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81
681화
쩌저저저저적!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던 가상 공간이 깨지며 지크가 눈을 떴다.
‘여긴……?’
지크는 요정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에 자신 혼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노려보고 있던 바하무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디로 간 거지?’
지크는 기감에 집중해 사슬에 묶여 있던 바하무트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그 어떤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그에게 과거의 기억을 보여 주고 혼란만을 안겨 준 채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송곳니와 심장이 사라진 바하무트의 육신을 메피스토펠레스가 가져갔다고 가정한다면…… 바하무트를 되살리려 한 테라칸 드레이커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겠군.’
불완전한 바하무트의 육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둘 사이에 어떠한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그때 지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테라칸 드레이커 역시 이 버려진 대륙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두었을 수도 있겠구나.’
바하무트를 되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했던 테라칸 드레이커였다. 버려진 대륙으로 이동한 이후 행적을 알 수 없었으니, 이곳에서 그 방법을 찾다가 중앙대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수명이 다해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곳에 그의 마지막이 담긴 무덤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만약 추측이 맞는다면, 다른 이들에 앞서서 버려진 대륙을 탐사한 만큼 이곳에 대한 정보나 도움이 될 만한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했다.
‘게이트를 열고 테라칸의 무덤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지크는 바하무트가 있었던 공동을 둘러보다가 아무런 기척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바깥으로 나갈 길을 찾았다.
주변을 둘러보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위에서 희미한 바람결이 느껴졌다.
나가는 통로가 위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 즉시 지크가 바닥을 박차고 공동의 위로 솟구쳤다.
통로를 찾은 그는 그대로 공동을 나갔고, 그가 사라지며 텅 비어 버린 공동의 공간에서 기척 없이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들이 꿈틀거렸다.
이내 그 그림자들이 어딘가로 빨려가듯 움직였다.
공동은 이제 그림자들조차 찾아볼 수 없이 텅 비었다.
* * *
한편, 협곡 바깥쪽에서는 모인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예카테리나가 소환한 탑 위에서 아나스타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꼼꼼하게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꼴을…….’
의식을 되찾고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침식 요새를 소환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문제는 버려진 대륙이 일반 현상계와 달리 마력이 꽤나 불안정했기 때문에 복잡한 마법진을 직접 그려서 침식 요새를 소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어 하는 아나스타샤가 지루한 마법진 작업을 얌전히 할 리가 없었지만 지금 상황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계 군주 중 하나인 아스모데우스가 눈빛을 빛내며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녀를 뒤에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계 공녀 중 천방지축으로 유명한 아나스타샤라 하더라도 게헤나의 주인이자, 마계 군주인 아스모데우스에게까지 반항할 만큼 간이 크지는 않았다.
그렇게 싫은 기색을 꾹꾹 눌러 참으며 한 땀, 한 땀 열심히 마법진을 그리는 아나스타샤를 엘리자베타와 예카테리나가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살면서 우리 막내가 열심히 마법진 그리는 걸 다 보네. 언니로서 뿌듯하구나.”
엘리자베타의 말에 예카테리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웅크리고 마법진을 그리는 꼴이 썩 잘 어울리는군. 아무래도 천직인 것 같은데 우리 부대 마법사로 취직하는 건 어떠냐.”
엘리자베타와 예카테리나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으드득, 좋은 말로 할 때 저리 꺼져라.”
그녀가 위협적으로 말하자 엘리자베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머, 정말 그래도 될까? 내가 친히 네 마법진을 살펴봐 주고 있는데도? 안 그래도 지금 거기 틀렸는걸.”
엘리자베타의 말에 아나스타샤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빌어먹을 년.’
울분이 치솟았지만, 마계 제일의 마법사 중 하나인 엘리자베타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그녀는 이를 갈며 그렸던 곳을 다시 확인했다.
그때 뒤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던 아스모데우스가 입을 열었다.
“아직 멀었나.”
아스모데우스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조,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군주님.”
게헤나의 주인이었던 아스모데우스가 얼마나 잔혹한 성정을 지녔는지는 소문으로 익히 들었기에 아나스타샤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치료하여 깨운 것 역시 아스모데우스의 힘이었기에, 아나스타샤로선 그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심연 속에 잠겨 있던 그녀의 영혼을 억지로 끄집어내서 의식을 되찾게 되었을 때, 아나스타샤는 영혼이 쪼개지는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아스모데우스에게 반항했다가 또 그런 고통을 느낄까 봐 아나스타샤는 명령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사실 아나스타샤가 마법진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는 아스모데우스 역시 마음속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딴 짓을…….’
지크에게 종속되어 이곳으로 끌려와 그의 뜻대로 침식 요새를 소환하도록 돕고 있었지만, 여전히 대군주로서의 위엄을 내려놓지 못한 아스모데우스였다.
이곳에서 본체로 마족들과 부대끼고 있을 만한 위치가 상당히 심사가 불편한 상태였다.
‘지크 드레이커. 악마장과의 계약이 끝나기만 한다면…… 이 수모를 갚아 주마.’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지크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마음을 다잡고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마법진을 그리는 아나스타샤를 지켜봤다.
아나스타샤는 아스모데우스의 눈빛에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으으으, 다 끝났습니다.”
대형 마법진을 결국 혼자 그려 낸 아나스타샤는 진이 빠져 초췌해진 얼굴로 보고했다.
이를 본 아스모데우스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아나스타샤에게 말했다.
“그럼 침식 요새를 소환해라.”
아스모데우스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퍼뜩 놀라며 말했다.
“지, 지금 바로 말입니까?”
방금 마법진을 완성하며 체력이 다 떨어진 상황인데 마력의 소모가 큰 침식 요새의 소환까지 곧바로 하라고 하니 아나스타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계의 군주가 그런 사정을 봐줄 리 없었다.
“문제라도 있나.”
문제가 있다면 없도록 만들어 주겠다는 어조였다.
만약 여기서 힘들어서 못 하겠다 하면 아스모데우스는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억지로 정염을 주입해 힘을 회복시킬 것이 분명했다.
효과는 확실하겠지만, 그만큼 큰 고통이 따를 게 뻔했기에 아나스타샤는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요. 지금 바로 소환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나스타샤는 곧장 마법진 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숨을 고르고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아나스타샤의 마력에 반응한 마법진에 빛이 솟구쳤다.
마법진으로 마력을 고정시키기는 했으나 버려진 대륙 자체가 워낙 특수한 지역이다 보니 마력들이 요동을 치면서 역류하기 시작했다.
‘으으윽!’
안 그래도 마법진을 그리느라 체력과 정신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였는데 마력까지 역류하자 아나스타샤는 정신을 잃을 듯 아득해졌다.
정말로 쓰러지기 직전, 아나스타샤는 등 뒤에서 묵직한 마력이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뒤를 슬쩍 돌아보니 예카테리나가 뒤에서 아나스타샤에게 자신의 마력을 전해 주고 있었다.
엘리자베타는 마법을 사용해 마법진의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중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아득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을 놀리던 두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입술을 꾸물거렸다.
‘쳇, 답지 않게 뭔…….’
속으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예카테리나와 엘리자베타의 도움으로 아까보다 안정적으로 소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마법진에 집중된 마력이 위로 솟구치더니 엘리자베타가 고정시켜 둔 부유 요새의 하단부에 직격했다.
직격한 하단부에는 미리 설치해 둔 마력 증폭기가 있었다.
그 증폭기에 마력이 스며들더니 곧 환한 빛이 여섯 갈래로 나뉘어 협곡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쿠르르르르릉!
갈라져 떨어진 빛과 함께 협곡 아래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탑이 있던 자리가 솟구쳐 오르며, 평범했던 바위들이 변화를 보였다.
쿠드드드득!
협곡의 바위산 전체가 아나스타샤의 침식 요새로 변해 간 것이다.
뾰족한 돌산이 탑으로, 단단한 바위들이 성벽으로 바뀌었다.
솟아오른 침식 요새의 한가운데에 예타카테리나의 탑이 위치했고, 그에 맞춰 공중에 떠 있던 엘리베타의 공중 요새의 하단부에서 기둥이 내려오더니 탑의 상층부와 연결이 됐다.
쿠구구구구!
세 공녀의 요새가 하나로 합쳐지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도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궁!
아나스타샤는 침식 요새의 소환을 마치고 모든 힘을 다 소모한 채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으으으으으, 난 이제 때려죽여도 못 일어나.”
아스모데우스는 완성된 요새 도시를 보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엘리자베타에게 말했다.
“요새의 소환은 마무리가 되었군. 인간 군단을 불러올 게이트를 여기에 설치한다는 건가.”
아스모데우스의 말에 엘리자베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군주님. 께서 오시면 게이트 설치 작업을 시작할…….”
그녀가 말을 흐리며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다가오는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요새의 아래쪽에서 수많은 마수들이 새까맣게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예카테리나가 이를 갈며 검을 치켜들었다.
“빌어먹을 마수 놈들이 또 달려드는구나.”
그녀가 당장 투마족들을 이끌고 출진하려는 그때, 아스모데우스가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기다려라.”
진지한 표정을 한 아스모데우스의 마안에 마수 군단이 아닌 다른 기운을 지닌 이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요새의 정면 공중을 향해 손을 들었다.
키이이이잉―
기이한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장막을 벗겨 낸 듯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구구구!
놀랍게도 하늘에는 수많은 군함이 둥둥 떠 있었다.
그 군함들에 달린 돛에는 검과 태양의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이를 본 아스모데우스와 공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폴리온 기사단…….”
그들은 사전에 지금 현상계 상황에 대해 모두 설명을 들은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아폴리온 기사단에 대해서도 이미 들었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아폴리온 기사단이 마수 군단을 이끌고 이들의 요새를 파괴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어금니를 꽉 물고서 엘리자베타에게 말했다.
“당장 요새의 방어 결계를 작동시켜라. 가 배치해 둔 가디언들에게도 경계를 하라 전달을…….”
콰콰콰쾅!
아스모데우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중의 군함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군함에서 쏘아 올린 수많은 마력탄들이 요새를 향해 날아들었다.
엘리자베타가 급히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그녀의 신호에 맞춰 공중 요새에서 방어막을 가동시켰다.
날아오던 마력탄들이 방어막에 막혀 중간에 폭발하며 흩어졌다.
쿠구구구구!
그럼에도 그 충격 때문에 협곡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예카테리나는 이를 보고 사나운 눈매로 군함들을 노려봤다.
“이 새끼들이 감히…….”
그녀가 검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당장 주포를 준비해서 저 새끼들을 조져 버려라!”
예카테리나의 명령에 호응하듯 탑의 중심부에서 거대한 마안 하나가 떠올랐다.
우우우웅!
마안에서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더니 압축된 마력포가 군함들을 향해 쏘아졌다.
쿠아아아앙!
강력한 마력포가 발사된 그 순간, 놀랍게도 공중에 있던 군함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력포는 마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변한 군함들을 그대로 관통하고 지나갔다.
마력포가 지나간 뒤, 군함들은 다시 선명해지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를 본 예카테리나가 불같이 성질을 냈다.
“으아아악!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놈들을 다 없애 버릴…….”
콰콰쾅!
그때 요새 아래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마수들이 몰려들어 방어막에 몸을 부딪치는 것이었다.