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09
509화
‘역시 예상대로군.’
지크가 아카식 코드에서 봤던 대로 저주의 주체는 바하무트가 아닌 희생당한 망국의 왕자들이었다.
왕이 두려움에 떨며 지크에게 말했다.
“마, 망국의 왕자들의 저주가…… 점점 테베아 왕가를 조여 오고 있네.”
그가 멀어 버린 눈으로 불길을 응시하며 귀를 막았다.
“소리가 들린다. 저주받은 아이의 소리가 들려…….”
왕의 정신 상태는 온전치 않아 보였다.
언제든 저주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몇십 년 동안 계속되면서 불안증세가 극에 달한 듯싶었다.
‘다 테베아 왕가에서 뿌린 씨앗이다.’
지크가 속으로 혀를 차며 왕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패시브 스킬 불굴의 의지를 권능 증폭으로 왕에게 적용시켰다.
우우우웅―
정신 계열 스킬은 후에 부작용이 있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만큼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었다.
불굴의 의지가 적용되자 왕의 눈에 변화가 생겼다.
초점이 없던 눈에 눈동자가 또렷해지고 앞으로 처져 있던 몸이 꼿꼿하게 펴졌다.
“이건……?”
왕은 내내 뿌옇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보이지 않던 자신의 눈이 다시 원래대로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크가 그런 왕을 보며 말했다.
“어떤 현자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마음의 병은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고요. 저주에 겁을 먹고 현실에서 눈을 돌린 왕께서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하신 겁니다.”
왕이 고개를 돌려 지크를 바라봤다.
그가 이전과는 달리 힘 있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이렇게 한 것인가.”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놀랍군. 구원의 기사는 이런 마법도 쓸 줄 아는 것인가.”
“요정왕의 축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2미터가 넘는 장대한 기골에서 풍겨 나오는 강한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전설 속 사자왕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왕이 지크를 보며 말했다.
“내 정신을 되돌린 이유가 있겠지.”
“천 년 전 테베아 왕국에서 망국의 왕자들을 희생시켜서 무엇을 불러온 건지 궁금합니다.”
지크의 말에 왕이 얕은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할 만큼 두려워했던 저주의 실체.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당시 테베아의 국왕을 비롯해 살아남은 귀족들은 용이 자신들의 왕국과 가문마저 멸문시킬 것을 두려워했지. 그래서 그들은 고귀한 피를 희생시켜 열어서는 안 될 것을 열고자 했네.”
“그게 무엇입니까?”
“혼돈의 문.”
지크는 테베아 왕의 말에 눈동자가 커졌다.
‘이건 아카식 코드에서도 보지 못한 내용이다.’
헤르만이 준비한 자료를 매개체로는 닿을 수 없었던 숨겨진 정보라는 뜻이었다.
테베아 왕이 말을 이었다.
“혼돈의 문을 열고 그 안에 존재하는 혼돈의 존재들을 불러내 사악한 용을 막아 내고자 했던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말에 테베아 왕이 고개를 저었다.
“결과적으로 혼돈의 문을 여는 것 자체에 실패했네. 여섯 왕국의 왕자들은 무의미하게 희생되었을 뿐이지.”
결국 계획은 실패했고, 용들을 막은 것은 용살자 테라칸 드레이커였다.
지크가 왕을 보며 말했다.
“그럼 저주를 내린 것은 여섯 왕자들 중 하나였던 겁니까?”
그 말에 테베아 왕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기록에 따르면 혼돈의 문이 열리는 순간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군. 여섯 왕자의 몸이 녹아서 하나로 합쳐지더니 마차 하나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되어 있었네.”
혼돈의 힘에 의해 하나가 되어 버린 망국의 왕자들.
지크는 그 기괴한 존재가 테베아 왕가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들의 원한이 저주를 만들었고, 원혼을 흡수하여 힘을 키워 온 것이구나.’
지크가 다시 왕에게 물었다.
“그 혼돈의 문을 여는 법은 어떻게 안 것입니까.”
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 역시 그건 모르네. 기록에 거기까지 적혀 있지는 않았거든. 다만 한 가지 더 적혀 있던 것은…… 혼돈의 문을 열어 ‘외부의 힘’을 불러오려 했다고 되어 있었네.”
지크는 왕의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외부의 힘? 설마 외부종을 말하는 건가.’
지크는 테베아 여신의 신전에 가서 수많은 외부종들의 석상을 본 적이 있었다.
또한 그것을 통해 혼돈의 힘은 외부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천 년 전 테베아 왕국에서 부르고자 했던 것이 다름 아닌 외부종들이라는 건가.’
지크는 멸망한 카르코사의 과거 기억 속에서 도시 전체를 집어삼킨 거대 외부종을 떠올렸다.
용들을 막기 위해 이들은 더한 위협을 왕국에 불러오는지도 모르고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다.
다행히 문을 여는 것에 실패하여 소환이 완전히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외부종의 힘이 희생당한 망국의 왕자들을 흡수하고, 그 힘이 저주를 일으킨 것일 수 있었다.
그때 왕이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으윽, 머리가…….”
그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구원의 기사여. 나에게 다시 한 번 마법을 걸어 주게. 이토록 머릿속이 선명하고, 두려움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그 말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두려움에서 도망치실수록 고통은 더욱 커질 겁니다. 지금 느낌을 기억하며 폐하 스스로 이겨 내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지크는 그림자 속으로 다시 스며들어 갔다.
그가 사라지자 왕이 소리를 질렀다.
“안 돼! 돌아와! 돌아와!”
급격한 기분 변화와 함께 다시금 눈이 멀어 가는 것을 느끼며 테베아 왕이 절규를 내질렀다.
* * *
어떻게 흔적을 추적해야 할지를 깨달은 지크는 다시 지하로 돌아왔다.
‘저주받은 차남을 흘려보냈다는 지하수로.’
지크는 수로 근처로 가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용의 지혜를 발동시켰다.
우우우웅!
아카식 코드에 접속한 지크의 머릿속으로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흘러들어왔다.
그러다 과거의 편린 중 하나가 날카롭게 떠올랐다.
젊은 헤르만이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수로 쪽으로 향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바구니에 담긴 아이를 수로로 떠내려 보내려 하는 중이었다.
물에 바구니를 내려놓기 전, 그는 힘겹게 숨을 쉬는 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로선 왕의 명을 수행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이내 바구니를 수로로 흘려보냈다.
아이를 담은 바구니가 물길을 따라 흘러갔다.
지크는 기억 속에서 수로를 따라 아이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살폈다.
아이를 따라가던 어느 순간, 뭔가가 나타났다.
가면을 쓰고 정장을 입은 존재.
‘총 보스가?’
총 보스는 바구니에 담긴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츠츠츠―
그러자 아이의 몸에서 혼령이 빠져나와 그에게 흡수됐다.
총 보스는 만족스러운 듯한 반응과 함께 다시 사라졌다.
이내 물속에서 거품이 일더니 외부종의 촉수가 튀어나와 바구니를 휘감아 그대로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우우우웅―
지크가 눈을 떴다.
용의 지혜로 들여다본 과거의 기억이 끝나고 그는 다시 원래의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저주받은 차남의 원혼을 총 보스가 흡수했다. 역시 놈들의 정체는…….’
그는 굳은 표정으로 수로 쪽을 바라봤다.
지크는 인벤토리에서 직각으로 꺾여 있는 두 개의 금속 막대기를 꺼냈다.
제이슨이 만든 것으로 누군가 공간 이동을 한 곳에서 그 이동의 흔적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를 찾아 주는 마법 도구였다.
‘놈이 아이의 원혼을 흡수했던 곳으로 가면 아카식 코드를 이용해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지크는 아티팩트를 들고 천천히 수로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방금 봤던 기억을 더듬어 총 보스가 나타났던 자리에 섰다.
그가 제이슨의 아티팩트를 들고 다시 한 번 용의 지혜를 펼쳤다.
우우우웅―
현자의 눈을 이용해 과거의 카르마 데이터를 열람한 지크는 총 보스가 이동한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그 흔적에 대고 제이슨의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이이이잉―
아티팩트가 발동하면서 총 보스가 남긴 흔적을 찾아 방향을 가리켰다.
지크는 아티팩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그렇게 복잡한 수로 안쪽으로 향하던 지크는 어느 지점에서 막히고 말았다.
파지지직―
투명한 막이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가 손을 가까이하자 플라즈마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굉장히 까다로운 장애물이었겠지만, 지크는 이를 보고 곧바로 라벤을 불렀다.
지크가 바로 앞의 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벤, 죄다 먹어 치워라.”
봉황인 라벤이 플라즈마와 같은 에너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로 종종 이렇게 잘 써먹고 있는 지크였다.
라벤은 날개를 퍼덕이며 투명한 막 쪽으로 날아갔다.
파지지지직―
역시나 플라즈마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라벤은 신경 쓰지 않고 막을 구성하는 에너지를 열심히 뜯어 먹었다.
우르르루루―
라벤이 플라즈마 막을 모두 뜯어 먹자 저절로 방어막이 해제됐다.
제이슨의 아티팩트가 그 안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더 안쪽에 놈이 있다는 건가.’
조심히 내부로 들어가니 복도가 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밖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벽 곳곳에 이끼와 나무뿌리 같은 것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 나무뿌리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외부종의 촉수와 비슷하군.’
마치 나무뿌리 모양의 촉수가 벽을 파고들어 계속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맥이 뛸 때마다 그 나무뿌리에서는 찐득한 액이 주르륵 흘렀다.
둘러볼수록 이 통로 자체가 거대한 괴물의 뱃속 같은 느낌이었다.
우르르루―
라벤 역시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지크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지크는 레바테인을 꺼내 들고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 달라붙어 있는 나무뿌리들은 더욱 두꺼워졌고 맥도 더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앞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르르르―
사나운 울음소리가 벽을 튕기며 들려왔다.
지크가 용안으로 앞을 살펴보니 십 수 마리의 이형 괴물들이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몬스터인가.’
처음에는 눈에 띄는 부분이 익숙해 몬스터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생김새가 달랐다.
마치 몬스터를 이리저리 분해해서 신체를 마구잡이로 바꿔 두고, 외부종의 촉수를 붙여 놓은 것 같은 생김새였다.
그르르르―
그것들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동안, 알 수 없는 이형 괴물들이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아아악―
지크는 레바테인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치며 이형 괴물들의 몸을 순식간에 조각냈다.
투두두둑―
지크가 내지른 일검에 토막이 난 이형 괴물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생각보다 위협적이지는 않군.’
그런데 그때였다.
츠츠츠츠―
괴물들의 몸에서 촉수들이 기어 나오더니 가까이 있는 신체들끼리 붙기 시작했다.
우두두둑―
서로 다른 개체였던 신체들끼리도 자석이 끌어당기듯 철썩 붙어서 다시 모습을 갖췄다.
크르르르르―
지크는 왜 이 괴물들의 외형이 이렇게 제멋대로인지를 깨달았다.
‘노스트라 패밀리의 장난질이 여기에도 적용이 된 건가.’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괴물들을 보다가 한 가지를 떠올렸다.
‘놈들을 더 효과적으로 상대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크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용족 스킬인 폴리모프를 시행했다.
우우우웅―
빛과 함께 지크의 귀가 길어지면서 엘프로 신체가 변했다.
엘프로 변한 지크는 자신과 계약한 정령 중 하나를 불러냈다.
“이그니스.”
지크의 부름에 원인의 모습을 한 상급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르르륵―
순수한 불의 힘으로 이루어진 이그니스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계약자여.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가.]지크가 이형 존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들 말이야. 검으로 베어 내도 계속 재생하는데. 정령의 힘으로 불태우면 없앨 수 있겠나.”
이그니스가 지크의 말에 이형 존재들을 바라봤다.
[혼돈의 힘이 깃들어 있는 불길한 피조물들이로군.]이그니스의 말에 지크는 테베아 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본래 망국의 왕자들을 희생시켜서 혼돈의 문을 열려고 했다 했지. 그 문 안쪽에서 혼돈의 힘이 흘러나온 건가.’
카아아아악―
이그니스의 불길에 뒤로 물러섰던 이형 존재들이 다시 사나운 괴성을 내지르며 가까이 다가서려 했다.
이그니스가 달려오는 이형 존재들을 향해 정령의 불길을 내뿜었다.
화르르르르륵―
순수한 정령의 불길이 혼돈의 힘을 품은 이형 존재들을 휘감았다.
츠츠츠―
잠시 후, 이형 존재들은 이그니스의 불길에 의해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지크는 이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리멘탈 소드의 힘처럼 정령의 힘도 놈들에게 효과가 있군. 외부종과 같다고 봐야겠어.’
테베아 여신의 신전에서 엘리멘탈 소드로 여신상을 다시 복원시켰던 것을 떠올리고 한번 시험을 해 본 것인데, 모습이 달라도 외부종과 같은 것이라 보는 게 맞을 듯했다.
지크가 이그니스를 보며 말했다.
“좋아, 엘리멘탈 소드처럼 폭주할 위험도 없겠다. 한번 시원하게 쓸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