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신성한 수호석? 테라칸 드레이커가 남긴 거라고?”
지크는 팔찌를 보며 의외의 아이템에 깜짝 놀랐다.
테라칸 드레이커가 남긴 아이템이 왜 보고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는 말인가.
그는 팔찌의 정보를 확인했다.
―팔찌 정보―
설명 : 환수를 소환할 수 있는 수호석이 박혀 있는 팔찌
고유능력 : 사용자의 영혼에 맞는 환수를 소환함
특이 사항 : 수호석에 요정왕의 축복이 깃들어 있음
“요정왕의 축복이라.”
영웅왕 카이시르는 요정왕의 피를 이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지크는 영웅왕의 안식처에서 카이시르에게 검을 배울 때 요정왕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카이시르는 요정왕이나 요정들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요정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실 현상계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다. 정말 특별한 경우일 때만 현상계에 개입을 하게 되는데 그것도 별로 좋은 게 아니야. 그럴 때면 항상 이 세계에 큰일이 벌어지거든.’
이야기 속의 요정왕은 항상 영웅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영웅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엇인가 큰일이 벌어질 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지크는 용살자인 테라칸 드레이커가 요정왕의 축복을 받은 수호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테라칸 드레이커가 남긴 유산이라면 뭐가 됐듯 좋겠지.”
지크는 바로 수호석을 발동시켜 보기로 했다.
“근데 이거 어떻게 발동시키지?”
그가 팔찌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시스템에게 물어봐도 딱히 작동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았다.
한참을 팔찌와 씨름하던 지크는 별생각 없이 마나를 일으켜 수호석을 만졌다.
우우우웅!
그러자 수호석이 지크의 마나에 반응했다.
“마나로 작동한다니…….”
마나를 다루기 위해서는 중단전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은 중단전을 열 수가 없다.
지크 역시 죽을 뻔하다 간신히 얻은 힘이지 않은가.
그러니 애초에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는 소리다.
지크는 왜 테라칸 드레이커의 유산이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를 이해했다.
어떤 기능을 하는 아이템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으니 여기저기 휩쓸리다가 보존 상자로 굴러들어 온 듯싶었다.
지크는 팔찌를 차고 마나를 더욱 불어넣었다.
그러자 수호석에서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신성한 수호석이 작동합니다.] [요정왕의 축복으로 환수보다 더 상위급 존재인 영수까지 매칭 범위를 넓힙니다.] [사용자의 영혼과 짝이 맞는 영수를 매칭합니다.]수호석에서 흘러나온 빛이 지크를 감쌌다.
동시에 그 빛이 아지랑이처럼 변했다.
상서로운 기운을 담은 아지랑이가 바닥에 기묘한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아지랑이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그 안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영롱한 빛이 폭발하듯 주변에 퍼져 나갔다.
[영수 소환을 성공했습니다.]지크는 아지랑이 사이에서 걸어나오는 영수를 바라봤다.
“이건?”
[영수 용마(龍馬)를 소환했습니다.]지크 앞으로 범상치 않은 생김새의 말이 다가왔다.
머리에는 사슴과 같은 뿔이 달려 있었고, 몸집은 일반 말보다 1.5배는 컸으며, 갈기가 붙어 있는 목덜미에는 용처럼 비늘이 붙어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청회색 빛 털을 가진 용마는 우아한 자세로 지크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를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듯이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였다.
[영수에게 이름을 부여하면 수호석을 매개로 언제든 소환이 가능합니다.]“이름을 부여하라고?”
지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용마의 눈동자를 보며 고민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케팔로스.”
과거 영웅왕 카이시르의 애마였던 부케팔로스의 이름을 따왔다.
그가 이름을 붙임과 동시에 부케팔로스의 정보가 떠올랐다.
―부케팔로스 정보―
설명: 상서로운 기운을 간직한 용마
고유능력: 두 개의 뿔에서 우레의 힘을 소환할 수 있음
특이사항: 상위급 영수인 용마들의 왕
“용마의 왕?”
영수들 사이에서 왕이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일반 용마보다 더 뛰어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케팔로스는 지크가 지어 준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듯이 그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지크 역시 부케팔로스가 마음에 들었다.
영혼과 짝이 맞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부케팔로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영수라더니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지 부케팔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는 시험 삼아 부케팔로스의 등 위에 올라탔다.
용마의 덩치가 워낙 커, 잘 탈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앉아 보니 상당히 안정감이 있었다.
지크가 올라타자 부케팔로스가 보고 이곳저곳을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뛰어도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놀라운 부분은 그게 끝이 아니었는데, 부케팔로스는 보고 벽을 타고 수직으로 오르더니 천장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뛰어다녔다.
“맙소사! 괜히 영수가 아니구나!”
말처럼 보였지만 환수종보다도 상위급 존재인 영수였기에 상서로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부케팔로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자 지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등에서 내려왔다.
“부케팔로스. 다음에 소환할 때는 같이 마음껏 넓은 곳을 달려 보자.”
부케팔로스가 기분이 좋은지 투레질을 했다.
지크가 소환을 해제하자 용마는 다시 원래 있던 영계로 돌아갔다.
“예상치 못한 멋진 선물을 얻었구나.”
그는 더 볼 것도 없이 팔찌를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사실 인벤토리를 사용하면 숨겨서 갖고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보고는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을 게 뻔했기에 그런 수는 쓰지 않기로 했다.
보고에서 나온 지크가 별다른 기능도 없는 팔찌를 가지겠다고 보고하자, 담당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이들의 경우에는 검, 아니면 갑옷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고르든지 그것은 들어간 사람의 마음이기에 담당자는 별다른 말없이 출고 수속을 해 줬다.
지크는 그가 의아해하는 것을 느꼈으나, 용마 부케팔로스를 소환할 수 있는 팔찌를 얻어서 뿌듯할 뿐이었다.
며칠 동안 파티에 시달렸던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 * *
지크는 사계성에 간 김에 칼리를 보고 돌아가려 했지만, 그녀의 외부 출장이 길어지는 바람에 만날 수 없었다.
듀크와 안드레이는 조금 더 사계성에 머물기로 해서 지크는 먼저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데커가 그를 보고 말했다.
“도련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라고?”
곧장 응접실에 가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이가 앉아 있었다.
“클리프?”
라인하트 상회의 주인인 클리프 라인하트가 저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지크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지크 경, 드레이커의 정식 기사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지크가 클리프를 보며 말했다.
“갑작스레 존대를 하니 당황스럽군.”
“대륙 최연소 승급 기사에 드레이커의 정식 기사가 되셨으니 제가 말을 높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온 건가. 첫 번째 요구 관련해서 보내 준 내용은 다 받았는데.”
“지크 경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듣고 있으니 말해 봐.”
“혹시 사람들을 물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크는 클리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것저것 바라는 게 참 많군. 어차피 사용인들은 이쪽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 그냥 말해도 돼.”
그러자 클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응접실 뒤쪽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얼굴을 케이프에 달린 후드로 가린 여성이었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설마?’
여성이 후드를 뒤로 밀어 얼굴을 드러냈다.
“다시 뵙는군요. 지크 경.”
지크가 그녀를 보고 입을 열었다.
“멜리사 왕녀님.”
클리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멜리사 왕녀를 공손한 태도로 에스코트했다.
멜리사 왕녀는 지크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크는 멜리사 왕녀와 클리프를 번갈아 쳐다보며 상황을 추측했다.
“라인하트 상회의 실제 주인은 왕녀님이었군요.”
멜리사가 우아하게 미소를 지으며 지크를 바라봤다.
“지크 경은 확실히 다른 기사들하고는 다르시군요.”
지크는 그제야 클리프가 무모하게 홍화병의 치료 약을 구하려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충성의 발로였다.
지크는 멜리사를 보며 말했다.
“왕녀님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지크 경은 제가 온 게 별로 기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럴 리가요.”
사실 그랬다.
빨리 참룡검결을 수련해서 숙련도를 높여야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기에 다른 곳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 자체가 탐탁지 않았다.
멜리사가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작게 웃고는 지크를 보며 말했다.
“지크 경께서 주신 치료 약으로 목숨을 건졌으니 감사의 인사도 드릴 겸 찾아왔어요.”
“정당한 거래로 이뤄진 일이니 따로 감사의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
“치료 약의 대가로 재밌는 조건을 거셨더군요.”
지크가 정색하며 말했다.
“말씀드리지만 계약을 무르거나 하는 건 안 됩니다.”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다만 궁금한 것이 있어서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뭐가 궁금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멜리사가 손짓하자 클리프가 지크 앞에 보고서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한 번 보세요.”
지크는 클리프가 건넨 문서를 펼쳐 봤다.
그것을 잠시 살펴본 그의 얼굴이 굳었다.
멜리사 알렌시아가 가져온 문서는 일종의 분석 보고서였다.
‘홍화병이 일반적인 병이 아닌 마법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합성 질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멜리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병원체 치료를 위해서 라인하트 상회 쪽을 통해 니르바나에 의뢰를 넣었었어요. 일반적인 병원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거예요. 아니길 바랐는데, 그 가정이 맞아 버렸네요. 그 보고서는 좀 늦게 도착해서 얼마 전에 받았어요. 다행히 저는 지크 경이 준 치료제로 미리 완치가 되었고요.”
지크가 멜리사를 보며 말했다.
“설마 내가 이 병원체를 만들어서 퍼뜨린 것이라 보는 겁니까.”
“만약 그랬다면 저에게 병원체를 감염시키지도 않았겠죠. 겨우 세 가지 요구를 얻어내려고 특수한 병원체를 합성해서 감염시켰다가 다시 치료해 준 건 이래저래 손해니까요.”
일반적인 전염병이라 생각한 홍화병이 설마 마법 합성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병원체라는 건 그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니 당시 홍화병이 유행했던 곳이 주로 알렌시아 쪽이었군. 붙어 있던 트로이 공국과 미들랜드 일부 도시들까지도 퍼져 나갔고 말이야.’
그녀가 다른 보고서를 하나 더 꺼내 지크에게 내밀었다.
“이건 또 뭡니까.”
“홍화병 환자 증가 추이 분석 보고서예요.”
멜리사의 말을 들은 지크는 보고서를 들고 살펴봤다.
홍화병 환자는 알렌시아의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나한테 이걸 보여 주는 이유가 뭡니까.”
“뭔가 이상한 걸 못 느끼시나요.”
지크는 천천히 보고서를 살폈다.
그러고는 멜리사가 뭘 말하는지 이해했다.
“국경 지대에서 발생한 전염병인데 제국 쪽에는 발병 환자가 없군요.”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경 지대 쪽을 중심으로 알렌시아 안쪽으로 확산이 점차 빨라지고 있어요.”
지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알기로 홍화병이 크게 유행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몇 년 더 남아 있었다.
‘왜 시기가 빨라진 거지. 내가 회귀하면서 뭔가가 달라진 건가.’
멜리사 왕녀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저는 최악의 상황을 자주 가정해요.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그래야 정말로 최악의 결과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이 홍화병의 병원체를 제국에서 만들어서 퍼뜨리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지크는 멜리사 왕녀의 말을 듣고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제국은 한 왕국의 왕녀를 생마도학 병기를 이용해 살해하려 했다는 뜻이었다.
그때 멜리사 왕녀가 지크에게 말했다.
“지크 경, 저에게 이것 한 가지만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뭘 말입니까.”
멜리사 왕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크 경이 제국 쪽 사람이 아니라고요.”
지크는 멜리사를 보며 말했다.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왕녀님께서 확신을 가지실 수 있겠습니까.”
“지크 경, 내게 왕녀라는 직위 외에 가진 장점이 있다면 그건 사람을 보는 눈일 거예요.”
그녀가 뒤에 있는 클리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클리프는 저에게 확신을 주었고, 저 역시 그에게 믿음으로 보답했어요. 그리고 라인하트 상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성장하게 될 겁니다.”
멜리사의 말처럼 라인하트 상회는 대륙 십대 상회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지크는 멜리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왕녀와 함께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그때 고민하는 지크 앞에 멜리사가 뭔가를 꺼냈다.
“만약 지크 경께서 저에게 확신을 주신다면 이걸 내어 드리겠어요.”
멜리사가 꺼낸 것은 또 다른 문서였다.
지크는 그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