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80
580화
우우우우웅!
강한 진동과 함께 세 공녀의 머리 위에서 만들어진 차원의 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차원의 틈에서 위협적인 플라즈마 아크가 발생했다.
파지지지직!
오색 찬란한 플라즈마 아크가 몸피를 키우며 사방으로 확장됐다.
동시에 차원의 통로에서 강한 인과성의 폭풍이 일어나며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으으으윽!”
엘리자베타를 비롯한 마계의 삼 공녀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차원의 틈을 유지하기 위해 기운을 쏟아 내며 버텼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지크가 차원의 틈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츠츠츠츠츠―
그의 몸에서 솟구친 그림자가 세 공녀를 감싸며 갈라진 차원의 틈을 침식했다.
파지지지직―
이내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플라즈마들이 그림자에게 흡수되었다.
중간중간에 새어 나간 플라즈마는 차원의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 라벤이 날아서 부리로 콕 집어삼켰다.
우우우우웅!
지크가 일으킨 그림자가 불안정한 차원의 틈을 잡아 주자 세 공녀는 아까보다 힘의 부담이 덜한 상태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과성의 폭풍은 멈추지 않은 상태여서, 시공간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크는 그림자의 힘을 유지한 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안정되어라.]용언에 신격을 담은 언령이었다.
지크의 언령에 인과성의 폭풍이 줄어들면서 시공간이 안정화됐다.
세 공녀는 얼른 차원의 틈을 넓혀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어느새 넓어진 통로가 안정화되며 원의 형태를 띠게 됐다.
지크는 공녀들이 만들어 낸 차원의 통로 안쪽을 바라봤다.
판데모니엄의 양식과 닮아 있는 성 하나가 통로 너머에 존재했다.
지크가 천천히 몸을 띄웠다.
뒤에 있던 아라타소 역시 말에 올라타 지크의 뒤를 따랐다.
지크가 통로 쪽으로 다가가자 엄청난 후폭풍이 저택 안쪽을 휘감았다.
쿠구구구구!
하지만 지크가 손을 들자 이내 거센 파동이 가라앉으며 다시 차원이 안정화됐다.
지크는 손을 뻗어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차원의 막을 뚫고 들어갔다.
파지지지지직―
카르마의 법칙이 차원을 넘어서는 지크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성좌명은 ‘벽을 넘어선 자.’
그 어떤 벽도 지크를 막을 수 없었다.
우우우우웅!
차원의 벽을 넘어 지크와 아라타소가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가 그를 휙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이 어딘가로 빨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쿠구구구구―
동시에 그가 들어왔던 차원의 통로가 완전히 닫혔고, 지크와 아라타소는 그대로 끌려가듯 이동했다.
츠츠츠츠―
도착했다는 느낌이 든 지크가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성안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이 메피스토펠레스의 영역인가.’
성 내부는 고풍스러운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옆에 있던 아라타소가 놀라며 탄성을 질렀다.
[호오! 저건, 바벨 시절에나 있던 귀한 도자기인데. 오, 저것도 요즘에는 구하기 어려운 것이고!]예술에 관심이 많은 아라타소답게 메피스토펠레스의 성을 장식하고 있는 갖가지 예술품에 탄성을 내질렀다.
“악마 주제에 취향이 상당히 고풍스럽군.”
지크의 말에 아라타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믿을 만한 악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계에서 가장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울 겁니다.]예술품들을 구경하고 있는 그때 지크와 아라타소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지성과 예술의 도시 판데모니엄의 심층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녀린 인상의 여성 메이드가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예술품에서 시선을 돌린 지크는 메이드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만들어진 인형임을 깨달았다.
그가 권속인 아라타소에게 텔레파시로 물었다.
―이것도 메피스토펠레스의 취향인가?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전에 비슷한 모습의 자동인형들만 모아 놓은 전투 부대를 만들었던 건 기억이 납니다.
―굳이 왜 메이드로 전투 부대를……?
―대악마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메이드가 지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께서 군주님을 모셔 오라 하였습니다. 성의 길이 복잡하니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크는 메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라타소와 함께 메이드를 따라 메피스토펠레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안내하는 메이드의 능력을 가늠해 보려 했다.
‘노스트라 패밀리의 보스 제르맹이 분신으로 삼았던 인형보다 더 정교하군.’
처음엔 제르맹을 떠올렸던 그는 이번엔 니르바나 가문의 골렘과 메피스토펠레스의 자동인형을 비교해 봤다.
니르바나 가문의 가주는 9클래스 마법의 이론을 규명함으로써 자동으로 완전 수복이 가능한 골렘을 만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 역시 놀라운 발전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니르바나의 골렘은 눈앞에 있는 자동인형만큼이나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행동할 수는 없었다.
정해진 명령어에 따른 충실한 움직임 정도를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메이드 정도라면 마법과 아티팩트로 무장시켜서 전투를 시켜도 무리 없이 수행이 가능할 것 같은데.’
가녀려 보이는 외관에 방심한 사이 무자비하게 폭격을 쏟아 낸다면 예상외의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메피스토펠레스라면 적들의 그런 허점을 노리기 위해 이런 외향의 자동인형을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크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메이드가 화려하고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손등 표면에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문의 잠금장치와 반응하여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쿠구구구구!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하하하!”
놀랍게도 넓은 방 안에는 커다란 수영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 보랏빛 머리카락을 지닌 한 남자가 수영복을 입은 채 여자들과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쿵! 쿵! 쿵!
사방에서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수영장 한쪽 바에서는 여성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으며, 다른 여자들은 포켓볼을 치거나 갖가지 게임을 하며 놀고 있었다.
지크와 아라타소는 이 풍경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지성과 예술의 도시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방에 수영복을 입고 있는 십수 명의 여성들이 여유 있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데리고 온 메이드는 익숙하다는 듯 수영장 안에서 다른 여성들과 놀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그 남자가 곧바로 수영장에서 나와 몸이 젖은 채로 지크가 있는 곳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지크 드레이커! 어서 오게!”
보랏빛 장발에, 온몸에 기하학적인 문신이 새겨진 미남자.
그가 바로 마계의 악마장이자 다섯 대군주 중 하나인 메피스토펠레스였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씨익 웃으며 지크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나는 자네가 이곳에 올 줄 알고 있었어. 새로운 군주의 자격을 갖춘 채 말이야.”
그가 지크 뒤에 있는 아라타소를 향해 매력적인 윙크를 보냈다.
“오랜만이군, 여명 대장.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니 신수가 훤하군. 부에르, 그러니까 이 좀 서운해할지도 모르겠어.”
아라타소가 이끌던 모닝스타 1번 대대는 주로 여명대라는 이름으로 불렸기에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여명 대장이라 부른 것이었다.
[단장께서는 제 선택을 존중하실 겁니다.]“뭐 애초부터 임시로 소속을 옮긴 것이었으니까. 나는 개의치 않겠네.”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라타소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돌려 지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에게 말했다.
“자자. 이쪽으로 가자고. 아니면 자네도 몸에 물 한번 적시겠나? 여기서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지크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 미간을 그러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악마장 역시 인간 기사 중에서 가장 엄격하며 근면한 지크가 수영장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줄 알았네. 자, 이쪽으로 가자고. 여명 대장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답답해 보이는 그 갑옷도 좀 벗고 편하게 쉬고 있으라고.”
메피스토펠레스는 말과 함께 지크를 데리고 수영장을 지나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하나만 지났을 뿐인데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거대한 방에 수없이 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고풍스러운 서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수영복을 입고 있던 메피스토펠레스 역시 어느새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서재 가운데 놓여 있는 응접용 탁상으로 지크를 직접 안내한 뒤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어디선가 메이드가 나타나 방금 끓인 듯한 차를 가지고 왔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찻잔을 들고 차향을 음미했다.
“안 그래도 난 이 시간이면 항상 홍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지. 자네도 차를 좋아한다고 들어서 특별히 좋은 품종을 준비했네. 한번 맛을 보게나.”
지크는 자신의 차 취향이 도대체 어디까지 알려진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딱히 대꾸하지 않은 그는 찻잔을 들고 향을 음미한 뒤 차를 마셨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크에게 물었다.
“현상계의 차에 비해서 맛이 어떤가?”
“……익숙한 맛은 아니지만 괜찮군.”
그 말에 메피스토펠레스가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에게 그런 평가를 받으니 기분이 좋아.”
그가 차를 음미하며 지크에게 말했다.
“이 공간에 다른 군주들 말고 외부인이 들어온 것이 얼마 만인 줄 아나? 수백 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야. 그러다 보니 내가 다소 흥분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양해해 주게.”
지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곳곳에 서 있는 각양각색의 메이드들을 보며 물었다.
“저 자동인형들도 모두 네가 만든 건가.”
메피스토펠레스는 지크의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모두 내 걸작들이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스스로 생각하고, 어느 정도 감정도 표현해. 인형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 아닌가.”
확실히 그가 만들어 낸 자동인형들은 겉으로 볼 때는 살아 있는 존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지크가 그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바깥에 있던 이들도 모두 자동인형들이었던 것 같은데.”
수영장에서 메피스토펠레스와 웃고 떠들던 수영복 차림의 여인들.
누군가는 칵테일을 만들고, 누군가는 포켓볼을 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진짜로 살아 있는, 영혼을 가진 존재는 하나도 없었다.
지크의 말에 메피스토펠레스의 눈빛이 변했다.
“그렇지. 모두 다 내가 만들어 낸 존재들이야.”
어딘가 자조적이면서 권태로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런 메피스토펠레스의 반응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던 지크가 물었다.
“메피스토펠레스, 너는 지금 이곳에 갇혀 있는 건가.”
지크의 말에 순간 메피스토펠레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대악마의 영역.
그 차원의 힘을 감당할 수 다른 대악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심지어 최상급 악마이자 악마장의 수양딸인 세 공녀 역시 이곳에 닿는 통로의 틈을 여는 것만으로도 인과성의 후폭풍에 시달렸다.
그런 만큼 판데모니엄의 심층부에 존재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메피스토펠레스뿐이었다.
지크의 질문에 메피스토펠레스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이내 그가 고개를 숙이더니 곧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어 댔다.
“크하하, 크하하하하!”
그 웃음은 점차 커지더니 서재 전체를 울릴 정도가 되었다.
광소하는 대악마를 보며 지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웃던 메피스토펠레스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었다.
처음 봤을 때와 달리 그의 눈동자에는 일종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긴 보랏빛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지크를 바라봤다.
“지크 드레이커, 자네는 역시 달라. 여태껏 봐 왔던 그 어떤 성좌나 악마들과도 비교할 수 없단 말이야.”
그가 다시 자리에 앉고서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사막 지역의 마법사들이 많이 피우는 물담배 장치가 테이블 위에 나타났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아까와 달리 나른한 표정으로 물담배의 파이프를 입에 물고 흡입했다.
그러고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연기를 내뿜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자네 말이 맞아, 지크 드레이커. 나는…… 아니 나를 포함한 군주는 모두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혀 있다.”
그가 입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주변을 점차 채워 갔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몽롱한 눈빛으로 지크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만한 구원자, 유일하게 자유로운 대군주의 영혼…….”
연기가 지크의 몸을 휘감더니 점차 그 몸 안으로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의 눈빛이 검게 물들며 목소리가 바뀌었다.
[아무래도 그건 내가 가져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