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91
591화
‘어머니?’
피를 흘리며 쓰러진 로라 아가멤논을 본 지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서가 어머니를 죽였다?’
드레이커의 가주이자, 전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패왕 아서 드레이커.
그가 부인인 로라 아가멤논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지크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치지지지직―
눈앞에 보이는 만화경의 영역이 그의 힘에 의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지크는 로라 아가멤논을 죽인 아서 드레이커를 지금 당장이라도 짓이겨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아서 드레이커는 진짜가 아닌 과거의 편린일 뿐이었다.
지크는 더 이상 기세를 정리하지 않으면 만화경의 영역이 무너질 거라는 걸 눈치채고, 모든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 분노를 억누르고 기운을 갈무리했다.
츠츠츠츠―
그가 기세를 거두자 만화경의 영역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서 드레이커는 쓰러진 로라를 두고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시선을 돌린 쪽에는 돌로 된 제단처럼 보이는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 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서 드레이커가 그 바구니 쪽으로 다가갔다.
“흐음.”
그가 바구니 안에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
아이를 본 아서 드레이커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쓰러진 로라 아가멤논을 보며 말했다.
“이 아이가 예언대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부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아서 드레이커가 아이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지금 내가 이 아이를 죽인다면 네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 말에 로라 아가멤논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가면서도 아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서, 네 녀석은 결코…… 그 아이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로라 아가멤논의 말에 아서 드레이커가 비웃음을 던졌다.
“하, 우습구나! 어째서 내가 죽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거지? 나를 방해할 존재라면 갓난아기라도 얼마든지…….”
“아카식 코드.”
로라 아가멤논의 나직한 말에 아서 드레이커가 말을 멈추었다.
“……그 아이만이 유일하게…… 엘더 드래곤의…… 유물…… 아카식 코드를…….”
그녀의 눈빛이 점차 흐려지며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뒤에서 이를 보고 있던 지크는 로라 아가멤논의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엘더 드래곤과 아카식 코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시간의 용인 크로노스의 계시를 받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카식코드에 대한 내용까지 알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로라 아가멤논은 그 말을 끝으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서 드레이커는 숨이 끊긴 로라 아가멤논을 보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죽은 로라 아가멤논을 바라보는 아서 드레이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회한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꾼 그는 죽은 로라 아가멤논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죽은 로라 아가멤논의 몸이 신비로운 빛으로 휩싸이더니 이내 빛무리로 화하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를 본 아서 드레이커가 사나운 눈길로 흩어져 가는 빛무리를 바라봤다.
“……로라, 너는 끝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잠시 후, 아서 드레이커는 고개를 돌려 바구니 안에 담긴 아이를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의 아이는 울지도 않고 아서 드레이커를 빤히 바라봤다.
자신을 향해 손을 내뻗는 아이를 보며 아서 드레이커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멀리서 온몸이 부서진 채 기어오는 데커의 모습이 보였다.
어금니를 꽉 물고 입과 눈에서 피를 흘리며 기어 오던 데커는 동굴 안의 상황을 보고 소리를 쳤다.
“아, 안 돼!”
그는 로라 아가멤논의 모습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가 아서 드레이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커는 피를 토하며 절규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겁니까! 당신 같은 강자가! 어째서!”
아서는 그런 데커의 절규를 듣고도 별다른 말 없이 묵묵하게 바구니 안의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이내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데커 쪽으로 다가갔다.
툭!
그는 데커 옆으로 바구니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아서 드레이커가 데커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라가 남긴 아이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으니 데커, 네가 책임지고 드레이커 가문의 아이로 키워라.”
데커가 아서의 말을 듣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구니로 다가가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끄으으으윽!”
그로서는 아서 드레이커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힘도, 권한도 없었다.
바구니에 있는 아이가 팔을 뻗어 데커의 뺨에 손을 갖다 댔다.
아이의 선명한 검은 눈동자와 마주한 데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이를 본 아서 드레이커가 몸을 돌렸다.
그때 데커가 아서의 등 뒤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아이의 이름…… 무엇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동굴 밖으로 나가려던 아서가 걸음을 멈췄다.
“이름이라…….”
아서가 서서히 뒤를 돌아보며 데커에게 말했다.
“위대한 드레이커의 저주받은 사생아 지크프리트. 그의 이름을 따서 ‘지크’라 하겠다.”
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만화경의 영역이 무너지고 지크는 다시 원래 있던 고풍스러운 방으로 돌아왔다.
츠츠츠츠―
지크는 침대 위에서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깨어났다.
그는 시간선을 넘어왔을 때와 비슷한 현기증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메피스토펠레스가 왜 침대 위에서 만화경을 전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지럼증이 좀 가라앉자 지크는 침대에서 내려와 메피스토펠레스를 바라보며 힐난하듯 물었다.
“이게 감춰진 진실이라는 건가. 아서 드레이커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이?”
그의 말에 메피스토펠레스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이것이다. 뭔가 다른 것을 생각했던 것인가?”
지크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오만한 구원자의 말에 따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조건을 내건 것뿐이었기에 그가 어떤 진실을 보여 줄지는 그 역시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아서 드레이커가 로라 아가멤논을 살해했다는 과거의 진실은 지크에게 큰 충격과 증오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이것 외의 뭔가가 더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계약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분명 계약에 따라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진실의 일부만을 보여 주는 것은 가능하지.’
아서 드레이커와 로라 아가멤논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크는 그 전말을 알고 있을 만한 이를 떠올렸다.
‘렉스 투른.’
레이나의 친부이자, 투른 가문의 가주인 렉스 투른은 아서와 로라의 오랜 친우이기도 했다.
그는 이전에 렉스 투른에게서 어머니인 로라 아가멤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로 그 기회를 미뤄 놓았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로라 아가멤논이 엘더 드래곤과 아카식코드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서 드레이커는 지크가 운명의 수레바퀴를 부술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고, 이를 알면서도 그를 살려 둔 이유가 무엇인지 렉스 투른이 모두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서가 생길 게 분명했다.
‘우선 렉스 투른을 먼저 만나 봐야겠군.’
지크는 메피스토펠레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제 현상계로 돌아가겠다.”
그의 말에 메피스토펠레스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벌써 돌아가게? 아직 연회도 안 끝났고 나랑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지크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곧장 라벤을 소환했다.
우우우우르르루!
이전보다 훨씬 성장한 라벤이 불타오르는 날개를 퍼덕이며 봉황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불안정한 차원과 차원 사이에 틈이 생겨났다.
파지지지지직―
차원의 틈새에서 강력한 플라즈마가 피어올랐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대로 떠나려는 지크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성격이 급하기도 해라! 지크 드레이커, 돌아가는 길은 이곳으로 올 때와는 다를 거야! 너도 이제는 마계 대군주의 격을 갖추었으니 카르마의 제재가 더 강하게 올 테니까!”
지크는 그런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라벤을 데리고 차원의 틈 안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구구구―
강력한 차원의 폭풍이 그를 휘감아 끌어당겼고, 순식간에 틈새가 닫혔다.
방 안에 남은 메피스토펠레스는 사라진 차원의 틈새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아름다움을 갖춘 자.
오만한 구원자가 영체의 모습으로 메피스토펠레스의 옆에 섰다.
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보며 말했다.
―악취미는 여전하군. 어째서 지크 드레이커에게 모든 진실을 알려 주지 않은 건가.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지루해서 살 수가 없다는 말이지.”
오만한 구원자의 영체는 그런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는 네 장난질이 통할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 말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더욱 크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더욱 재밌는 거야. 이 무대가 어떤 종장으로 나아갈지. 매우 기대가 되거든.”
그가 손을 휘젓자 만화경의 유리창이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다른 장면들을 비추고 있는 유리창을 보며 메피스토펠레스가 씨익 웃었다.
“지크 드레이커, 앞으로 네가 어떻게 이 무대를 망칠지 아주 기대가 돼. 그러니…… 부디 망가지지 말라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쥐고 흔드는 아이처럼 메피스토펠레스는 순수하면서도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 * *
쿠구구구구!
지크는 라벤을 따라 차원의 틈새를 헤치며 현상계로 나아갔다.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경고처럼 카르마의 제재와 반발력이 이전보다 강하게 작동하는지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우르르루루루!
라벤이 앞에서 현상계로 가는 길을 인도하지 않았다면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차원의 폭풍에 의해 틈새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크는 성좌의 힘을 일으켜 자신과 라벤을 보호하며 라벤의 안내대로 차원의 틈을 뚫고 현상계로 통하는 입구로 향했다.
‘이 길은 어디로 통하는 거지.’
본래는 바라나온의 저택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영역으로 통하는 길을 열었었다. 하지만 지금 나아가는 길은 그곳과는 다른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우우우우웅!
그때 지크의 눈앞에 현상계로 통하는 통로가 보였다.
그는 라벤을 향해 말했다.
―라벤 저곳으로 나가자!
라벤은 지크의 말을 듣고 플라즈마 폭풍을 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크는 강력한 카르마의 반발력을 감당하며 거대한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엄청난 인과성의 후폭풍이 지크에게 몰아쳤다.
하지만 대량의 카르마 포인트를 갖고 있는 지크에게 이 정도 후폭풍은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차원의 틈을 지나 현상계로 빠져나온 지크는 몸 상태를 점검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오래된 유적지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 이끼가 끼어 있고 석조 건물도 마모된 상태로 방치된 것이 오랫동안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은 유적지인 듯싶었다.
“고대 유적이라. 독특한 양식이군.”
전생에서 중앙대륙에 있는 고대 유적지는 대부분 탐사해 본 지크였기에 이전에 본 적 없는 양식을 보자 흥미가 동했다.
지크는 맵을 띄워서 현재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있는 곳은 중앙대륙이 아니었다.
‘동방대륙?’
게다가 동방대륙에서도 무르크 제국의 영역이 아닌 만년장벽 너머의 산맥 안에 위치한 곳이었다.
“만년산맥 안에 존재하는 고대 유적지라.”
지크는 유적지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확실히 중앙대륙에 있는 고대 유적지와는 건축 양식에서 다른 점이 많았다.
‘흐음, 동방대륙의 고대 유적인 걸 감안한다고 해도 무르크 제국의 양식과는 차이가 좀 있군.’
유적지를 살핀 지크는 이곳이 무르크 제국보다 훨씬 더 이전에 지어진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적을 유심히 살펴보던 지크는 이곳과 비슷한 건축 양식을 띠고 있던 곳을 떠올렸다.
‘카르코사.’
태초의 신전을 찾기 위해 갔었던 사라진 기억의 파편 속에서 지크는 카르코사의 피라미드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이 유적지는 카르코사의 피라미드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았다.
연관성이 있는 건지 생각해 보며 유적지를 쭉 둘러보던 지크는 안쪽에 제단이 세워져 있던 흔적을 발견했다.
제단 쪽으로 다가간 지크는 벽에 뭔가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빛무리를 만들어 띄우자 벽면이 환하게 드러났다.
지크가 고개를 들고 유적지의 벽면을 올려다봤다.
‘저건?’
유적지의 벽면에는 세 개의 눈을 상징한 표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