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05
605화
하이테이블들 주변으로 잉겔의 명령을 받은 흑무대원들이 서서히 범위를 좁혀 왔다.
나부가 다시 책을 펼쳐 들고 글귀를 읽어 혼이 담긴 검을 소환해 냈다.
이를 본 잉겔이 흑무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방패!”
그러자 흑무대원들의 검은 팔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흑요석같이 단단한 재질의 방패를 만들어 냈다.
그들이 검은 방패를 앞세워 나부가 소환한 검들을 향해 앞으로 돌진했다.
쩌어어어엉!
나부의 검들이 흑무대원들의 검은 방패와 충돌을 일으켰다.
거대한 충격음이 석실을 흔들었지만, 아까와 달리 흑무대원들은 뒤로 밀려가기만 할 뿐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혼이 담긴 검을 형상화한 언령으로는 이들에게 큰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게 드러났다.
나부가 어금니를 꽉 물며 다른 글귀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강한 현기증과 함께 어지럼증을 느꼈다.
“끄윽!”
계속 언령을 사용해 정신력에 한계가 온 것이었다.
이를 본 잉겔이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하이테이블들에게 말했다.
“구시대의 망령들아. 더 이상 의미 없는 반항을 하지 말고 투항해라. 자비로운 우리의 신께서 네놈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내리실 것이니라.”
그 말에 나이젤이 검을 겨누며 말했다.
“같잖지 않은 신 타령은 집어치워라. 미친 광신도 새끼들아.”
나이젤의 말에 잉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모시는 신을 모욕당한 신도처럼 그녀는 순수하게 분노하며 광기 어린 말을 쏟아 냈다.
“죽여라! 저 배덕한 망령을 죽여!”
잉겔의 말에 흑무대원들은 방패로 변화시켰던 팔을 다시 검은 손톱으로 바꾸고 하이테이블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이젤이 앞으로 튀어 나가 이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혼신기의 힘을 담은 나이젤의 검격은 확실히 이들에게 타격을 줬다.
하지만 그녀의 검을 맞고 쓰러진 흑무대원들도 시간이 지나면 몸을 회복해 다시 일어났다.
게다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이전보다 강해지는 듯 아까보다 더 강한 기운을 몸에 두르고 나이젤을 향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안 그래도 앞서 다른 마수들을 상대하느라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다른 하이테이블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쉽지 않음을 느낀 나이젤은 잉겔 뒤에 서 있는 바론 드레이커를 보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결국 그 수밖에 없는 건가.’
본신의 힘을 드러내면 이들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나이젤은 현상계에 머무를 수 없었다.
운이 좋다면 우화등선하여 도원향으로 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카르마의 제재의 의해 영혼 자체가 소멸해 버릴 수도 있었다.
다른 하이테이블들이 외부종 마수에 의해 소멸한 데다가 수장 역시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나이젤 자신까지 소멸이 된다면 하이랜더는 거의 괴멸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밀려드는 흑무대원들을 보다가 뒤에 있는 나부를 힐끔 바라봤다.
평소에 여러 일로 아웅다웅하기는 해도 나이젤은 하이랜더에서 나부를 가장 신뢰했다.
그녀는 검을 휘두르며 나부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부, 뒤를 부탁한다.
현기증 때문에 양탄자에 누워 있던 나부는 나이젤의 메시지에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 할망구! 지금 뭔 소리를!”
나부가 말하는 순간 나이젤이 있는 쪽에서 빛이 번뜩였다.
우우우우우웅!
나이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고아한 은광이 흩뿌려졌다.
본신의 힘이 워낙 강하기에 나이젤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며 자신의 힘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본신의 힘을 개방하면서 겉모습 역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우우우우웅!
틀어 올렸던 머리가 풀어지며 긴 은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팔, 다리가 길어지고 온몸이 날씬하면서도 탄력적인 체형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정수리에 잘려 있던 뿔이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변한 나이젤은 나부가 펼친 진실의 거울에 비쳤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달빛을 담아 빚어 놓은 듯한 고아한 여신.
그것이 나이젤의 본모습이었다.
쿠구구구구구!
봉인을 풀고 본신의 힘을 개방한 나이젤에게서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바론 드레이커 역시 나이젤이 본모습을 드러내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때 앞에 있던 잉겔이 바론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소리 질렀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 배덕한 망령을 죽여라!”
그녀의 광기 어린 목소리에 잠시 멈칫했던 흑무대원들이 나이젤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슈슈슉!
사방에서 날아든 그들이 재빠른 동작으로 나이젤을 향해 검은 손톱을 내질렀다.
나이젤 역시 그런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아앗!
순식간에 나이젤 주변에 있던 흑무대원들이 사라졌다.
투두두둑!
단 일검에 흑무대원들은 육편이 되어 그 잔해가 흩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잉겔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저, 저것이!”
본신의 힘을 드러낸 나이젤의 검은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그녀의 검은 막으려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혼을 실은 나이젤의 검은 존재의 근원 자체를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흑무대원들의 몸을 휘감은 검은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나이젤로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냥 베어 버리면 될 일이었다.
잉겔이 이를 보고 흑무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죽여라! 한 번에 달려들어!”
그녀의 명령에 흑무대원들 십수 명이 단번에 달려들었다.
방금 전 자신의 동료들이 육편이 되어 흩어졌지만, 그들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다.
애초에 흑무대원들 자체가 그런 식으로 상명하복에 철저하도록 훈련이 된 이들이었다.
지금은 거기에 광기까지 더해졌으니 이들의 움직임에 망설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슈슈슈슉!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흑무대원들을 보며 나이젤이 검을 들었다.
그녀의 검에서 은은한 은빛 월광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검은 그림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혼신기 월광검
솔로 스펠
참(斬)의 의지
나이젤의 의지가 담긴 검이 흑무대원들을 향해 펼쳐졌다.
촤아아아아악―
월광을 빛내며 펼쳐진 그녀의 검이 흑무대원들의 몸에 닿았다.
일반적인 검격과 달리 월광은 충돌하지 않고 흑무대원들의 몸을 훑듯이 그대로 통과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을 통과한 월광에는 나이젤이 심어 둔 참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커, 커헉!”
달려들던 흑무대원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더니 동시에 그들의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둑!
십수 명의 흑무대원들이 혈수가 되어 녹아 버리듯 바닥에 흩뿌려졌다.
철퍼어억!
나이젤의 주변은 피와 부서진 뼈, 흩어진 육편으로 가득했다.
온통 붉게 물든 세상에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것 같은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신이 냉막한 얼굴로 서 있었다.
잉겔은 그런 나이젤을 보며 안면을 구기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빌어먹을 아인종 년이…….”
사실 잉겔은 카스트로 폴록보다 더한 지독한 종족 차별주의자였다.
그녀는 일각족인 나이젤을 보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는 듯 팔 주변을 벅벅 긁었다.
“새 시대에 저런 벌레 같은 존재들을 둘 수 없다. 죽여야 해. 모두 박멸해야 해.”
잉겔이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팔을 아래로 축 내리자 손끝이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다른 흑무대원들과 다르게 그녀의 손에서는 검은 기운이 손에 흐르듯 모이더니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잉겔이 나이젤을 보며 읊조리듯 말했다.
“나는 새 시대의 신인류. 새로운 순수 혈통 드레이커, 잉겔 드레이커다.”
잉겔의 손에서 흘러나온 검은 액체가 스멀스멀 기어가더니 주변에 있는 다른 흑무대원들의 몸을 타고 그들의 목 뒤에 달라붙었다.
쿠드드드득―
검은 액체가 목 뒤에 달라붙자 흑무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눈에 흰자위가 사라지고 눈동자 전체가 검게 변한 그들의 눈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잉겔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었다.
잉겔이 끈적한 검은 물질에 물든 손을 들어 마치 인형사처럼 흑무대원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곧 흑무대원들의 목 뒤에 붙어 있던 검은 물질들이 얇게 펴지더니 그들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쿠드드드득―
팔뿐만이 아니라 온몸에 검은 기운이 퍼진 흑무대원들은 몸에 끈적한 물질을 뒤집어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상태로 잉겔이 양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흑무대원들을 휘감은 끈적한 물질들이 변화하더니 흑요석처럼 단단하게 고정되며 팔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잉겔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죽여라!”
휘이이이익!
그녀의 말과 함께 흑무대원들이 나이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이젤은 고요한 기세로 검을 치켜들고 그들을 향해 휘둘렀다.
콰드드드득!
나이젤의 검격에 맞은 흑무대원들의 몸이 검은 수정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파스스스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흩뿌려진 파편들이 녹아내리며 액체화되더니 다시 하나로 뭉쳐 본래의 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크르륵!
다시 검은 괴인의 형태가 된 흑무대원들이 나이젤을 향해 달려들었다.
혼신기가 담긴 나이젤의 검격이 흑무대원들을 산산이 부숴 버려도 이내 원래 형태로 재생을 하니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나이젤은 처음 보는 이상 현상에 미간을 그러모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지지지직!
그녀가 들고 있던 검에서 인과율의 후폭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신의 힘을 개방한 나이젤에게 카르마의 제재가 시작된 것이었다.
나이젤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다시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려던 그녀의 그림자에서 불쑥 괴인 하나가 튀어나왔다.
촤아아아악!
나이젤이 급하게 뒤로 돌아 괴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역시나 산산이 부서진 괴인이 다시 본래 형태로 재생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생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부가 나이젤을 향해 소리쳤다.
“젠장! 나이젤 그만해! 여기를 버리고 물러나자고!”
나부로서는 이곳을 지키는 것보다 나이젤을 잃는 것이 더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나이젤은 나부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두르며 이들이 문으로 다가가는 것을 막을 뿐이었다.
문제는 설사 이들을 막는다고 해도 뒤에 있는 바론 드레이커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젠장…….’
나부는 어금니를 꽉 물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때 만나에게 치료를 받은 이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팔이 잘린 부위에 붕대를 감은 채 나부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수장이 소멸한 것 같다.”
“수, 수장이 소멸했다니. 그게 무슨…….”
“탑에서 더 이상 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장은 이 탑을 나설 수 없으니 소멸했다고 봐야겠지.”
그 말에 나부의 표정이 절망에 물들었다.
유일하게 기대를 걸었던 것이 수장이었는데 이미 소멸을 했다면 남은 희망은 없다시피 한 것이었다.
나부가 어금니를 꽉 물고서 이반에게 말했다.
“이반, 저 문을 열어.”
그러자 이반이 고개를 저었다.
“사자의 서가 놈들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자 나부가 이반을 향해 소리쳤다.
“멍청한 놈아! 그러게 진작 문을 열어서 나이젤에게 넘겼으면 됐잖아! 지금 와서 그딴 개소리가 통할 것 같아!”
그가 이반의 멱살을 잡고 격노해 외쳤다.
“지금이라도 그걸 회수해서 여기서 도망쳐야 해! 더 이상 있다가는 우리도 죽고 사자의 서도 놈들에게 빼앗기는 거야!”
나부의 말에도 이반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이 탑이 사자의 서를 지켜 줄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뒤를 돌아선 나부가 만나에게 소리쳤다.
“만나! 당장 저 문을 열어 줘! 어서!”
머뭇거리던 만나는 이내 합장을 한 뒤 문 쪽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이반이 만나를 막으려 했지만, 나부가 그를 붙들었다.
“이번에는 안 돼. 정신 차리…….”
콰콰콰콰쾅!
그런데 그때, 크게 울려 퍼지는 충격음에 하이테블들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나이젤이 공격을 받고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쿠구구구!
괴인이 된 흑무대원들 여럿이 서로 합쳐져 아까보다 큰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벽에 처박힌 나이젤의 몸에서 인과율의 후폭풍 때문에 플라즈마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잉겔이 괴물을 향해 소리쳤다.
“죽여! 당장 저 더러운 아인종을 죽……!”
서걱―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잉겔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투둑!
굴러떨어진 잉겔의 목이 어딘가에 가로막혀 구르는 걸 멈췄다.
툭!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잉겔의 머리 위에 발을 올리더니 그대로 그것을 밟아 터뜨렸다.
퍼어억!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잉겔의 뇌수 잔해 속에서 황금빛 용안을 빛내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부가 그를 보며 소리쳤다.
“지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