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치이이이익!
아르고스로 향하는 열차가 길게 증기를 내뿜었다.
지크는 개인 특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케이가 보낸 자료를 살폈다.
골린의 실종 사건에 대해 신디케이트에서 조사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를 읽던 지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거인산맥으로 올라갔는데,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긴 지역이 바바리안의 영역 부근이었다고?’
바바리안들은 폐쇄적인 문화로 자신들끼리만 살아가기 때문에 영역에 접근하는 외부인은 무조건 죽인다.
만약 골린이 잘못해서 바바리안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라면 문제가 커졌다.
“흐음, 임무의 목표가 구출이 아닌 수색이니까. 시신이라도 찾아가면 되려나.”
대책 없는 골린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지크가 있는 객실의 문이 열렸다.
지크는 경계하며 품에서 곧바로 단검을 꺼내 쥐었다.
“자, 잠깐! 기다려! 나, 나야!”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케이였다.
지크는 단검을 품에 다시 넣고 식은땀을 흘리는 케이를 향해 물었다.
“케이, 여긴 어쩐 일이야.”
케이가 외투를 벗자 언제나 입는 가슴이 푹 패인 드레스가 드러났다.
그녀는 지크의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고서는 연초를 입에 물었다.
“당신, 나한테 준 보안 상자에 무슨 자료가 있었는지 알아?”
지크가 케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알 수 있었다면 너에게 안 보냈겠지.”
지크의 대답에 케이가 구시렁거리면서 보고서를 꺼냈다.
“한 번 봐.”
케이가 넘긴 자료를 넘기며 읽던 지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심각하군.”
자료에는 인간에게 마수의 피를 주입하는 실험만 적혀 있지 않았다.
‘인간과 몬스터를 결합하는 키메라 실험이라.’
인체 연성 마법은 흑마법 중에서도 금기 중의 금기였다.
제국은 금기를 어기고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키메라로 만들 실험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인간뿐만 아니라 게토의 조인족은 물론 여러 수인 종족들을 납치해 실험을 했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완전 미쳤군.”
지크의 말에 케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건 어떻게 할 거야? 이거 밖에 나가면 제국 쪽은 난리가 날 텐데.”
그 말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제국 측에서는 부정을 하겠지. 실험을 했던 유적지가 모두 무너져 내렸으니 증거도 없고.”
“자료가 남아 있는데도 발뺌을 한다고?”
“롬 제국을 잘 모르는군. 자신들에게 불리한 건 무조건 잡아떼고 보는 놈들이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꼬리 자르기로 빠져나갈걸. 아마 마법사의 개인 일탈이라고 뒤집어씌우겠지.”
지크는 전생에서 제국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봤다.
아틀라스를 무너뜨렸을 때도 제국은 시민들을 위협하는 반군들을 잡기 위해 평화군을 배치한다고 떠들어 댔었다.
하지만 정작 그 평화군이라는 놈들이 아틀라스 시민들의 절반 이상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 학살에는 아벨 드레이커와 모르간 부폰이 개입되어 있었다.
용감한 기자 중 하나가 아틀라스 시민들을 학살한 증거를 들이밀었으나, 모르간은 뻔뻔하게 평화군이 들어오기 전 반군들이 저지른 만행이라며 거짓을 발표했다.
기자는 끊임없이 제국의 만행을 고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기자는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제국이 기자를 암살했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낸 사람은 없었다.
지크는 자료를 넘겨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제국이 수인족들을 실험체로 썼다는 내용에 주목했다.
수인의 자유를 위해 서부 혁명군을 일으키는 웅크린 불꽃의 노래에게 이 자료를 보내면 그들에게 좀 더 빠르게 명분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조만간 웅크린 불꽃의 노래를 만나 봐야 겠군.’
지크는 자료를 다시 케이에게 넘기며 말했다.
“일단 제국이 점차 미쳐 간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겠군. 그리고 ‘나락’이라는 곳에 대해서는 알아본 게 있나.”
그러자 케이가 고개를 저었다.
“흑마법사 클랜을 모두 뒤졌는데 사자의 서를 가진 나락이라는 곳은 나오지가 않더라고.”
“신디케이트의 정보망조차 닿지 못하는 놈들이라…….”
“그쪽은 계속 찾아볼게. 제국 쪽 실험 자료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 가지고 있자고. 어설프게 터뜨려서는 안 돼. 꼼짝 못 하게 만들 함정을 파야 정확하게 찌를 수 있지.”
케이는 자료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우리의 보스니까 나는 명령을 따르겠어.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해. 혼자서 일을 벌인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위험은 절대 혼자만의 위험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케이의 말에 지크가 씨익 웃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군.”
“옛날? 언제?”
지크는 순간 자신이 전생의 케이를 떠올렸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싱겁기는. 첫 임무 잘 마치고 와. 아틀라스에 돌아오면 페이넌 선배와 함께 귀환 파티를 준비해 놓을 테니까.”
“기대하도록 하지.”
케이가 객실 밖으로 나가고 얼마 안 있어 열차가 출발했다.
지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 안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냈다.
어머니의 유일한 유품인 크로노스의 시계를 바라보며 지크는 생각에 잠겼다.
* * *
지크는 아르고스에 도착하자마자 드레이커의 정복을 인벤토리에 넣고 평소처럼 용병들이나 할 법한 복장을 걸쳤다.
그러고는 이전에 만들었던 지크 머레이의 신분증을 들고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길드 건물이 던전 출입증을 받으려는 모험가들로 가득 찼을 텐데 이상하게 한산했다.
지크가 안으로 들어가 낱말맞추기를 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습니까.”
직원이 고개를 들어 지크를 보더니 혀를 찼다.
“소식 못 들었습니까. 몬스터 경계령 3호가 떨어졌어요.”
경계령 3호라면 산맥에 고위험군 몬스터가 출몰한다는 의미였다.
지크는 의아한 얼굴로 직원에게 물었다.
“경계령 3호라니. 오우거라도 돌아다닌답니까.”
“오우거뿐입니까. 오크는 기본이고, 저쪽에서는 사이클롭스까지 나타났답니다.”
사이클롭스는 오우거보다 더 사납고 강한 몬스터였지만, 깊은 곳에 위치한 던전이 아니면 오히려 보기가 쉽지 않았다.
지크는 뭔가 거인 산맥에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그때 사냥개 놈들이 산맥을 쑤시고 다녀서 그런가.’
카이시르의 던전에서 봤던 사냥개들은 모두 바바리안에게 찢겨서 죽었다.
다른 사냥개들이 와 산맥을 들쑤셔 놔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뿐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경계령 3호가 떨어졌다면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가는 정기 마차도 운영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바바리안의 영역까지 혼자서 올라가야 할 듯싶었다.
‘이렇게 된 거, 물이랑 식량은 인벤토리에 충분하니 바로 올라가야겠군.’
어차피 몬스터가 많다면 폭식으로 에너지를 채워도 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지크는 마음을 먹고 곧장 거인 산맥으로 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왜 경계령 3호가 떨어졌는지 이해했다.
“산맥 초입에 웬 놀들이?”
놀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이익!
지크가 가볍게 놀들의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바하무트를 휘둘렀다.
촤라라라락!
놀들은 그대로 온몸이 조각나 땅에 흩어졌다.
[야생의 놀을 처치했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5점을 획득합니다.]지크는 강해질수록 몬스터를 잡으면서 받는 포인트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상기하며 지크는 달려드는 잡몹들을 모조리 잡았다.
슬슬 몬스터를 잡으며 산을 오르던 지크는 앞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끄아아악!”
이어 울리는 비명 소리를 듣고 지크는 은신으로 몸을 숨긴 채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나무 위에 올라 상황을 살피니 모험자 파티로 보이는 이들이 몬스터 무리에 휩싸여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푸슝!
궁수가 몬스터를 향해 화살을 날리고, 마법사가 뒤에서 마법으로 엄폐물을 만들어 몬스터의 접근을 막았다.
검사는 다가오는 몬스터를 밀어내며 검으로 급소를 찔렀다.
다른 마법사는 멀리 있는 몬스터를 향해 원거리 마법을 날려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상급 모험가들인 듯 전투에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몬스터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지크는 모험가들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오크에 놀에, 거기에 미노타우로스까지. 서로 다른 종족의 몬스터들이 왜 같이 있는 거야?’
특히나 오크와 놀은 별로 사이가 좋은 종족이 아니었다.
서로 사는 지역이나 환경이 비슷하다 보니 종족 간 다툼이 잦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크와 놀이 협력을 하고, 뒤에서는 미노타우로스가 그들을 지원하고 있었으니, 온갖 경험이 있는 지크로서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지크는 용안을 펼쳐서 주변을 살폈다.
보통 이렇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대부분 흑마법사가 개입되어 있었다.
지크는 용안을 통해 한구석에 있는 동굴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흘러나오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해당 동굴로 튀어갔다.
휙!
지크가 동굴로 바로 들어가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가고일들이 달려들었다.
카아아악!
피부가 마치 돌처럼 단단한 가고일은 모험가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검이나 마법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크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서걱―
바하무트는 단번에 가고일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검은 로브를 입은 이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가, 강화된 가고일을 저렇게 쉽게……?』
지크는 검은 로브를 입은 이에게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단순한 네크로맨서 같지는 않고. 리치인가.”
고위급 흑마법사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스스로를 언데드로 바꾸는 금기술.
리치가 된 흑마법사는 언데드가 되는 대신 이전보다 더 강력한 흑마법을 쓸 수 있었다.
리치가 지크를 향해 앙상한 손가락을 내밀었다.
『지긋지긋한 모험가 놈들! 당장 이곳에서 꺼져라!』
순간 땅속에서 몬스터 뼈로 만들어진 스켈레톤들이 몸을 일으켰다.
캬아아아!
몬스터 스켈레톤들이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크의 검을 맞고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일반적인 스켈레톤보다 몇 배는 강한 몬스터 스켈레톤을 쉽게 부숴 버리는 지크를 보며 리치가 당황했다.
『네, 네놈. 모험가가 아니구나. 기, 기사인 게냐!』
“그런 것까지 말해 줘야 하나.”
지크가 혀를 차며 리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바하무트가 리치의 팔을 잘랐다.
잘린 부위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뭉치더니 곧 뼈다귀 같은 리치의 팔이 다시 재생됐다.
리치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건방진 기사 놈. 네놈을 데스나이트로 만들어서 영원히 부려 먹어 주마.』
말을 마친 리치의 몸을 검은 연기가 휘감았다.
그러더니 곧 검은 연기가 날카로운 창이 돼서 지크를 향해 날아왔다.
파파파팍!
용린갑을 두른 지크는 리치의 흑마법에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때 지크는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저놈도 정화로 잡을 수 있으려나.’
지크는 아가멤논의 마스크를 꺼내 품에 넣고 정화 스킬을 썼다.
우우우웅!
황금빛 파동이 지크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지크는 그 파동을 검에 집중시킨 뒤, 리치를 향해 정화의 힘을 휘둘렀다.
촤아악!
황금빛 오오라가 리치의 몸을 휘감은 검은 연기와 부딪쳤다.
치이이이익!
『크아아아악!』
정화의 기운이 닿자 연기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리치는 고통스러운지 온몸을 비틀며 덜덜 떨었다.
“호오, 괜찮은데.”
지크는 생각난 김에 영혼 봉쇄술도 써 보기로 했다.
휘리리릭!
지크의 팔에서 쇠사슬이 튀어나와 리치를 휘감았다.
『커헉!』
쇠사슬에 묶인 리치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지크가 다가가자 리치가 덜덜 떨면서 외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긴 뭘 살려 줘. 리치면 어차피 죽은 거 아니냐.”
『그, 그게 미묘하게 좀 다릅니다.』
“그러든 말든, 내가 왜 너를 살려 줘야 하는지 모르겠군.”
리치는 마력이 높은 언데드였기에 잡으면 꽤 좋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지크는 망설임 없이 황금빛 오오라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끄아아악!』
잘못하다가는 완전히 소멸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리치가 급하게 소리쳤다.
『나, 나으리! 살려 주시면! 보, 보물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