향해 말했다.
“가문의 규율 어디에도 순혈 각성자가 기사단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 하지만…… 그러다가 첫 임무를 실패하기라도 하면……!”
아서가 자리에 앉아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또한 저 녀석의 선택이지요.”
원로들은 속 편한 소리를 하는 아서를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홀에 모인 기사들이 지크의 결정으로 충격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기사단장들은 빠르게 상황을 인식하고, 신입 기사들에게 부여할 첫 임무를 고르고 있었다.
촤라라락!
홀 천장에서 임무 목록이 적힌 길고 거대한 양피지가 쭉 내려왔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어려운 임무도 있는 반면, 기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임무까지 다양했다.
기사단장들은 양피지에 적힌 임무들을 보고 모두 골똘히 생각했다.
기사단의 역량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격을 갖출 만한 임무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기사단장들은 기사단과 신입 기사의 역량을 고려해서 적당한 임무를 선택했다.
스물세 명 모두 임무 선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지크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서기관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 경은 무소속이기 때문에 임무를 선택한 후 혼자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지크는 서기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양피지를 쭉 훑어봤다.
적당히 아무거나 하나 끝내고 한동안은 수련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만약 기사단을 선택한다면 언제 어떻게 임무가 부여될지 몰라, 자유롭게 수련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일부러 아무 곳도 고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칼리 누님께는 미안하긴 하지만, 오히려 내가 기사단 밖에 있어야 도움을 주기가 편할 수도 있으니 이해하시겠지.’
양피지의 임무를 쭉 훑어보던 지크는 유독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라?’
지크는 임무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길드 연합의 정식 의뢰인지 임무 난이도가 A로 되어 있었다.
‘골린 요베르, 히모나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고대 헤르시온 때문이라도 한 번은 만나려 했던 골린에 대한 소식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지크는 망설임 없이 골린의 수색 임무를 선택했다.
그러자 다시 홀이 술렁였다.
임무를 배정하는 서기관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지크에게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 경, 해당 임무는 A랭크 임무입니다. 기사단이 없이 혼자서 A랭크 임무를 수행하는 건…….”
“상관없습니다. 배치해 주십시오.”
누가 봐도 신입 기사 혼자서는 수행할 수 없는 임무였다.
홀 내부가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서기관은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어쩔 수 없이 지크에게 골린 수색 임무를 배치했다.
임무 배치까지 모두 끝나자 아서 드레이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시대를 열 젊은 용살자들이 가문 기사단에 정식으로 입단 하였소! 그대들의 앞날을 축복하겠소! 부디 무사히 첫 임무를 수행하고 오기를 바라오!”
가주의 축사를 끝으로 입단식 행사가 종료되며 아텀펠에 모인 드레이커의 기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신입 기사들은 물론 기사단들도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지크 역시 저택으로 돌아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바바리안의 영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아르고스로 움직일 계획이었다.
‘골린이 실종됐다니. 뭔가 일이 있었던 건가.’
케이를 통해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이라도 알아보고 가야 할 듯싶었다.
그렇게 홀에서 나가려 하는데 지크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지크 드레이커.”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깜짝 놀랐다.
“아울 교관님?”
아카데미에서 인연을 맺었던 목류검 아울 드레이커였다.
목석같던 사내가 더욱 목석같은 모습으로 지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크는 아울 드레이커를 보고 그의 경지가 한 단계 올랐음을 깨달았다.
‘적색 기사의 벽을 깼군.’
전생에서 봤을 때도 아울 드레이커는 적색 기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크와의 대련을 통해 깨달음을 더 빨리 얻은 모양이었다.
아울이 지크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왜 기사단을 선택하지 않았나. 너라면 그 어떤 기사단이든 환영받았을 텐데.”
지크가 아울을 보며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왠지 아울 교관님이라면 제 말을 이해해 주실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혼자서 수련할 시간이 필요해서 일부러 안 골랐습니다.”
지크의 말에 아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수련을 위해 기사단을 선택하지 않았다니.
드레이커 역사상 이런 선택을 한 이는 지크 뿐이었다.
아울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군.”
아울이 지크에게서 느낀 천재성은 그가 감히 평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지크의 말대로 오히려 기사단을 들어가지 않는 것이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데 더 유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크가 아울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울 교관님은 어느 기사단 소속이십니까.”
“나는 천검단 소속이다.”
“천검단이면 검의 극의를 쫓는 전통 있는 명문 기사단이라 들었는데 교관님과 잘 어울리는군요.”
그 유명한 흑색기사 검왕 베르나스가 바로 천검단 출신이었다.
아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에게 말했다.
“생각 있으면 들어와라. 너라면 언제든 환영…….”
“아뇨, 괜찮습니다.”
목석보다 더 목석같은 남자 아울 드레이커를 시무룩하게 만드는 지크였다.
아울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대련을 위해 저택에 방문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홀을 떠났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홀을 나서려던 지크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입단식에 아벨이 안 보였군.’
가문의 중요한 행사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아벨이었다.
게다가 적사자 기사단의 단장인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뜻했다.
‘어디서 뭔가 또 음모를 꾸미고 있겠지.’
지크는 집요한 아벨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텀펠을 나가자 홀은 아무도 없이 비어 버렸다.
그때 홀의 그늘 안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아벨이었다.
아벨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눈은 이전에 지크에게 죽었던 나락의 마법사처럼 붉은색 마안의 상태였다.
그가 이를 갈며 읊조렸다.
“지크…… 내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던 그놈이 바로 네놈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